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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미주기구(OAS)의 미주상호방위조약과 베네수엘라 제재의 의미

베네수엘라 정이나 현 쿠바 아바나 의과 대학 박사 2019/11/28

지난 9월 초 미주기구(OAS) 상임위원회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을 소위 ‘공식화’하려는 결정을 내렸다. 35개국 회원국 중 12개국의 동의를 얻어 미주상호방위조약(Inter-American Treaty on Reciprocal Assistance, TIAR)을 인용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군사개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조약의 최종적인 실행은 유엔의 결정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결정은 베네수엘라를 미주대륙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잠재적인 위험 국가로 규정하고 역내 국가들과 합의를 통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단계적 절차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최근 미주기구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조치의 강화, 특히 군사적 개입이라는 선택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일까?

 

1948년 창설된 미주기구는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35개국이 가입한 아메리카 대륙의 최대 국제기구이다. 창설된 이후 아메리카 역내에서 특히 중남미 지역에서 일어나는 주요 문제와 민감한 쟁점들을 다루어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미주기구가 단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만을 반영하고 관철하는 허울뿐인 국제기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꾸준히 존재해왔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남미에서는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난 자주적 외교 노선을 주장하는 진보정권들이 들어서면서 미주기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진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역내 미주기구의 역할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은 물론 오랫동안 미국의 뜻대로 움직였던 만큼 중남미 국가들의 거부감이 높아진 것도 이 시기와 무관하지 않다.

 

미주상호방위조약(TIAR)의 의미
1947년에 체결된 미주상호방위조약(TIAR)은 역내 안보와 평화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 즉 ‘군사적 선택’은 물론 미주국가에 대한 외국의 군사적 침공을 미주국가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규정 등을 담고 있다. 즉 미주국가 공동의 이해와 평화를 대변하고, 이를 방어하며 평화를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난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 말비나스섬을 두고 일어난 분쟁에서 이 조약에 대한 실효성이 크게 훼손된 바 있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영국의 공격은 미주국가에 대한 최초 군사적 ‘도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영국의 편에 서서 오히려 아르헨티나에 대해 제재를 가하여 조약의 신뢰성에 큰 흠집을 냈다.
 
현재는 미국을 포함하여 총 35개국인데, 논란의 중심에 있는 베네수엘라는 2012년에 탈퇴했다. 그런데 지난 9월 11일 미주기구 상임위원회에서 이 조약을 발동하기 위한 첫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 방안과 절차 등을 논의한다는 계획이었다. 즉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국교단절 및 항로와 해상로 차단 등 개입의 종류와 강도 등을 사실상 공론화하는 절차였던 셈이다.

 

그리고 약 열흘 뒤 뉴욕에 모인 19개국 회원국들은 쿠바, 우루과이,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 3개국을 제외한 16개국의 찬성으로 조약이 가동되는 절차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러자 우루과이는 이 같은 결정에 반발하며 조약에서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하였고 역내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이다. 또한 이 결정에 즉각 반응한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주기구의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회견에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은 물론 내정에 간섭하는 모든 종류의 개입에 반대하는 뜻을 재차 밝힌 바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한 역내의 다양한 견해
베네수엘라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역내에서도 뚜렷한 견해차를 보인다. 지난 4월 미주기구는 올해 초 대통령으로 ‘셀프 선언’한 야당의 과이도 의원이 보낸 인사를 상임대표로 결정하면서, 내부적으로 큰 진통을 겪은 바 있다. 멕시코는 앞으로 주권국가의 권리를 해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미주기구와 그 제도적 정당성이 크게 훼손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결정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또한 우루과이는 이 같은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주기구 공식 문서에 분명히 기재하도록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역내 국가 간의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양상이다. 지난 9월 11일 미주기구 상임위원회에서 의결된 미주상호방위조약을 가동하는 문제에 있어 35개국 회원 중 16개 회원국만이 동의한 사실은 사실상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을 공공연히 주장해왔던 미국의 주장이 사뭇 무색하게 느껴지는 결과임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미주기구 내 다수 회원국의 반대가 과연 미국의 의지를 제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힘의 균형’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사실을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주목할 점은 현재 베네수엘라에 대한 개입을 찬성한 국가는 미국을 비롯하여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현재 남미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발의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와 2,000 킬로미터가 넘는 국경을 공유하고 있다.

 

두 나라의 관계는 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대통령이었던 차베스 정부 출범 후 바로 집권한 콜롬비아의 우리베(Uribe) 우파정권과 각을 세우며 줄곧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 최근 두 나라 국경 지역에서 고조되고 있는 군사적 긴장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이다.

 

최근 베네수엘라 정치상황을 두고 미주기구 내 감지되는 균열의 전조는 이미 예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미주기구가 미국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기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남미의 이른바 핑크타이드를 주도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제안한 ALBA(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동맹)를 비롯하여, 2010년에는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하고 중남미와 카리브 해 국가들만의 역내 통합 기구인 CELAC(라틴아메리카-카리브 해 국가 공동체) 구성이 합의되었다.

 

이 새로운 역내 통합체제가 지금까지 미국의 이해관계만을 주로 대변해 온 미주기구의 대안 체제로서 기대를 모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같은 흐름에 미국이 보인 예민한 반응은 “미주기구를 대체하는 시도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논평으로 나타났다. 또한 최근 두드러지는 변화 중의 하나는 약 90여 년 만에 중도좌파적 성격을 가진 오브라도르(AMLO) 정부가 출범한 멕시코가 지난 9월 CELAC의 의장국이 되면서 미국을 배제한 역내 통합 기구로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 중국과 러시아 등을 위시한 라틴아메리카의 국제관계가 다원화되면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우위가 더는 유효해 보이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이에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미주기구가 역내 회원국에 전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에 대한 민감한 질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베네수엘라의 발 빠른 외교 행보의 의미
그렇다면 이번 미주기구에서 의결된 미주상호방위조약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라틴아메리카 최대 반미국가이자 반제국주의를 주장해 온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눈엣가시가 된 것은 이미 차베스가 집권한 1999년부터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게다가 차베스 사망 2년 후인 2015년에 오바마 정부는 베네수엘라를 미국 안보를 크게 위협하는 국가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경제제재 조치를 단행하였고, 트럼프 정부는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반미, 반제국주의 동맹국이었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잇달아 극우적 성향의 정부들이 집권하면서 역내 ALBA를 통한 남미 통합을 추진했던 베네수엘라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더욱이 2천 킬로미터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파상공세를 늦추지 않은 채 연이어 베네수엘라를 향한 ‘전략적’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유엔 총회가 한참이던 지난 9월 마두로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미국 제재로 공급이 불안정한 의약품뿐만 아니라 군사자문 등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 외교부 장관은 물론 부통령까지 유엔에 참석하여 미국발 경제제재의 부당함과 콜롬비아의 불법 마약조직과 민병대의 활동에 항의하고 다각도로 국제사회를 향해 마두로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 같은 발 빠른 움직임으로 국제사회는 물론 라틴아메리카 역내에서도 외교적으로 고립되지 않겠다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분명한 의도는 확인된 셈이다.         
 
현재 마두로 정부에 대한 미국발 일방적인 경제제재는 과거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통해 이루어졌던 정권교체가 아닌 경제적 봉쇄와 외교적 고립을 통해 내부적으로 붕괴를 유도하는 전략에 가깝다. 그리고 지난 9월 미주기구 내 상호방위조약의 가동은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이었다. 역내 회원국의 합의를 끌어내 경제적으로는 물론 역내에서 외교적으로 베네수엘라를 더욱 고립시키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즉 이번 미주기구의 결정은 앞으로 군사적 개입을 당면한 현황 과제로 하여 논의를 끌고 가기보다 오히려 역내 회원국 간의 공조를 통해 베네수엘라가 내부적으로 붕괴하는 것을 유도하는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5년간 미국이 단독으로 시작한 경제 및 금융 제재는 지금의 베네수엘라 경제를 파탄에 이르도록 한 외부적 요인으로 작용할 뿐 ‘정권교체’라는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적어도 이를 통해 마두로 정부의 붕괴를 기대하기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라틴아메리카 정치지형의 재편과 향후 전망
이러한 가운데 중남미 지역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10월 아르헨티나에서는 좌파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칠레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APEC 정상회의가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으며, ‘부패’혐의로 기소되어 갇혀있던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은 약 1년 반 만에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노동자당을 중심으로 여전히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룰라의 석방은 현재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정부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남미의 핑크타이드가 다시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지형이 최근 볼리비아 사태를 포함하여 빠르게 재구성되는 상황이다. 지금으로서는 지난 9월 미주기구에서 미국과 콜롬비아가 주도하여 발동한 미주상호방위조약으로 베네수엘라를 역내 고립시키고자 했던 전략은 당분간 큰 진전 없는 상태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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