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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RCEP과 인도의 딜레마

인도 이순철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통상학부 교수 2019/12/11

인도의 RCEP 불참
2019년 11월 4일 전 세계는 놀라운 뉴스를 전해 들었다. 세계 최대의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에 인도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소식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간디의 부적(Gandhi's Talisman)”까지 언급하면서 “의심스러울 때, 가장 약하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간디의 권고는 물론 자신의 양심이 RCEP에 가입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모디 총리는 최종적으로 RCEP에 가입하지 않기로 했고 향후에도 인도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을 시 RCEP에 가입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번 결정에 인도의 농민, 철강 및 낙농업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한편, 호주와 뉴질랜드, 중국은 내년 최종 결정 때까지 인도를 설득하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인도의 요구
인도가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는 데는 원산지규정, 관세철폐 기준연도 재설정, 자동긴급수입제한조치 시스템 도입, 불가역의무조항 폐지 등 여러 가지 이슈들이 있다. 이들 이슈를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자동긴급수입제한조치(Auto-Trigger Safeguard Mechanism)의 도입이다. 인도는 수입이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급속하게 증가할 경우, 해당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15일 이내에 긴급수입제한조치가 이루어지며, 그 조치를 200일 동안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둘째, 인도는 현재 RCEP 협상에서 결정된 관세철폐 기준연도를 2013년도 대신에 2019년도를 적용하여 현실화하자고 주장했다. 셋째, 불가역 의무조항(Ratchet Obligation)의 도입이다. 즉 일단 관세, 쿼터 등을 철폐하거나 낮춘 후에는 다시는 그 이상으로 올리거나 철폐를 취소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인도는 필요할 경우 협약 내용을 취소하거나 관세를 높일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16개국 중 14개국이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넷째, 인도는 RCEP의 낮은 관세로 인하여 제3국을 통한 우회적 수입 증가에 대응할 수 있도록 민감 품목에 대하여 엄격한 원산지규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인도는 투자분쟁해결기구((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ISDS) 도입 반대, 데이터의 지역화(data localisation), 서비스 시장 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인도의 염려
RCEP 참여국들은 향후 15년 동안 인도 제품의 90% 이상의 관세철폐 및 개방을 요구하였다. 이에 인도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 향후 20년 동안 74%를 관세를 제거하고, 뉴질랜드와 호주는 86%, 아세안, 일본과 한국은 90%까지 관세를 양허한다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 하에서 인도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RCEP에 의해 급격한 수입 증가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들이 재계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지금까지 발효된 FTA로 인해 인도의 무역수지 적자는 FTA 체결 전에 비해 상당히 증가한 것은 물론 이미 RCEP국가들에 대하여 높은 수준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더 개방할 경우 무역수지 적자가 더 확대될 것임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재까지 인도가 FTA가 체결되지 않은 중국, 호주, 뉴질랜드에 대해서 시장을 개방할 경우 수입이 더욱 확대되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역수지 적자가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현재 인도는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국이다. 그 중에서 RCEP 국가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전체 적자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대중국의 경우 현재에도 전체 적자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인도는 향후 20여 년 동안 중국에 대해서 74%의 품목을 개방한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개방은 결과적으로 값싼 중국산 제품들의 급속한 수입증가로 이어져 인도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를 더 키우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방에 대해서 산업계의 염려는 더욱 크다. 인도 자동차제조협회(SIAM)는 자동차 시장을 개방할 경우 중국이 자동차 시장을 우회하여 시장진입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RCEP 참여를 반대해왔다. 인도의 섬유업체들도 “섬유사업이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과 강한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시장을 개방할 경우 인도 섬유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를 더욱 확대시키는 것은 물론 섬유산업의 몰락을 가져 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철강산업도 중국에 대해서 열세인 상태에서 개방할 경우 상당한 수준의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RCEP 가입을 반대하고 있다. 중국이 철강금속부문에서 절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어 시장을 개방할 경우 중국제품들이 약탈적 가격으로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며, 덤핑의 문제도 발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농업의 경우도 만약에 인도가 RCEP에 가입할 경우 경쟁이 이미 치열한 차, 커피, 고무, 고추, 견과류 등에서 수입이 급증할 것이라며  RCEP 가입을 반대하고 있다. 특히 견과류, 식용류의 경우, ASEAN 국가들의 제품들의 가격이 낮기 때문에 시장을 개방할 경우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안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낙농업계의 반대와 우려는 더욱 심각하다. 인도는 호주와 뉴질랜드와의 FTA체결을 지속적으로 미루어왔다. 그 이유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낙농업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경우 국내 생산량에서 우유파우더 93.4%, 버터 94.5%, 치즈 83.6%를 수출하고 있다. 이 제품들이 RCEP으로 인하여 뉴질랜드와 호주에게도 개방된다면, 이미 공급초과상태인 인도 낙농업을 초토화될 것이고 여기에 종사하는 5,000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산업의 피해와 더불어 관세철폐 기점에 대한 논의도 인도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도는 모든 무역협상에서 협상이 끝나는 시점의 연도를 중심으로 관세철폐기준 시기로 정하여 왔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세율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RCEP협상에서는 협상이 2012년도에 시작하면서 관세적용 기점을 2013년도로 정하였으나, 인도는 2014년부터 섬유, 자동차부품, 전자제품 등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여 평균 관세율이 13%에서 17%로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2013년도 기준의 관세율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현재보다 낮은 관세율을 부과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RCEP 국가들은 인도가 기존에 개방하였던 부문에 대해서 개방을 철회한 사례가 있다며 불가역의무조항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인도는 2G 통신사업에 대한 외국인투자에 대해서  철회결정을 내린 사례가 있다. 이로 인해 RCEP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불가역의무조항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입장과 견해
인도가 RCEP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의 대부분은 대중국 수입에 대한 염려이다. 이러한 염려로 인하여 RCEP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에 대해서 중국은 향후 양자 협상을 계속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향후 인도가 RCE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인도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 들이냐가 관건이다.

 

중국은 RCEP에 불참한 인도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RCEP 협상에서 중국은 인도에 “개발을 반대하는 소위 알박기(nail house)”라고 비난하고 있다. 만약에 인도가 RCEP에 합류하면 세계인구 45%, GDP 40%, 세계무역량의 30%, 해외직접투자의 36% 정도의 막대한 무역지역협정이 탄생하는데, 지난 7년 동안 계속 협상을 방해하다가 끝내 합류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무역불균형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미-중 무역전쟁을 치루고 있는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가 RCEP 지역협정에 합류하게 된다면 23조 달러의 경제규모의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이로부터 상당한 수혜를 받아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인도는 인구트랩에 걸려 인도경제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도 2001년에 WTO에 가입하여 산업화를 성공한 것처럼 인도도 RCEP에 가입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인도는 산업구조의 문제가 심각한데,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하여 계속해서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협정에서 적자만 오히려 확대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 체결해온 무역협정에서 인도는 단 한 번도 흑자를 내거나, 개선된 적이 없다.

 

이는 궁극적으로 산업구조의 문제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구조적으로 산업의 개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RCEP의 불참과 같이 정치적으로 ‘가장 문제가 없는 선택’만을 해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인도는 경제문제를 지나치게 정치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적으로 외국제품 불매 및 국산제품 구매 운동과 같은 행동은 매우 극단적인 보호주의이면서도 글로벌 공급망(GVC)에 가입하는 것을 오히려 막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치인들이 단기적인 이익만을 위해 장기적인 편익을 위한 행위는 하지 않고 대중의 여론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넷째, 지정학적으로 인도의 역할과 위치 문제에 대한 고려가 필요로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도가 TPP나 RCEP과 같은 지역공동체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인도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이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였다면 인도는 RCEP에 가입하였을 것이나, 이번에 가입하지 않는 것을 보면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중국은 주장하고 있다.

 

다섯째,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강화시키고 있다. 인도가 RCEP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중국으로써도 어느 정도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오히려 인도의 불참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역할을 더욱 확고하게 굳혀 나갈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물론 인도가 조만간 RCEP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중국과 지속적으로 협상을 해 나갈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인도의 불참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인도의 불참으로 경제적의 관계에서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좋아질 것도 그리 많기 않은 상태에서 확실하게 인도의 불참은 지역학적인 면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중국의 위치를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것임에는 자명하다.

 

인도의 딜레마
인도 정부의 이번 조치는 자국 산업의 보호를 선택한 것이다. 특히 이미 경제가 이전보다 좋지 않은 상태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값싼 제품들이 밀려 들려올 것에 대한 농민과 무역종사자들에 의해 제기된 염려에 대응한 조치라고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인도의 일부 전문가들은 RCEP이 중국이 미-중 무역전쟁으로부터 발생하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는 자국민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만약에 인도가 RCEP에 참여하게 되면 15년 동안 90%까지 수입관세를 철폐 및 인하를 해야 하는데, 상당 부분이 농업과 낙농업에 해당된다. 이러한 부문은 대기업보다는 소규모업체들이 종사하고 있어, 인도의 한계부문에서 종사하는 업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이러한 종사자들로부터 인도정부가 믿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RCEP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인도 정부는 농민들이 피해를 고려하여 RCEP 가입을 일시적으로는 포기하고 있으나, 여전히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인도의 Niti Aayog 보고서에 따르면, 2033년에는 인도는 우유 등의 낙농업 잉여생산국이 된다. 더욱이 낙농업의 선진화를 위해서 호주와 뉴질랜드와 같은 국가들이 갖고 있는 가공능력 및 기술도 다양한 협력을 통하여 흡수해야 할 입장이다. 따라서 RCEP 불참으로는 인도 제품의 경쟁력을 상승시킬 수 없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높일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수입을 제한하고 수출가능한 제품들까지도 제한할 수가 있을까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경쟁력이 있는 제품들은 꾸준히 수출을 확대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더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데, 현재로써는 그 가능성까지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GVC에서의 제외, 고용의 확대 포기 및 경제발전의 기회 포기 및 축소가 인도에게 남겨진 커다란 숙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인도가 RCEP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손해를 보게 되지만, 참여할 경우 상대적으로 혜택을 볼 가능성이 높다.

 

인도 정부도 이러한 점을 모르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농업부문의 발전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농업혁명(green revolution)보다 더 영향력이 큰 수준의 개혁이 필요한 실정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농업혁명 또는 개혁만으로는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역사가 근대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GVC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비록 최근에 보호주의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는 상호 개방과 개혁을 통한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아직 RCEP 협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고, 국가별로 상호 협상을 진행 중에 있다. 인도가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재정리하고 새롭게 개편되고 있는 GVC에 적절하게 합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정치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인도를 제외한 중국의 독주에 대한 고려도 충분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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