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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중동부유럽과 유로화 채택의 정치

중동부유럽 일반 조홍식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9/12/13

중동부유럽과 유럽통합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유럽을 둘로 갈랐던 철의 장막이 거치고 유럽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 세계 다른 지역에 비해 유럽은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 상호 작용이 밀접한 하나의 공간을 형성해 왔기 때문에 냉전 시기 자유진영과 공산권으로의 절단은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공산권에서 해방된 중동부유럽 국가들은 소위 ‘유럽으로의 복귀(Return to Europe)’라는 슬로건 아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1)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EU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확고하게 수립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움으로써 중동부유럽 국가들이 명백한 목적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다. 초기부터 정치, 경제, 제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동부유럽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2004년에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등 8개국이, 2007년에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그리고 2013년에는 크로아티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었다. 이로써 이제 구 공산권의 거의 모든 국가가 유럽연합이라는 틀에 흡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입 이후에도 기존 유럽연합의 정치 및 경제 수준으로의 수렴은 가속화되었고 그 결과 유럽 내부에서 동서의 차이는 많이 축소되었다.

 

유럽연합에 가입한 중동부유럽 국가들은 모두 통합에 대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EU 가입의 가장 커다란 혜택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직접적인 유럽연합 예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고, 다음은 유럽의 거대한 수출 시장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유럽 가입은 하나의 단일 경제권에 속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유럽 선진국의 자본 또한 중동부유럽 지역에 투자되어 경제 발전을 촉진시켰다. 그렇다면 유럽연합 안에서 중동부유럽은 하나의 통일된 유사한 행태의 그룹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유럽통합이라는 기준으로 보았을 때 중동부유럽 국가들 사이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차이는 유로화에 대한 전략이다.2)  슬로베니아와 같은 일부 국가는 아주 일찍부터 유로화를 채택했는가하면, 발트 3국과 같은 국가는 다소 늦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동참하였다. 또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의 국가는 여전히 유로를 채택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불가리아나 루마니아 등은 유로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 결실을 맺지는 못하고 있다.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중동부유럽 국가들 사이에 유로에 대한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이 글에서는 세 집단으로 나누어 유로 채택의 전략을 분석해 본다.

 

유로 채택 국가군
중동부유럽에서 가장 신속하게 유로를 채택한 국가는 슬로베니아(2007년)와 슬로바키아(2009년)이며, 발트 3국이 에스토니아(2011년), 라트비아(2014년), 리투아니아(2015년) 순으로 약간 뒤늦게 동참하였다. EU의 회원국이 유로에 가입하려면 먼저 ERM(Exchange Rate Mechanism)이라고 불리는 안정적 환율제도에 적어도 2년 이상 가입해야 한다. 말하자면 ERM 가입이 특정 국가의 유로에 대한 전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인데, 현재 유로에 가입한 5개국은 2006년에 이미 ERM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는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직후 이미 유로를 선택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시사한다.

 

유로에 동참한 나라의 공통점은 인구와 경제 규모가 작은 국가라는 사실이다. 중동부유럽에서 유로를 선택한 나라 가운데 슬로바키아 인구가 5백만 명으로 가장 많은 수준이다. 국가의 인구 규모가 중요한 것은 인구 자체도 있지만 주변 국가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지정학적 이유가 결정적이다. 3)  예를 들어 발트 3국은 과거 소련의 한 부분이었고, 러시아계 인구가 상당 수 있어 강한 이웃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도 각각 구(舊) 유고 연방이나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에서 독립한 작은 나라다. 그만큼 유럽이라는 커다란 공동체에 깊숙이 진입함으로써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는 비교적 일찍 수월하게 유로에 진입한 경우다. 슬로베니아는 경제 발전 수준이 높은 편이었고, 슬로바키아는 원래 1997년 유럽연합 가입 1차 대상국에서 제외되었던 경험 때문에 모든 유럽통합 계획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외교를 폈다.4)  이들과 비교했을 때 발트 3국은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위기 이후에 유로권에 진입하였기 때문에, 훨씬 고통스런 경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게다가 2010년대는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지역 유로 국가들의 경제 위기로 중동부유럽 신입 국가들의 경제적 부담은 가중되는 형편이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동부유럽의 5개국이 유로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지정학적 국가 전략의 간절함을 드러낸다.

 

통화정책의 자율성
유럽연합에 참여하면서도 현재까지 유로 진입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중동부유럽 국가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이다. 이들은 사실 1990년대 초반부터 유럽연합이 각별하게 관리하고 지원해 온 대상이었다. 심지어 중동부유럽 지원정책의 명칭이 PHARE(Poland Hungary: Assistance for Restructuring their Economies)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들은 자국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소중히 여기며 여전히 유로 도입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앞서 분석한 유로 도입 국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인구 규모인데 3,700만 명의 폴란드, 그리고 1,000만 명 정도의 헝가리와 체코는 위의 발트 3국이나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보다 훨씬 큰 나라들이다. 물론 이런 규모의 차이는 중동부유럽에서 의미가 있을 뿐, 유럽연합 전체를 보면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모두 인구가 6백만에서 1천만 명 정도인데도 유로에 참여하는 나라들이다. 따라서 규모 그 자체보다는 지정학적 사고나 전략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는 발트 3국처럼 러시아에 흡수될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며 오히려 위협을 느낀다면 독일의 지배적 위상에 대해서다. 유로의 채택은 이런 점에서 독일 경제권으로 흡수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외교정책을 보더라도 유럽연합의 강대국인 독일이나 프랑스보다는 EU 밖의 미국과 나토(NATO)에 더 강하게 의존하는 모습이다. 세 나라의 국내정치적 경향도 유럽연합 안에서 경제적 이익은 누리겠지만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강하게 거부하는 실정이다.  여론 또한 유럽통합에 대해 회의주의적 시각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세 나라는 모두 ERM 밖에 머물고 있으며 유로에 대한 준(準)고정 환율(Pegg)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폴란드의 법·정의당(PiS) 정부, 체코의 안드레 바비슈 총리 등 삼국 정부가 모두 유럽연합과 마찰을 빚으며 어려운 공존을 하고 있다.5)

 

유로를 지향하는 국가군
한편에는 급속하게 유로를 채택하는 작은 나라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유로에 대해 여유를 부리며 자국 화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느 정도 큰 규모의 나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밖에 발칸반도 지역에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크로아티아는 아직 유로 밖에 있지만 장기적으로 유로에 가입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다. 이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드러나는데 크로아티아와 불가리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크로아티아가 경제 여건상 유로에 진입할 가능성이 제일 높으며, 불가리아는 진입을 강하게 희망하지만 경제 체제의 불안정성이나 만연한 부정부패 등의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루마니아는 지난 달 대통령 선거에서 친 유럽 정치세력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유럽연합 가입 이후 12년 동안 한 번도 유로에 준(準)고정환율제를 채택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불안한 형편이다.

 

유로 채택의 정치를 분석한 학자들은 ‘선택적 느림보’(laggard by choice)와 ‘자연 느림보 (laggard by default)’를 구분한다.6)  선택적 느림보란 폴란드, 체코, 헝가리처럼 정부가 유로에 거리를 두고 자국 화폐 자율성을 선택한 나라를 의미한다. 자연 느림보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처럼 마음은 빨리 가고 싶지만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느리게 가는 나라를 지칭한다. 사실 자연 느림보보다는 능력 부족 느림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중동부유럽에서 등장한 무척 흥미로운 사례는 코소보와 몬테네그로처럼 일방적으로 유로를 화폐로 도입한 국가들이다. 이들은 유로의 정식 회원국과 달리 유로의 운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나 채널이 없다. 다만 자국만의 화폐를 운영하기에 나라가 너무 작아 무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유로를 통용하는 경우다.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지중해의 소국 키프로스와 말타가 모두 2008년에 유로를 도입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아주 작은 규모의 나라들은 유로를 채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영국의 교훈
이 글에서는 중동부유럽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유로 채택의 정치를 살펴보았다. 유럽에서 특정 국가나 지역의 정치경제를 판단하는데 유로는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유로 채택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에 따라 내리는 결정이라기보다 유럽통합에 대한 그 나라나 지역의 장기적 의지를 확인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7)  예를 들어 영국은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등에 비해 뒤늦게 유럽에 가입했고, 솅겐 조약과 같은 자유 통행 계획에서도 빠졌으며, 특히 유로를 채택하는데 큰 관심과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유럽통합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탈퇴를 결정하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보였다.
 
중동부유럽에서도 영국의 교훈을 깊게 곱씹을 만하다. 예를 들어 유로를 채택한 국가들은 장기적으로 유럽연합의 핵심 그룹에 진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은 과거 영국과 유사하게 유럽연합의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이들 국가의 경우 앞으로 국내 정치의 변화와 유럽과의 관계에 따라 유럽통합에서 상당한 유동성과 예외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미다.

 

* 각주
1) Ivan T. Berend, From the Soviet Bloc to the European Union: The Economic and Social Transformation of Central and Easter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pp.50-78.
2) 조홍식, 「화폐통합의 정치: 중·동부유럽에서 유로의 채택」, 『EU연구』 49호, 2018.
3) Baldur Thorhallsson, “The size of states in the European Union: Theoretical and conceptual perspectives”, Journal of European Integration, 28(1), (2006), pp.7-31.
4) Andrea Pechova, “Legitimising discourses in the framework of European integration: The politics of Euro adoption in the Czech Republic and Slovakia”, 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February 2012, pp.1-29.
5) The Economist, “A struggle between authoritarians and liberals at the heart of Europe”, May 26th 2018.
6) Assem Dandashly and Amy Verdun, “Euro adoption in the Czech Republic, Hungary and Poland: Laggards by default and laggards by choice”, Comparative European Politics Vol.16(3), 2016, pp.385-412.
7) 조홍식, 「화폐와 정체성: 유로와 유럽의 사례」, 『국제·지역연구』 19권 2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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