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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베트남의 부정부패 척결과정 및 향후 전망

베트남 이윤범 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교수 2019/12/17

베트남 부정부패 확산 배경
과거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국가의 체계를 다지기도 전에 다시 미국과 전쟁에 돌입하였다. 황폐해진 베트남을 무력화 시키는데 단 6개월이 소요될 것이라는 미국의 예상과는 달리 8년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상자를 남긴 채, 결국 미군은 철수를 결정하였다. 미군 철수 후 독립과 통일을 간절히 염원했던 호치민 주석은 통일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였지만, 베트남은 결국 남북통일을 이루었다.

 

중국과 각별하게 지냈던 호치민 주석이 사망한 후, 베트남은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미군이 철수하고 무력 흡수 통일을 구상하던 북부 베트남은 소련의 지원에 힘입어 통일에 성공하였다. 통일 직후 베트남은 그 동안 미군이 지배하고 있었던 남부 베트남의 사회주의화를 급진적으로 진행하였다. 즉 프랑스와 미국에 의해 시장경제를 경험한 남부 베트남에 사회주의 경제인 중앙계획경제를 강제로 실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련은 베트남에 대대적인 경제 원조를 감행하였다. 베트남이 소련과 관계를 강화할수록 중국과는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중국은 베트남에 제공하던 원조를 중단하고 중국고문단을 철수시켰다. 1978년 겨울 베트남은 중국이 지원하는 캄보디아를 점령하였고, 중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베트남 북부국경지역을 통해 남하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남부 베트남의 사회주의화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설상가상으로 소련에서는 고르바쵸프가 등장해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이로써 소련의 대대적인 지원 하에 사회주의 중앙계획경제를 꿈꾸던 베트남 경제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러 경제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사회주의체제에 정면으로 상충되는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국가의 존립자체에 위협을 느낀 베트남 공산당은 1986년 제6차 공산당전당대회에서 쇄신의 의미인 “도이머이”를 발표하였다. 도이머이의 핵심은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부문에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경제개혁을 실시하고 그 동안 사회주의 국가들과 유일하게 국제관계를 맺었던 관행을 탈피하여 모든 국가에도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베트남 공산당 내에서는 개혁개방정책이 절실하다는 것을 공감하면서도 외국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이념적인 차이로 대립이 계속되었다. 보수파들은 중국에 의지하여 모든 난관을 해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미국이 결국 베트남 정권을 무너뜨리려 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중국과의 남중국해 갈등은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반면 개혁파들은 글로벌 경제에 편입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며 세계 어느 나라든지 정치체제에 관계없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들은 베트남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포함한 경제부국들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갈등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공산당 내 두 분파가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대립은 베트남이 시장경제를 가속화시키는데 커다란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국영기업을 민영화시키는 과정에 당의 공무원들이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재 베트남은 고위급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부정부패가 국가운영이나 공산당 지도체제를 유지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베트남의 부정부패 지수(2018년)는 세계 180개 국 중 117위를 차지했다.

 

베트남 부정부패의 특징은 정실인사가 공무원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응웬 푸 쫑(Nguyễn Phú Trọng)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부정부패를 대대적으로 척결하는 과정에 있다. 때문에 상대 분파와 충돌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권력투쟁으로 확대되었다. 지금까지 베트남에서 기소된 당원이 1,300명이 넘고, 중앙집행위원회위원 최소 10명과 베트남 공산당 조직의 최고 정점에 있는 정치국원도 포함되어있다.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원이 임기 중 기소된 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부정부패 척결 과정에 등장하는 세 가지 키워드

1930년 창당된 베트남 공산당은 지난 90여 년 동안 한 번도 그 체제가 무너진 적이 없다. 다만 지속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왔고, 당의 명칭이 시대상황에 맞게 바뀐 적은 있지만 현재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당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것이 베트남 공산당의 절대적인 사명이기도 하다. 베트남 경제가 고속으로 발전하면서 국민의 눈높이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공산당은 부정부패 척결이 공멸의 길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부정부패의 타파 과정에서 등장하는 핵심어는 크게 세 가지로 함축할 수 있다. 

 

첫째, 현 베트남공산당 서기장이자 국가주석인 ‘응웬 푸 쫑(Nguyễn Phú Trọng)’이다. 베트남 국회의장이었던 쫑(Trọng) 서기장은 사회주의 이론가이며, 보수파이고 친중파로 알려졌으며, 2011년 제 11차 베트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2016년 제12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65세 이상은 서기장에 재임할 수 없다는 연령 제한 관례를 깨고 70세의 나이로 서기장에 연임되었다. 2019년 9월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쩐 다이 꽝(Trần Đại Quang)이 병환으로 사망하자 국가주석을 겸직하였다. 이는 1960년대 호치민 주석 이후 베트남공산당 집단지도체제에서 최고위직을 겸직한 최초의 사건으로 그만큼 쫑(Trọng) 서기장의 권력이 견고하고 강화되었음을 상징하고 있다.

 

둘째, 전 총리인 응웬 떤 중(Nguyễn Tấn Dũng)이다. 중(Dũng) 총리는 베트남에서 친미성향을 가진 정치 스타로 평가받는 인물이며, 2006년에 최연소 총리로 선출되어 2011년 연임에 성공하였다. 베트남의 오랜 전통으로 군사와 외교를 담당하는 당 서기장과 달리 총리는 정치와 경제 전반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동안 다분히 의전적인 역할에서 벗어나서 베트남 역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총리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베트남 공산당에서 46세에 최연소 정치국원이 되었고, 1996년 부총리 시절 아시아 금융위기가 베트남에 파급되자 국가은행장을 겸직하여 금융체계의건전화, 국영기업 개혁을 도맡아 성공적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갔다. 또 내무부 차관 때는 까다로운 부정부패 사건을 처리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색채를 크게 강화하기도 했다.

 

셋째, 국영기업이다. 베트남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국영기업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은 도이머이 이후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3,000개가 넘는 국영기업을 꾸준히 민영화 시켜왔다. 더구나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외국계 자본의 투자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여 왔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의 국영기업 민영화 정책은 부정부패와 관료적 형식주의에 발목이 잡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2016년 12월 정부는 당시 583개의 국영기업을 2018년 64개, 2020년 103개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세웠는데, 2018년 말 여전히 500개가 넘는 국영기업이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부정부패와 크게 연관되어 있다. 2016년 8월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인포메이션(GII)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베트남 국영기업에 대한 투자를 가로막는 최대 요인으로 기업의 투명성 결여 및 정보 불충분, 부정부패가 언급되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영기업과 관련된 부정부패가 국가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것은 주요 산업별로 국영기업의 존재감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전체 산업 생산에서 민영부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기업당 산업생산은 국영부문이 민영부문에 비해 30배에 달하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부분 민영화 기업 역시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즉 베트남 모든 산업 분야에 국영기업이 포함되어 있어서 국영기업이 모든 산업에 관여를 하고 있다. 결국 국가 경제의 30% 이상을 정부 공무원들이 직간접적으로 통제한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 금융, 통신, 운송, 부동산, 도소매 등 핵심 내수 부문을 장악하고 있는 국영부문은 각 분야의 기업들이 유착하면서 공무원들의 사익추구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부정부패 척결은 권력투쟁 과정
2011년 쫑(Trọng) 서기장이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면서부터 부패청산 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초고속 성장으로 뉴스를 장식하던 베트남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과도한 국가부채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쫑(Trọng) 서기장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더구나 베트남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그의 결단을 재촉한  이유이기도 했다.

 

경제에 대한 정치적인 통제 수단으로 이용하는 국영기업과관련된 부패와 무능한 공무원들의 과도한 사업 확장으로 국영기업의 부채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비나신(Vinashin)으로 불리는 베트남국영조선기업이 베트남 GDP 4.5%에 달하는 45억 달러의 부채를 안기고 파산하였다. 또한 베트남국영해운회사인 비나라인(Vinalines)도 20억 달러의 부채를 안겼다.

 

또 다른 문제는 베트남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정실주의로, 정부 고위관리와 재벌들과의 유착관계와 신흥부자들의 정치에 대한 영향력 행사로 경제는 더욱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2012년 8월 베트남 최대 은행 중 하나인 아시아상업은행의 설립자 응우엔 득 끼엔(Nguyễn Đức Kiên)이 체포되었다. 그가 체포된 이유는 수많은 불법사업을 운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두 개의 축구구단을 포함하여 무려 10억 달러 규모의 부를 축적하였다. 그런데 그는 당시 중(Dũng) 총리와 그의 딸을 포함한 측근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 뿐만 아니라 비나신(Vinshine)의 회장과 비나라인(Vinalines)의 책임자도 체포되었다. 이들을 체포하기까지 위험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 경제 성장을 설계하고, 비나신과 비나라인과 같은 기업을 한국의 재벌기업처럼 만들기 위한 중(Dũng) 총리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이들을 구속했을 때 당시 중(Dũng) 총리의 강력한 라이벌인 국가주석 쯔엉 떤 상(Trương Tấn Sang)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쫑(Trọng) 서기장의 강력한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부패 스캔들의 결과로 베트남 전역에 퍼지고 있는 삶의 질 저하, 빈부격차 심화와 불법 토지 소유 확대 등으로 국민 불만이 고조되면서 공산당 내부에서 정권의 존립과 그 정당성 유지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중(Dũng) 총리를 중심으로 고위공직자들이 중앙집행위원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였고, 공안부를 비롯한 반부패 사정 기구들마저 상당부분 이들에 장악되어 있어 쫑(Trọng) 서기장의 부패척결 노력은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2년에 만들어졌는데, 총리의 지휘 하에 있었던 부패방지중앙지도위원회(OCSCAC: Office of Central Steering Committee on Anti-Corruption)의 조직을 쫑(Trọng) 서기장이 직접 지휘 할 수 있도록 정치국 직속으로 개편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렇다고 당장 중 (Dũng) 총리를 제압하기는 쉽지 않았다.

 

2012년 1월에 중앙집행위원회는 1주일 동안 회의를 하고 사상처음으로 국가 권력서열 20인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하였다. 이런 유례가 없는 투표는 보수파와 개혁파의 권력투쟁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 때 신임투표는 두 개의 해운관련 국영기업의 부실사태의 책임을 물어 중(Dũng) 총리를 거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당시에 중(Dũng) 총리는 살아남았지만, 그는 당시 이 투표에서 가장 낮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중(Dũng) 총리는 2015년 1월에 정부, 민간부문 그리고 중앙집행위원회 등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여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해 2016년에 열리는 공산당전당대회에서 차기 당서기장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러나 중(Dũng) 총리에게 악재가 겹쳤다. 오션뱅크(Ocean Bank)와 페트로베트남(PetroVietnam)의 사건이 터지면서 국영기업의 부패와 중(Dũng) 총리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면서 그의 당서기장 선출은 물거품이 되었다. 페트로베트남 사건은 그 자회사인 페트로베트남 건설회사의 회장인 찐 쑤언 타잉(Trịnh Xuân Thanh)과 결탁하여 여러 개의 대규모 발전소 건설사업을 수주해주고 이와 관련해 횡령 등의 비리를 저질러 국가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오션뱅크는 은행업 규제가 풀리자 오션그룹 창업자가 주도해 설립한 합자상업은행이다. 이 때 페트로베트남의 주거래 은행이 되는 과정에서 불법과 부정이 난무해 페트로베트남의 투자액이 모두 소멸되는 지경까지 가서 국가자산에 큰 피해를 입혔다.

 

특히 페트로베트남의 딘 라 탕(Đinh La Thăng) 회장은 중(Dũng) 총리의 오른팔로 잘 알려져 있었으며, 전 교통부 장관이고 호치민 시 당서기이며 정치국원이었기 때문에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탕(Thăng) 전 회장은 2017년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1979년 정치국원 호앙 반 호안(Hoàng Văn Hoan)이 해외 도피 후 궐석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예는 있지만, 1976년 베트남 통일 이후 현 정치국원이 구속된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또한 중(Dũng) 총리가 남부출신이라는 것이 한계였다는 것도 작용하였다. 공산당 고위급 중에 남부출신은 그 수가 매우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제 12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뒤엎고 쫑(Trọng) 서기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부정부패 척결은 더 탄력을 받았다. 당시 진행되었던 부패 타파의 가장 큰 대상은 국영기업과 금융부문에 대한 수뢰사건을 척결하는 것이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중(Dũng) 총리와  측근들을 거세하는 의미가 다분히 담겨있었다. 쫑(Trọng)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부패 척결은 과거보다 광범위하고 고위급공무원을 대상으로 훨씬 더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었다. 2017년 만해도 최소 220명의 고위급 공무원이 구속되었고, 이 수치는 2016년 보다 16% 증가한 것이다. 또한 수많은 정부 관리들이 파면되거나 강등되었다.

 

딘 라 탕(Đinh La Thăng) 이외에도 베트남 제3의 도시인 다낭(Đà Nẵng)의 당서기이자 중앙집행위원인 응웬 쑤언 안(Nguyễn Xuân Anh)도 부동산 개발 특혜를 준 사실 밝혀지면서 해임되어 재판을 받았다. 구속을 피해 해외로 피신한 고위직 공무원도 예외는 없었다. 페트로베트남 건설합자회사(PetroVietnam Construction Joint Corporation) 회장인 찐 쑤언 타잉(Trịnh Xuân Thanh)은 망명신청을 목적으로 2016년 9월 독일로 도피하였다. 그는 딘 라 탕의 최측근으로 알려졌으며 중(Dũng) 총리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2017년 7월 그는 독일에서 베트남 정보요원에게 납치되어 베트남으로 귀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또한 당서기이자 중앙집행위원인 응웬 쑤언 안(Nguyễn Xuân Anh)에게 특혜를 받았고, 공안부 공무원 출신으로 다낭(Đà Nẵng)에서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한 판 반 아잉 부(Phan Văn Anh Vũ)는 국가기밀 누설죄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독일로 가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싱가포르로 도피하였다. 싱가포르 당국은 그가 두 개의 서로 다른 명의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베트남으로 돌려보냈다. 그의 독일인 변호사는 부(Vũ)가 타잉(Thanh)의 납치에 관련된 공안부 서류 복사본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언론에 폭로하였다. 이는 타잉(Thanh)이 납치되어 베트남으로 돌아오기까지 부(Vũ)가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그의 죄목인 국가기밀 누설죄도 타잉(Thanh)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쫑(Trọng) 정부의 부패 척결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2019년 5월에도 부패 관련 28건을 수사하여 24건을 기소하고, 29건을 재판에 회부하였고, 36건을 검증하였다. 부정부패중앙위원회(Central Steering Committee on Anti-Corruption)에 따르면, 이중에는 2명의 전직 정보통신부 장관과 베트남 제1의 재벌 그룹인 빈그룹(Vingroup) 회장의 동생인 팜 녓 부(Phạm Nhật Vũ)도 포함되었다. 그의 형 팜 녓 브엉(Phạm Nhật Voung)은 세계 부호 서열 867위로 부동산 개발과 투자 사업을 기반으로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빈그룹(Vingroup)의 대표이다. 포브스에 의하면 순자산 76억 달러를 소유한 명실상부한 베트남 제일의 기업으로, 베트남 최초의 자동차(Vinfast)를 생산하면서, 스마트폰도 생산하고 있다. 빈그룹 대표의 동생이고 글로벌시청각회사(Global Audiovisual Company: AVG)의 대표인 부(Vu)는 모비폰(Mobifone)의 인수 과정에서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들은 국가재정으로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의 소형 케이블 TV 공급자를 구하기 위해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공안부 고위 공무원들을 포함한 온라인 도박사이트 운영과 관련된 공무원들도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더불어 전 부총리, 하노이 시장, 공산당 고위급의 혐의도 조사 중에 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쫑 (Trọng) 서기장이 목표로 지목하고 있는 거물급 인사이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호치민 시의 당서기를 오래 동안 유지했고 아직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레 타잉 하이(Lê Thanh Hải)에 대한 압박이 조여 오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미래에 대한 전망
베트남 지도자들은 경제개혁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그들은 연간 GDP 성장률 7% 이상과 2020년까지 중진국, 통일 60주년인 2035년까지 중상 선진국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극복해야 할 6가지 사항, 즉  △ 부정부패 척결 △  국가부채 축소를 위해 금융부문 개혁 △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국영기업 개혁 △ 사회주의 시장경제라 일컫는 사기업 육성 △  산업 환경오염 축소  △ 글로벌 경제에 더 적극적인 진입을 제시하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미국과 무역협정, 미국을 제외한 개정된 TPP(Trans-Pacific Partnership) 11, 그리고 ASEAN 국가들과 주요 자유무역 상대국인 호주,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뉴질랜드와 유대를 더욱더 강화하려고 한다.

 

일당제의 베트남은 다당제, 권력분립, 언론의 자유와 독립, 종교의 자유와 민권이나 인권을 위한 정치적인 개혁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그 보다는 법치를 통한 정권의 현 상태 유지에 더욱 매진하려고 한다. 2017년을 예로 들면 2011년 이후 어느 때보다 많은 인터넷 블로거,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체포 감금하였다. 2018년 발효되는 개정된 법령에 의하면 베트남 정부는 국가안보와 국가통합을 해치거나, 국가를 전복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을 제어하는 강경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를 도와주기라도 하듯이 중(Dũng) 총리의 세력을 강하게 약화시켜 왔던 쫑(Trọng) 서기장에게 국가주석인 쩐 다이 꽝(Trần Đại Quang) 주석의 사망은 쫑(Trọng) 서기장에게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큰 기회였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두 개의 직책을 동시에 거머쥔 것처럼 예상을 뛰어 넘어 쫑(Trọng) 서기장이 국가주석을 겸직한 것이다.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의 권력 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의 전통으로 보면, 호치민 주석 이후에는공산당 내에 네 개의 최고직(당서기장,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 중에서 겸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사실 과거에 공산당 내에서 겸직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독재정치를 모색한다는 것 때문에 중단이 되곤 했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당 내에서 경쟁적인 상대 세력에 대한 훨씬 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쫑(Trọng) 서기장이 2019년 4월 14일 남부지역 시찰 도중 쓰러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갖가지 억측이 난무하였다. 정부 관계자는 75세의 고령에 과로로 인해 잠시 쉬었다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의 인사들은 그가 과연 2021년 재임 기간이 끝날 때까지 직위를 유지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보이기도 했다.

 

쫑(Trọng) 서기장은 국군중앙병원에 입원한지 정확히 한 달 만에 국영방송을 통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른 모든 지도자들과 회의를 주재하면서 그가 설계한 부패 척결을 계속할 것임을 천명하면서 다른 지도자들도 동참해 줄 것을 강조하였다. 여전히 소셜미디어에서는 그의 거처와 건강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만약 그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다면 베트남 권력층에 심각한 변화가 예상되며, 외교와 경제에 큰 변화가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쫑(Trọng) 서기장이 펼치고 있는 강력한 부패 척결 드라이브가 반드시 국민들에게 환영받는 것만은 아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자들을 척결하고 청렴하고 능력 있는 관리 위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에 국민들은 많은 비난을 하고 있다. 이것을 빌미로 국민들을 너무 심하게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12차 전당대회 이후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인사들을 예전보다는 훨씬 더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는 것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실제로 중(Dũng) 총리 재임 시절엔 지금보다 베트남 미래에 대해서 훨씬 더 낙관적인 견해가 많았다. 만성적인 부패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장래 국가 운명에 대해 매우 격렬한 토론도 가능했다. 심지어 베트남 공산당도 법에 따라 지금 보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정치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가장 절박한 문제는 이제 2년 밖에 남지 않은 쫑 서기장의 임기이다. 13차 전당대회에서 누가 그의 후계자가 될 것인지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 물론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인물들도 있다. 공산당 인사위원장이고, 쫑(Trọng) 서기장의 참모장이자 당사무총장인 쩐 꾸억 부엉(Trần Quốc Vượng), 전략적 간부발굴을 담당하고 있는 팜 민 친(Phạm Minh Chính) 그리고 쫑(Trọng) 서기장과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정부의 수장이자 쫑(Trọng) 서기장에게도 충성을 보이는 현 총리인 응우엔 쑤언 푹(Nguyễn Xuân Phúc)이 거론되고 있다. 이중에서도 푹(Phúc) 총리가 차기 후계자라고 소문이 무성하지만, 이에 대한 해답은 오직 쫑(Trọng) 서기장만 가지고 있다. 다른 가능성도 있다. 쫑(Trọng) 서기장이 2021년 이후에도 국가주석 직을 유지할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한다.

 

베트남의 미래에 중요하고도 걱정스러운 것은 부정부패 척결에 매달리는 동안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량으로 밀려오는 외국인 투자와 베트남의 젊은 노동력으로 베트남 경제는 그야말로 호시절은 구가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현대화, 세계화와 정실에 의한 자본주의의 산물로 수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첨예한 양극화, 세계 뉴스에 오르내리는 베트남의 환경오염, 국민건강과 공교육 체계 개선에 필요한 턱없이 부족한 재원은 베트남이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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