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아프리카의 선거와 민주주의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조원빈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9/12/13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 내 민주화는 1989년 베냉(Benin)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 중반 다수의 국가로 점차 확대 되었다. 그 결과, 이 지역에 포함된 49개 국가 중 46개 국가에서 복수의 정당이 참여하는 다당제 선거(multipary elections)가 최소한 한 번 이상 개최되어 왔다. 이 글은 지난 30년 동안 이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다당제 선거가 과연 민주주의 공고화에 기여해 왔는지에 대하여 평가하려 한다. 이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당제 선거의 특징도 제시하려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매년 10개 이상의 다당제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선거가 항상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루어지진 않았다. 예를 들어, 다수의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되는 금권선거나 관권선거, 선거 캠페인 기간 동안 폭력사태, 특정 유권자에 대한 압력 등의 모습은 이 지역 선거 과정에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아프리카의 서부에 속한 감비아(Gambia)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했던 잠메(Yahya Jammeh) 대통령은 치열했던 선거에서 아주 작은 표 차이로 패배하였는데,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더해 감비아의 군부도 이러한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표명함으로써 여당과 야당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 간에 갈등이 매우 심각한 상태까지 이어졌다. 이후 주변국들의 압력과 협상을 통해 잠메 대통령은 해외로 망명하고 사실상 선거에 승리한 야당 대통령 후보인 바로우(Adama Barrow)가 대통령직을 인수함으로써 감비아의 갈등상황은 다소 안정화 되었다.
2016년 12월 가나에서도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도 감비아의 대통령선거처럼 두 후보에 대한 지지가 막상막하여서 매우 근소한 차이의 득표수로 당락이 결정되었다. 현직이었던 마하마(John Mahama)는 재선을 시도했지만, 야당의 후보인 아쿠포아도(Nana Akuffo-Addo)의 승리를 담담하게 인정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폭력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가나의 대통령선거가 매우 평화롭게 정권교체로 이어졌던 것은 선거 과정에서 34개의 시민사회 단체들이 연대를 결성해 적극적으로 선거부정이 발생하는지 감시하고 개표과정에도 직접 참여하여, 가나의 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 결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다당제 선거와 민주주의 수준
현재 아프리카에는 민간 정부가 들어서고 다당제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이 지역의 민주주의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표 1>은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아프리카 지역에서 시행된 모든 대통령 선거와 의회선거 횟수를 국가별로 정리했다. 여기에 포함된 선거는 복수의 정당이 선거에 참여해 어느 정도 정당 간 경쟁이 이루어졌던 사례들이다. 또한, <표 1>은 이 지역 국가들을 2016년에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가 발표한 자유의 수준에 따라, ‘자유로운 국가(Free)’와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Partly Free)’, ‘자유롭지 않은 국가 (Not Free)’ 등 세 집단으로 분리했다. 예를 들어, 베냉(Benin)은 2015년 프리덤하우스가 평가한 9개의 자유로운 국가 중 하나이며 1990년부터 2015년까지 7회의 의회선거와 5회의 대통령 선거를 치러 총 12회 선거를 치렀다. 민주주의 수준에 따라 3개 집단으로 묶은 것이 명확히 구분되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다당제 선거를 수행하는 환경이나 개별 국가의 시민들에게 보장된 정치적 자유나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베냉이 부룬디(Burundi)에 비해 더 자유롭다는 것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표 1>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선거의 횟수나 선거가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해당국가의 정치권력(political rights)이나 시민자유(civil liberties)의 수준을 밀접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당제 선거의 회수를 보면, 자유로운 국가 집단과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 집단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없다. 오히려, 평균 횟수는 자유로운 국가 집단이 0.9 회 더 많다. 물론 자유롭지 못한 국가 집단의 평균 선거횟수는 6.15 회로 자유로운 국가 집단과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 집단에 비해 확연히 적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집단에 포함된 국가 중에는 에리트레아(Eritrea)와 소말리아(Somalia), 이스와티니(eSwatini)처럼 민주화를 경험하지 못한 권위주의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표 2>는 선거 경합도 수준을 좀 더 민주적인 국가 집단과 비민주적인 국가 집단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의회선거에서 정부여당의 의석 점유율이 낮을수록 선거 경합도는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통령 선거에서도 당선자의 득표율이 낮을수록 선거 경합도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리덤하우스 점수는 1점부터 7점까지 이며 1점에 가까울수록 민주주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프리덤하우스 점수가 4.0이하인 국가 집단이 4.0초과 국가 집단 보다 민주주의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표 2>는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국가 집단의 선거 경합도가 민주주의 수준이 낮은 국가 집단 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대통령 선거가 더 치열하게 이루어지며 의원선거에서도 여당이 어렵게 다수 의석을 점유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쉽게 선거에 승리하며, 여당도 그리 어렵지 않게 다수 의석을 점유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우리 대통령 선거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아프리카 지역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자가 얼마나 여유 있게 선거에 승리하는 지 알 수 있다. 당선자가 50%이상 득표한 경우는 제18대 대통령선거로 당시 박근혜 후보가 51.5%를 득표했으며, 가장 낮은 득표율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는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36.6%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1987년 이래 지난 7회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자의 평균 득표율은 44.2% 였다. 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정치제도 중 하나인 다당제 선거가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실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뚜렷하게 기여하지 못하는 것일까?
제왕적 대통령제(Presidentialism)
아프리카 지역에서 다당제 선거가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이 지역의 민주주의 수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다수의 국가들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다수의 정치체제가 강력하지만 무책임한 행정부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수의 국가들이 독립과 동시에 대통령제를 도입했지만, 지난 민주화 과정에서 다당제 선거를 도입하면서도 정부형태를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대통령제의 주된 특징 중 하나가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국가들의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대통령과 행정부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헌법이나 법률과 같은 형식적 제도의 측면에서도 분명히 행정부가 입법부나 사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며, 비공식적 제도들도 대통령을 포함한행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부 재정이나 정치적 권한이 행정부로 쏠려있어 상대적으로 입법부나 사법부의 자율성은 매우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헌법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사법부는 스스로 전문성도 매우 낮고 재정도 행정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제한된 자율성을 보유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수준이 국가별로 어느 정도 다양하지만, 이러한 특성이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소수이지만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보츠와나(Botswana)나 모리셔스(Mauritius),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강력한 행정부를 추구하는 경향은 마찬가지다.
지난 30년 동안 다당제 선거가 꾸준히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국가들의 제왕적 대통령제 특성 때문에 정권교체 비율은 매우 낮게 나타났다. 앞으로 다당제 선거가 계속 이어지면 당연히 정권교체의 비율이 증가하겠지만, 지금까지의 낮은 정권교체 비율은 여전히 현직 대통령은 자신의 업적과는 무관하게 재선에 성공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현직 대통령이 누리는 유리한 점을 더 강력하게 만든다. 우선,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대한 경험을 보유하며 이 지역에 만연한 후견주의적 재분배 메커니즘의 중심을 통제하고, 원조지원국과 같은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외국기관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 익숙한 아프리카 유권자들에게 야당후보가 현직 대통령에 준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렵게 된다. 이는 현직 대통령에 대항하여 선거에 참여한 야당후보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현직 대통령은 선거과정에 직간접으로 개입해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직 대통령은 공무원을 포함한 국가 조직을 자신이 속한 정당을 위해 이용할 수 있으며 언론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고, 특정 유권자를 억압하거나 선거인 등록이나 개표과정에 선거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
세 번째, 아프리카 지역 내 국가의 경제는 여전히 국가 중심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사적 영역은 매우 제한적으로 발달해 있어,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의 도움 없이 경제적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또한, 지배적인 행정부는 정부 재정뿐 아니라, 해외원조나 천연자원 수출을 통해 획득한 이득을 국가 전체가 아니라자신들과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위해 이용할 수 있다. 지배적 정당은 사적 영역이 확장해 가는 과정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새로운 사업이나 기업의 소유권을 확보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이 지역의 정당체제도 현직 대통령이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여당은 대통령의 도움으로 의회 내에서도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분열되고 허약한 야당들과 공존하고 있다. 이들 허약한 야당들은 종종 대통령이나 행정부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생명을 연장하지만, 이러한 국가의 지원이 없어지면 쉽게 사라지는 존재이다. 아프리카 지역 내 정당들은 권력을 잡으면 정치영역을 지배하고 야당의 분열을 유도하여 그 세력을 약하게 만들어 왔다. 즉, 이 지역에서 다당제 선거는 기대와 달리 정당체제의 제도화에 균등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정부여당은 더 강력하게 만들고 야당은 분열되고 미약한 수준에 머물도록 만들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 내 다수의 국가에서 다당제 선거를 도입하는 등 민주화를 경험했지만, 이후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다당제 선거가 직접적으로 이들 국가의 민주주의 공고화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적 특징이나 막강한 행정부 권한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이 지역 국가들의 민주주의 공고화 시점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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