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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 오피니언] 라틴아메리카의 반정부 시위 물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중남미 일반 이태혁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2020/02/05

21세기의 또 다른 10년을 시작한 현재, 라틴아메리카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중미의 니카라과, 카리브의 아이티 그리고 남미의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칠레 그리고 콜롬비아 이들 모두 7개 국가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반정부시위다. 21세기 초에는 라틴아메리카지역의 정치적 스펙트럼인 온건좌파의 물결, 일명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일어난 바 있다. 그리고 작금은 반정부 시위라는 또 다른 ‘물결’이 라틴아메리카를 뒤덮고 있으며, 도미노현상처럼 인접국가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가별 정권의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왜 지금이고 그리고 왜 라틴아메리카의 상당수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가? 그리고, 현 대통령이 과야킬이라는 제2의 도시로 피신할 만큼 급박했던 에콰도르의 반정부 시위는 진정국면으로의 전환과 함께 일상화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지만, 왜 다른 나라에는 여전히 반정부시위가 지속되고 있는가? 반정부 시위 발생에 대한 개별 국가마다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다. 본고는 기존문헌을 통하여 반정부 시위와 결부된 이론적 배경을 돌아보며, 라틴아메리카적 상황에 대한 일반화 및 특수성을 동시에 고찰한다. 그리고 반정부 시위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본다.

 

반정부시위와 관련된 이론적 고찰1)
사회운동2)이 일어나는 이유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테드 거(Ted R. Gurr)는 사회 내에서 개인이 받고자 하는 기대치와 실제로 받는 몫 사이의 간격에 상대적 박탈감이 증대한다고 주장했으며, 이것이 커짐에 따라 공격성과 혁명적 분노를 유발한다고 보았다 (김성수 2019 재인용; Gurr 1970). 이에 덧붙여 데이비스(Davis)는 사람들이 갖는 ‘기대상승(rising expectation)'이 집합행동이나 혁명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김성수 2019 재인용; Davis 1962). 다시 말해 이와 같은 기대와 현실간의 괴리라는 대중의 상대적 박탈감이 정치적 폭력이나 사회운동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심리학적 접근인 상대적 박탈감의 또 다른 명칭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다.

 

사회운동의 또 다른 동인은 사회구성원들 간의 ‘상이한 이익과 가치관’이다. 갈등이론을 발전시킨 다렌도르프(Dahrendorf)와 코서(Coser)는 사회적 갈등에 주목하여 사회를 분석했다. 즉, 사회운동은 가치를 위한 투쟁이며, 기존의 규범이나 제도, 가치, 체제 등을 바꿀 목적으로 촉진된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스멜저(Smelser)는 한 사회의 가치체계 또는 기본적 사회질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을 ‘가치지향적 운동’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 바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위시로 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또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상이한 이익과 가치관’은 반정부시위 등을 포함한 사회운동 발현의 원인에 대한 고찰이다. 즉 집단행동이론 접근으로 사회운동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사회운동을 일시적이고 비체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자원동원론(Resource Mobilization Theories)3)은 사회운동을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정치행위로 규정하고, 사회운동을 이성적인 개인들에 의한 의도적인, 즉 예측 가능한 정치행위로 간주한다(정현주 2006). 이 접근은 사회운동이 가용 자원을 동원하여 분노의 표출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낼 때 일어난다는 것으로,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사회운동의 지속성을 고찰한다.

 

하지만 자원동원이론은 사회운동의 원인에 대한 질문을 사회운동 전략에 관한 질문으로 치환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즉 이 접근은 사회운동의 원인 또는 사회운동의 사회심리적인 요인이 역사적으로 공간적으로 균일하다는 전제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정현주 2006). 자원동원이론의 이와 같은 사회심리적 요인의 간과는 사회적 구성주의에 기초한 프레임 접근(Frame Approach)의 필요성을 대두시켰다.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집단행동은 행동 주체들이 상황이 부당하다고 인지하며 자신들의 행동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확신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정부시위 등 일련의 사회운동은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이 자신들이 접하고 있는 상황의 부당성에 대한 인식에 따른 행동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프레임 접근은 사회운동이 가용 자원 등의 조건이 유리하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행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21세기 라틴아메리카 다수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하고 있는 반정부시위는 어떠한 이론적 접근으로 이해하고 또한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지금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반정부시위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가?

 

라틴아메리카 국별 반정부의 물결, 그 현장 속으로

 

칠레, ‘30페소의 혁명’
칠레 시위를 상징하는 구호는 ‘Chile desperto’(칠레가 깨어났다)다. 그리고 칠레 시위대는 "30페소가 아니라 30년이 문제다(No son 30 pesos, son 30 anos)"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 10월 초 피녜라(Sebastian Pinera) 정부의 지하철 요금 30페소(한화 50원) 인상으로 반정부 시위가 촉발되었다. 하지만, 이 인상안이 7일 이내 철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와 결부된 각종 서민들의 민생고를 완화하는 정책안 (가령, 노동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 단축 법안 추진; 추가적 전기인상요금안 철회 등)을 발표했지만 반정부 시위는 현재형이다. 오히려  지난 10월 25일에는 칠레 역사상 최대 규모인 120만 명이 거리로 나오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었다. 이는 “민주화 30년에도 불구하고 피노체트의 잔재에 신음하는 칠레”라는 한 기사의 제목에도 확인 할 수 있듯이 칠레 반정부 시위의 동인을 피노체트의 잔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칠레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거리로 나오도록 한 근본적인 동력은 피노체트 군부 체제에서 제정된 헌법에 기초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다. 30년 전 피노체트 정권 해체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칠레의 민주화는 철저히 엘리트 담합의 산물인 거래에 의한 협약(pact)으로 이루어진 위로부터의 이행이었다. 따라서 1980년에 제정한 피노체트 독재 헌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독소적인 노동법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합의했다(권영숙 2019). 이렇게 제한된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와 구조조정의 정책으로 인한 자양분이 지난 30년간 칠레 사회의 ‘토양’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화가 나 있고 오래 전부터 누적돼 온 것이다”라는 BBC 보도의 한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 분노의 뇌관이 터져 나온 것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지만 소득 상위 1%가 전체 국가 부의 33%를 차지할 정도로 양극화가 심하다. 지니계수(GINI 경제적 불평등 지수)를 살펴보면 칠레는 2019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36개국인 OECD 회원국 중 불평등이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다.4) 국가의 역할을 제한하고 시장을 중시한 피노체트 헌법이 사회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불평등을 양산했다. 이러한 사회적 불만이 시민들이 거리를 메우며 오늘의 30페소가 아니라 과거 30년 전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 및 대국민적 참여를 통한 심판으로 진행되고 있다.

 

볼리비아, 최초 원주민 대통령의 망명사태 발생
“내 죄는 원주민이자 좌파이고, 반제국주의자라는 것”이라는 대국민 연설과 함께 원주민 최초로 볼리비아를 통치하던 모랄레스(Evo Morales) 대통령이 사임의사를 밝혔다. 대선 개표 조작 논란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종국에는 지난 14년간의 통치의 종지부를 찍게 했다. NACLA 미주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모랄레스 당시 볼리비아 대통령이 헌법 소원을 통해 4선 도전을 강행한 것이 무리수였다. 2016년 2월 대선 출마를 제한하는 헌법 규정 개정과 관련한 국민투표를 시행했으나 부결되었다. 이에 대해 여당인 사회주의운동(MAS)이 헌재에 대통령의 3선 연임제한 규정은 헌법에 보장된 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리고 헌재는 미주 인권협약을 인용하며 “대선 출마자에 대한 선택은 국민이 결정할 문제”라며 연임제한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놓았다. 모랄레스의 정치적 무리수였다. 다시 말해 반정부 우익의 무차별 공세가 종국에는 모랄레스의 멕시코 망명길을 야기하였고, 그 정치적 단초가 2016년 연임 개헌 시도다.

 

이와 덧붙여 이번에 발생한 쿠데타의 또 다른 단초 역시 모랄레스의 리튬정책이다. 모랄레스가 쿠데타 6일전인 11월4일 독일 기업 ACISA와 체결한 리튬 프로젝트를 취소했다(조찬제 2019). 본 계약은 70년간 볼리비아 노동자를 활용한 전기차 공장 건설 등이 포함되어 있는 가운데 원주민들이 로열티 인상(3%→11%) 요구와 함께 리튬 추출에 따른 우유니 소금사막의 생태계 파괴를 거론했다. 이에 대해 모랄레스는 원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취소하였다. 서방 다국적 기업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모랄레스는 중국 기업과의 협상을 선택하였고, ‘서방 대 중국’ 간 신냉전 분위기를 연출했다.5)

 

한편 볼리비아의 지니계수는 모랄레스 집권 이후 소폭 개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모랄레스가 집권하기 이전 해인 2005년에는 0.58이었으나, 2017년에는 0.44로 하락하였다. 더욱이 1인당 국민소득 또한 2006년 집권 이후 1,218 달러에서 2017년 기준 3,351달러로 3배 이상 향상되어 가계소득 상황이 개선되었다(World Bank).

 

이와 같이 경제적인 상황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랄레스가 정치적인 망명을 선택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과 관련하여 해외 유수 언론 등은 미국 등을 위시로 하는 서방의 공조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헌법상 권력승계의 위치에 있는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 그리고 아드리아나 살바티에라 상원의장도 동반 사임함에 따라, 그 진위를 놓고 전국이 혼란스럽다. 더욱이 전통적 반정부 우익의 기반인 산타크루스에서 시민위원회의 까마초(Luis Fernando Camacho) 등을 위시로 하는 야당의 폭력 선동과 SNS 활용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는 지난 11월 11일 야당인 사회민주운동(MDS)의 헤이니네 아녜스 상원 부의장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볼리비아 친모랄레스 진영과 더불어 역내 베네수엘라, 쿠바, 니카라과 등 좌파 정부는 친시장주의를 표방하는 현 볼리비아 정부에 대해 이념적 대립각을 세우며 규탄하고 있다. 볼리비아  임시정국은 혼돈 상태다.

 

에콰도르, 반정부시위 ‘성공’ 사례
에콰도르 역시 2019년 10월 라틴아메리카발 반정부시위 물결을 비껴가지 못했다. 모레노(Lenin Moreno) 정부가 발표한 유류보조금 폐지선언과 맞물리며 경유와 휘발유 가격이 최대 2배로 상승하자, 에콰도르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유류보조금 폐지안은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른 긴축정책의 일환이었다. 특히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 규모로 확대되며 한층 더 격렬해진 것은 에콰도르 토착인연맹(CONAIE)6)이 시위에 가세하면서부터이다. 이번에 발생한 반정부 시위의 확산과 폭력성으로 말미암아 모레노 대통령은 내각과 함께 제2의 도시이자 항구도시인 과야킬로 대피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급박하게 진행되었던 반정부 시위가 해결국면을 맞이했다.

 

반정부 시위 발생 후 10일이 지난 시점에서 모레노 정부와 반정부 시위대가 대화를 통한 합의점을 도출해 낸 것이다. 에콰도르 정부는 1조 5,000억 원의 유류 보조금 폐지를 포함한 세금과 노동개혁 등 긴축정책을 철회를 발표했다. 또한 정부와 시위 주도 단체인 CONAIE는 협상을 통해 정부 지출은 줄이고 세입은 늘려 에콰도르의 재정적자와 공공 부채 규모를 줄일 대책을 함께 고민하기로 합의했다.

 

수도인 키토 대신 과야킬로 정부 기능까지 이전할 만큼 혼란했던 모레노 정부가 앞서 설명했던 유류 보조금 폐지 정책을 백지화 하면서 10여 일간 긴박했던 소요사태가 진정국면으로 돌아선 것이다. 다음 세션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를 하겠지만 칠레정부는 반정부 시위를 촉발했던 요금인상안을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정부 시위가 지속된 반면, 에콰도르는 사회 간 합의가 상대적으로 쉬이 진행되었다.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니카라과, ‘비’혁명세대가 이끄는 또 다른 혁명적 상황
2018년 4월 19일 가칭 ‘4.19 학생운동’이 니카라과에서 시작되었다. 오르테가(Daniel Ortega)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권고로 연금개혁안을 발표하였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거리로 표출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연금개혁안 폐지를 시위 발생 4일째인 4월 22일 전격적으로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의 ‘화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지지 세력(일명 Juventud Sandinista-산디니스타 청년당원)과 반정부 시위세력 간 무력 충돌로 사상자가 속출하며 최소 사망자가 500명이 넘는 국가재난사태로 이어졌다 (Economist, BBC). ‘국가적 대화’가 국제사회, 가톨릭 교계, 대학생 및 시민단체 등의 중재로 수 차례 진행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양 진영은 평행선을 그으며 극심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인권탄압과 유린이 지속되어 니카라과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는 하락하는 가운데 경제성장이 위축되고 있으며, 미주기구(OAS) 회원 중지 또는 퇴출까지 거론되고 있다(Latin American Weekly Report 2019년 11월 28일자).

 

왜 니카라과의 반정부 시위는 지속되고 있을까? 권력은 절대권력을 지향하고 절대권력은 반드시 썩는다는 주장이 여전히 설득력을 가지며 니카라과의 정치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오르테가 대통령의 권위주의에 익숙해진 습관, 선거 4수 과정에서의 정치적 이념 전향, 그리고 2006년부터 이어진 권력에의 집착이 부른 정치적 참사다. 즉 민초를 대변한다며 정권 창출을 위해 지난 1989년 이후 부단히 출사표를 던졌던 오르테가는 민중국가가 아닌 자신만의 국가, 즉 왕정국가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2011년 헌법 개정을 통한 연임, 그리고 2016년 정권 재창출이 이를 반영한다. “소모사와 다니엘은 똑 같다. 소모사가 물러났듯이 다니엘도 물러나야 한다”7)고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외치며 또 다른 혁명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8) 

 

아이티, 반정부 시위의 ‘일상’
모이즈(Jovnel Moise) 아이티의 현 대통령도 1804년 흑인 혁명의 성공 이래 지속되어 온 정권 불안정과 반정부 시위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2019년 2월 7일 현 정부 출범 2주년 및 뒤발리에(Duvalier)9)  장기 독재 정권이 몰락한 날을 기념하는 행사 당일을 기점으로 해서 아이티는 2년여 간 줄곧 반정부 시위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페트로카리브10)  지원 기금 유용 스캔들과 결부된 부정부패와 현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11)의 실패가 시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세계 최빈국인 아이티가 일상적인 반정부 시위를 겪는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티 독립혁명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아이티는 일명 ‘근대화 배상금’을 지불해야하는 상황에서 아이티 공화국 출범이 실상 반쪽짜리 성공으로만 머물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가 아이티 공화국에 지불 요청한 금액이 무려 현재 가치로 210억 달러에 이른다. 양국 간 협의로 배상금은  하향 조정되었지만, 온전한 독립국가로서의 모습을 구현하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 이러한 초기의 경제적 상황, 미국의 아이티 내정간섭 및 침략, 더 나아가 아이티 내 소수의 물라토(흑인과 백인의 혼혈)와 다수의 흑인간의 권력 분쟁, 그리고 앞서 잠시 제시한 뒤발리에 대통령의 장기 독재가 오늘의 아이티 시민들을 꾸준히 거리로 내보내는 동인이 되었다.12)  


결론에 대신하여 
이코노미스트 2019년 11월호는 라틴아메리카를 포함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 물결을 ‘제3의 물결’로 규정하고 있다. 60년대 그리고 80년대를 잇는 폭발적 반정부 시위가 작금의 지구촌 곳곳에서 재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라틴아메리카는 다양한 층위의 문제가 있다. 21세기 라틴아메리카 반정부 시위 물결을 지역단위로 놓고 볼 때, 국가별 스펙트럼이 넓다.

 

아이티의 현재적 반정부 시위를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는 갈등이론의 범주 속의 상대적 박탈감, 즉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을 돌아본다면 앞서 설명한 바대로 아이티 국가의 형성, 즉 1804년 독립때부터 점철된 ‘태생적’ 빈곤이 작금의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칠레 또한 1차적 요인, 즉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종국에는 APEC 정상회담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5)까지 취소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이 기폭이었다. 하지만, 피노체트 유산이 그 기저에 자리잡고 있었다. 에콰도르는 역시 유류보조금 폐지안과 결부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가지고 반정부 시위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 에콰도르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반정부 시위를 조기에 ‘종영’할 수 있었던 것은 모레노 현 정부와 원주민, 특히 CONAIE와의 관계적 자본이 긍정적으로 형성된 것에 기초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13)

 

볼리비아의 경우, 모랄레스 집권 이후 경제적 불평등이 개선되었기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요인 보다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상이한 이익과 가치관’을 기초로 하고 있는 갈등이론의 한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니카라과 역시 경제적 불평등 보다는 오르테가 정부의 장기집권과 결부된 각종 부정부패 그리고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작태에 대하여 학생, 즉 ‘비’혁명세대가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덧붙여, 니카라과 반정부 시위는 학생들이 주축이 된 만큼 자원동원이론에서 제시한 SNS 등을 활용해 반정부 시위를 지속하는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일고 있는 반정부 시위 물결을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갈등이론과 자원동원이론은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한다면, 왜 지금인가라는 부분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주의적 접근에 기초한 프레임이론에 인구학적 요인의 반영이 필요하다. 칠레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세대는 피노체트 집권 이후 출생한 세대이다. 하지만 이들이 피노체트 헌법의 유산으로 그 피해를 보는 만큼, 이에 대한 거부와 불편함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더욱이 영국의 역사학자 퍼거슨(Niall Ferguson)이 주장한 바처럼, 현재의 시위는 고등 교육 기회의 확대로 고학력 젊은이들이 과잉 배출됨에 따른 양태로 행위자들의 인식 변화와 아울러 인구학적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니카라과도 이와 같은 분석틀로 동일하게 설명할 수 있다. 특히 니카라과는 가칭 ‘4.19 학생혁명’으로 간주될 만큼, 학생들이 먼저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며 전 세대로 확장되었다. 1979년 니카라과 혁명 이후 태어난 세대, 즉 ‘비’혁명세대가 혁명세대의 아이콘인 오르테가 정부를 규탄하며 지속적인 반정부 시위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반정부 시위를 제3의 물결로 규정하며 반정부 시위의 동인으로는 공통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경제불평등, 인구요인, 대의제 무용론 등을 지목하고 있다. 즉 반정부 시위의 요인들은 파악이 된다. 시위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이 자신들이 접하고 있는 상황의 부당함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따른 행동의 결과가 바로 시위다. 이러한 시위를 최소화하고 또한 긍정의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는 방법은 소통에 바탕을 둔 포용적 리더십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대통령과 내각이 타 지역으로 이동할 만큼 긴박했던 에콰도르의 반정부 시위가 중단되고 국가가 정상화 된 과정에 대한 좀 더 면밀한 연구가 진행된다면, 하나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더욱이 OECD에서 인덱스 기준으로  최상의 경제 불평등 국가로 지목되는 코스타리카는 영국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국가행복인덱스에서는 행복 지수 1위 국가이다. 이에 코스타리카를 또 다른 선례로 연구한다면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국가에게도 반정부 시위 관련 예방 및 해법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각주
1) 본고의 특성상 사회운동을 기초로 하는 반정부시위와 관련된 모든 이론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추후 논문으로 확장해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2) 사회운동은 기존의 규범이나 제도, 가치, 체제 등을 바꿀 목적으로 여러 개인이 모여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집합행동의 한 형태인 것이다 (김성수, 2019). 반정부시위는 사회운동의 한 형태이다. 사회운동이라고 해서 모두 반정부 시위는 아니지만, 반정부시위는 사회운동이다. 본고에서는 사회운동의 광의의 개념인 사회질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대중운동의 성격을 작금 라틴아메리카에서 불고 있는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간주한다.
3) 자원동원이론은 크게 세 가지 접근으로 발달해옴.
4) OECD GINI 인덱스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2015년 기준 0.62), 코스타리카(2018년 기준 0.48), 칠레 (2017년 기준 0.46), 멕시코 (2016년 기준 0.46), 대한민국(2017년 기준 0.35)
5) 중국과 볼리비아간 교역은 2000년 7,500만 달러에서 2014년 22억 5,000만 달러로 약 30배 급증함.
6) 원주민 집단을 대표하는 CONAIE는 전체 인구의 7%에 불과하지만, 지난 2000년 마우드(Jamil Mahuad)전 대통령과 2005년 구티에레스(Lucio Gutiérrez) 전 대통령 퇴진을 위한 반정부 시위에 중요한 역할을 함.
7) 2018년 4월 20일 저자 현지 인터뷰임.
8) 이태혁 (2019) “니카라과의 또 다른 정치적 변곡점, "4.19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세계지역연구논총, Vol 37. No. 1(참고)
9) ‘파파독’ 프랑수아 뒤발리에와 ‘베이비독’ 장클로드 뒤발리에는 독재자 부자지간으로 33년간 아이티를 통치함.
10) 페트로카리브는 2005년 6월 베네수엘라와 중남미 카리브 해 국가 간에 맺은 석유 원조 프로그램임.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를 구매한 회원국이 대금을 장기간에 걸쳐 낮은 이자로 지불하는 방식으로. 일부 대금은 농산물로도 갚을 수 있음.
11)‘Caravan of Change’ 이니셔티브를 통해 아이티의 고질적인 에너지와 식량안보 위기 해결방안을 제시함.
12) 이태혁(2019) “아이티 반정부 시위 원인과 해법” 이메릭스. 2019.08.30. (참고)
13) 에콰도르 아마존 채굴 등 현 정부와 원주민간의 불협화음도 확인됨. 그리고, 코레아(Rafael Correa) 전 정부와 대립각도 여러 상황 가운데 확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주민 포용정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음.

 

 

※ <전문가 오피니언>은 PDF 다운이 가능합니다 (본문 하단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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