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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 오피니언] 몰도바 연정 붕괴의 의미와 전망

몰도바 조준배 서원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조교수 2020/02/10

I. 들어가며

2019년 11월 12일, 동유럽의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위치한 내륙국가인 몰도바에서 마이야 산두(Maia Sandu) 총리가 이끄는 연립내각이 의회에서의 불신임 투표 끝에 패배해 붕괴되었다. 총 101명의 의원들 가운데 63명이 퇴진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지난 6월에 출범하여 5개월 남짓 국정을 이끌어온 사회주의자당(PSRM: The Party of Socialists of the Republic of Moldova)과 아쿰(ACUM 또는 Now Platform DA and PAS: 존엄과 진실 플랫폼당(DA: Dignity and Truth Platform Party) 및 행동과 연대당(PAS: Action and Solidarity Party)의 정치연합)사이의 공동정부는 와해되었고 이고리 도돈(Igor Dodon) 대통령은 향후 90일 내에 새로운 총리를 지명하여 또 다른 연정을 구성하거나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했다. 산두 총리는 표결 이후에 진행된 언론 인터뷰에서 ‘충분히 예견했던 사태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 사회주의자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개혁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주장하며 ‘현 정부를 탄핵한 정당들과 어떠한 새로운 연정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산두 총리가 사임한 다음 날 사회주의자당 소속 도돈 대통령은 즉각 전직 재무부 장관이자 자신의 비서관을 지낸 47세의 동향 출신 이온 키쿠(Ion Chiku)를 신임 행정수반으로 지명했고 아쿰이 표결을 보이콧하는 가운데 진행된 의회의 인준 투표에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지지를 얻어 재적의원 과반수를 넘는 62표를 획득하며 후임 내각을 출범시켰다. 키쿠 총리는 취임 후 열린 언론과의 첫 브리핑에서 현 정부는 정치적 색채를 갖지 않는 기술관료(techncrat) 내각일 뿐이며 이전 정부에서 추진해온 국정개혁의 완수와 서방 및 러시아와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산두 전 총리는 신규로 임명된 10명의 장관들 가운데 여덟 명이 키쿠 총리와 동일하게 도돈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경력을 지니고 있어 현 내각이 중립이라는 주장은 허위라고 비난했다.


몰도바 정국의 급변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 요하네스 한(Johannes Hahn)은 산두 총리의 사퇴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뒤, 지난 5개월 동안 진행된 그녀의 단호한 국정개혁 조치에 변동이 있을 경우, 지원방침에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연합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EEAS: European External Action Service)의 대변인 마야 코치얀치치(Maja Kocijancic) 또한 몰도바 의회의 불신임 표결은 아직도 부진하다고 평가받는 개혁 작업이 또 다른 위기에 처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산두 내각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필요성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를 이용하여 새로운 총리 이온 치쿠의 취임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고 일부 크렘린 전문가들은 몰도바가 러시아가 주도하는 국제기구들에서 다양한 자격으로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9년 가을 들어 갑자기 발생한 연정 붕괴라는 몰도바 정국의 급변 사태는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그리고 한 해에 두 차례나 연정이 등장하는 몰도바 정계의 난맥상과 그 배경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더 나아가 혼란스런 몰도바 국내 정치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 특히 오랫동안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온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인구 350만의 유럽 최빈국에서 벌어진 정치적 대변동으로 인해 몰도바 국내의 향후 정국은 짙은 안개에 휩싸이게 되었고 주변국가들의 권력지형 또한 종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맞이하게 되었다. 구체제와 개혁 그리고 러시아와 서방이라는 구소련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적 대립구도가 작동하는 가운데 정당들의 합종연횡과 국내외 주요 이슈들이 다양하게 결합하며 독특한 양상을 빚어내고 있는 몰도바 정치의 다층적 구조와 변수들을 분석하는 것이 본 칼럼의 목표이다.

 

II. 연정 붕괴의 원인과 배경

마이야 산두 총리의 불신임 투표 사태가 불거진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검찰총장 임명 건을 둘러싼 연정 주체들의 대립이었다. 11월로 예정된 신임 검찰총장의 추천 방식과 관련하여 아쿰은 당수인 총리의 지명권을 확대하려 했던 반면 사회주의자당은 자당의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선정위원회 절차를 선호했다. 즉 2019년 6월 집권 이후 국정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반부패 캠페인을 전개해온 아쿰으로서는 민주당의 리더이자 부호 블라디미르 플라호트니우치(Vladimir Plahotniuc)가 구축한 올리가르히(oligarch)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검찰총장을 원했던 반면 아직 부패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회주의자당으로서는 통제 가능한 인물을 발탁함으로써 향후 발생할지도 모를 검찰수사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 사회주의자당은 자신들이 지지했던 인사가 심사과정에서 평가위원들 사이의 커다란 점수 차로 인해 무효화되고 선정절차 자체가 취소되자 정치적 위기라 판단하여 이를 극복할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찰총장의 선정 과정에서 벌어진 집권 정당들 사이의 다툼 이면에는 몰도바 정계의 오랜 난맥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19년 2월 총선에서 승리한 사회주의자당은 의석 과반수에 미달하는 결과로 인해 연정 수립이 불가피해지자 기존 파트너이지만 부패 스캔들로 인기가 하락 중인 민주당과 결별하고 개혁 성향의 아쿰을 선택했다. 선거 전까지 의회 내 최대 정당으로 사회주의자당과 함께 연정을 이끌었던 민주당으로서는 정권을 잃게 되는 상황이었기에 결정을 수용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6월, 헌법재판소를 통해 사회주의자당이 연정 구성의 법적 시한을 초과했다는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며 도돈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킨 뒤,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민주당 소속 파벨 필립(Pavel Filip) 총리로 하여금 의회 해산 후 조기총선이라는 소위 2월 선거결과를 무효화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사회주의자당은 즉각 반발했고 이중권력체제가 빚어내는 혼란으로 인해 국민들의 저항과 주변 강대국들의 압력이 계속되자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번복되면서 민주당은 퇴진하고 플라호트니우치는 망명했다.


그러나 헌정위기를 극복하고 수립된 공동정부 또한 매우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것이었다. 사실 연정은 수십 년간 지연되어온 개혁의 완수를 아쿰이 추진하는데 사회주의자당이 방해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조건으로 성립된 체제였고 산두 총리 또한 취임 첫날, ‘연정은 올리가르히를 청산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선언하며 국정 전반의 구조적 쇄신과 부패일소 그리고 자금세탁 방지 등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하지만 아쿰이 올리가르히 체제 탈피의 핵심과제로 포함시켰던 사법제도의 개혁은 사회주의자당의 기득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연정은 출발부터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게다가 11월 지방선거에서 사회주의자당이 과거 아쿰이 우세했던 지역에서 잇달아 의석을 확보하고 특히 수도 키스나우(Chisnau)에서 시의회를 장악함과 동시에 시장 후보로 내세운 이온 체반(Ion Ceban)이 아쿰 진영 경쟁자이자 존엄과 진실 플랫폼당 당수인 나스타세를 물리치고 당선되자 연정파트너에 대한 본격적인 영향력 축소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몰도바 국내 정치세력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유럽연합과 러시아라는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 우선 유럽연합에게 몰도바는 2014년 초 크림반도 사태 이후 동유럽에서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저지할 수 있는 전략적 방어선이자 동시에 서방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었다. 따라서 같은 해 6월, 유럽연합은 몰도바와 제휴협정(Association Agreement)을 체결하며 대규모의 차관을 제공하고 자유무역과 비자면제를 허용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원조를 아끼지 않았고 2014년 총선 이후 수립된 친유럽정당들 사이의 연정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그리하여 2016년 11월, 친러 성향의 도돈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까지 몰도바는 우크라이나 및 조지아와 더불어 구소련 국가들 가운데 서방에 가장 우호적인 나라가 되었고 2019년 6월의 헌정위기에서도 유럽연합은 국제법률자문기구인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의 베니스 위원회 (Venice Commission)를 통해 몰도바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번복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새로운 연립정부가 탄생한 이후에는 세 차례에 걸쳐 무려 5천 5백만 유로의 재정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아쿰 소속 총리 산두의 서구 지향적 개혁 작업을 적극 지지해 구체제와 연결된 몰도바의 정치세력들을 긴장시켰다.


러시아에게도 몰도바와의 관계는 크림반도 합병으로 인해 전례 없이 중요해졌다. 구소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과 나토에 가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몰도바 정부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고 크림사태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지리적으로 인접해있어 러시아의 우방국으로 복귀시킬 방도를 찾아야 했다. 실제로 2014년 여름, 몰도바가 유럽연합과 제휴협정을 체결하자 러시아는 보복조치로 몰도바산 농산물 수입을 금지했고 체납된 가스 대금을 독촉했다. 2015년 가을부터는 유럽연합과 손잡은 집권당들의 부패문제로 인해 몰도바 내에서 친러 노선을 표방하는 정당들이 인기를 얻게 되자 러시아는 이들과의 접촉을 늘리기 시작했고 2017년 초 사회주의자당 소속 도돈 대통령의 취임으로 호기를 맞게 되었다. 물론 국정운영의 주도권이 의회와 내각에 있는 몰도바 권력구조의 특이성으로 인해 러시아의 개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몰도바 에너지 수입의 90%를 제공하고 있는 점과 러시아계 인구가 다수 거주하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의 자치문제 그리고 2019년 초 총선에서 최대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사회주의자당에 대한 다각도의 지원 등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친유럽정당들을 견제해왔다.

 

III. 연정 붕괴 및 신임 내각 구성의 파장과 영향

연정의 붕괴로 인해 이제 몰도바에서는 올리가르히 체제에 반대하는 정부는 사라졌다. 2019년 6월부터 산두 총리가 추진했던 개혁 작업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이미 공동정부 하에서도 사회주의자당의 방해와 지연전술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던 각종 쇄신 과제들은 유럽연합의 지원이 중지되지 않는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을 뿐이었다. 치쿠 총리가 취임 첫날 개혁의 연속성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구체제의 주요 축이자 낡고 부패한 국가 구조를 고수하고 있는 집권 사회주의자당에게 커다란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 여름 헌정위기를 야기하며 반민주적 행태를 보였던 민주당은 치쿠 총리의 인준 과정에서 지지를 보태는 방식으로 새로운 내각 출범에 기여함으로써 재기를 꿈꾸게 되었고 당수 플라호트니우치는 정계복귀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쿰은 여전히 유럽연합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몰도바 정계에서 지니는 영향력이 대폭 축소되었고 서방의 경로를 따른 몰도바의 성장과 발전은 당분간 유보되었다. 


반면 신임 내각의 등장으로 몰도바의 구체제는 온존과 지속이 가능해졌다. 이온 치쿠 총리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당원이 아님을 강조하며 본인이 이끄는 내각이 기술관료 정부에 불과할 뿐임을 천명했지만 이미 도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자당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개혁의 동력은 약화되고 기득권은 한층 강고해졌다. 특히 11월 지방선거에서의 약진으로 사회주의자당은 정국운영의 자신감을 회복했고 이를 바탕으로 2020년 가을 대선에서 도돈 대통령의 재선 성공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교정책 분야에서도 사회주의자당은 이미 2017년 초 도돈 대통령이 내세웠던 친러노선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2019년 2월 선거의 승리와 6월 헌정위기를 통해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과 플라호트니우치를 실각시키고 연정의 가능성을 획득한 사회주의자당은 11월의 연정 붕괴와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마침내 친유럽 정당들을 권력의 중심에서 모두 밀어내고 대통령과 총리가 최초로 동일한 외교방침을 지지하는 친러정부 수립에 성공한 것이었다.


유럽연합은 산두 총리의 실각으로 몰도바에 서방의 경로를 이식하는 데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불신임 투표 당일 유럽연합은 몰도바에서의 개혁이 후퇴할 경우 재정지원을 재고하겠다는 경고를 전달하며 2014년 제휴협정의 합의사항과 2019년 6월에 시작된 산두 총리의 국정쇄신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지만 치쿠 신임 총리는 오히려 몰도바 국내의 금융횡령 사건에 유럽연합의 고위 간부들이 연루되어 있다고 비난하거나 서방의 재정적 지원이 다급하지 않다는 등의 내용을 언론에 흘리며 친서방 노선에서 벗어나려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유럽연합은 몰도바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동안의 재정지원을 종료하거나 국제통화기금의 차관 제공을 중단하는 조치 또는 트란스니스트리아 문제와 관련하여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로서는 2017년 1월 도돈 대통령의 취임 때와는 달리 몰도바의 새로운 정부가 대통령과 총리 모두 친러시아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기회를 맞았다. 사실 연정 시절 도돈 대통령은 외교정책 분야가 아쿰이 차지한 외교 및 유럽통합부 장관의 업무영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자격으로 러시아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Sergei Shoigu)를 초청하거나 사회주의자당 소속 국방장관을 양국 간 협력 논의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모스크바에 파견하는 등 독립적인 친러노선을 표방했었다. 하지만 치쿠 총리의 등장을 계기로 크렘린은 보다 적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하여 메드베데프 총리가 7년 만에 처음 몰도바 총리를 초청하는 방식으로 실무 방문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11월 중순, 모스크바에서 열린 양국 간 회담에서 러시아는 가스 공급 가격의 인하 및 기반시설 투자와 같은 다양한 경제적 지원 조치들을 제시하는 한편으로 유럽연합과의 제휴협정을 대신할 수 있는, 구소련 지역의 6개국으로 구성된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 경제 연합(EAEU: Eurasian Economic Union) 가입을 권유했다. 

 

IV. 결론: 향후 전망

친유럽 정부 10년 만에 친러시아 사회주의 정당만으로 내각을 형성한 도돈 대통령과 치쿠 총리는 부서 장관들도 대부분 도돈 대통령의 비서 출신이기 때문에 외교정책상의 노선 변화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몰도바의 구체제 또는 구세력의 기득권을 연장하는 양상을 보여줄 것이다. 다만 과반수 의석에 미달하는 정치적 한계로 인해 의회 내의 모든 정치세력들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조심스러운 국정운영이 필요하며 주요 국가기관 대부분을 오랫동안 장악하면서 발생한 권력집중 현상 때문에 통치상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 내각은 대선이 열리는 2020년 가을까지 도돈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관리역할을 담당할 예정이지만 사회주의자당은 대선 승리를 위해 조기선거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자발적인 와해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당분간 사회주의자당과 제휴할 것이나 다른 한편으로 입지를 강화하면서 권력중심으로의 재진입을 꾀할 것이다. 아쿰은 현 정부의 붕괴를 바라고 있지만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이고 개혁을 지지하는 대중들과 시민단체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정치적 안정성의 확보를 위해 어느 정당도 과반수이상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정치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으며 현재의 구조가 지속될 경우, 연정의 수립과 붕괴라는 정치적 불안의 사이클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럽연합은 새로운 반전의 계기를 확보하려 노력할 것이다. 이미 몰도바 내 친서방정당들에 대한 커넥션을 강화하면서 별도의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제휴협정에 따른 서구적 경로의 유지와 2019년 6월부터 산두 총리가 추진했던 각종 국정개혁 작업을 이행하라는 압력도 가중시킬 것이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지지를 받고 있는 몰도바 내 사회세력들은 시민사회와 친유럽연합 야당들을 독려하여 정부의 행태를 감독할 것이고 외교정책의 기조가 러시아로 급격히 변경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사회주의자당을 견제하며 도돈 대통령의 재선을 최대한 저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은 몰도바 수출품의 66%를 수입하고 투자의 80%를 제공하고 있는 일방적인 경제적 우위를 적극 활용할 것이며 2017년과 2018년에 각각 6천 6백만 달러와 7천 8백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던 미국과도 보조를 맞출 것이다. 결국 유럽연합은 몰도바에서 또 한 번의 서구적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모처럼 맞게 된 좋은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가스나 기반시설에 대한 지원 뿐 아니라 다각도의 원조를 제공하면서 몰도바의 친러시아 성향을 영속화하려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2020년 가을로 예정된 몰도바 대선에서 도돈 대통령의 재선을 적극 지지할 것이며 이행기에 해당하는 이온 치쿠 내각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실제로 치쿠 총리의 취임 초기, 현 정부가 서방과 러시아 사이의 균형외교정책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교역을 확대하며 더 많은 몰도바 상품을 수입하기로 결정했고, 가스가격을 낮추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차관 제공에도 합의했다. 그리고 몰도바는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통해 가스를 공급받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가즈프롬(Gazprom)과 우크라이나의 나프토가즈(Naftogaz)가 2020년도 계약체결에 실패할 경우 40% 이상의 국내 민간 소비자들과 70%의 기업들에 가스가 차단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러시아는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몰도바 정국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로 적극 활용할 것이다.


결국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2014년 친유럽정당연합의 집권을 시작으로 2019년 6월까지 몰도바가 유럽연합으로 오랫동안 기울었던 반면 2017년 1월 도돈 대통령의 등장과 2019년 11월 사회주의자당 주도의 내각 수립으로 러시아를 향한 반동이 발생한 것이다. 유럽연합은 몰도바 외교의 방향타를 되돌리기 위해 전력투구할 것이고 러시아는 현재 상태가 전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몰도바의 국내 정치 또한 사회주의자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구체제가 부패와 비민주적 통치라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까지 불식시키면서 국민의 저항을 피할 수 있는지가 핵심문제로 부각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아쿰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이 얼마나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개혁 대 반개혁과 서방 대 반서방이라는 이중 구도의 고차방정식에서 정치 주체들과 국민 그리고 외세 각각의 향후 역할과 결합방식이 몰도바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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