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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거버넌스의 시험대: 팬데믹 상황에서의 필리핀 보건의료 시스템

필리핀 Cleo Anne A. Calimbahin De La Salle University-Manila Associate Professor 2020/05/22

코로나 대응 역부족에 봉쇄정책으로 선회한 필리핀 정부
지난 2020년 3월 15일,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대통령은 메트로 마닐라(National Capital Region, NCR) 지역 전체를 봉쇄했다.1) 이와 같은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린 것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를 늦추기 위함이었다. 당시는 바이러스로 인한 확진자 및 사망자 수가 한 자리 수에 머물러있을 때였다. 주변국에서 수백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환자 및 사망자가 발생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봉쇄 전 3월 9일, 프란시스코 두케(Francisco Duque III) 보건부 장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필리핀의 코로나19 진단키트 보유분이 2,000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인했다. 이는 인구 1억의 나라에 있어 이와 같은 발표는 의원 및 일반 대중 모두에게 근심과 불안의 도화선이 되었다. 봉쇄조치 발표 일주일 전만 해도 두케 보건부 장관은 바이러스 통제에 있어 필리핀이 ‘모범 국가(model country)’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차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두케 장관은 대중에게 진단키트의 수량 확대 대책을 제시하는 대신, 미안한 기색 없이 자신은 1억 필리핀인 전체에 대한 검사 진행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코로나 조치가 지연된 배경
한 필리핀 경제학자는 필리핀이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항공편을 통해 필리핀에 유입되는 중국인의 수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3월 초, 보건부에서 밝힌 확진자가 세 명에 불과할 때 통계적 모델링을 통해 필리핀에 코로나19 양성환자 200명이 존재한다고 추산했다.2) 지난 3년 동안 필리핀 정부가 보였던 전례 없는 수준의 친중 움직임으로 인해 중국과의 경제적 및 외교적 유대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 일환으로 중국 관광객에게 도착비자 발급이 허용되었으며, 필리핀 온라인 카지노 산업에 종사하는 중국인의 수 또한 늘어났다. 필리핀에서 일하는 중국인의 수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따라서 감염증의 발발과 함께 우한 및 기타 도시에 대한 봉쇄령이 발효되었을 때 정부가 중국인 유입객에 대한 이동 제한을 권고하지 않은 것은 필리핀인에게 있어 또 하나의 걱정거리였다. 오히려 두케 보건부 장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여행제한을 내릴 경우, 관계 당사국(이 경우 중국)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보고된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왜 동일한 조치를 취하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여행제한 권고를 저어하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3)  

보건부 장관이 재빠르게 결단력 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은 것은 정부 대응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에 불을 지핀 여러 이유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필리핀 보건의료 시스템이 팬데믹에 맞서 대처할 역량이 없다는 것은 봉쇄령 이후 2주가 지난 3월 24일, 메트로 마닐라의 5대 민간 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추가 수용이 불가능한 상태임을 공개적으로 밝히자 더욱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 되었다.4) 최대 수용 역량에 달한 이들 민간 병원은 보건부에 코로나19 치료용 공공 병원을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필리핀에서 공공 병원은 자금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의료 시설이나 기술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4월 중순 기준  필리핀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약 5,223명이다.5) 필리핀이 검사 역량을 확대해 감에 따라 이 수치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검사의 필요성에 대해 감염병 관리를 위해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설치한 부처간작업반(Inter-Agency Task Force, IATF)을 구성하는 몇몇 핵심 정부 관료 및 기관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감염률이 줄어들었다는 징후는 있지만, 4월 30일까지로 연장된 봉쇄조치로 인해 확진자 증가세가 실질적으로 멈추었는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봉쇄조치가 감염률을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타 경제⸱고용⸱치안 측면에서의 도미노 효과는 정부와 민간 부문이 함께 대처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표1


필리핀 보건의료계가 처한 현실Ⅰ: 열악한 공공 서비스, 미비한 민주적 제도, 예산 부족
필리핀은 제도가 탄탄하지 못하고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 수준이 열악하다는 점에서 민주적으로 미비하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필리핀에는 한 일가가 지방 및 중앙 정치에  수십 년에 걸쳐 정치적 통제력을 행사하거나, 부패가 만연하고 감독기관이 힘을 쓰지 못하는 등 왕조적 정치의 모습이 있다. 글로벌 팬데믹과 같은 외부 도전과제는 이 두 요소가 공존하는 필리핀과 같은 나라에 매우 큰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필리핀이 매우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기된 거버넌스 상의 위험 신호를 눈감아 온 중진소득국 국가인 필리핀에 있어, 이번 글로벌 팬데믹은 일반 시민에게 부담을 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필리핀은 보건의료상의 여러 문제를 오랫동안 도외시했음을 인지하고 있다. 2019년 2월, 보편적의료보장법(Universal Health Care Law)이 통과되었다.6) 동 법을 통해 필리핀이 공공의료 시스템의 글로벌 표준을 충족하여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시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공공의료 시스템 수혜 범위 확장을 통해 모든 필리핀 시민의 보건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필리핀인 대부분에게 양질의 저렴한 의료서비스는 현실이 아니다. 연구 결과 필리핀인 10명 중 6명이 의사의 진찰을 받지 못한 채 사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7) 높은 치료비용은 중⸱저소득층 가정에 커다란 부담을 지울 수 있고, 이는 곧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 높은 입원비와 치료비 때문에 가세가 기운 가정을 위해 일가 친척과 친구가 나서 모금을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2019년 필리핀 보건의료계의 아이러니는 보편적 의료보장을 위한 법이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보건부 예산이 1억 9,700만 달러(USD)가량 삭감되었다는 것이다.8)

필리핀 보건의료계가 처한 현실Ⅱ: WTO 권고기준보다 적은 의료 종사자 수
민간과 공공 병원 모두를 포함하여 전국의 병상 수가 10만 개에 불과한 가운데, 필리핀인 대부분은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민간병원은 세계 정상급의 시설을 자랑할 지 모르나 비용이 매우 높다. 반면 공공병원은 거의 항상 자원이 부족하다. 세계보건기구의 연구 결과 필리핀 보건의료시설 30%에 깨끗한 화장실 및 손을 씻을 수 있는 안전한 수돗물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9) 

인적자원의 경우, 필리핀의 전체 인구 대비 의료계 종사자 비율은 1만 명당 19명 꼴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인구 1만 명당 의료계 종사자 45명 비율을 권고한다. 필리핀간호협회(Philippine Nursing Association)는 보고서를 통해 2017년 기준 15만 명 이상의 필리핀 간호사가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10)  또한 같은 보고서에서 다른 업계에 몸담기로 선택한 간호사가 3만 명 가량으로 나타났다. 필리핀에서 간호사가 열악한 근무환경 및 긴 근무시간을 버티면서 벌어들이는 금액은 한 달 600USD 미만이다. 인구 천 명당 의사의 수는 1.3명으로, 세계 평균인 1.5명에 못 미친다. 세계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필리핀은 아세안에서 총 보건의료 지출액 대비 자가부담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이다.11) 

필리핀 보건의료계가 처한 현실Ⅲ: 과거 사례에서 누적된 정부와 지도층에 대한 불신 
필리핀의 보건의료 시스템은 늘 문제였다. 필리핀의 기대수명은 70.9세로, 이웃국가인 싱가포르나 한국에 비해 족히 10년은 적다. 뎅기열, 말라리아, 소아마비 등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감염병에 걸리는 환자 및 이로 인한 사망자 수 또한 높다. 2019년 필리핀의 뎅기열 환자는 35만 명 이상이었으며, 사망자 수는 1,300명을 넘었다.12) 홍역 환자의 수는 4만 2,000명이었으며 그 가운데 56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어린이였다. 필리핀에서 종식된 것으로 여겨졌던 소아마비는 2019년 이후 다시 나타났다. 필리핀의 백신 접종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예방접종을 맞은 80만 아동 중 14명이 사망하며 불거진 뎅기열 예방백신 관련 논란이 있다.13) 아동들의 사망과 백신 간 결정적⸱직접적 연결고리는 없었으나 뎅기열 퇴치를 위한 접종 프로그램은 정치 쟁점화 되어 전면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 논란은 정부의 백신 프로그램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빈곤층이 무료 접종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는 또 한가지 이유가 되었다. 또한 필리핀은 환자 수 100만으로 결핵 유병률이 세 번째로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14) 2018년에 필리핀 내 사망자 수는 2만 6,000 명이었다. 결핵의 진단, 검사 및 치료에는 필리핀 정부의 강하고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필리핀에서는 특권층 및 소수계층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접할 수 있다. 믿을 만한 의료인은 대부분 비용이 높다. 필리핀 부유층은 해외에서 치료를 받는 일도 흔하다. 정치 및 경제 엘리트인 필리핀 부유층이 필리핀 보건의료 시스템의 현실을 피해 달아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필리핀 공공 의료 인프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다른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병원, 병상 및 의료장비 투자 확충에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던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하더라도, 기본적 공공서비스인 보건의료는 부패 청정지역이 되도록 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병원 물자 및 장비 조달 과정은 부패 행위에 노출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2017년, 보건당국은 선거활동 목적으로 뎅기 백신을 이용했다는 논란에 직면했다. 2019년에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부정 투석치료 비용이 공공 의료보험업자에게 청구된 사실이 보고되기도 했다. 부정한 거래가 있었는지, 더불어 보건의료 시스템 내에 부패 행위가 발생했는지를 검증할 수 있도록 엄격한 감독 및 책임소재 확인이 이루어져야 한다. 보건부는 현 시스템에서 부정 이득을 꾀할 수 있는 허점 및 비효율성이 발견될 시 옴부즈만청(Office of the Ombudsman) 및 감사위원회(Commission on Audit)와 협력하여 책임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코로나 위기가 필리핀 의료업계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과 앞으로의 과제 
팬데믹의 여파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병원 추가 신설, 의료 전문가 급여 개선을 통한 국내 체류 장려, 보건의료 투자 등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도층에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새겨질 것이다. 코로나19 검사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았던 필리핀 정치인 및 그 가족은 온라인 SNS상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현재 진단 키트 부족으로 인해 노년층 및 취약층이 코로나 검사 우선순위로 설정되어 있다. 유증상자 다수가 취약층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한 국가로의 여행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검사를 거부당했다. 반면 정치인 및 그 가족들은 최전방 의료진보다 앞서 검사를 받고 결과도 더욱 빠르게 받아보았다. 이는 보건부 장관 스스로가 인정한 내용이다.15) 의료진이 내부고발자의 역할을 했으며, 누리꾼들은 소수의 특권층만을 위한 검사가 아닌 대중을 위한 대규모 검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현 정부 및 미래의 정부가 필리핀의 보건의료 상황을 냉철하게 평가할 때가 되었다. 이는 말 그대로 필리핀 국민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다. 지난 20년 동안 아무런 개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높아지는 국민의 요구 및 늘어나는 정부의 자원을 바탕으로 더 나은 보건의료뿐만 아니라, 세계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다양한 도전과제에 대한 역동적 접근법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에 발생 가능한 팬데믹 및 보건의료 비상사태에 필리핀이 제대로 대응할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모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공공 보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필리핀은 보건의료에 대해 1인당 200 달러이상을 지출해야 한다. 현재 인구 1,000 명당 1개 꼴인 병상의 수를 확충해야 한다. 보건의료 지출에서 감독 및 책임소재 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필리핀 국민은 오늘날과 같은 무방비상태를 다시 한 번 경험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보건의료 부문 개선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이는 정치적 쟁점으로 삼아서는 안 될 공익의 문제이며, 부패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정부와 민간부문은 자국 시민에게 제공하는 보건 의료의 접근성 및 품질을 개선한 다른 국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필리핀 민간 및 공공 부문의 이니셔티브와 더불어 현재 나타나고 있는 양 부문간의 협력을 활용해 보다 나은 보건의료 인프라 구축이 가능하다. 더불어 정부가 국내 보건의료진에게 투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급료 인상, 교육, 제대로 된 장비, 좋은 근로환경 등의 인센티브 제공이 대중의 필요에 부응하는 의료 부문을 만드는 핵심이 될 것이다. 

* 각주
1) https://www.rappler.com/nation/254536-coronavirus-metro-manila-lockdown-begins
2) https://twitter.com/jcpunongbayan/status/1236954620783542272
3) https://cnnphilippines.com/news/2020/1/29/duterte-on-china-travel-ban.html
4) https://www.gmanetwork.com/news/news/nation/731097/makati-medical-center-now-at-full-capacity-for-suspected-covid-19-cases/story/
5) https://www.doh.gov.ph/covid-19/case-tracker
6) https://www.doh.gov.ph/press-release-towards-better-health-for-all-Filipinos-UHC-signed-into-law
7) https://cnnphilippines.com/life/culture/2020/3/20/healthcare-pandemic-opinion.html?fbcid%3Ffbclid%3Ffbclid%3Ffbclid
8) https://news.abs-cbn.com/news/09/24/19/doh-budget-for-2020-cut-by-p166-b-amid-measles-polio-rise-garin
9) https://www.who.int/philippines/news/detail/04-04-2019-3-out-of-10-health-care-facilities-in-the-philippines-lack-access-to-clean-toilets
10) https://www.philstar.com/business/2019/10/23/1962515/crisis-health-care
11)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SH.XPD.OOPC.CH.ZS?locations=PH
12)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inf/article/PIIS1473-3099(19)30642-5/fulltext
13) Ibid.
14) https://www.who.int/philippines/news/commentaries/detail/it-s-time-to-end-tb-in-the-philippines
15) https://cnnphilippines.com/news/2020/3/23/DOH-senators-VIP-testin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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