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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기억의 정치’와 ‘역사 바로 쓰기’ : 러시아-체코 갈등

체코 김신규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발칸연구소 전임연구원 2020/05/25

코네프 동상 철거
2020년 4월 3일 프라하에 설치되어 있던 소련 전쟁영웅 이반 코네프(И. С. Ко́нев)의 동상이 철거되었다. 이미 작년 프라하 6구 구의회에서 철거를 결정한 이후 러시아의 직, 간접적인 위협과 대표적인 친러파 정치인 대통령 제만(M. Zeman), 체코 공산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6구 구청장 콜라르쉬(O. Kolář)는 동상 철거를 단행했다. 

코네프는 대조국전쟁(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몰아내고 프라하를 해방시킨 전쟁영웅으로 칭송되어 왔다. 그러나 1980년 프라하에 코네프 동상이 세워진 이후 체코 역사계에서는 코네프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체제전환 이후에는 동상 설명문에 코네프를 195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혁명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인물이며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무력으로 진압하기로 결정한 인물로 묘사했다. 체코 역사계는 코네프와 소련군은 프라하 봉기가 성공을 거두어 독일군이 항복을 선언한 이후인 1945년 5월 9일 프라하에 입성했기 때문에, 그를 프라하 해방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네프 동상 철거로 체코의 ‘역사 바로 쓰기’와 러시아의 ‘기억의 정치’가  충돌하면서 체제전환 이후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체코의 역사 바로 쓰기
체코의 역사 바로 쓰기는 코네프 동상 철거에 그치지 않고 있다. 프라하-르제포리예(Praha-Řeporje) 시장 노보트니(P. Novotný)는 2차대전 당시 나치를 몰아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소련 장군 블라소프(А. А. Влáсов)와 그의 부대원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제작했다. 블라스프는 2차대전 중 나치에 전향한 소련의 반역자로 전쟁포로들로 구성된 러시아해방군을 조직해 소련군과 전투를 벌였었다. 2차대전 말엽 소련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블라소프는 1945년 2월 프라하 인근까지 퇴각했다. 마침 프라하에서는 5월 5일 나치 독일에 대항하는 대규모 봉기가 시작되었고, 블라소프는 프라하 봉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프라하로 진군해 독일군과 교전해 항복을 받아냈다.1) 바로 다음날 코네프가 이끄는 소련군이 프라하에 입성했다.  

이런 사실에서 프라하-르제포리예시는 역사 바로 쓰기의 일환으로 코네프가 아닌 블라소프를 프라하 해방자로 기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한 프라하 시장 흐르집(Z. Hřib)은 러시아 대사관이 위치한 거리명을 밤나무 아래 광장(náměstí pod kaštany)에서 ‘보리스 넴초프 광장(Náměstí Borise Němcova)’으로 바꾸었다. 푸틴에 반대하던 러시아 정치인 넴초프(Б. Е. Немцов)가 2015년 모스크바에서 암살당한 이후 프라하에서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거리명을 바꾸자는 청원이 진행되었고, 그의 사망 5주기를 기념해 2020년 2월 27일 거리명을 바꾼 것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는 거리명 변경은 어이없고,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라고 그 의미를 애써 폄하했고,2) 러시아 대사관은 변경된 보리스 넴초프 광장 1번지(nám. Borise Němcova 1) 대신 400미터 떨어진 대사관 부속 건물의 주소인 코루노바취니 34번지(Korunovační 34)를 대사관의 공식 주소로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기억의 정치
러시아는 코네프 동상 철거와 블라소프 기념비 건립, 거리명 변경 등에 대해 체코가 러시아-체코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일부 민족주의자와 서방세계의 선동에 놀아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외무장관 라블로프(С. В. Лавро́в)는 코네프 동상 철거가 1993년 ‘체코-러시아 우호조약’에 명시된 기념물 보존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푸틴(В. В. Пу́тин) 대통령은 2020년 4월 기념물 훼손에 최대 5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전쟁 기념물 훼손에 관한 법’에  서명했고3), 국방장관 쇼이구(С. К. Шойгу́)는 전쟁 기념물 훼손법을 체코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지를 조사위원회에 문의하면서, 모스크바 지하철 프라하역(Пражская)의 명칭을 코네프 역으로 바꾸자고도 제안했다.4) 

이런 와중에 복면을 한 괴한들이 모스크바 주재 체코 대사관을 향해 연막탄을 던지고 파시즘 중단을 요구하는 프래카드를 벽에 붙이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 민족볼세비키당원이라고 밝힌 이들은 체코 정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탱크로 프라하까지 진군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5)

한편 2020년 4월 26일 체코의 주간지 레스펙트(Respekt)는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러시아 정보원이 이미 체코에 입국해 라이신(Ricin)으로 역사 바로 쓰기와 관련된 세 명의 체코인을 암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6) 러시아 대사관은 이 기사에 대해 ‘덜떨어지고 자극적인’ 거짓이라고 비난하면서, 러시아인과 러시아에 대한 근거 없는 모함과 공격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레스펙트 측에서는 러시아 대사관의 이런 반응은 2018년 3월 러시아 정보원 스크리팔(С. В. Скрипáль)과 그의 딸이 영국에서 노비촉 신경가스 테러를 당한 이후의 대응과 똑같으며, 그보다 앞서 2006년 러시아 연방보안부 요원이었던 리트비넨코( А. В. Литвиненко)의 독극물 암살 사건 이후에도 이와 똑같이 반응했다고 비꼬았다.7) 

이와 관련해 체코 내무부와 사이버안보부는 누구의 소행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코네프 동상 철거 직후에 프라하 국제공항, 병원, 보건부 등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집중됐었다고 밝혔다.8)

사실 옛 상징 철거와 이에 따른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07년에 에스토니아 탈린시가 소련군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한 이래 에스토니아 언론사, 정부 사이트, 은행 등은 심각한 사이버 공격을 받았었다. 또한 러시아는 조지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이며 조직적인 사이버 공격을 단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9) 폴란드에서도 2017년 전체주의 선동 금지 일환으로 소련군 관련 기념물을 철거한 직후 극심한 사이버 공격을 받았었다. 

러시아의 대동유럽 하이브리드워 전략
체코-러시아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게 된 원인이 무엇이든 코네프 동상 철거, 거리명 변경, 새로운 기념비 설치 등은 그동안 러시아가 중동부유럽 국가에서 꾸준히 추진해온 러시아 이미지 개선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동시에 중동부유럽 국가들이 역사 바로 쓰기를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정상적인 방법으로의 이미지 개선이 어렵게 되자 러시아는 새로운 접근법을 고안했고 그것은 게라시모프 독트린(Gerasimov doctrine)10) 혹은 하이브리드워(hybrid warfare) 전략으로11) 구체화되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국경을 사이에 둔 전장에 국한하지 않고,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 친소련, 반서방, 반미디어와 관련된 가짜 뉴스를 전파하여 상대국의 내부를 분열시키는 전략이다. 즉, 러시아의 하이브리드워 전략은 “상대국 내부의 갈등을 유발하기 위해 거짓 정보와 선전 선동을 추진하며, 정보활동을 통해 해당국의 정치적 변화를 유도하여 군사작전을 하지 않고도 자신의 이해를 도모할 수 있게 하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12) 

그동안 러시아는 조지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지에서 이런 전략을 적용해왔는데, 조지아에 대해서는 군사작전과 동시에 정보전을 전개했었고,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 그리고 불가리아 등 NATO 회원국에 대해서는 군사작전을 활용할 수 없어 정보전을 주로 전개했었다. 가장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전통적 군사작전과 함께 정보전을 추진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러시아는 체코에서도 거짓 정보 유포와 친러파 양산에 적극적이다. 러시아는 특히 체코를 중동부유럽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정보전의 허브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주체코 러시아 대사관의 규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러시아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은 92명으로 다른 어느 대사관과 비교해서도 월등히 많은 규모이며, 지역 영사관을 합치면 120명 이상이 체코에 주재하고 있다. 체코 정보부는 이중 1/3 이상이 정보부 소속 요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3)

주체코 러시아 대사관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친러파 양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체코 공산당과 현 대통령 제만에게 선거 자금을 제공하면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4) 공산당과 제만 대통령은 이번 코네프 동상 철거와 체코의 역사 바로 쓰기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러시아는 폴란드와도 기억의 정치와 역사 바로 쓰기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2019년 12월 푸틴 대통령이 폴란드 역시 2차대전 발발에 책임이 있다고 발언하면서 폴란드와 러시아 사이에도 역사 논쟁이 한창이다. 푸틴의 이런 주장에 대해 폴란드의 모라비에츠키(M. Morawiecki) 총리는 독-소 불가침조약, 독-소 양국의 폴란드 침공, 분할이 2차대전 발발의 원인이라며, 푸틴의 발언은 가해자와 희생자를 뒤바꾸는 잘못된 역사관에 기초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15)

이보다 앞서 폴란드는 2017년 6월 ‘전체주의 선동 금지법‘ 을 통해 폴란드 전역에 산재해 있는 소련군 관련 기념물을 대거 철거한 바 있다. 당시 러시아는 1994년 러시아-폴란드 조약에 명시된 기념물 보존 합의를 위반했다며 폴란드 측의 조치를 비난하고, 2차대전 당시 폴란드의 해방을 위해 60만명의 러시아인이 죽었다고 강조했었다.16) 

이번 체코의 코네프 동상 철거와 러시아의 역사 왜곡 그리고 그 이후의 사이버 공격과 정치인들에 대한 암살 위협은 과거 폴란드와 다른 동유럽 국가에서 벌어졌던 과정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가짜 뉴스와 왜곡된 역사를 유포하면서 때아닌 역사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논쟁에 대해 이번 기회를 통해 역사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역사 논쟁을 통해 거짓 정보와 뉴스가 확산되면서 일반대중들의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는 부정적인 영향도 우려된다. 

의도적 분쟁과 외교적 해결? 
체코 외무부 장관 페트르지첵(T. Petříček)은 러시아 정보원에 의한 독극물 테러 가능성이나 사이버 공격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러시아 측의 기념물 훼손법의 체코 국내 적용은 완벽한 주권 침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동시에 페트르지첵은 이번 동상 철거를 비롯한 여러 사건은 지방정부의 독자적 결정으로 중앙정부가 이를 막을 수 없고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17) 체코 정부는 이번 사건은 그동안 악화된 체코-러시아 관계의 파생물일 뿐이며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이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반복되는 역사 논쟁이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둘러싼 논쟁이라기보다는 교착상태에 빠진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에서 이번 양국 간 역사 논쟁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는 크림합병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자신에게 부과된 유럽연합의 경제 제재를 풀기 위해서 이번 역사 논쟁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러시아는 체코를 비롯한 중동부유럽과의 역사 논쟁을 최악으로 끌고 간 후에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인 양보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중동부 유럽 국가를 통해 유럽연합에게 화해 신호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체코를 비롯한 중동부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이런 전략을 이해하면서 이를 자신들의 역사 바로 쓰기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1) RFE/RL (December 08, 2019). 
2) ČTK (Březen 06, 2020).
3) New York Times (May 08, 2020).
4) Warsaw Institute (April 18, 2020).
5) České Noviny (Duben 06, 2020).
6) Respekt (Duben 26, 2020).
7) Radio Prague (Duben 28, 2020). 
8) RFE/RL (April 24, 2020).
9) Amy Mackinnon (2020), “As Putin Seeks to Reinvent History, Russia-Czech  Relations Hit a New Low,” Foreign Policy Report (April 29).
10) Molly K. Mckew (2017), “The Gerasimov Doctrine: It’s Russia’s new chaos theory of political warfare. And it’s probably being used on you,” Politico Magazine (September/October).
11) M. Galeotti (2016), Hybrid War of Gybridnaya Voina? Getting Russia’s Non-linear Military Challenge Right (Prague: Mayak Intelligence). 
12) Jan Holzer and Miroslav Mareš (2020), Czech Security Dilemma: Russia as a Friend or Enemy? (Cham: Palgrave Macmillan), p. 41. 
13) Ivana Smoleňová and Barbora Chrzová (2017),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The Kremlin’s leverage in the Visegrad countries (Prague: Prague Security Studies Institute), pp. 2-3.
14) Ibid.
15) DW.com (December 31, 2019).
16) UNIAN.NET (August 10, 2017).
17) Radio Prague (May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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