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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코로나19 시기의 중남미, 팬데믹의 원인과 해법

중남미 일반 곽재성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2020/06/26

들어가며
전대미문의 COVID-19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2020년 상반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시아, 유럽, 그리고 미국을 거쳐 마지막으로 중남미 대륙에 도달하여 맹위를 떨치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중남미는 중국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했던 발생초기엔 청정구역으로 불리기도 했었는데, 유럽과 미국으로 진앙이 옮겨온 3월부터 감염자가 나왔고 그 이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며 6월 중순을 기준으로 확진자 160만을 넘어섰다. 인구대비 확진자의 수도 세계 평균이 10만 명당 105명인데 반해 중남미는 269명으로 두 배 이상 많다. 진단 역량을 감안하면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더 큰 문제점은 사망자 수인데, 세계 평균인 인구 10만 명당 5.78명의 두 배가 넘는 12.95명이다 (IDB 2020). OECD 회원국으로 모범적 경제발전 사례로 주목받던 칠레의 경우에도 확진자가 21만 명에 달해 인구대비 세계 최대 환자수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연합뉴스 2020). 이 글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장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는 중남미의 현황과 그 원인을 파악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 (New Normal)에서 중남미의 대응 전략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중남미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원인
왜 코로나19는 중남미에서 빠르게 확산되는가? 첫째, 중남미에서 방역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다름아닌 정치, 즉 거버넌스의 실패다. 많은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어적 수사로 대응할 뿐 실행하지 않거나 아예 관심이 없다. 확진자만 100만 명을 넘긴 브라질의 방역 실패 스토리는 묘하게 트럼프의 미국과 닮아있다. 2020년 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브라질에 막 도달했을 당시만해도 정부는 공항 방역을 통해 유입을 막고 초기 단계 방역을 시행할 역량과 준비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코로나19의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세계보건기구 (WHO)는 3월 11일이 되어서야 팬데믹(Pandemic) 을선언했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각국의 대처가 지연되었다. 여기까진 초동대응이 다소 부실했던 여느 국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상황이 심각해졌어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SNS를 통해 ‘터프한 브라질 국민에겐 가벼운 감기 정도’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WHO의 권고도 무시하면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 보건부와 지자체들이 자체적인 대응 준비를 시작하자, 대통령과 미묘한 갈등이 시작되었다. 보우소나루는 우선 자신과 다른 길을 가는 보건부 장관을 해임하였는데, 이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해임된 장관은 공중보건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던 몇 안되는 의사 출신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후임도 의사 출신을 임명했지만 감염병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원래 브라질은 개도국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공중보건 체계(Sistema Unico de Saude)가 잘 구축된 국가이다. 기존의 체계는 중앙정부가 예산의 일부를 부담하고, 규제와 모니터링을 책임지며, 지자체는 예산을 매칭하고 운영을 담당하는 협업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재정위기로 예산지원이 부족하여 전반적인 보건 시스템의 부실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각 지자체별로 재정 여건이 다양하기 때문에 지역간 공중보건 서비스의 양적·질적 격차도 불가피하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통령의 무관심으로 중앙정부의 역할이 실종되어, 코로나19가 퍼지자 실제적인 방역 책임은 지방정부가 담당하게 되었다. 브라질의 코로나19는 의료인프라와 재정상황, 그리고 주정부의 인식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궤적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부의 산타 카탈리나주의 방역 성공이나 북부 아마존 인디언 다수가 무방비 상태로 감염된 상황은 같은 국가에서 발생한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그 원인은 중앙정부의 방기하에, 지자체의 개인기 또는 대응력 차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정치적 이유로 국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나 자가격리해제를 부추겼고, 이 결과 코로나19는 중남미 최대국가에서 폭발적으로 확산되게 되었다(Tavares de Almeida 2020, 109-110).

다른 한편, 우리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칠레의 성공모델에 지난 30년간 취해있었다. 오늘날 코로나19가 거품을 거두자, 칠레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사회경제 측면에서 극심한 불평등 구조, 정치적 측면에서 국민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는 왜곡된 정치 구조가 보이게 된 것이다.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현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보건부 장관, 위험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보신주의로 일관한 대통령과 참모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메시지를 남발했던 정치권과 언론 등이 이런 상황을 잉태한 주범이다. 어찌보면 2019년의 대규모 민중 집회를 통해 부실한 사회시스템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이미 폭발시킨 바 있는 칠레 사회는 코로나19가 확산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모범적인’ 칠레 사회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마약유통과 폭력 사태가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둘째, 중남미 경제의 저성장은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이자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미 지난 6년간(2014~2019년)의 역내 성장률이 0.4%에 불과할 정도로 중남미 지역은 저성장의 늪에 장기간 빠져있었다. 코로나 시대, 국가간 이동이 막힌 시점에서 1차산물 수출에 집중하며 관광이나 송금 등 세계화의 외부요인에 의존도가 높은 중남미 경제는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부실한 인프라와 이미 바닥난 재정여력 탓에 대규모 방역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단도 부족하고, 의료진의 희생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중남미에선 대면 활동 기반으로 진행된다. 2주에 한 번씩 받는 급여 (quincena)나 저소득층 가계지원금을 수령하기 위해 은행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익숙한 모습이다. 평소 도시내 이동도 매우 활발하나, 이에 반해 대중교통망이 충분하지 못해 버스나 지하철은 항상 붐빈다. 새로운 노선을 건설하거나 대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되면 오히려 더 많은 교통 수요를 야기해, 인프라의 절대 공급은 산술 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혼잡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전자상거래, 배달문화도 그리 활성화되지 못하여 한국과 같은 수준의 비대면 활동으로의 전환은 극히 일부 계층에게 해당되는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베네수엘라 출신 경제학자인 리카르도 하우스만이 “코로나19가 지나가도 중남미 경제는 역사상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했듯이, 심각한 불황기에 찾아온 팬데믹은 지역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것이 확실하다(China Builes 2020, 122).  

장기적으로는 대안적, 포용적 발전의 모색만이 살길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자본주의의 정립을 위한 정책 비전의 수립에서부터 각 섹터 단위의 행동계획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구조 개혁을 시도해야한다. 예를 들면, 수출 농산물 및 식량에 대한 부가 가치를 높이고, 지역내 가치사슬에서 육성이 가능한 바이오 산업의 중간재 산업을 키우는 등의 길은 제시되어 있다. 문제는 어떻게 빠르고 혁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지금 중남미 정치권의 면면을 보건데 전망이 그리 밝다고 보기 어렵다. 

셋째, 콜로라도에서 스키 휴가를 즐기고 상파울루로 돌아온 부자는 최고 의료 시설에서 완치되었지만, 바이러스가 퍼진 파벨라(favela, 브라질의 빈민가)에선 감염자와 사망자가 폭증하고 있다. 미국과 흡사하게 바이러스는 중남미의 빈곤과 불평등 구조를 타고 확산된다. 다만 그 구조의 모순성이 매우 깊게 각인되어 있고, 규모가 클 뿐이다. 중남미의 지속가능성과 포용적 성장의 위기가 온 직후 중산층은 추락하고, 통치의 위기가 대두된 시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2019년부터 이미 빈곤과 불평등을 못 견딘 저소득층의 요구가 여기 저기에서 폭발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곧 코로나49의 희생자가 되었다(China Builes 2020, 120).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경제폐쇄 또는 이동제한조치(lockdown)로 대응하고 있는데, 이는 실효적인 방역 수단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서민경제에 치명타를 안기고 있다. 고용의 반 이상이 비공식부문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중남미에선 하루벌어 먹고 살아야하는 저소득층, 특히 도시 빈민들은 가만히 집에서 굶어죽는냐,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하며 돈을 벌다가 바이러스에 걸리느냐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코로나49 확산 초반엔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등 대부분 국가에서 부촌을 중심으로 1차 감염자가 나왔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 지역의 확산세가 다소 진정되고 있는 반면, 대도시 빈민가에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남미의 개혁과제
중남미의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의 COVID-19 경험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이를 ICT 인프라 구축, 커뮤니티 중심 1차보건 체계 확립, 민주적 거버넌스 확립,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등을 중심으로 중장기 개혁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는 한-중남미 협력 아젠다로 구체화 시킬 수 있고, 특히 팩데믹과 그 여파에 대한 복원력(resilience) 확보 차원에서 개발 협력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 

첫째, ICT 인프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국의 방역에서 ICT 역할은 확진자 동선 추적, 대 국민 정보 제공, 환자 추적관리, 재난지원금 지급 등에 있어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이는 ICT 인프라는 물론, 투명한 정보공개, 역량있는 개발자, 높은 정책 활용도 등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국가기간 인프라로서 안정적인 초고속 인터넷 망의 확보가 시급하다. 아울러 국가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바일 활용성(usability)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방역을 넘어 경제적인 측면에 있어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에 ICT 인프라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한국이 봉쇄조치(lockdown)없이 사회적 거리두기 만으로 방역에 성공한 배경,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경제활동이 지속되는 배경은 모두 ICT와 모바일 인프라 덕이라 할 수 있다. 꼭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괜찮다. 아프리카의 휴대폰 결재 시스템인 M-Pesa와 같은 활용가능한 리소스를 적절하게 투입하여 저비용 고효율의 대국민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커뮤니티 중심의 1차 의료기관(보건소)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여 기초보건의 중심지로 기능할 수 있게 한다. 1차 의료기관에서 이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면 기존의 의료체계를 붕괴시키지 않고, 감염병 관리와 대 국민의료서비스에 적절히 자원을 배분하여 각각 대응할 수 있다. 이점에 있어 한국은 물론 카리브의 의료 수출국인 쿠바의 경험도 큰 시사점이 있다. 쿠바 1차 보건의료의 기본 단위는 지역사회에 설치된 폴리클리닉과 지역 진료소이고, 전국적인 1차 보건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예방의학을 구현하며, 이에 걸맞는 의료진 양성 체계가 구축되어 있다. 각 진료소는 약 800~1,000명의 주민을 담당하므로 가정의-간호사가 각각 통제 가능한 범위라고 볼 수 있다 (정이나 2020). 

셋째, 정파를 초월한 민주적 거버넌스의 확립이 필요하다. 선거를 통한 간접민주주의, 즉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국가에 정착되어 있다. 그러나, 민주적 거버넌스의 영역에서부터 국민들의 교육과 인식 수준 등을 구성하는 중남미의 전반적인 거버넌스 시스템이(좁은 의미에서) ‘민주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칠레의 실패 사례에서 언급했듯이 팬데믹 상황에서 이와 같은 좁은 의미의 민주적 질서 확립은 매우 중요하다. 인도에서도 코로나19가 맹렬히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예외적으로 남부에 위치한 케랄라(Kerala)주는 방역에 성공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우수한 관료, 높은 문해율(94%)과 언론자유가 자리잡고 있다. 민주적 거버넌스가 중요한 이유는 포용적 발전(Inclusive Development)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넷째, 뉴 노멀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언택트(Untact) 사회로의 진입이나 디글로벌리제이션(De-Globalization), 그리고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다. 이는 모든 국가에게 자유무역에 최적화된 지금까지의 이주, 생산, 소비 패턴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향성을 예고하는 것이다. 개도국, 특히 중남미에서 예측할 수 있는 단기적인 변화는 ▲관광산업의 붕괴, ▲이주노동자 송금액의 감소,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외국인투자의 변동성 확대, ▲장기적인 물자부족 또는 가격인상으로 인한 국내생산기반 확대 필요성 등이다. 흡사 대공황 이후 많은 개도국이 어려움을 겪어, 수입대체산업화(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를 추진했던 시기와 유사하며 이를 어떻게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그릇에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투자 및 무역이 위축되는 분야, 관광 수입 및 이주노동자 송금액이 하락하면서 가계소득이 줄고 생존권이 위협받을 때 정부가 이를 어떻게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한 국가나 지역 단위에서 해결될 문제라 볼 수 없기 때문에, 국제기구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협력 채널과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활용하여, 보건과 경제, 그리고 거버넌스 차원에서 당면한 개혁과제를 현명하게 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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