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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벨라루스의 코로나19 상황과 대응

벨라루스 김혜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2020/07/20

논란 속의 스포츠경기 개막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비상사태에 접어들었다. 2020년 2월만 하더라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됐던 코로나바이러스는 3월에 유럽과 미국 등지로 퍼지면서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 속에 놓이게 됐다. 모든 국가들이 방역 수준을 높이고 있으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증가에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나라는 훌륭한 대응으로, 반대로 어떤 나라는 안일한 대처로 세계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벨라루스는 좀 더 다른 의미에서 화제가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도 프로축구 리그를 정상적으로 개막했으며, 관중까지 대거 경기장으로 입장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리그 시즌을 조기 종료하거나 중단을 결정한 반면, 벨라루스에서는 3월 19일 벨라루스챔피언십 축구경기가 열렸다. 그날 오후 5시에 열린 첫 경기에는 730명의 관중이, 같은 날 저녁 7시에 열린 두 번째 경기에는 그보다 2배 이상의 더 많은 관중이 모여들었다. 우리나라 언론을 통해서도 마스크는 커녕 웃통을 벗어 던지고 축구경기에 환호하는 벨라루스 축구팬들의 모습이 전해졌고, 당시 코로나 확진자 9,000명을 목전에 뒀던 우리에게 그 모습은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벨라루스에서는 별다른 방역 조치 없이 수많은 관중이 들어찬 경기장에서 축구경기가 진행됐다. 

3월 14일부터 4월 13일까지 제13회 대통령컵 아마추어 아이스하키 대회도 열렸다. 벨라루스 전역의 아마추어팀들이 참가하는 이 대회는 벨라루스 대통령이 직접 참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대회에도 매번 1,000명이 넘는 관중이 몰려 경기를 관람했다. 

성대한 승전기념일 행사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유관중 축구경기를 열면서 세계적 이목을 끌었던 벨라루스는 대규모 국가행사를 개최하여 재차 주목을 받았다. 바로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성대하게 펼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은 소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큰 희생자를 낸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소련 사람들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련은 이 전쟁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2차 세계대전으로 희생된 소련 사람들의 수는 2,700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과거 소련의 일원이었던 14개 국가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벨라루스의 근·현대사에서도 2차 세계대전은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뒤이어 소련도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게 됐다. 소련군이 점령한 폴란드 동부 지역은 1939년 독-소 비밀협약에 의해 벨라루스의 영토로 인정됐다. 독소불가침조약에도 불구하고 1941년 독일은 소련을 침공했고, 유럽과 가까운 벨라루스는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독일의 점령을 받은 벨라루스는 1944년 8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지만, 독일군이 퇴각할 때까지 3년 동안 200만 명 이상의 벨라루스인이 희생됐으며, 200개 이상의 도시와 9,000개 이상의 마을, 그리고 산업시설의 80% 이상이 파괴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날의 벨라루스 국경이 확정되었다.

러시아뿐 아니라, 벨라루스에서도 ‘2차 세계대전’이라는 명칭보다는 ‘대(大)조국전쟁’이라는 표현으로 부르며, 이 전쟁을 기억하고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성대하게 경축한다. 특히, 올해는 승전 75주년을 맞는 해로,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 국가들에서 승전 기념행사가 더욱 성대하게 치러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매년 승전기념일에 세계 각국 정상을 붉은광장으로 초청해 이 기념일을 화려하게 경축해왔던 러시아조차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우려해 행사를 전격 취소했다. 

5월 9일,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대규모 퍼레이드가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열리면서, 벨라루스는 옛 소련 국가 중 유일하게 승전기념식을 치른 국가가 됐다. 군사 퍼레이드 계획을 발표한 3월 30일만 하더라도 벨라루스 내 확진자는 150명 정도였으며, 한 명의 사망자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4월로 접어들며 상황은 급변했으며, 인구대비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의 증가 속도는 이웃 국가들의 속도를 뛰어넘었다. 세계보건기구 역시 벨라루스 내 감염자 증가를 근거로 퍼레이드 취소를 권유했고 승전기념 행사 이후의 감염자 폭증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런 상황에도 5월 3일에 벨라루스 대통령은 퍼레이드를 취소할 이유가 없으며, 행사 개최가 벨라루스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계획대로 진행할 것을 선언했다. 대신, 강제적인 동원은 없을 것이며 퍼레이드에 참여할 군인 이외에는 희망자들만 참석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참전용사단체를 통해 참전용사들을 초청했으며,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완치한 이들도 승리자라 칭송하며 초청하였다. 이외에도 학생, 의사 등을 초청하며 많은 이들이 참석하는 성대한 행사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이번 승전기념일의 규모는 이전에 비해 작아졌다. 승전 70주년이었던 2015년에는 약 60만 명의 사람들이 승전기념식에 참석했다면, 2020년 행사에는 1만 5,000명 정도가 참여했다. 벨라루스 정부는 옛 소련 국가들의 정상과 러시아 국회의원들도 초청했으나, 이 중 참석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주벨라루스 대사들도 초청했지만,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대사만 참석했을 뿐이다. 군사 퍼레이드 이후 도심지에서 축하 콘서트가 열렸지만, 관중들은 예년에 비해 훨씬 적었다. 

루카센코 대통령의 코로나19 관련 발언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상황에도 불구하고 벨라루스에서 이러한 대형 행사가 열릴 수 있었던 데는 벨라루스의 수장인 루카센코 대통령의 영향이 크다. 루카센코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 여러 차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하며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정신병으로 매도했으며, ‘코로나바이러스는 보드카를 마시고 사우나를 하면 퇴치할 수 있다’ 또는 ‘트랙터 일을 열심히 하면 낫는다’ 식의 근거 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3월 28일에 열렸던 아마추어 아이스하키 준결승전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참가해 경기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차가운 얼음판에서 운동하는 것이 최고의 바이러스 치료제라는 등의 진지하지 않은 발언을 대중 앞에서 자주 하며, 코로나바이러스를 별 것 아닌 질병으로 취급했다. 국가의 수장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다 보니, 벨라루스의 코로나 방역 대책도 안이한 상태로 지속되었다. 

전문가들은 루카센코 대통령의 이러한 기이한 발언이 오는 8월 대선과 경제 위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루카센코 대통령은 소련 해체 이후 1994년 벨라루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래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어, ‘유럽의 독재자’라는 악명높은 별명을 갖고 있다. 5선째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가 대통령직에서 내려올 의향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벨라루스에는 루카센코 대통령의 이렇다 할 맞수도 없는 상황이다. 벨라루스 정부는 국가 정책에 불만을 표시하는 개인의 시위나 시민단체의 집회를 강경하게 진압해 왔다. 

루카센코 대통령에 맞설 강력한 후보가 없다 하더라도, 루카센코 대통령 입장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벨라루스 경제를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 유럽국가들처럼 록다운(Lockdown) 정책을 펼친다면, 이는 심각한 경기 불황으로 이어져, 벨라루스 경제를 한층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가 벨라루스 정부가 록다운 정책을 이행할 경우, 수도 민스크에서만 46만 5,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벨라루스에는 록다운 정책으로 몇 달간 일할 수 없는 회사나 개인에게 보상해 줄 만한 자원도 없는 상황이다. 루카센코 대통령은 필요할 경우 격리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엄격한 이동제한 조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경제 문제는 8월 9일 대선을 앞둔 루카센코 대통령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벨라루스의 코로나 19 상황 추이
벨라루스에서는 2월 28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견됐다. 당시 벨라루스 당국은 코로나 19 확진자 수가 제일 많았던 네 국가인 중국, 한국, 이탈리아, 이란에서 입국한 모든 사람을 검사했다. 2월 22일 아제르바이잔 수도인 바쿠를 통해 벨라루스로 입국한 이란 유학생이 27일 진행한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이며 첫 코로나 환자로 판명 났다. 뒤이어 3월 3일에는 4명의 확진자가, 3월 10일에는 1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확진자 수는 계속 증가하여, 3월 30일 총 확진자 수는 152명을 기록했다. 3월 31일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첫 사망자가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비텝스크에 거주하는 벨라루스 공훈 예술가이자 배우인 빅토르 다쉬케비치가 7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후 연이어 이 지역에서 세 명의 사망자가 나타났다.

벨라루스 정부는 3월 말 확진자 수가 최고조에 달했으며, 이후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4월부터 상황은 더 악화됐다. 4월 8일 처음으로 확진자 수가 천 명을 뛰어넘었으며, 300~400명의 신규 확진자가 매일 발생하면서 3일 후인 4월 11일에는 2,000명을 훌쩍 넘었다. 4월 14일 보건부 부장관인 엘레나 보그단이 앞으로 2~3주간 신규 확진자 수는 3~400명 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으나, 4월 중순 이후부터 신규 확진자 수가 백 명 단위로 매번 급증해 4월 26일에는 총 확진자의 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그 수는 계속 증가해 5월 7일에는 2만 명 이상, 그리고 5월 12일에는 2만 5,000명이었다. 5월 내내 매일 900명 이상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6월 1일 신규 확진자 수는 847명으로, 하루 사이 861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한 5월 5일 이후 가장 적은 신규 확진자 수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6월 1일 기준, 벨라루스는 유럽국가 중 확진자가 가장 많은 다섯 국가 안에 들어가게 됐다. 6월에 접어들면서 신규 확진자 수는 500~600명대로 낮아졌다. 6월 22일 기준 벨라루스의 총 확진자 수는 5만 3,505명, 완치자 3만 7,666명, 사망자 36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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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심각해지자, 벨라루스 정부도 강화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웃 국가들과의 국경을 폐쇄하거나 이동제한 정책을 시행하지는 않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기 시작했다. 4월 8일 이전까지의 조치는 권고 사항에 그쳤다면, 그 이후에는 모든 이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사항으로 바뀌었다. 수도 민스크시에서 내린 지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치원의 경우 학부모 재량껏 자녀를 등원시킬 수 있으며, 등원하지 않을 경우 유치원 내 자리는 보존하되, 등록비는 내지 않는다; 초중고교 역시 학생들의 등교는 학부모 재량에 맡기며, 등교한 학생들은 자기 교실에만 있어야 하고, 다른 반 학생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한다; 대학생은 원격 수업을 하거나, 불가피할 경우 개별 시간표대로 수업을 진행한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은 휴일에도 고향이나 다른 도시로 가지 않고 기숙사에 머물도록 하며, 기숙사 내 문화 및 스포츠 행사는 금지한다; 도서관, 박물관, 기타 전시장 내부에서의 대형 행사를 금지하고 열람실도 임시 중단한다; 운행을 마친 버스 및 대중교통수단 내외부에 방역을 실시한다; 레스토랑, 카페 등 대중음식점은 손님들의 1.5m 거리두기를 지키도록 하며, 회식, 파티, 결혼식, 추도식 등의 행사는 금하며, 오후 3시 이후 한 시간 이상 내부 소독을 실시한다; 쇼핑몰이나 가게 내에서의 홍보 등의 행사는 금지하며, 점원들은 장갑, 마스크, 손 세정제를 사용해야 한다; 극장 및 문화시설 방문자는 1.5m 거리두기를 지켜야 한다; 회사원들은 증상이 있는 경우 출근하지 않으며, 회의나 세미나 등은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출장은 금지한다; 공공기관 직원들은 업무 전 매일 체온을 측정하고 기록하며, 체온이 높을 시 업무에서 제외한다; 호텔은 투숙자의 체온을 체크하며, 투숙자의 방은 최대한 멀리, 다른 층이나 복도의 다른 방향에 배치하도록 한다; 각 아파트의 공동 현관, 승강기 내부 버튼, 손잡이, 문고리 등도 소독한다; 교회, 수도원, 사원은 환기와 소독에 주의하고, 이콘(성화) 및 성물 역시 소독한다; 미용실, 타투샵, 네일샵 등은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5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손님을 받도록 하며, 직원은 마스크를 착용한다; 클럽, 볼링장, 당구장, PC방 등의 위생과 소독은 업주가 관리한다 등.

벨라루스 국민들의 반응
뒤늦게나마 벨라루스 정부에서 일상생활에서의 예방 및 방역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벨라루스 시민들은 코로나 사태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다. 방역 대책의 강화를 요구하는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벨라루스 시민들은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일관성 없는 자료 공개나, 공개된 자료의 불일치 등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공식 통계자료의 신뢰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코로나 19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국가의 안일한 대처를 이유로, 혹자는 벨라루스에서의 코로나 사태를 체르노빌 원전 폭발에 비유한다. 1986년에 우크라이나 도시 체르노빌의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났는데, 체르노빌이 벨라루스와 가까운 탓에 원전 폭발 사고로 방출된 방사능의 약 66%가 벨라루스 영토에 떨어져 벨라루스는 토양오염을 비롯한 상당한 방사능 피해를 보았다. 당시 소련 정부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초기 대응했고, 정확한 원인이나 상황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아 심각한 물적, 환경적 피해뿐만 아니라,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낳았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시기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얻은 교훈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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