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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아프리카 중산층, 아프리카의 성장 동력인가? 만들어진 신화인가?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장용규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교수 2020/07/23

‘검은 사자’, ’검은 다이아몬드’, ’검은 치타’, ‘와벤지’ (waBenzi) … 
아프리카 중산층을 칭송하는 단어들이다. 새천년 이후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급부상한 중산층은 아프리카의 미래를 책임질 계층으로 등장하는 듯 하다. 아프리카성장이니셔티브(Africa Growth Initiative) 선임연구원 시그네(Landry Signe) 박사는 201년 브루킹스 연구소 기고문을 통해 아프리카 중산층의 성장을 조명하고 있다. 시그네 박사는 2030년에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가계 소비가 2조 5,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중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DR콩고, 이집트, 탄자니아, 케냐와 남아공 등 아프리카 경제를 선도하는 7개 국가가 대륙 전체 가계 소비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시그네 박사가 가계 소비의 증가로 인해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43% 가량이 중산층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앞서 아프리카비즈니스센트럴(African Business Central)은 아프리카 투자 분야의 변화에 대한 기사를 내 놓았다(African Business Central. 2014). 이 기사에 따르면 아프리카 투자에 관심있는 투자자는 기존의 석유와 광물, 코코아 등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왔던 투자 영역 외에 최근에 ‘떠오르는’ 중산층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산층을 주요 투자 자원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중산층은 사회를 이끌어 나갈 리더 집단일 뿐 아니라 시장 경제의 주 소비 계층이라는 면에서 투자자의 관심은 이해할 만하다. 가나와 남아공에서의 중산층 성장이 국내외 여행과 모바일 폰, 자동차 등에 대한 소비 증가와 맞물려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하지만 중산층에 대한 이런 장밋빛 전망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뒤죽박죽 계급’(muddle class), ‘중산 서민’(middle mass), ‘부유하는 계급’(floating class)…
일부 학자들은 아프리카 중산층은 집단 자의식을 갖춘 계층이 아니라 외부에서 규정하고 정의한 집단이라고 비판한다. 서양에서의 중산층이란 부르주아를 축으로 오랜 역사를 통해 스스로  집단 의식을 쌓아 온 계층을 말한다. 중산층은 물적 축적과 함께 사회 의식과 문화 교양, 민주주의 정신이 함축되어 있는 포괄적 개념을 담고 있다. 외부에서 규정한 아프리카 중산층은 이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아프리카 중산층에 대한 양쪽의 관점을 통해 아프리카 중산층의 현실에 가까운 모습을 살펴 보고자 한다. 

아프리카 중산층, 장밋빛 전망
2014년에 출간된 ‘딜로이트 소비자 리뷰 아프리카: 21세기 관점’ (The deloitte Consumer Review Africa: A 21st century view)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아프리카 전체 10억 인구 중 3억 5,500만 명이 중산층으로 분류된다. 보고서는 아프리카 인구가 26억에 달할 2060년에 중산층은 11억에 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African Development Bank)도 유사한 전망을 내 놓은 바 있다. 아프리카개발은행에서 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아프리카 중산층은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34%에 해당하는 3억 5,000만 명에 도달했다. 보고서는 이어서 아프리카 중산층의 성장은 민간경제 성장의 핵심 요소라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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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중산층이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최근 아프리카 경제성장에 대한 긍정적 신호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새천년 이후 두 자릿수 성장을 계속해 왔다. 아프리카개발은행의 <아프리카경제전망 2020>에 따르면 2019년 아프리카 대륙 전체 경제성장률은 3.4%이며 2021년에는 4.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국제적으로 경제성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선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이런 경제 성장이 아프리카 중산층을 생산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아프리카의 경제성장과 중산층 성장은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중산층 성장은 소비시장 규모를 현저하게 늘리는 효과가 있고, 실제 중산층의 가구당 소비지출은 해마다 10.7%씩 성장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중산층 성장은 3.1%가량으로 이는 아프리카 전체 인구 증가(2.6%)를 웃도는 수치이다. 경제 성장과 맞물린 아프리카 중산층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당연히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해외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실제로 음식과 음료, 위생품, 가정용품 산업은 지난 10여년 동안 큰 성장을 해 왔다. 특히 아프리카의 모바일 기반 시장의 성장세는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경제지표로 미루어 보아 아프리카 중산층이 아프리카 경제성장에 미칠 영향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아프리카 중산층은 아프리카의 성장을 주도할 중추 세력으로 성장할 것인가? 

아프리카 중산층에 대한 현실과 비판
사실 ‘아프리카 중산층’이라는 용어는 모호하기 그지 없다. 아프리카개발은행의 정의는 하루 구매력(또는 최저 수입)이라는 지극히 협소한 경제적 관점의 중산층 개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며, 지역마다 그 정의가 달라져 왔다. 백 번 양보해서 경제적 관점에 머무른다 해도 아프리카 중산층은 아프리카개발은행의 정의보다 훨씬 더 포괄적 개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각종 경제 지표가 잡아내지 못하는 실제 중산층의 삶과 지표화된 중산층 사이에 괴리는 없는 것인가? 이와 관련해 케냐의 한 일간지 기사가 흥미롭다. 2019년에 데일리 네이션(Daily Nation)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중산층은 호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돈을 빌린다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케냐 중산층의 허상을 밝히고 있다. 기사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개발은행 기준에 따르면 케냐 중산층의 하루 구매력은 200~2,000 케냐 실링(한화 약 2,300~2만 3,000원)에 해당한다. 이 구매력을 기준으로 할 때, 케냐 전체 인구의 44.9%가 중산층에 해당한다. 한편 케냐국가통계청(Kenya National Bureau of Statistics, KNBS)은 케냐 중산층이 한 달에 2만 3,670~19만 9,999 케냐 실링(한화 약 27만 1,000~230만 원)을 소비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이는 아프리카개발은행이 제시한 중산층의 기준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수치이다. 그런데, 데일리 네이션은 여기에 큰 함정이 숨어 있음을 밝힌다. 케냐국가통계청은 2015년 기준 공식 경제에 속해 있는 사람 중 6만 8,676명(약 2.89%)만이 매 달 10만 실링(한화 약 11만 5,000원) 이상의 월급을 받는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케냐 국민 중 213만 명은 4만 9,000실링의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실질적 유동 중산층에 속한다. 대충 눈치를 챌 수 있겠지만 케냐 중산층의 소득과 소비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 케냐 중산층은 소득을 뛰어 넘는 소비를 하는 것이다. 월 4만 9,000실링의 소득자가 2만 3,670실링을 소비하는 환경인 것이다. 이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선 케냐 중산층 사이에서도 소득과 소비의 편차가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중산층의 ‘상류층’과 중산층의 ‘하류층’(floating class) 사이의 소득 수준 차이가 크기 때문에 소득과 소비의 편차가 크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 편차는 아프리카개발은행의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또 따른 흥미로운 점은 데일리 네이션의 분석에 있다. 데일리 네이션은 소득과 소비의 큰 편차가 발생하는 원인을 중산층의 소비 성향과 은행에서 찾았다. 케냐의 은행 대출과 선불 지급이 지난 2년 동안(2019년 기준) 12%가 늘어났다. 케냐 은행 대출은 2017년도에서 3,580억 실링에서 2019년에는 4,420억 실링으로 늘어났는데, 데일리 네이션은 이에 따라 부채 비율도 11.5% 가량 증가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데일리 네이션의 결론은 케냐 중산층 대부분은 은행 대출이나 선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는 케냐 사회학자 은야치예오(Nyachieo)의 인터뷰를 통해 케냐 중산층의 문제를 마무리하고 있다.

“케냐 중산층은 아이가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차를 몰고 다니는지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많은 케냐인은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할 삶을 살고 있다... 중산층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엄청난 사회적 압력이 있고, 이것이 사람들을 빚더미에 앉게 하고 있다… 케냐 중산층은 대출에 의지해 살아간다. 그것은 거짓 삶이다.”

아프리카 중산층: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아프리카 중산층은 신기루에 가깝다. 남아공 프레토리아대학교의 멜버(Melber)교수는 아프리카 중산층에 대해 지난 20여 년 동안 자원 수출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아프리카 경제의 ‘낙숫물’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한다. 멜버 교수가 ‘비만의 시절’(fat years)이라고 평했던 지난 경제 발전은 기형적인 중산층을 만들어 냈을 뿐, 그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GIGA 아프리카 문제연구소 연구원인 기에스버트(Giesbert) 박사는 지난 수십년 동안 아프리카 경제 발전은 직업 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에 중산층으로 분류되고 있는 계층은 계층 상승과 하락의 기로에 서 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소비시장 규모는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중산층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적지 않은 학자와 경제 분석가들이 아프리카 중산층의 정의가 매우 모호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특히 직업 창출에 실패한 아프리카 경제 구조는 중산층의 개념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이 중 가장 혼란스러운 영역은 비공식 경제이다. 성인 아프리카 노동력의 50% 이상이 비공식 경제 영역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거리 행상에서 시작해, 소규모 가족 비즈니스, 각종 밀거래 등 공식 경제 지표에 잡히지 않는 경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전문 기술이 없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계층이지만 소득 수준은 공식 경제 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보다 훨씬 높은 경우도 빈번하다. 따라서 아프리카 중산층은 공식경제활동과 비공식경제활동 종사자로 구성된 포괄적인 계층이다. 사이먼 박사는 하버드경영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기고문에서 이들을 ‘포괄적 중산층 아프리카 소비자’(all-purpose middle-class African consumers)이라고 설명한다. 전문직업군에 속한 사람과 길거리 행상을 하는 사람을 함께 중산층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의 소득과 소비력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중산층에 적극적 소비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덧입혀 시장 경제의 중요한 소비 자원으로 타겟을 정한 것이다. 

서양의 부르주아와 중산층의 개념은 오랜 역사적 투쟁을 통해 집단적 계급 의식을 형성해 온 사회적 산물이다. 아프리카 중산층은 이 과정을 건너 뛴 채 압축적 경제 성장의 결과로 발생한 파생적이고 경제적인 결과물이다. 따라서 아프리카 중산층을 경제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중산층이 갖고 있는 고유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아프리카의 사회 계층에는 민족과 지역, 계급과 정치 성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중산층의 정의를 경제적 관점으로 환원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포괄적 개념의 아프리카 중산층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이들이 담당해야 할 사회문화적 책무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공유를 점검해 봐야 한다. 아프리카 중산층에서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집단 의식을 찾아 보기 힘든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남아공 칼럼니스트 음벨레(Mbele)는 한 칼럼에서 남아공 흑인 중산층의 사회적 무책임을 비판하고 있다. 음벨레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남아공 흑인 중산층의 사회에 대한 무관심(자신만 편하면 된다는)을 비판하면서, 이들은 남아공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날 선 비판을 한다. 중산층의 집단적 계급 의식은 사회 발전을 선도한다는 이데올로기에 기초하고 있다. 부르주아가 없는 사회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이는 강력하고 독자적인 중산층은 민주화를 이끄는 동력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케냐 중산층은 투표를 하지 않고 트윗만 한다”는 비아냥이 의미하는 바도 정치적 리더십을 상실한 케냐 중산층을 비판하는 것이다. 

중산층을 단순히 경제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아프리카개발은행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유동중산층은 언제든지 극빈층으로 떨어질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을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정의하는 것은 투자 유치를 위한 곡예에 가까운 행위일 뿐, 아프리카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엄격한 분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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