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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터키 아야 소피아, 이슬람 모스크로 전격 복원

튀르키예 정세진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부교수 2020/08/11

아야 소피아의 역사적 기원 및 그 의미
터키 이스탄불의 유서 깊은 성소피아 성당이 모스크로 환원되면서 2020년 7월 24일 이 장소에서 역사적인 이슬람 예배가 거행되었다. 이 박물관은 성 소피아 대성당으로 명명되었고 일반적으로 ‘아야 소피아(Hagia Sophia)’로 불렸다. 그리스어로는 ‘하기야 소피아’, 라틴어로는 ‘산타 소피아’이다. ‘아야 소피아’는 터키어 명칭이다. 이 건물은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6세기에 건축되었고, 8세기 이후에는 그리스정교회의 총본산이었다. 이 성당은 1,0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이자 당시 기독교세계의 중심 교회였다. 그런데, 1453년, 오토만 술탄 메흐메드 2세 (Ottoman sultan Mehmed II)가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을 정복하고 이 건물을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했다. 이후 이 모스크는 이슬람세계(Islamic World)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 터키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Mustafa Kemal Ataturk)가 세속주의를 표방하면서, 1934년 아야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변모시켰다. 그가 이슬람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음으로써 이루어졌던 조치였다. 그곳에서 종교 예배를 더 이상 드릴 수 없었다. 

476년 동서 로마가 분열되면서 동로마는 지금의 이스탄불인 당시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했다. 동로마 제국의 핵심 공간이 이스탄불이었다. 중세 시대를 거쳐 근대 시기로 들어오기 이전에 유럽의 가톨릭 세력과 무슬림은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십자군 전쟁을 벌였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 투르크라는 무슬림에 정복당했고, 이로써 이 지역은 지금까지 터키 민족이 통치하고 있다. 이스탄불은 동로마제국, 즉 그리스정교회(동방정교회, 비잔틴정교회)가 오랫동안 영적, 정신적 세계를 이끌어왔던 곳이다. 아야 소피아는 동방교회에서 세운 역사적인 건축물로 여기고 있던 그리스 인의 자존심이었지만, 이제 그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 이슬람 예배 장소로 86년 만에 다시 복원되었던 것이다. 

터키 대통령, 아야 소피아를 이슬람 모스크로 복원하고 기념 예배 참여
외부의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터키 고등 법원은 아야 소피아가 80년 전에 불법적으로 박물관으로 전환된 것이라고 2020년 7월 10일에 판결했다. 법원은 이 건물이 모스크로 전환되기를 오랫동안 갈망하던 터키 민족주의자들과 이슬람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이 이 건물을 모스크가 아닌 다른 용도로의 사용은 법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함으로써 박물관 지위가 무효화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터키 국무회의는 1934년까지 모스크로 사용되던 아야 소피아의 지위를 박물관으로 변경한 아타튀르크의 행정명령을 취소하였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대통령이 모스크 전환 법령에 정식 서명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야 소피아는 이제 ‘대(大) 아야 소피아 모스크(The Grand Hagia Sophia Mosque)’로 개칭되었다. 

17년 통치 기간, 강력한 정치적 권력을 견지해 온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과 종교적 준수를 지지하고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 지위를 회복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는 무슬림이 다시 그곳에서 예배드릴 수 있다고 언급했고 이 문제를 이슈화했다. 7월 24일 대통령은 내각의 장관 등 초청자들과 함께 오후 1시 직후 금요일 예배에 참석했다. 예배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꾸란 낭송으로 시작되었다. 터키 종교 당국의 수장인 알리 에르바스(Ali Erbas)가 기념 예배를 주도했다. 그는 6세기에 건축된 이 국제적인 모스크에서 예배할 권리가 더 이상 부정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대통령은 모스크 바닥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꾸란의 멜로디 암송을 듣고 있는 장면을 터키 국영 텔레비전에 방영되도록 했다. 대통령은 이번 결정은 터키의 ‘역사적인 주권’을 발동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예배 이후 연설을 통해 이번 예배는 역사적인 순간이며, 특히 이 장소에서 오랫동안 예배하기를 원한 보수파 이슬람주의 선거 운동가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는 정치적인 수사를 던졌다. 알리 예르카야(Ali Yerlikaya) 이스탄불 주지사는 금요일 예배 시 시민들에게 ‘마스크, 기도 매트, 인내 및 이해’라는 4개 항목을 지니고 올 것을 요청했다. 

이날 행사에 대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본 행사를 방영하는 등의 관심을 보였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천 평방 피트의 청록색 카펫이 대리석 바닥에 놓여졌고 흰색 커튼이 기독교 모자이크가 들어있는 천장 부분까지 뻗어있었으며, 예배 시간 동안 계속 덮여있었다. 이번 예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무슬림 신자들이 터키 전역에서 왔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외부의 특별히 지정된 지역에 모여서 예배 의식에 참여했다. 금요 예배 이후 꾸란 암송은 24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아야 소피아는 밤새도록 개방되었다. 

이슬람 모스크로의 전환 이유
그렇다면 아르도안 대통령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순수한 정치적 행위, 즉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터키 정치는 약 20년 동안 위기에 처해있으며,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동일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터키의 경제적 상황도 매우 나빠져 있다. 경제 침체 속에서 대중적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대통령이 보수적인 이슬람 단체의 지원 기반을 공고히 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의 근동 정책 연구소의 리서치 프로그램 책임자이며 ‘에르도안의 제국’의 저자인 소너 카가테이(Sonner Cagaptay)는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로의 전환은 오랜 시기 터키 이슬람주의자들의 목표였다고 강조한다. 그는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동경해 온 대통령의 결정은 정치적이었다면서 대통령의 이러한 결정은 매우 상징적인 조치라고 분석하였다. 즉 자신의 출생 도시인 이스탄불의 시장 출신인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의 영구적인 각인’을 남기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정치 평론가들은 대통령이 종교, 민족주의적 수사를 강화하면서 이번 결정을 내린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의 군사적 개입과 동 지중해 연안의 석유 및 가스 권리에 대한 국제 분쟁이 격화된 가운데, 터키가 세계무대에서 고립될 가능성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번 결정은 터키에서 이슬람의 위상을 높이고 터키를 이슬람 세계의 주도 국가로 만들기 위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야망과 겹친다. 

그리스의 강력한 반발 
그리스와 미국의 ‘그리스정교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번 결정을 보고 이 날을 ‘애도의 날(day of mourning)’로 공표했다.  그리스 정부는 터키의 결정이 문명사회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며 양국 관계는 수렁에 빠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스에서는 24일, 수백 개의 그리스정교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깃발이 반기(半旗) 상태로 올려졌다. 24일에 아테네 대성당에서 특별 예배가 열렸다. 아테네와 그리스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 (Thessaloniki) 교회들도 철야기도를 가졌다. 아테네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평화 시위에 참여했다. 테살로니키에서 예배 이후에 수십 명이 터키 영사관까지 행진을 시도했는데, 경찰이 건물에 도착하기 이전에 시위대를 막았다. 시위대는 해산 전에 터키 깃발을 태웠다. 

쿠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아야 소피아의 지위 변화는 ‘권력의 표현이 아니라 약점의 증거’이며 터키는 ‘보편적 가치’에 도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Katerina Sakellaropoulou) 그리스 대통령은 아야 소피아의 지위 변화는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모든 기독교인들, 모든 인류 문명을 잔인하게 모욕한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터키 내에 거주하는 약 1,800명 정도의 그리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로의 전환이 향후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노년 세대는 1955년 그리스 공동체를 향해 자행된 터키 포그롬 생존자들이며, 두려운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의 의견을 정확히 피력하는 것조차 주저하고 있다. 특히 터키 내 소수 민족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의 주요 민족주의 정당과 연대한 이후로 몇 년 간 터키 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터키 정치의 이슬람화와 국유화의 결과로 믿고 있다. 

터키가 모스크 전환 입장을 가지면서, 그리스 당국자들은 나토(NATO) 동맹국인 터키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움직임을 몇 주간 보여주었다. 특히 터키가 그리스의 크레타 섬 인근 영토에서 석유 시추 계획을 추진해 나간다면, EU 차원의 제재를 추진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에 반해 터키 언론은 터키 국기를 불태우는 등 그리스 내의 시위와 관련, 그리스 국민들이 과거 비잔틴 제국의 영광과 실지 회복을 여전히 꿈꾸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방의 기독교 교회의 반발과 우려 
터키 법원의 결정 이후로 서방의 기독교 교회 지도자들도 이를 비판하고 있다.  종교 분열이 심화된다는 경고가 줄기차게 있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포함한 일부 기독교 종교 지도자들과 미국도 터키의 결정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즉 아야 소피아라는 역사적인 기념비가 학대를 받았다는 식으로 실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아야 소피아를 기념비 이상의 풍부하고 영원한 역사적 지식의 원천으로 받아들인다. 즉 이 공간이 이슬람 예배 장소가 된다면, 침묵의 유적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터키는 과거 역사적인 6개의 그리스정교 교회(동방 교회)를 이슬람 모스크로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민족주의 경향을 비판하는 서방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을 불관용과 이데올로기에 갇힌 행위로 보고 있다. 즉 화해와 평화의 희망에 대한 터키 정치가의 학대 행위라는 입장이다. 

7월 23일 목요일, 미국 그리스 정교회의 엘피도포로스(Elpidophoros) 대주교는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을 만나 터키 정부의 결정에 실망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즉, 서방에서는 이스탄불의 다 종교 유산(multi-faith heritage)과 기독교와 이슬람 연합의 상징으로 아야 소피아를 유지하도록 요구해 온 그리스와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불쾌감을 준 사건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정교회의 총주교 키릴은 터키의 이번 결정은 모든 기독교 문명에 대한 위협이며, 러시아 인들에게 깊은 고통을 야기한다고 밝혔다. 

그리스를 위시한 서방 국가들의 반발에 터키 당국은 아야 모스크가 모든 방문객에 공개되고 예술로서 이 공간이 보호받을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앞으로 예배 이외의 시간에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야 소피아는 무료로 공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터키 산 카펫으로 덮인 이 공간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환영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특히 아야 소피아 내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및 기타 기독교 상징의 복잡한 모자이크는 이슬람 예배 시간에만 커튼으로 베일을 씌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방할 것이라고 한다. 일일 다섯 번의 기도는 향후 매일 개최된다고 터키 당국은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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