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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인도의 중국 제품 불매 운동

인도 김신주 한국외국어대학교 전임강사 2020/08/20

인도와 중국, 45년만에 갈완 계곡에서 무력 충돌
2020년 6월 15일, 인도와 중국의 국경에 위치한 갈완 계곡(Galwan Valley)에서 인도군 20명이 사망하는 무력 출동이 발생하였다. 이번 사건은 1962년 인도와 중국의 전쟁 이후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 충돌로 인해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실 인도와 중국의 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나, 유혈사태가 발생한 것은 45년 만의 사태였기에 더욱 긴장이 고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인도와 중국의 출동은 1962년부터 시작된다. 1962년 전쟁에서 인도인 3,0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1975년 인도 시킴주에서 양국은 다시 한번 충돌하면서 80명의 인도군이 사망하였고, 수백 명의 중국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인도와 중국의 국경 지역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유혈 충돌은 없었다. 양국은 그간 확전을 피하기 위해 총기를 동원하지 않고 맨손 격투나 투석(投石) 등으로 맞서왔었다. 

이번 갈완 계곡에서의 인도군과 중국군의 충돌과 이로 인한 인도군의 사망으로 인도 내에서는 중국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즉, 인도와 중국의 갈완 계곡에서의 충돌과 중국제품에 대한 인도의 불매 운동은 국경 지역을 둘러싼 양국의 역사적 갈등과 경제적 관계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 갈등의 역사를 짚어보고, 인도 내 중국 제품의 불매 운동의 의미에 대해서 진단해 보고자 한다.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 갈등의 역사: 심라 협정과 맥마혼 라인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의 역사는 1914년 심라(Simla) 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라 협정은 인도와 중국 사이의 국경선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협정으로 당시 인도를 강점하고 있던 영국과 티베트 사이에서 체결되었다. 당시 중국은 이 협정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티베트는 독립지역이었기 때문에 중국 대표에 대한 요구가 없었다. 이 심라 협정으로 당시 국경선을 제안한 영국의 외무장관인 헨리 맥마혼(Henry McMahon)의 이름을 따서 맥마혼 라인(McMahon Line)이 만들어진다. 맥마혼 라인은 오늘날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동 히말라야(East Himalaya) 지역과 인도 지역 사이에 놓인 높은 고도의 산악 장소로 890Km의 길이에 달한다. 따라서 심라 협정에 따르면 맥마혼 라인은 인도와 중국 사이의 명확한 국경선이라고 할 수 있다. 체결 당시 영국 통치자들은 아루나짤 프라데시(Arunachal Pradesh)의 타왕(Tawang)지역과 티베트 남부를 인도의 일부로 간주했으며 티베트 또한 이에 동의하면서 아루나짤 쁘라데시의 타왕 지역은 인도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심라 협정으로 체결된 맥마혼 라인에 대해 중국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맥마혼 라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었다. 맥마혼 라인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티베트는 항상 중국 영도의 일부였기 때문에 티베트 대표는 중국의 동의 없이 어떠한 동의도 받아들일 권한이 없으며, 당시 심라 협정 체결 과정에서 중국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라 조약은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인도는 1914년 맥마혼 라인이 체결되었을 당시, 티베트는 약하지만 독립적인 국가였으므로 모든 국가와 국격 협정을 협상할 권리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인도는 맥마혼 라인이 그려졌을 당시 티베트는 중국에 지배되지 않았던 독립적인 국가였기 때문에 맥마혼 라인은 인도와 중국 사이의 명확하고 합법적인 국경선으로 보고 있다. 

즉, 인도와 중국은 심라 협정에 상이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맥마혼 라인이 있는 지역에서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이 역사적으로 지속되었다. 현재 인도는 맥마혼 라인을 인정하고 인도와 중국 사이의 ‘실제 통제 선(LAC)’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중국은 맥마혼 라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분쟁 지역의 면적을 2,000Km로 주장하고 있으며, 인도는 4,000Km로 주장하고 있다.

맥마혼 라인과 LAC, 인도와 중국의 역사적 갈등 지역
사실 인도와 중국의 맥마혼 라인이 위치한 국경 지역의 분쟁의 역사는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다. 1940년대 후반은 인도와 중국은 모두 새로운 국가로 출발하는 시기로, 이 시기 양국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다. 인도는 1947년 영국강점기로부터 독립하였고, 중국은 1949년 마오쩌둥(Mao Zedong)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창설이 이루어진다. 신생국으로서의 인도와 중국 두 나라는 1950년대 초반까지 양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1956년 중국이 티베트와 신장(Xinjiang)을 연결하기 위해 악사이친(Aksai Chin)을 통과하는 도로를 건설하게 되면서 양국의 관계는 갈등을 맞이한다. 악사이친은 카슈미르(Kashmir)와 라다크(Ladakh) 동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인도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1959년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피신하게 되면서 인도와 중국의 갈등 관계를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의 충돌이 발생하면서 인도와 중국은 1962년 라다크 지역 등에서 전쟁을 치르게 된다. 한달 가량 이어진 이 전쟁에서 인도는 3,0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4,000명이 포로로 잡혔던 반면, 중국은 사상자가 거의 없었으며, 중국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 전쟁으로 중국은 악사이친을 지금까지 실효 지배하고 있다. 양국은 1967년에도 네팔과 부탄 사이의 인도 시킴(Sikkim) 주에서 충돌했으며, 이로 인해 80명의 인도군이 사망했고, 수백명의 중국 사상자가 나왔었다. 1975년에는 인도군 4명이 동북부 아루나짤 프라데시에서 중국군의 매복 공격으로 사망한 바 있다. 

맥마혼 라인이 있는 인도와 중국의 접경 지역에 대해 양국은 지금까지도 국경선을 정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LAC(Line of Actual Control, 실질통제선)를 설정해 두고 있다. 이번 6월에 충돌이 발생한 갈완 계곡 지역도 악사이친 서쪽과 라다크 동쪽의 LAC 인근에 위치해 있다. 1975년 이후에도, 인도와 중국의 국경 지역에서 여러 차례의 충돌이 발생이 있었으나, 그간 유혈 충돌은 없었다. 양국은 확전을 방지하기 위해 국경 지역에서의 총기 소지를 금지해 왔으나, 이번 충돌은 워낙 격렬하게 이루어져 맨손과 돌 만으로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갈완 계곡에서의 인도-중국 무력 충돌과 인도인들의 중국 기업 불매 운동
2020년 6월 15일의 인도와 중국 충돌은 인도가 LAC를 따라 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인도가 접경 지역에서 도로 기반 시설 건설을 시작하자, 중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지난 4월 말에 LAC 근처에 병력과 포병대 등을 배치하면서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인도는 중국에 LAC 지역에서 물러날 것을 경고했지만 중국은 응하지 않았고, 이에 양국간 크고 작은 몸싸움과 투석전 (投石戰) 이 수 주간 이어지고 있었다. 

6월 15일의 충돌로 인도 내에서는 중국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충돌 이후, 우익 힌두 민족주의 정당인 라쉬뜨리아 스와얌세와끄 상흐(Rashtriya Swayamsevak Sangh)의 지부인 스와데시 자그란 만쯔(Swadeshi Jagran Manch) 단체는 인도인들에게 중국 제품 구매를 중단하는 요청을 했고, 6월 28일에는 뉴델리(New Delhi) 근처 집회에서 중국에서 수입된 휴대폰과 컴퓨터를 불태우기도 하였다. 또한, 30일에는 인도 정부는 중국에 대한 강한 보복 조치로, 인도 어플리케이션(이하 앱) 스토어(application store)에서 중국 앱 50개 이상을 금지 시켰다. 바이트 댄스의 틱톡(TickTok), 위챗(WeChat), 알리바바의 UC 브라우저, 인도에서만 1억 3,000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있는 검색 엔진 바이두 등 중국 기술 기업에서 제작한 앱들이 이에 포함된다. 6월 초에는 아마존, 월마트와 같은 온라인 소매 업체들이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원산지를 표시하는 인도 정부의 요구에 동의하였는데, 이러한 변화로 중국 제품을 더 쉽게 선별할 수 있게 되어 인도 내에서 중국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가능한 소비 환경도 제공되고 있다. 

인도 스마트폰 시장의 중국 제품의 점유율은 상당하다. 2020년 1분기 인도 스마트폰 시장의 중국 제품의 점유율은 샤오미(30%), 비보(17%), 삼성전자(16%), 리얼미(14%), 오포(12%)의 순인데, 이 중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이 모두 중국 기업으로 5개 기업 중 4개 중국 기업의 인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70% 이상에 달하고 있다. 인도의 중국 제품 불매 운동으로 샤오미는 “인도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스마트폰이 현지 생산으로 이루어져 중국 상품에 대한 잠재적 관세에 대한 영향을 업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인도의 1만 개의 매장에 ‘Made in India’ 배너를 놓기 시작했다. 중국 제품의 불매 운동의 반사 이익으로 LG전자의 인도 내 스마트폰 판매량이 최근 두 달 간 10배 가량 증가하기도 하였다.

인도 내 중국 제품 불매 운동, 인도의 반중국 정서의  표현
중국 제품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확산되면서 인도 정부는 중국 제품 수입에 대한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중국을 겨냥한 인도의 무역 장벽으로 인도 세관이 중국산 수입품에 전수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더불어 인도 정부와 중국 기업과의 계약 파기가 진행되는 등 인도 내 중국 제품 불매 운동이 격렬하게 이루어지는 분위기이다. 인도 내 중국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 된 배경에는 인도와 중국의 국경선 지역을 둘러싼 역사적 갈등과 더불어 오늘날 인도 시장에서 높아지는 중국의 비중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3년 중국은 아랍에미레이트를 제치고 인도의 최대 교역국이 된 이후, 현재까지도 가장 큰 규모의 교역이 이루어지는 국가이다. 이러한 인도와 중국의 교역에서 인도는 무역 적자를 보이고 있는데,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중국과의 무역에서 인도는 520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하였다. 인도의 대중국 무역에서의 적자의 가장 큰 구성 요인으로서 매년 인도가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200만 달러 상당의 전기 기계 및 장비가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스마트폰, 자동차, 제약, 통신 장비와 같은 여러 주요 분야에서 중국에 의존도가 높다. 예를 들어 인도는 세계 최대의 제네릭 의약품 생산업체이며 세계 제네릭 의약품의 약 20%를 공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네릭 의약품의 활성 의약품 성분의 70%가 중국에서 생산이 되고 있다. 

또한, 중국 기업들은 2013년부터 인도의 기술 스타트업에 8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인도 기술 기업의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알리바바는 인도 최대 온라인 식료품점 중 하나인 빅바스켓(BigBasket)의 지분 30%를 소유하고 있다. 중국 전자 상거래 거인은 인도 최고 모바일 결제 회사인 페이티엠(Paytm)에 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텐센트는 2014년부터 식품 배달 앱 스와기와 라이드 하이머 올라를 포함하여 15개 인도 기술 기업에 20억 달러를 투자하였다.

즉, 갈완 계곡에서의 인도군과 중국군의 충돌로 촉발된 인도 내 중국 제품의 불매 운동은 현재 인도 정권의 민족주의 분위기와 더불어 인도 경제에서 중국의 입지가 커지면서 수년간 적체된 인도인들의 반중국 정서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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