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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코로나19 위기와 유럽통합: 중동부유럽을 중심으로

중동부유럽 기타 조홍식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0/08/24

유럽이사회의 역사적 합의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2020년 7월 17일부터 21일까지 사흘 밤을 새면서 마라톤협상을 벌인 결과 역사적인 유럽 재정 합의를 도출해냈다. 2020년 상반기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코로나19라는 질병은 세계를 강타했고 유럽은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에 이어 가장 일찍 심각한 타격을 입은 지역이었다. 전염병의 초기 확산을 막는데 실패한 유럽은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전 국민의 자가 격리 및 봉쇄(confinement)라는 극약처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경제 활동이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보건의 위기가 경제의 위기로 전이되는 현상을 목격했다.

EU의 역사에서 이번만큼 오랜 시간 지속된 정상회담은 드물다. 2000년 니스 정상회담이 비슷한 기록을 갖고 있는데 당시는 유럽의 헌정(憲政)구조를 결정하는 또 다른 역사적 만남이었다. 지난한 유럽이사회의 협상은 유럽통합의 역사에 남을 만한 획기적인 합의를 도출해 냈다.1) 유럽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회복대책(Economic Recovery Package)을 추진키로 결정하고 향후 7,500억 유로의 기금을 동원하기로 합의했다. 이 액수는 EU 국내총생산(GDP)의 4.7%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2020년 2월 이사회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했던 EU의 다년간 일반예산계획도 처리되었다. 향후 7년간 유럽의 1.1조 유로 규모의 정기 예산도 함께 통과시킨 것이다.

물론 언론과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정기 예산보다는 코로나 대책으로 마련된 특별 예산이었다. 경제회복대책은 규모도 크지만 지출 방법도 혁신적이다. 기금의 사용은 두 가지 방법인데, 하나는 회원국에 대한 융자(loan)이고, 다른 하나는 무상 지원(grant)이다. 회원국이 나중에 갚아야 하는 3,600억 유로의 융자는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3,900억 유로의 지원금은 EU가 책임을 지는 부분이다. 특히 유럽 정상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EU 차원의 공동 채권을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6년 동안 발행될 경제회복 대책의 유럽 채권은 2058년까지 갚도록 구상되었다.
유럽 통합의 역사에서 이 마지막 부분을 특히 획기적인 변화라고 부를 수 있다.2) 독일을 위시한 북유럽 부국들은 EU 차원의 채권 발행에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다. 남유럽 국가들이 무책임하게 지출을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제도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기 마련이고, 결국 북유럽 국가들이 부당하게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는 계산 때문이다. 이번 합의가 가능했던 제일 중요한 요인은 독일이라는 유럽 경제의 중심 국가가 기존의 반대 입장을 버리고 ‘채권의 EU화’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독일로 하여금 수십 년의 입장을 바꾸도록 하였을까.

위기가 통합을 가져오다
독일의 정책 변화는 2010년대 유로 위기 때 독일이 보였던 입장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를 비롯한 일명 PIIGS 국가들, 즉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 등이 국가 재정 위기를 맞았을 때 독일은 이들에 대한 예산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물론, 이 지원을 EU 차원의 채권으로 마련하자는 ‘유로본드(Eurobond)안’에 원칙적인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3) 이번 2020년 7월 합의에서 유럽 공동의 채권 발행이 가장 눈에 띄는 유럽통합의 진보라고 평가되는 이유다.

독일 정책 변화의 제일 커다란 원인은 위기의 심각성이다. 유로 위기 당시 문제의 핵심은 일부 남유럽 국가의 재정 적자였고 이는 유럽중앙은행의 유로 방어의 의지와 유동성 공급이라는 통화정책의 수단으로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위기는 남유럽만이 아닌 유럽경제 전체에 해당하는 사안이었고, 실물 경제 자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어 대규모 재정 지원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대응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특히 독일의 입장에서 2016~2020년의 기간에 지속된 브렉시트 논쟁은 유럽 통합의 취약성을 드러내 준 사건이었다. 코로나가 초래한 초유의 경제위기를 방치하다가는 EU라는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정책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번 합의에 동력을 제공한 것은 불·독 리더십이다.4) 프랑스의 제안에 독일이 동참함으로써 전통적인 유럽 통합의 기관차가 작동한 셈이다. 프랑스는 유로 위기 당시에도 남유럽 국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번 코로나 위기는 유럽 전체를 강타했지만 예전에 유로 위기를 경험했던 남유럽이 특히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관광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는 코로나 확산이 제일 먼저, 가장 광범위하게 진행된 나라들이고 따라서 경제적 타격도 심각한 상황이다. 정치적으로도 반(反) EU 극우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유럽 통합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지역이다. 독일이 전통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북유럽 국가들과 연합하면 EU는 남부 유럽과 북부 유럽의 대립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유럽경제를 위기에서 구하자는 프랑스와 독일의 혁신적 제안은 중동부유럽의 입장에서도 반길만한 제안이었다. 일반적으로 EU 차원에서 예산의 분배는 부국에서 빈국으로, 북유럽에서 남유럽이나 중동부유럽으로 향한다. 21세기가 되어 제일 늦게 통합에 동참한 중동부유럽은 EU에서 가장 경제 발전 수준이 낮은 지역이기 때문에 예산의 증가와 재정 정책의 확대는 지원과 혜택의 기회로 곧바로 연결된다.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부터 비셰그라드 그룹의 4개국(V4, Visegrad Group,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그리고 발칸반도의 4개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은 경제상황은 다르지만 모두 유럽 재정 통합에서 득을 누릴 수 있는 회원국들이다. 다만 냉전기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난 중동부유럽 국가들은 재정 혜택은 누리되 독립성은 굳건히 지키겠다는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 합의도출의 정치
EU의 결정구조에서 이번 합의와 같은 중대한 결정은 만장일치제를 따른다. 27개 회원국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합의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합의의 기본 골격을 프랑스와 독일 양국이 준비하여 추진했다는 점은 일단 성공의 기본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남유럽과 중동부유럽은 경제회복대책의 집중 수혜지역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찬성 세력을 형성한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와 심각한 경제위기를 감안할 때 EU차원의 공동대책은 강력한 당위성과 명분을 지니기 때문에 이를 노골적으로 반대하기는 어렵다. 합의 도출 과정에서 반대 진영을 형성한 나라들이 대책 그 자체보다는 방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게 된 이유다.

표면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반대 또는 이의 제기세력은 ‘짠돌이 4총사(Frugal Four)’라고 불렸던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등이다. 여기에 핀란드까지 동참하여 유럽의 재정 통합에 반대하는 진영을 형성했다.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는 이 진영의 대변인 역할을 담당했다. 네덜란드는 유럽통합에 처음부터 동참한 6개국 가운데 하나로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회원국에 융자가 아닌 지원금을 제공할 경우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유럽 전체가 채무에 대한 책임을 나눠가지면 회원국의 도덕적 해이가 심화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전통적으로 유럽 합의 도출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반대세력을 고립시키는 일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입장에서 남유럽과 중동부유럽의 확고한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이다.

경제회복대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또 다른 문제는 폴란드와 헝가리로 대표되는 일명 ‘비자유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국가들의 쟁점이다. 2010년부터 헝가리를 통치한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2015년부터 폴란드를 지배한 법과정의당(PiS) 정부는 소수집단, 언론이나 사법부 통제 등 일련의 자유주의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책으로 유럽의 주목을 받아왔다.5)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경제회복 대책을 논의하면서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조건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부상했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책을 중단해야지만 재정 지원을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는 지원에 조건을 달 경우 대책 전체에 대해 거부권(Veto)을 행사하겠다고 협박하고 나섰다. 결국 최종 합의안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하되 모호하게 둠으로써 향후 다툼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이번 합의 도출을 가능하게 한 어쩌면 제일 중요한 요소는 브렉시트(Brexit)일지도 모른다. 지난 2월 영국이 공식적으로 유럽연합에서 탈퇴함으로써 영국은 이번 협상 자리에 앉지 못했다. 유럽통합사에 익숙하다면 영국이 이번 합의와 같은 대규모 통합의 진전에 적극 반대했으리라는 예상을 쉽게 할 수 있다. 영국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의 빅4를 형성했던 만큼, 영국의 반대는 합의 도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의 규모는 작아졌지만 결집력은 오히려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전망: 깔때기의 정치
이번 유럽이사회 마라톤 회의를 주도한 샤를 미셸 의장은 이번 경제회복대책을 두고 깔때기(entonnoir)의 기능을 할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6) 27개국의 다양한 국익을 반영하여 만들어 놓은 이번 대책은 완벽한 기계라고 볼 수는 없지만 앞으로 EU의 회원국들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틀을 만들어 놓았다는 의미다. 커다란 목표를 설정하고 주요 방법에 대한 합의만 이뤄지면 나머지 세부적인 사항이나 조정은 천천히 집행하는 과정에서 다듬어 간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이익을 가진 많은 나라들을 함께 이끌어가는 유럽만의 전통이고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깔때기의 정치’를 제일 잘 보여주는 부분이 공동으로 채권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합의를 도출해 냈지만 이를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 충당할지의 방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EU가 채권을 발행하면 회원국 경제회복을 지원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지만 이를 아주 장기적으로는 갚아나가야 한다.  EU 예산의 규모가 점진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지금처럼 각 회원국의 재정 기여를 늘릴지, 아니면 EU만의 독자적이고 직접적인 세수를 확보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예상하고 결정하기가 어려운 만큼 상당 부분을 미래의 협상에 맡기는 방식이다.
중동부유럽, 특히 비셰그라드 그룹인 헝가리와 폴란드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조건부 재정지원에 관한 부분을 애매하게 작성한 것도 비슷한 논리다. 협상을 시작할 무렵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법치국가가 없으면 한 푼의 유로도 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지만, 막상 최종 합의안은 법치국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다른 조항에 가서 조건부 체제(conditionality regime)를 명시한다.7)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일련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다소 추상적인 표현만이 등장한다. 다만 이런 조치는 만장일치가 아니라 다수결로 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결국 법치국가와 재정지원의 상호 관계는 미래의 협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조정될 예정이다. 
이번 유럽 경제회복대책은 장기 역사의 관점에서 1994년 EU의 출범이나 1999년 유로의 탄생에 버금가는 중요한 통합의 도약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코로나로 인한 경제충격을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진화’라고 표현한 미셸 의장의 표현처럼 코로나가 질병사의 기억으로 사라진 뒤에도 재정 통합의 첫걸음은 제도로 남을 수 있다.


* 각주
1) The Economist, “Europe’s €750bn rescue package sets a welcome precedent”, July 21 2020.
2) 유로 위기 당시 유로본드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참고할 것: Stijn Claessens, Ashoka Mody, and Shahin Vallée, Paths to Eurobonds, Washington D.C.: IMF Working Paper, 2012.
3) 유럽차원의 예산연합 형성 시도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Nazaré da Costa Cabral, “Which Budgetary Union for the E(M)U?”, Journal of Common Market Studies, 2016, 54(6), pp.1280-1295.
4) The Economist, “The EU leaders have agreed on a €750bn covid-19 recovery package”, July 21st 2020.
5) 유럽이사회를 앞두고 폴란드 대선에서 법과정의당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다: The Economist, “A nasty election in Poland”, July 18th 2020.
6) Le Monde, “Charles Michel: “Ce qui est sur la table, c’est une évolution copernicienne de l’UE”, le 25 juillet 2020.
7) Le Monde, “Plan de relance européen : la Hongrie et la Pologne crient victoire”, le 21 juille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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