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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아르메니아: 2018년 혁명 이후 새로운 정치 구도

아르메니아 Rovshan Ibrahimov 힌국외국어대학교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 교수 2020/08/25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남코카서스 지역에 위치한 아르메니아는 1991년에 소련에서 독립했다. 다른 구소련 국가와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 정부는 소련에서 이어진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당시 이러한 정부 형태가 수직적 권력 구조 강화와 국내 안정성 및 안보 보장에 더욱 용이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그 후 아르메니아는 국민투표를 통한 몇 번의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변경했다(2015년 12월 6일). 

세르즈 사르키샨(Serzh Sargsyan) 아르메니아 제3대 대통령에게 있어 이는 집권 연장의 기회였다. 기존 아르메니아 헌법 하에서는 재선이 동일 5년 임기로 단 한 번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2008년에 첫 취임한 후 재선에 성공했던 세르즈 사르키샨 대통령의 임기는 2018년으로 종료되었다. 그러나 이제 의원내각제를 따르는 아르메니아에서 ‘1인자’는 총리가 되었고, 세르즈 사르키샨은 소속당(공화당, Republican Party)이 의회 과반을 차지할 시 아르메니아를 계속해서 통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세르즈 사르키샨은 대통령 임기 종료 후 의회 과반의 결정에 따라 총리로 선출될 수 있다. 

기존 지도층의 연장
2017년 4월 2일, 아르메니아 총선이 실시되었다. 세르즈 사르키샨이 이끄는 공화당은 105석 중 58석을 확보하며 계획대로 세력을 유지했다. 세르즈 사르키샨의 대통령 임기 종료까지 총리직은 사르키샨 대통령의 측근인 카렌 카라페트얀(Karen Karapetyan)이 맡았다. 카렌 카라페트얀 또한 세르즈 사르키샨과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 최고위층을 형성하는 카라바흐 출신 세력(Karabakh clan)의 대표 주자다. (카라바흐는 법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일부이나 거주민 대부분은 아르메니아인인 지역이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의 갈등은 양국이 소련 구성국이던 1988년부터 시작되었고, 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인은 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 합병을 요구했다. 양국이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갈등은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이 전쟁은 1994년의 휴전협정에 따라 오늘날까지 정전상태이다. 당시 아르메니아 군 부대는 카라바흐 지역뿐 아니라 근처 7개 지구(district) 또한 점령했었다. 카라바흐는 국제사회에서 법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인정받고 있으나 사실상 아르메니아의 통치 하에 있는 지역이다. 이 갈등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2018년 4월 9일, 새롭게 대통령으로 선출된 아르멘 사르키샨(Armen Sargsyan)의 대통령령에 따라 카라페트얀 총리가 해임되었다. 세르즈 사르키샨의 대통령 임기가 종료된 이후인 2018년 4월 14일, 공화당과 혁명연합(Dashnaktsutyun)당은 총리직에 세르즈 사르키샨을 지명했다. 세르즈 사르키샨은 2018년 4월 17일자로 총리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사르키샨이 총리로 임명되기 전인 2018년 3월 31일, 아르메니아 사회에서 이에 대한 불만이 번져 나가며 세르즈 사르키샨의 총리 임명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규므리(Gyumri)시에서 수도인 예레반(Yerevan)까지 행진하는 ‘나의 걸음(My Step)’ 운동이 전개되었다.

기존 지도층에의 도전
2018년 4월 13일에는 ‘내딛는 한 걸음으로 세르즈를 거부한다(Take a step, reject Serge)’는 슬로건 하에 진행된 예레반에서의 시위가 대규모로 확산되었다. 야권 저널리스트인 니콜 파시냔(Nicole Pashinyan) 의원의 주도 하에 벨벳 혁명이 일어났고, 이에 2018년 4월 23일에 세르즈 사르키샨이 사임하며 니콜 파시냔이 아르메니아의 총리가 되었다. 

이후 아르메니아는 2018년 12월 9일에 조기총선을 실시했고, 그 결과 파시냔의 ‘나의 걸음(My Step)’ 선거연대가 총 132석 가운데 88석을 확보했다. 공화당은 최소 기준인 득표율 5%를 확보하지 못해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니콜 파시냔의 총리 취임 직후 새 정권에서는 2008년 3월의 사건을 물어 이전 정권 지도층을 기소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카라바흐 출신 세력인 로베르트 코차리안(Robert Kocharian) 전 대통령이 당시 세르즈 사르키샨의 대선 승리 이후 발생한 야권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해산시켰고, 그 결과 10명이 사망(경찰관 두 명 포함)했다. 니콜 파시냔 또한 당시 시위에 참여하여 투옥된 바 있다.

‘3월 1일의 사건(the case of March 1)’에 대한 사법조사 결과에 따라 로베르트 코차리안 전 대통령, 유리 카차투로프(Yuri Khachaturov) 전 합참의장, 아르멘 게르보얀(Armen Gevorgyan) 전 대통령실장 겸 전 부총리가 헌법질서를 전복한 혐의로 수감되었다. 더불어 현재 진행되는 대규모 반부패 캠페인 하에서 공화당 의원인 맨벨 그레고리안(Manvel Grigoryan) 장군이 군용 무기 및 식량에 대한 횡령 혐의로 체포되었다. 세르즈 사르키샨의 친척을 대상으로 하는 형사소추 또한 시작되었다. 세르즈 사르키샨 전 대통령의 두 형제 및 그 자녀에 대한 자택 수색이 진행되었다. 더불어 세르즈 사르키샨 전 대통령의 조카인 하이크 사르키샨(Hayk Sargsyan)은 2007년에 살인 미수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기존 지도층에 대한 기소가 진행되고 있지만, 전 정권에서 임명된 판사들의 방해로 인해 니콜 파시냔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로베르트 코차리안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도 마찬가지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2018년 8월 13일, 전 국가원수의 불가침권에 관한 헌법 규범을 근거로 한 항소법원(Court of Appeal)의 결정에 따라 로베르트 코차리안이 석방되었다. 그러나 로베르트 코차리안은 그 후 곧 다시 체포되었고, 재산은 압류되었다. 2019년 5월 18일, 법원은 카라바흐 분리주의파 전⸱현 대표 지도자인 아카디 구카시안(Arkady Ghoukasyan)과 바코 사하키안(Bako Sahakyan)의 보증하에 로베르트 코차리안을 두 번째로 석방했다.

이러한 법원의 결정에 대응하여 2018년 5월 20일, 니콜 파시냔은 자신을 가장 잘 대표하는 작전을 다시 한 번 사용했다. 즉, 지지자를 결집하여 법원을 봉쇄하도록 했다. 지지자들은 이를 행동에 옮겼고, 이후 파시냔은 ‘혁명의 두 번째 단계(second stage of the revolution)’를 천명했다. 2019년 6월 25일, 로베르트 코차리안은 항소법원의 결정에 따라 세 번째로 체포되었다. 이후 2019년 7월, 로베르트 코차리안은 건강상의 이유로 의료 센터로 옮겨져 그곳에서 수술을 받았다.

기존 지도층 와해의 걸림돌
2019년 9월, 아르메니아 헌법재판소(CCA, Constitutional Court of Armenia)가 로베르트 코차리안에 대한 기소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같은 결정으로 인해 니콜 파시냔과 허라이어 토브마스한(Hrayr Tovmasyan) 헌법재판소장의 관계가 매우 악화되었다. 허라이어 토브마스한을 대상으로 권력 강탈 및 권력 남용 혐의에 따른 두 건의 형사사건 조사가 개시되었다. 헌법재판소 및 기타 재판소의 재판관 몇몇은 사임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2020년 6월, 중재법원(Arbitration Court)의 결정에 따라 로베르트 코차리안은 400만 달러의 보증금을 내고 다시 한 번 보석 석방되었다. 석방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종식 시점까지로, 로베르트 코차리안은 의료 시설에 머무르게 된다. 헌법재판소를 둘러싼 논쟁 해결을 위해 2020년 4월 5일에 헌법재판소 소장 및 그 구성원의 권한을 거두는 안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가 선언되었다. 그러나 해당 국민투표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아르메니아 비상사태 발발로 인해 연기되었다.

이에 의회에서는 국민투표 대신 법안 개정을 결정했고, 2020년 6월 26일에 해당 개정안이 발효되었다. ‘나의 걸음’ 소속 의원들이 헌법 제 213조 개정안을 채택했다. 이에 헌법재판소 판사직을 12년 넘게 유지하는 재판관들의 권한을 중단시킬 수 있게 되었다. 헌법재판소장의 권한 또한 마찬가지다. 의회가 6월 22일에 채택하고 대통령의 서명 없이 발효된 이번 개정안은 허라이어 토브마스한 헌법재판소장의 권한을 중단시킬 것이다(헌법재판소의 일반 재판관이 된다). 또한 동 개정안에 따라 재판관직을 12년 이상 수행해 온 (전 정권 출신의) 재판관 세 명이 사임하게 된다. 아르메니아 의회의 이 같은 결정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 총 9인 가운데 7인은 의회의 결정을 거부하고 재판관으로서의 직무 수행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보였다.

제2 야당인 ‘아르메니아 번영당(Prosperous Armenia)’ 또한 헌법 개정 관련 표결을 보이콧했다. 이후 번영당은 개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헌법재판소에 심사를 요청했다.

2020년 6월에는 아르메니아의 다른 정치 세력 또한 고초를 겪게 되었다. 아르메니아 번영당(의석 26석) 당수이자 신흥 재벌(oligarch)인 가직 트사루키얀(Gagik Tsarukyan)이 그 예이다. 가직 트사루키얀은 사행산업 내 불법적 기업활동을 통해 6,000만 달러를 착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니콜 파시냔의 또 다른 타겟은 ‘조국당(Motherland Party)’ 당수이자 전 국가안보국(NSS, National Security Service) 국장인 아르투르 바네치안(Arthur Vanetsyan)이다. 아르투르 바네치안은 총리를 특정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야권은 서로 연합하고 있다.

전망 및 시사점 
니콜 파시냔은 집권 이후 아르메니아 내 기성 정치 세력을 계획적으로 억누르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비단 전 정권 지도자뿐만 아니라 기존의 야권에도 해당한다. 일련의 사건 전개 추이를 보면 알 수 있듯 니콜 파시냔은 물러설 뜻이 없으며 목표 달성을 위해 과감히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르메니아 현대 정치사에 있어 새로운 현상이다. 아르메니아에는 이전 정권 인사를 대상으로 한 박해 사례가 전무하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이미 먼 길을 온 니콜 파시냔에게 이제 돌아갈 곳은 없다. 니콜 파시냔은 이 싸움을 어떻게든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한편, 니콜 파시냔의 정적 또한 포기할 뜻이 없다.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저항할 것이며, 심지어는 니콜 파시냔의 실각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니콜 파시냔이 써 온 방식을 배웠다. 가두시위를 통해 집권한 니콜 파시냔은 처음으로 자신의 정권에 항거하는 대형 시위를 맞닥뜨렸다. NSS가 ‘모든 부문에서의 실패(failure in all areas)’라며 총리를 비판한 가직 트사루키얀에 대한 심문을 요구하자 수백 명의 시위자가 ‘니콜, 떠나라!(Nikol, leave!)’라는 슬로건을 들고 NSS 건물 아래 집결했다. 니콜 파시냔은 시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르메니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러 국제 행위자들도 현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아르메니아에 대해 압도적인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러시아는 로베르트 코차리안의 체포 이후 계속해서 불만을 표시해 왔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로베르트 코차리안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이에 더해 양국 관계에도 긴장이 발생했다. 니콜 파시냔이 집권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을 대폭 줄이고 서양과의 통합을 선택할 것이라 약속한 바,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하지만 니콜 파시냔은 아직까지 첫 번째 목표도, 두 번째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 가운데 러시아와의 관계만을 악화시키고 있다. 또한 니콜 파시냔은 경제 목표 관련 공약 이행에도 실패했다. 아르메니아 경제 상황에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 및 경제 부문에서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 인구 300만이 채 되지 않는 나라인 아르메니아에서 2020년 7월 13일 기준 코로나19 환자 수는 1만 6,907명이었다. 총 3만 2,251명이 확진되었고 573명이 사망했다.

더불어 7월 12일에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국경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발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아르메니아 군이 국경에서 휴전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아르메니아 군이 아제르바이잔 진지에 대한 포격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 군이 접경지역 내 아르메니아의 거점을 탈취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군사적 충돌로 인해 양측 모두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니콜 파시냔의 국내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 데이터에 따르면 니콜 파시냔의 2018년 5월 지지율은 92%였다. 지지율은 2018년 9월에는 81%, 2018년 12월에는 70%를 기록했다. MPG-아르메니아(갤럽국제조사기구 정회원)가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니콜 파시냔의 2019년 12월 지지율은 46.6%였다. 즉, 니콜 파시냔에 대한 대중의 신임도는 2년 사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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