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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특집이슈

[월간정세변화] 터키 하기야 소피아 모스크 변경 이슈 추이

중동부유럽 일반 EMERiCs - - 2020/08/31

※ 해당 내용은 글로벌 주요 종합언론지, 비즈니스매체, 관영매체 351건으로부터 지난 3달 동안(2020.06.01~08.23) '하기아 소피아' 가 언급된 기사 274건을 대상으로 데이터 필터링-토픽모델링 분석을 통해 이슈의 추이를 분석한 결과물입니다.


※ 자세한 내용이 담긴 전문은 하단의 첨부파일(PDF)을 통해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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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심층이슈 분석


터키, 하기야 소피아 박물관을 모스크로 전환 

터키 이스탄불의 ‘하기야 소피아(Hagia Sophia, 성스러운 지혜)’는 서기 360년 처음 건설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거치며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360년 정교회 성당으로 건립된 하기야 소피아는 여러 차례의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뒤 537년 동로마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us I)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이후 하기야 소피아는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점령할 때까지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정교회 성당이었다. 콘스탄티노플 점령 이후 오스만 술탄 메흐메트 2세(Mehmet II)는 하기야 소피아를 이슬람 모스크로 바꾸고 내부의 정교회 모자이크를 회반죽으로 가렸다. 오스만 제국 시기 약 500년간 수도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모스크 중 하나였던 하기야 소피아는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다시 변화를 맞이한다. 터키 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는 세속주의를 내세우며 오스만 시대의 이슬람 유산을 배제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1935년 하기야 소피아도 종교 시설의 성격을 잃고 박물관으로 변경되었다. 이처럼 정치적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변화를 겪어온 하기야 소피아는 2020년 7월 다시 한번 논쟁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에르도안 대통령, 하기야 소피아 박물관을 86년 만에 모스크로 전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을 추진해왔으며, 지난 6월 9일에는 법원 판단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7월 10일 터키 최고행정법원이 하기야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전환한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1934년 행정명령이 불법이라고 판결하자 국무회의는 1934년 행정명령을 취소했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하기야 소피아를 86년 만에 다시 모스크로 되돌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7월 12일 에르도안 대통령은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환원은 터키의 주권과 관련된 문제이며 타국은 터키의 주권 행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국제사회의 비판적 반응에 대해 자국 내 이슬람포비아(Islamphobia)와 무슬림 차별은 방치하는 국가들이 터키의 정당한 주권 행사를 비난하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이브라힘 칼린(Ibrahim Kalin) 터키 대통령 대변인은 모스크로 전환된 이후에도 관광객은 예배 시간만 아니면 자유롭게 하기야 소피아를 방문할 수 있으며, 입장료 또한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칼린 대변인은 내부의 정교회 모자이크 또한 예배 시간에만 가려지고 나머지 시간에는 방문객들에게 완전히 공개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마침내 7월 24일 하기야 소피아에서 이슬람교 금요 예배가 86년 만에 에르도안 대통령도 참여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하기야 소피아 내부에서 예배를 올릴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었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하기야 소피아 외부에 모여 예배를 올렸다. 


하기야 소피아에 이어 에르도안 대통령은 8월 21일 ‘코라 성당(Chora Church)’ 또한 모스크로 전환한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11세기 동로마 제국에 의해 건설된 정교회 성당인 코라 성당은 하기야 소피아와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뒤 모스크로 전환되었으나, 1945년 터키 정부의 행정명령에 따라 박물관으로 변경되어 카리예 박물관(Kariye Museum)이라고 불렸다. 정확한 예배 재개 시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카리예 박물관을 종교청으로 이관하여 곧 예배를 거행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보수적 무슬림과 민족주의 진영 지지 동원 전략

터키 국내 보수적 무슬림과 민족주의 진영은 오랫동안 하기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되돌리고자 했다.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터키 공화국의 공식 이념으로 수립한 세속주의 원칙에 반감을 품어온 보수적 무슬림들은 하기야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만든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정책이 터키의 고유한 이슬람 정체성을 억압하는 행위라고 비판해왔으며 꾸준히 모스크로의 전환을 요구해 왔다. 7월 24일 예배를 주관한 알리 에르바스(Ali Erbas) 터키 종교청장이 설교에서 한 “오랫동안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던 오랜 꿈이 드디어 실현되었다”라는 발언은 하기야 소피아가 보수파 무슬림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잘 보여준다.  2003년 처음 총리로 선출되어 정권을 잡은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공시설에서의 히잡 착용 금지 폐지, 이슬람 종교교육 강화, 모스크 건설 확대, 주류 판매 제한 강화 등 보수적 무슬림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쳐왔으며, 터키 세속주의의 상징 중 하나였던 하기야 소피아 ‘박물관’을 모스크로 되돌리는 결정 역시 세속주의 이념에 소외감과 이질감을 품어온 보수적 무슬림의 지지를 끌어 모으기 위한 정책적 판단의 결과로 분석된다. 이러한 점에서 86년 만의 예배가 현대 터키 공화국을 수립한 로잔 조약(Treaty of Lausanne)이 체결된 7월 24일에 거행되었다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을 터키 주권과 관련된 문제로 언급하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술탄 메흐메트 2세의 역사적 선례와 상징을 적극 이용하며 그의 또다른 지지기반인 강경 민족주의 진영의 지지를 동원하고자 했다. 하기야 소피아에서 예배를 마치고 강경 민족주의 정당인 민족주의 행동당(MHP) 대표 데블레트 바흐첼리(Devlet Bahçeli)와 함께 술탄 메흐메트 2세의 묘를 방문한 에르도안의 행보는 스스로를 터키 무슬림과 민족주의 진영의 영웅인 메흐메트 2세의 업적을 계승한 후계자로 그려내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오스만 시대의 검을 들고 설교단에 오른 행위가 ‘정복의 상징’이었다고 밝힌 에르바스 종교청장의 발언 또한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을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점령과 연관 짓고자 하는 에르도안 정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역사적 상징을 이용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스로를 외세의 위협에서 터키의 주권과 이익을 지켜내는 강력한 지도자로 그려냈고, 이러한 시도는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에 대해 “우리의 오랜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환영한 바흐첼리 MHP 대표의 발언에서 나타나듯이 민족주의 진영의 지지를 얻는 데에 성공했다. 


반면 터키의 세속주의 정치인들과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Orhan Pamuk)과 같은 지식인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의 세속주의 원칙을 위협하고 있으며 경제난과 같은 현안으로부터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해 하기야 소피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했다.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이념 계승을 표방하는 세속주의 정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Kemal Kilicdaroglu) 대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경제 문제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7월 수행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3%가 모스크 전환을 경제 문제에서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이 보여주듯이, 터키 세속주의는 에르도안 집권 이후 이슬람주의 세력 성장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서방과 정교회권은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에 비판 및 유감 표명

하기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하는 터키의 결정은 가톨릭 교회, 유네스코(UNESCO)와 서방 국가, 그리스, 러시아 등의 정교회 국가에서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7월 13일 프란시스코 교황은 하기야 소피아 전환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으며, 전세계 350개 교회를 대표하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또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에르도안 대통령에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청했다. 유네스코는 7월 10일 성명서를 내고 터키가 세계문화유산의 용도를 바꿀 때에는 먼저 유네스코와 협의를 거칠 것을 규정한 국제 협약을 위반했으며 터키의 일방적 결정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하기야 소피아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 오테이거스(Morgan Ortagus)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터키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으며, 장이브 르드리앙(Jean-Yves Le Drian) 프랑스 외무부 장관 또한 세속적이고 현대적인 터키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행위가 위험에 처했다고 비판하며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을 반대했다. 


하기야 소피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교회권과 서방 국가와 대립하는 러시아도 터키의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7월 12일 알렉산데르 그루스코(Alexander Grushko) 러시아 외무차관은 하기야 소피아가 터키 영토에 있지만 인류 모두의 유산임을 강조하며 유감의 뜻을 드러냈다. 심지어 비탈리 밀로노프(Vitaly Milonov) 러시아 국회의원은 7월 17일 러시아의 우방국인 시리아가 터키와 달리 평화적이고 긍정적인 종교간 대화를 위한 잠재력을 갖춘 국가라며 시리아에서 추진되는 제2의 하기야 소피아 건설 프로젝트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정교회의 대외협력업무 담당인 힐라이온 알페예브(Hilarion Alfeyev) 주교는 하기야 소피아는 전세계 정교회 신도들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곳이라고 강조하며 터키의 결정이 정교회 신도들에게 큰 아픔이라고 밝혔으며, 러시아 정교회 대외연락부 고위 관계자인 니콜라이 발라쇼프(Nikolay Balashov) 사제장은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이 인류 문명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남길 것으로 우려했다. 이어 카리예 박물관의 모스크 전환 소식이 알려지자 발라쇼프 사제장은 터키가 동로마 제국의 유산과 정교회의 문화적 가치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한편 정교회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총대교구의 지도자 바르톨로메오스 1세(Bartholomew I)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는 하기야 소피아가 터키의 소유가 아닌 인류 전체의 유산임을 주지시켰다.


동로마 제국이 남긴 문화적, 종교적 유산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터키와 전통적 앙숙 관계인 그리스는 하기야 소피아 전환 결정에 가장 격한 반응을 드러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Kyriakos Mitsotakis) 그리스 총리는 터키의 결정이 양국 관계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21세기 문명에 대한 도발”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동지중해 영유권 분쟁으로 이미 양국 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된 상황에서 터키가 하기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하자 그리스의 반터키 감정이 폭발,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터키 국기를 불태우는 시위를 벌였으며 그리스 주요 기업가인 바실리스 코르키디스(Vassilis Korkidis)는 터키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하기야 소피아에 이어 터키 정부가 카리예 박물관까지 모스크로 전환하기로 결정하자 그리스 정부는 터키가 정교회 신도에 대한 또다른 도발을 감행한다고 비판하며 터키에 “21세기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무슬림 국가는 터키와의 관계에 따라 상반된 반응

한편 이란,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등 무슬림 국가는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을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Ali Akbar Velayati) 이란 최고지도자 자문관은 서구와 미국의 반발을 비판하며 “500년간 모스크였던 하기야 소피아는 심판의 날까지 모스크로 남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마흐무드 압바스(Mahmud Abbas)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또한 7월 26일 “터키 국민이 모든 이슬람권에 바람직한 길을 택했다”며 환영의 뜻을 드러냈으며, 임란 칸(Imran Khan) 파키스탄 총리는 8월 2일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을 축하했다. 터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카타르의 국영신문인 알와탄(Al-Watan)은 하기야 소피아에서 이슬람 예배가 거행된 7월 24일을 “역사적인 날”로 묘사하며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이 터키 국민 뿐만 아니라 모든 무슬림에게 기쁨과 예루살렘의 알아크사(Al-Aqsa) 모스크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고 전했다.


반면에 터키와 외교적으로 대립 관계에 있는 무슬림 국가는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내전 발발 이후 터키와 적대 관계인 시리아 아사드 정권 산하 민병대인 국가방어군(National Defense Forces)은 시리아 하마(Hama) 인근의 그리스 정교회 다수 지역에 제2의 하기야 소피아를 건설하겠다고 러시아에 제안했다. 이집트와 UAE 역시 터키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두 국가는 리비아 내전에서 트리폴리 정부를 지원하는 터키에 대립하여 군벌 칼리파 하프타르(Khalifa Haftar)를 지원하고 있다. 이집트 친정부 언론인 아흐마드 무사(Ahmad Moussa)는 터키가 이슬람의 가르침과 대외적 이미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7월 11일 이집트 최고 종교기구인 다르 알이프타(Dar al-Ifta)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하기야 소피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집트의 최고위 이슬람 성직자인 샤우키 알람(Shawky Allam) 또한 교회나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지적하며 터키를 비판했다. 누라 빈트 무함마드 알카비(Nour bint Muhammad al-Kaabi) UAE 문화부 장관은 모스크로의 전환이 하기야 소피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지닌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졌다고 규탄했다.


하기야 소피아, 이슬람권의 지도적 위치를 위한 수단 

하기야 소피아가 터키의 중동 내 영향력 확대와 지도적 위치 확보를 위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대외 정책의 수단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은 터키가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세속주의적 유산과 서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이슬람권에 보다 가까워지겠다는 노선 전환의 상징이자 오스만 제국으로 대표되는 이슬람권의 과거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임을 선언하는 행위로 분석된다. 실제로 집권 초기 유럽연합(EU) 가입을 적극 추진하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이슬람권 국가와의 관계 개선과 중동 내 문제에서 터키의 영향력 확대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 파키스탄과의 관계 개선과 리비아 내전 및 시리아 내전에 대한 적극 개입, 팔레스타인과의 연대 표명과 과거 터키의 주요 우방국이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수위 고조와 같은 움직임은 중동·이슬람권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추구하는 터키의 외교적 노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에서 오스만 제국과 관련된 각종 역사적 상징을 이용해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을 ‘제2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에 필적하는 기념비적 사건으로 투사하는 터키 정부와 친정부 터키 언론의 선전은 에르도안의 대외 정책을 터키 중심의 중동 질서를 수립하여 오스만 제국의 영광 재건을 추구하는 ‘신오스만주의(neo-Ottomanism)’로 규정하는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에 반감을 드러낸 이집트, UAE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오스만 제국의 상징을 이용한 터키의 대외적 영향력 확대 시도는 중동 내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다른 국가의 반발을 야기했다. 특히 수니파 무슬림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이슬람권의 패권을 둘러싼 터키의 도전을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친정부 사우디 언론인 아랍 뉴스(Arab News)는 터키 정부가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 결정을 내린 이후인 7월 19일부터 24일까지 오스만 제국을 ‘위대한 이슬람 제국’이 아닌 ‘아랍인을 착취하고 억압한 지배자’로 규정하고 터키가 자국 이익을 위해 이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한 탈랄 알투리피(Talal al-Torifi) 사우디 이맘 무함마드 븐사우드 이슬람대학교(Imam Muhammad bin Saud Islamic University) 교수의 칼럼을 연달아 게재했다. 이슬람과 터키 민족주의가 결합된 오스만 제국의 상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추진하는 터키의 행보는 EU와 서방의 반발과 동시에 사우디, UAE,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의 위기감을 자극해 터키의 외교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이 가져온 또다른 영향은 바로 코로나19 확산이다. 7월 하루 900명 대를 유지하던 터키의 일일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하기야 소피아 예배 이후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8월에는 약 1,000~1,400명의 확진자가 매일 발생하는 상황이며, 8월 25일에는 일일 신규 확진자가 6월 이후 처음으로 다시 1,500명을 넘기며 정점을 찍었다. 터키 보건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약 35만 명이 운집한 하기야 소피아 예배가 코로나19 확산에 기여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처럼 하기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은 터키의 국내 정치와 대외 관계, 코로나19 위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복합적인 영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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