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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이 베트남의 탈중국 전략에 주는 시사점

베트남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1/02/23

미국, 베트남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
2020년 12월 16일 미국 재무부는 ‘주요 교역상대국의 거시경제·환율정책 보고서’를 통해 베트남을 심층분석(enhanced analysis) 대상국으로 명시하였다.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전략의 동반자이자 탈(脫)중국 정책의 협력자를 자임하고 있었던 베트남은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 매우 당혹해하고 있다. 응웬 쑤언 푹(Nguyen Xuan Phuc) 베트남 총리가 2020년 12월 23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에게 대(對)미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한 후 2021년 1월 15일 미국무역대표부(USTR, Office of the 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는 베트남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를 유예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베트남이 대미 무역흑자를 축소하고 환율을 평가절상하지 않는다면, USTR은 더 이상 제재를 미루지 않을 것이다. 베트남은 대(對)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수출의 2분의 1, 해외직접투자(FDI)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신남방 정책의 핵심 국가이다. 신남방 정책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對)베트남 제재가 가시화되기 전에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무역 및 투자 다변화 정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인도태평양전략의 파트너에서 환율조작국으로
미중(美中) 무역전쟁과 코로나19 위기로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서, 미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 국가들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무역 및 투자 다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러한 탈중국 정책의 최대 수혜자로 각광을 받아왔다.

경제적 차원에서 베트남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베트남은 제조업이 발전한 광둥성 및 광시성과 인접하여 중국의 생산시설과 부품 소재를 이전하는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든다. 무려 1억 명에 달하는 베트남의 인구도 풍부한 노동력과 거대한 소비시장의 기반을 제공한다.베트남 전체 인구 중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중(70% 이상)이 높은 것도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베트남은 무역자유화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베트남은 2018년 11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2019년 6월 베트남-EU 자유무역협정(EVFTA, EU–Vietnam Free Trade Agreement), 2020년 11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을 각각 체결하였다.

전략적 차원에서도 베트남은 대(對)중 견제를 추구하는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잘 부합한다. 1979년 2월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은 21세기 들어서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충돌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태평양전략과 경제번영네트워크(EPN, Economic Prosperity Network) 구상에 베트남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2월 김정은 위원장과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노이에서 개최하였다. 이 회담은 트럼프 행정부가 베트남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2020년 10월 말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남아시아 방문을 마친 후 공식 일정에 없던 베트남을 방문하여 ‘외교관계 정상화 25주년’을 기념했을 정도였다. 또한 코로나19 전염병의 확산을 초기에 잘 억제했다는 점도 베트남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동안 양국 관계가 순항을 해왔지만, 갈등의 조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베트남의 무역흑자가 2017년 19억 달러, 2018년 68억 달러, 2019년에는 112억 달러로 급증하는 추세에 주목해왔다. 미국 재무부는 앞서 언급한 보고서를 통해 2019년부터 베트남을 관찰 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지정하였다. 또한 USTR은 2020년 6월 베트남산 타이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11월에 환율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 12월 환율조작국 지정은 이런 조치의 연장선상에 나온 것이다.

미국 재무부가 베트남을 심층 대상국으로 지정한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베트남은 환율조작 국가를 판정하는 세 가지 기준 -  ① 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 이상 ② 경상수지흑자 국민총생산(GDP) 대비 2% 초과 ③ 외환시장 달러 순매수 개입 GDP 대비 2% 이상(+6개월 이상 지속) - 을 모두 충족했다. 2019년 하반기에서 2020년 상반기 사이 베트남의 경상수지 흑자는 150억 달러로 GDP 대비 4.6%였다. 또한 베트남의 대미 무역흑자도 584억 달러까지 상승하여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7.0%를 차지하면서 미국의 네 번째 무역수지 적자국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베트남은 GDP의 5.1% 규모인 168억 달러를 외환시장에 투입하여 통화의 평가절상 속도를 늦추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미국에 대해 당혹감과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미국이 무역제재를 부과할 경우 베트남은 큰 피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대(對)미 수출이 줄어들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해외투자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전략적 차원에서도 베트남은 인도태평양전략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베트남의 입장에서 GDP를 기준으로 100배가 더 큰 미국이 무역제재를 통한 경제적 이익을 안보 협력보다 더 중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베트남을 중국의 우회수출 통로로 의심
2020년 미국 재무부의 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항은 세 가지 기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9년부터 미국은 중국 기업들이 베트남을 통한 우회수출(transshipment)을 통해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해왔다. 미국의 의혹은 무역통계에 반영되어 있다. 미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한 이후 중국산 상품의 대(對)미 수출은 줄어든 반면 베트남산 상품의 대(對)미 수출은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났다. 그중에서 대(對)중 수입과 대(對)미 수출이 동시에 증가한 상품은 우회수출의 대상일 가능성이 크다. 2019년 베트남 기업이 중국산 제품을 수입하여 미국으로 재수출한 것으로 간주되는 상품에는 컴퓨터·전기 제품 및 그 부품, 기계·장비·도구 및 기기, 절연 전선 및 케이블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우회수출을 막기 위해 베트남에 대해 원산지 규정을 강화하고 불법 행위를 엄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미국은 대한민국 기업도 중국 기업과 유사하게 베트남을 통해 우회수출을 하고 있다고 판정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도금강판이다. 미국 상무부는 작년 1월 베트남 기업이 한국산 철강을 가공하여 미국에 재수출을 하고 있다고 판정하고 베트남산 도금강판에 한국산과 동일한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판정은 미국이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해 반덤핑과 상계관세를 매긴 이후 베트남 철강 제품의 수입이 증가했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베트남에 대한 중국의 해외직접투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에 비춰보면, 중국 기업이 베트남을 무역제재 우회 통로로 사용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일반적으로 탈중국은 중국과 이념과 가치가 다른 서구 기업들의 전유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도 생산시설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빠르게 옮기고 있다. 그 결과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FDI)에서 중화권(중국, 홍콩, 대만)의 비중이 2017년 14.3%에서 2020년 1~11월 기준 23.2%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미국은 중국 기업의 베트남을 통한 우회수출을 규제하기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 기업의 탈중국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 사례는 애플(Apple)의 협력사인 리쉰정밀(立訊精密, Luxshare)과 거얼성쉐(歌爾聲學, Goertek)이다. 이 두 기업은 최신 헤드폰인 에어팟 맥스를 2020년 중순부터 베트남에서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애플의 최대 협력업체인 폭스콘(Foxconn)도 애플 제품의 30% 정도를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 중국을 대신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리쉰정밀은 애플의 생산지역 다변화 요청으로 아이폰까지 베트남에서 생산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하노이 북부에 있는 박장(Bac Giang)성(省)에 2차·3차 협력업체들을 확보하기 여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생산공장의 일부 시설이 애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이 계획은 잠정 중단된 상태에 있다. 

‘베트남 플러스 원’
미국은 베트남을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대한 보복관세를 즉각 부과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베트남이 대(對)미 무역흑자를 축소하고 베트남 동화(VND)의 평가절상을 용인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제재를 부과할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반대한 바이든 행정부도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을 추진한다고 공약했기 때문에, 전략적 고려를 경제적 이익에 우선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베트남이 중국을 봉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고 해도 미국은 베트남의 막대한 대(對)미 무역흑자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한국 기업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은 한국에서 수입한 중간재를 조립·가공하여 제작한 완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베트남의 대(對)미 수출 감소는 베트남의 생산을 위축시켜 우리나라로부터 중간재 수입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은 대한민국의 4대 교역국이자 투자대상국이다. ASEAN 10개 회원국과의 교역통계를 분석해보면, 베트남의 비중이 절반을 상회할 정도로 높다. 장기적으로 신남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베트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 즉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정책을 추진했듯이, ASEAN에서도 베트남 이외의 국가에 대한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베트남 플러스 원(Vietnam Plus One)’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베트남 플러스 원’은 전자산업에 대한 비중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대규모 투자를 통해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한 삼성전자가 베트남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다. 2019년에는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의 연간 매출액이 베트남 GDP의 4분의 1,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였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삼성전자가 생산기지를 이전하게 될 경우, 양국 관계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에서 중국 기업과 경쟁하게 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탈중국 전략은 서구 기업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건비를 줄이고 보복관세를 피하기 위해 중국 기업들도 베트남으로 진출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은 반중정서라는 불리한 조건을 지리적 근접성을 통해 상쇄시키고 있다. 베트남에 아직 중국을 대신할 수 있는 공급망이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해외기업은 물론 베트남 기업도 중국산 중간재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즉 베트남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것은 지리적 차원에서 탈중국이지만 생산 차원에서는 중국 공급망의 확대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베트남에서도 중국 기업과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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