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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미얀마 쿠데타와 국제관계의 역동성

미얀마 장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남아연구소 HK연구교수 2021/02/25

쿠데타 발생과 경과
2020년 2월 1일 새벽,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 군사령관은 쿠데타를 감행하고 정권을 탈취했다. 이날은 의회 개원일로서 정부통령 선출부터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 첫 단추를 끼우는 날이었다. 전국에서 선출된 신임 국회의원이 네피도 연방의회에 집결하므로 주요 요직 인사를 체포하고 정권을 접수하려는 군부의 계획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군사령관을 포함하여 군 수뇌부는 이미 2020년 11월 총선이 실시하기 전부터 연방선거위원회(Union Election Commission)가 중립적이지 않으며, 이로 인해 선거 부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총선 직후부터 친(親)군부정당인 연방단결발전연합(USDP)을 위시하여 야당은 선거인 명부 조작을 통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고, 관련 사례를 UEC에 제보했다. 그러나 UEC는 선거 부정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모든 의혹을 일축하며 여당에게 힘을 실었다.

군부는 1월부터 부정 선거 조사와 조치를 요구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웅산수치(Aung San Suu Kyi) 국가고문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웅산수치를 포함한 여당 인사는 차기 정부 구성에만 집중했을 뿐 군부와 얼굴을 마주하여 앉는 일을 주저했다. 결국, 2월 1일 군부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거사’를 도모했다. 군부는 두 번에 걸쳐 16명으로 구성된 국가기획통치평의회(State Administrative Council)를 조직한 뒤 1년 후 총선을 실시하고 승리한 정당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당일 밤 8시부터 냄비, 양철 등을 두드리며 시작한 국민의 저항은 소위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으로 전개되었다. 전국적으로 남녀노소, 직업을 가리지 않고 군부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리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2월 12일 연방의 날(Union Day)을 맞이하여 정부는 국민화합을 위해 약 2만 3,000여 명의 죄수를 석방했다. 급기야 군부는 2월 15일 새벽에 대도시에 장갑차를 배치하는 등 강경진압을 위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1988년 민주화운동을 반추할 때 석방된 사면자들이 사회질서의 혼란을 가중하고, 시민의 시위가 끊이지 않을 경우 군부는 국가의 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강경 진압에 돌입할 것이다. 유혈사태가 현실화할 경우 미얀마 군부를 향한 국제사회의 반응도 더욱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쿠데타에 대한 주요국의 반응: 서방 세계 vs 미얀마 주변국
미얀마 쿠데타에 대해 국제사회는 즉각적인 반응을 쏟아냈지만, 목소리는 한결같지 않았다. 서방세계 중 미국과 호주가 쿠데타에 대해 가장 빠르게 반응했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민간 관료의 감금과 군부의 정권 탈취는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라고 미얀마 군부를 비난했다.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마리스 페인(Marise Payne) 호주 외교장관은 “군부가 법치를 존중하고, 합법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불법적으로 억류된 모든 민간인 지도자들과 다른 사람들을 즉시 석방할 것을 촉구한다”고 언급했다. 영국과 유럽연합(EU)도 같은 취지로 민주주의의 회복을 강조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47개 회원국은 구금된 모든 사람을 조건 없이 즉각 석방하고, 투표로 선출된 정부의 복구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 안보리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미얀마 군부에 대한 규탄 성명을 내지 못했지만 사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군부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사태 당사자 간 평화로운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면서도 나카야마 야스히데(中山泰秀) 방위성 차관은 미얀마가 중국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며 동맹국의 전략을 제안했다. 일본은 미얀마의 최대 원조국으로서 군부의 집권이 장기화할 경우 지금까지의 미얀마 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얀마 주변국의 입장은 서방세계와 판이했다. 사실 미얀마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는 로힝야족(Rohingya) 문제에 대한 이해당사자의 시각과 동일하다. 즉 미얀마를 둘러싼 주변국은 미얀마의 민주화나 정치발전보다 국익에 우선하는 국제관계의 본질에 충실하다.

내정불간섭을 근간으로 삼는 아세안은 쿠데타 발생일 오후에 “아세안 회원국의 정치적 안정을 희망하며 정상으로 회복을 위한 대화와 조율을 요청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아세안정부간인권위원회(AICHR: Asean Intergovernmental Commission on Human Rights)는 아세안헌장을 근거로 법치, 굿 거버넌스, 민주주의의 원칙, 입헌정치, 인권 보호, 자유권에 대한 존중을 주장하며 쿠데타에 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아세안 개별 국가의 입장은 상이했다.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은 미얀마의 쿠데타를 ‘내정’으로 규정한 반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군정을 비난했다. 필리핀은 쿠데타 당일 ‘장기알 바꾸기(chess move)’라고 군부를 옹호했다가 약 일주일 뒤부터 ‘이전 상황의 회복’ 즉 아웅산수치 정부 체제의 회귀를 주장했다. 쁘라윳 찬오차(Prayuth Chanocha) 태국 총리는 2월 10일 민아웅흘라잉 군사령관으로부터 서한을 받고 미얀마 민주주의의 지원을 요청받았다고 한다. 쁘라윳 총리는 미얀마 사태를 내정으로 선을 그으면서 군부 주도의 민주화를 지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민아웅흘라잉 군사령관은 태국을 수차례 방문하며 태국 군정과 교류하며 통치체제를 학습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미얀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세안 외교장관 특별회담 개최를 제안했다. 2014년 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도 본 회담 개최를 추진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근본적으로 아세안은 내정불간섭이라는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수정 또는 청산하지 않는 이상 민주적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회원국의 행위를 저지하거나 벌을 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다.

중국과 인도의 반응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외교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군부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두둔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2월 3일 정례 브리핑에서도 중국 정부는 미얀마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인도 외교부는 미얀마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으나 군부를 직접 비난하거나 민주주의의 회복을 주문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장이 되었고, 가중화할 미얀마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얀마 쿠데타는 바이든 대통령의 첫 외교 시험대’로 간주했다. 즉 세계 민주주의의 리더 격으로서 미국의 역할을 다시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얀마 쿠데타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년 간 코로나19 사태의 진정, 양극화 해소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인권을 내세워 동맹과 지역 파트너들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려는 외교구상이 미얀마 쿠데타로 인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그림 1>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력과 중국의 일대일로
*출처: 저자 편집


데릭 미첼(Derek Mitchell) 전 미얀마 주재 미국 대사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미얀마는 ‘잃어버린 조각’ 같은 곳으로 본다. 그는 일본-호주-인도를 잇는 미국의 전통적 동맹이 중국의 남하, 즉 동남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막고 궁극적으로 일대일로를 견제하려는 전략에서 미얀마의 지정학적 가치를 폄하하지 않는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인 쿼드(Quad)의 확대를 통해 군사적으로도 중국을 견제하려고 시도한다. 나아가 한국, 인도, 호주가 주요 7개국(G7)에 편입되면 민주주의라는 공통적 가치에 따라 지역 질서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본다. ‘D-10’과 ‘쿼드 플러스’의 성공은 미얀마를 미국의 ‘조각’으로 꿰어맞출 때 가능해 보인다. 이를 위한 필요조건은 미얀마의 민주화 또는 최소한 미얀마가 중국과 유착관계를 형성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은 전통적인 수단으로서 대(對)미얀마 제재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국 재무부는 쿠데타에 직접 가담한 군사평의회 위원 16인 가운데 군인 출신 10인을 표적 제재하고, 이들의 자산을 동결하며, 군부와 연관된 기업에 대한 제재도 단행할 것이 유력하다. 2016년 로힝야족 학살이 발생하자 미국은 서부지역 사령관을 위시한 일부 장교에 대한 표적 제재를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1993년부터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고, 미얀마에서 정치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수위를 강화했다. 그러나 제재가 지속되는 동안 무용론이 제기되었고, 미얀마에 민간정부가 출범한 2016년에 제재를 전면적으로 해제했다. 그러므로 미국의 제재는 현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라기보다 미국이 존중하고 추진하는 외교적 가치를 위반한 국가에 대한 상징적인 처벌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에 반해 중국과 미얀마의 상호 의존도는 이해당사국 가운데 가장 높은 편이다. 중국은 미얀마의 내정불간섭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으나 과거 군사정부와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2011년 민간 이양 전까지 미얀마 군부정권은 노골적으로 중국과 밀착된 관계로 나아갔다. 국제사회에서 미얀마가 비난의 대상이 될 경우 중국은 미얀마를 보호 및 지지하고, 그 대가로서 미얀마 내 자원을 독점하는 행태가 전형적이었다. 

2011년 출범한 떼잉쎄인(Thein Sein) 정부는 중국과 등거리 외교로 전환하는 동시에 서방과 정상화 과정에 돌입했다. 모든 서방세계의 제재가 해제되었고, 미얀마는 정상국가의 궤도에 올랐다. 2016년 아웅산수치 정부가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외교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미얀마는 내부적으로 무장단체와의 정전협상과 로힝야족 탄압으로 인한 서방세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과 가까워졌다. 

현재 18개 무장단체 가운데 정부와 정전협정에 서명한 단체는 10개 단체이다. 나머지 8개 단체 가운데 4개 단체는 중국계 소수종족으로 구성되며 정전협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즉 정전협정을 통한 평화달성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선택한 아웅산수치 정부로서는 중국의 지원 없이 평화정착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나아가 2017년 로힝야족 학살 사건이 발생한 뒤 서방세계가 미얀마에 대한 투자를 잠정적으로 중단하자 미얀마는 다시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이미 중국은 2016년 아웅산수치 정부가 출범하자 가장 먼저 고위급 인사를 파견했고, 아웅산수치 국가고문도 최초의 방문국으로 중국을 택했다. 양국은 국경지역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고, 미얀마 내 반중정서로 인해 중단되었던 쿤밍-짜욱퓨(Kyaukphyu) 철로 또는 도로 건설 사업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미얀마는 일대일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중국과 심화된 관계를 전시했다. 결국 중국은 구체제로서 아웅산수치 정부와의 관계, 신체제로서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를 두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중국 또한 일대일로의 성공을 위해서는 미얀마와의 협력이 절실하다. 이미 중국은 미얀마 서부에서 윈난성을 가로지르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과 송유관을 통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미얀마를 앞마당으로 하여 인도양으로 진출하고자 한다. 파이프라인이 시작되는 곳을 중국이 독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점도 인도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미국 인도태평양전략의 서쪽 축을 와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망
미얀마 국민은 미국의 지원을 절실히 요청하면서도 중국 대사관 앞에서 중국이 미얀마 군부를 지원하지 말라는 시위까지 하고 있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미얀마 군부가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고 군부 통치가 장기화할 경우 미얀마는 과거 군사정부처럼 중국에 의존하는 외교전략을 채택할 수 있다. 그러나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 당시 중국이 미얀마의 정치 개혁을 요구했던 것처럼 중국에게 미얀마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미얀마도 서방의 압력을 피해 가기 위해 중국에 편중하거나 의존도가 심화하는 것을 경계해 왔던 사실을 감안하면 미얀마 군사정부의 국제관계도 사면초가에 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주목할 점은 독립 이후 미얀마 외교노선의 기조는 중립외교이며, 헌법에는 어떠한 외국군도 국내에 주둔하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만큼 미얀마는 외세의 개입을 경계하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단기적으로 미얀마 군부를 비호하면서 중국이 가져갈 이익의 양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과거처럼 장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미얀마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상황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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