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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바이든 시대의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중남미 일반 곽재성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2021/03/25

조 바이든 (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2021년 1월 20일 취임 직후 지난 4년간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정책을 되돌리기 위한 여러 행정 명령을 발동했다. 그중에서 라틴아메리카 관련 조치는, 남쪽 국경 벽(멕시코 장벽) 건설 공사를 중단한다는 것, 그리고 미국 영토에 대한 이민 단속 확대를 취소한다는 것 등이다. 아울러 반부패조치, 다자간협력, 기후위기 대응 등에 주력할 것을 시사하였는데, 중국의 라틴아메리카 진출에 대한 견제 차원으로도 이해된다. 다른 한편 트럼프가 막고 있었던 IMF를 통한 라틴아메리카 긴급지원의 숨통이 터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바이든은 1972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 대(對)라틴아메리카 외교의 일선에 있었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1970년대에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 정계의 주요 쟁점인 파나마 운하 이슈 및 남미 군사 독재의 인권 침해에 관해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뜻을 함께 하기도 했다. 또한 오바마 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콜롬비아 평화협정 체결, 미국의 쿠바 개방, 중미지역에 대한 대규모 지원 등 라틴아메리카 외교의 최일선에서 활약한 바 있다. 2015년에 중미에 대한 7억 5,000만 달러의 원조 패키지가 의회에서 통과되도록 노력한 것도 그였다. 

이러한 바이든의 귀환은 전향적인 대 라틴아메리카 정책을 – 혹은 덜 적대적인 미국의 시각을 – 기대했던 역내 국가들에게 제법 환영을 받고 있다. 멕시코의 로페스 오브라도르(López Obrador) 대통령은 바이든의 조치를 수 차례 칭송했고, 코스타리카의 알바라도(Carlos Alvarado) 대통령도 다자주의로 복귀한 미국을 환영했다. 심지어 트럼프와 코드를 맞추려 노력했던 브라질의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도 취임 축하 서신에서 아마존 열대우림 보전에 대한 공동 작업을 제안하기도 했다(Foreign Policy, 2021). 

변화의 바람은 부는가?
트럼프가 꽁꽁 얼려버린 미-라틴아메리카 관계에 해빙이 예상되지만, 4년간 각인된 트럼프의 유산을 지우는 것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이미 미국의 손을 떠나버린 측면도 있다. 예를 들면,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으로 멕시코와 과테말라 등 북중미 국가들이 이민에 대한 국내법과 제반 규정을 이미 강화했는데, 그 결과 2020년과 2021년 과테말라 경찰이 이주행렬인 캐러반(Caravan)1)에 대해 최루탄을 동원하여 강제 해산시킨 전력도 있다. 미국이 해야 할 일을 길목에 있는 과테말라가 떠맡게 된 꼴이다. 한 캐러반에 동참한 이주자의 수는 수 천명에 달한다. 온두라스의 정치·경제 및 치안 불안으로 시작된 캐러반은 코로나로 지친 일상과 실업 등으로 2020년에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최근 바이든이 당선되면서 이주 장벽이 낮아질 희망까지 더해져 쉽게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어릴 때 이주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드리머(Dreamer) 들에게 함께 살 기회는 열어주자는 신임 대통령의 감성적 수사와 달리 미국 국민이나 일선 관료들은 밀려드는 이주자를 환영할 리 없다. 마크 모건 (Mark Morgan) 미(美)관세국경보호청(US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 청장은 이주 희망자들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짓’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법과 공중 보건 안전은 정파를 초월하는 가치’라고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Al Jazeera, 2021). 

보다 핵심적인 질문은 미국의 정권 교체가 대 라틴아메리카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20세기에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20세기 초반부터 농업과 천연자원을 중심으로 투자한 다국적 기업의 이익이 크게 걸려있었고, 더불어 1950년대부터 진행된 동서냉전과 쿠바 사태는 역대 정권으로 하여금 라틴아메리카의 전략적 가치를 유지해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990년대 구(舊)소련의 붕괴로 냉전 구조가 해체되자,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남미권에 대한 전략적 가치가 빠르게 소진된 반면, 멕시코와 중미-카리브를 중심으로 이민과 마약문제 어젠다가 형성되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지역에 대한 포괄적 영향력보다 개별국가의 상황에 따라 관계망이 설정되면서, 사실상 미국의 대 라틴아메리카 지역 정책은 존재 의미를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그 빈 공간을 메운 것이 이미 공고화된 국내정치 이슈와 중국이라고 볼 수 있다. 2000년 당시 나름 성공한 부통령이었던 알 고어의 대선가도에 결정적 발목을 잡았던 플로리다주(州)가 민주당에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대외정책은 이런 저런 이유로 국내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보수화된 라틴계 이주자가 유권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부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당에 늘 열세인 민주당은 이 지역의 지지세를 회복하는 것이 영원한 지상과제이다. 따라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대한 강경노선을 이완시키고자 하는 민주당 입장에선 오바마 행정부와 같은 전향적인 쿠바, 베네수엘라 정책을 펼치기엔 플로리다주가 여전히 부담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의 약진은 놀랍다. 2000년대 들어 대규모 투자 및 차관 등을 제공하여 지역내 영향력을 확대해 왔으며, 브라질·칠레·페루 등 남미 주요국에선 이미 미국을 제치고 제1의 교역국으로 부상하였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중국을 대안 카드로 인식하고 수출 다변화 및 낙후된 인프라 개선을 위한 자금조달 기회로 인식한다. 미국은 예전의 경제적 영향력을 회복할 관심도 능력도 없으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제스쳐(과거의 화웨이 제재나 대만 단교국 주재대사 소환과 같은) 이외에 신임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많지 않다.   

결국 집권당이나 정권 변화는 의례적 수사학을 뛰어넘어 21세기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근본 정책과 노선을 정하는 변수로서의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불안정성 
라틴아메리카 지역 내의 연대도 매우 지지부진하다. 역내 공동체나 리더십도 예전만 못하다. 현재 우나수르(UNASUR)나 셀락(CELAC) 같은 지역 공동체는 분열되거나 붕괴된 상황이다.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두 정상인, 멕시코의 오브라도르와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전통적 의미의 국가 주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다자간 지역협력에 회의적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룰라-차베스 주도의 지역 연대는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사실 지역주의를 추구하기엔 개별국가의 경제 상황이 매우 불안정하다.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코로나19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5%에서 –15%까지 예외 없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고, 2025년 이후에나 실질 소득이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이전부터 라틴아메리카의 경제는 이미 정체되고 있었다. 21세기 초반, 중국경제의 호황과 천연자원 붐으로 지탱했던 지역경제는 2013년부터 성장동력을 상실하기 시작했고,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이어 정치 변동이 뒤를 이었다. 2018년에 브라질과 멕시코에선 민족주의 포퓰리스트가 집권했고, 이듬해에는 칠레, 콜롬비아, 페루와 같이 비교적 안정된 국가에서도 엄청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났다. 대규모 부패 스캔들도 끊임없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여 대중의 분노가 심화되었다. 마약으로 인한 폭력과 대규모 이주행렬은 중미와 멕시코의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정치는 양극화되었고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는 수십 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였다. 

<그림 1> 라틴아메리카 주요국의 GDP 성장률
* 출처: IMF 자료, Foreign Policy(2021)에서 재인용


대외원조와 다자적 접근을 통한 신뢰 회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임 바이든 정부가 라틴아메리카와의 관계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많다. 그 중에서도 대외원조와 다자적 접근을 통한 신뢰 회복을 예상한다. 

첫째, 전향적인 대외원조를 통회 신뢰를 회복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마약이나 이민자 증가의 근본 원인은 라틴아메리카의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사회적 폭력과 같은 구조적 불안정성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민주당은 대외원조를 늘려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 접근을 주로 시도했다. 국경통제에 집중하는 공화당의 물리적 해법과는 결이 다르다. 바이든 정부도 이미 40억 달러의 사회경제 개발원조 예산을 확보해 놓았다(Deutsche Welle, 2021). 이와 같은 민주당의 해법은 미국국제개발청(USAID)을 창설했던 케네디가 미주대륙에서 공산주의 확산 저지를 목적으로 200억 달러를 지원했던 1960년대의 ‘진보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gress)’에 기원을 두고 있다. 원조의 목적이 시대가 흐르면서 변하고, 대상도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 중미와 멕시코로 옮겨간 것일 뿐이다. 사실 어떻게든 개발원조을 삭감하려 노력했던 지난 4년 동안 멕시코와 중미도 미국의 통제권에서 점차 이탈하고 있었다. 스탠포드(Stanford) 대학의 헤롤드 트링쿠나스(Harold Trinkunas) 교수에 따르면, 과테말라는 조직범죄와 부정부패 대응을 위해 유엔과 협의 하에 설립한 유엔 과테말라 반면책위원회(CICIG) 협정을 일방적으로 종료시켰고, 엘살바도르 정부는 권위주의를 더해가고 있고, 온두라스 대통령은 마약 거래에도 연루되었다. 멕시코의 오브라도르 정부는 미국의 거듭된 요구와는 달리 마약 카르텔과의 전면전에 회의적이다. 국내적 폭력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Deutsche Welle, 2021). 

둘째,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관계는 글로벌 및 지역 공공재를 공동 관리하는 다자적 접근을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후변화, 이주 위기, 전염병 대응과 사회경제적 복원력 회복 등 주된 어젠다는 모두 다자적 기능적 협력의 틀 안에서만 실효적 접근이 가능하다. 물론 가장 시급한 어젠다는 미주 지역을 황폐화시킨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경을 강화하는 조치 외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트럼프 행정부의 진지한 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미국은 국내적으로 감염병을 통제하는 데 집중할 것이지만, 이 시대 최악의 위기를 역내 지도자들과 함께 극복하는 모습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지금까지의 일방주의보다 상호 호혜적인 동반자로서 협력을 지향한다면, 이미지 메이킹 차원이나, 실제 관리 부담 경감 차원에서 바람직한 모형이다. 손뼉을 마주쳐야 하는 라틴아메리카 입장에서 이를 추진할 역량과 의지를 키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바이든 시대에는 공이 다시 남쪽으로 넘어갈 확률이 크다. 코로나도 한층 기세가 꺾이고 공 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2021년 4월의 미주정상회담(Summit of the Americas)을 기대해 본다. 



* 각주
1) 과테말라,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온두라스 인 수 천 명으로 구성된 도보 이주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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