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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미얀마 쿠데타에서 만난 중국

미얀마 김원장 KBS 방콕 특파원 2021/04/29

미얀마의 지정학적 의미
벨기에,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는 지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낀 나라다. 바다 건너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강대국은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 베네룩스 3국은 그렇게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성장했다. 동남아에서 그런 위치에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미얀마가 그렇다. 

버마족들이 70%인 이 연방국가는 서북쪽으로 인도를, 동북쪽으로는 중국을, 남동쪽으로는 태국을 끼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벵골만을 끼고 대양으로 나갈 수 있다. 주변국의 인구를 합치면 30억 명에 달한다. 소비시장도 지천이다. 반경 3,000km 안에 3억 명이 밀집하여 거주한다. 미얀마는 원유와 천연가스, 아연과 텅스텐까지 풍부히 매장되어 있는 자원 대국이기도 하다.

2012년 미얀마 군부가 서방의 경제 제재에 밀려 아웅산 수치를 석방하고 개방을 선택했고,  같은 해 빌 클린턴(Bill Clinton) 당시 미국 대통령이 보란 듯이 경제수도 양곤을 방문하면서, 1인당 GDP 세계 154위 국가에 글로벌 투자의 기회가 열렸다. 태국이나 베트남의 뒤를 이어 누가 아시아에서 가난을 뚫고 나올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에서, 아시아개발은행(ADB, Asian Development Bank)은 포스트 베트남으로 ‘미얀마’를 꼽았다. 2015년 아웅산 수치가 총선에서 이겨 이듬해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아시아개발은행은 미얀마가 2030년까지 해마다 7~8%씩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 전망은 ‘코로나19’와 ‘쿠데타’라는 변수가 찾아오기 전까지 적중했다.

미얀마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희망
탓마도(Tatmadaw)라 불리는 미얀마 군부는 독립 이후 58년 동안 미얀마를 통치했다. 하지만 1988년 8월, 국민의 민주화 욕구가 분출됐다. 당시 어머니의 병 간호를 위해 조국을 방문했던 40대의 아웅산 수치는 독립운동가의 딸로서 거리의 시민들과 합류했고, 민주화 열기는 폭발했다. 이 ‘8888항쟁’에서 미얀마 국민 3,000여 명이 희생됐다. 아웅산 수치는 이후 15년간 가택 연금됐다. 

냉전이 종식되고 사실상 혼자 세계의 질서를 책임졌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지속적인 제재는 2012년 미얀마 군부의 항복을 이끌어냈다. 2012년, 구금되었던 아웅산 수치가 석방되면서 미얀마는 개방과 함께 ‘외국인 투자법’을 대폭 손질했다. 외국인이 1%만 지분을 보유해도 외국 회사로 간주하던 기존 회사법이 변경되어 내국 회사의 외국인 지분 보유를 35%까지 인정하면서 외국인 지분 투자가 사실상 허용되었다. 토지의 임대도 50년까지 가능해졌다. 8년간 소득세 면제, 5년간 법인세 감면 등의 파격적인 조치가 이어졌다. 기존의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을 비롯해 500여 개 한국 기업도 앞다퉈 진출했다. 


한국 기업의 미얀마 진출 현황

* 출처: KOTRA 미얀마, 2021년 2월


중국으로 가는 지름길, 미얀마
문민정부의 집권 이후에도 미얀마 군부는 권력을 분점했다. 2008년 만들어진 군부를 위한, 군부의 의한, 군부의 헌법이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2020년 11월 치러진 총선에서 83%의 지지를 얻어 압승를 거뒀고, 군부는 불안해졌다. 이 부패한 권력집단은 권력으로부터 멀어지면 형사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2021년 2월 1일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날은 아웅산 수치의 집권 2기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쿠데타 발생을 3주가량 앞둔 1월 12일, 쿠데타의 주역인 민 아웅 훌라잉 사령관은 아시아를 순방중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났다. 중국이 이번 쿠데타의 배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날 왕이 외교부장은 쿠데타를 추인했을 수도 있지만, 쿠데타를 만류했을 수도 있다. 중국은 문민정부 이후에 미얀마 군부와 아웅산 수치 정부에 균형 잡힌 외교를 고수했다. 하지만 쿠데타 이후 이 균형점은 빠르게 군부로 쏠리고 있다. 중국은 사실상 이번 쿠데타를 보장해주는 신용장이 됐다. 미얀마와의 관계 유지가 중국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관계가 불편해지는 나라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동쪽 국가들이 특히 그렇다. 캐나다와 미국, 호주, 일본까지 중국과의 관계는 악화일로이다. 중국은 그래서 서진(西進)하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로 향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가 대표적인 서진 정책이며, 그 시작점에 동남아와 서남아를 연결하는 미얀마가 위치한다.

70년 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과 중국군은 일본군에 쫓겨 중경(충칭)까지 내몰렸고, 미국 등 연합군이 이들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하기 위해 미얀마를 관통하는 길을 뚫었다. 이 길은 인도국경에서 미얀마 제 2도시 만달레이를 거쳐 중국의 쿤밍까지 이어진다. 이는 만약 중국이 서쪽 대양으로 나가려면, 미얀마를 관통하는 것이 가장 쉽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국은 실제 미얀마 해안에서 채굴된 천연가스와 석유를 이 길을 따라 설치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직접 가져간다. 793km에 달하는 이 파이프라인은 70년 전 그 길을 그대로 따라 쿤밍으로 이어진다. 이 길이 없다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오는 원유를 배에 실어 바다로 들여와야 한다. 

실제 중국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가져오는 원유의 80%가 말라카 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중국에 들어온다. 평균 수심이 50미터밖에 안되는 이 좁은 바닷길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싱가포르로 둘러싸여 있다. 공교롭게도 이 세 국가는 중국과 사이가 불편하고 외교적으로 미국에 치우치는 국가들이다. 여기에  필리핀과 베트남, 대만은 중국과 남중국해의 경계선을 놓고 다툰다. 인도네시아는 중국 어선들이 영해를 침범해 조업을 하는 경우 군사력을 동원해 대응할 만큼 화가 나있다. 중국은 이러한 바닷길을 피해 육로를 개척했고, 에너지 수송의 거리를 1,200km 이상 줄일 수 있는 그 지름길을 미얀마에서 찾았다. 

중국은 양곤에서 차로 5시간 거리 '짜욱퓨'라는 작은 어촌마을도 개발했다. ‘짜욱퓨’항에 90억 달러를 투자해 천연가스 터미널이 들어선 거대한 항구를 만들었다. 중국 본토로 가는 천연가스와 석유는 이곳에서 출발한다. 그 짜욱퓨항에 중국의 핵잠수함이 주둔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중국에게 있어서 미얀마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020년 시진핑 주석이 방문한 유일한 순방국은 미얀마였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
미얀마의 경제 또한 중국에 크게 쏠려있다. 수출도 가장 많이 하고, 수입도 가장 많이 한다. 미얀마 수출의 49.7%가 중국과 태국으로 들어간다. 전체 수입에서도 중국과 싱가포르가 52.9%를 차지한다(자료 IMF DOTS/ 2021년 2월). 반면 미얀마의 수입대상 10대 국가에 미국은 없다(한국은 10위). 그러니 미얀마는 미국의 경제 제재가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미얀마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스타벅스, 넷플릭스 없이도 살 수 있다. 

미국 등 서방세계의 엄포가 먹히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엔(UN) 안보리의 성명도 실효성이 없다. 최근 미얀마 군부는 방콕까지 들어온 유엔 특사의 입국을 보란 듯이 거절했다. 유엔의 무력개입을 위해서는 만장일치제의 안보리에서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동의해야 한다(2011년 유엔의 미얀마 공습 때는 중국이 기권했다). 중국이 여기에 동의할 이유가 없다. 중국이 왜 주변국의 민주화를 위해 자국의 영향력을 미국과 나누겠는가? 중국은 스스로도 민주화가 되지 않은 나라다. 

동남아 국가의 연합체인 아세안(ASEAN)의 역할도 기대에서 멀어지고 있다.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아세안정상회담에는 오히려 쿠데타의 주역 민 아웅 훌라잉 사령관이 초대됐다. 미얀마 사태의 해법은 커녕, 그를 공식적인 수반으로 인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아세안 10개국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는 기대는 애초에도 없었다. 미얀마를 둘러싼 아세안 국가들 대부분은 여전히 권위주의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태국은 6년째 쿠데타 정부가 집권 중이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36년 째 집권 중이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다. 아세안 의장국 브루나이는 심지어 왕정국가다. 이들 국가들에게 미얀마 국민이 맞닥뜨린 쿠데타는 사실 큰 정변이 아니다. 이에 더해, 이들 국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복잡한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 커지는 미얀마의 지정학적 중요성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초강대국 ‘미국의 민주적 리더십’과 ‘자유무역을 통한 성장’이라는 이해관계로 발전해왔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인정받은 미국은 아낌없이 개도국들의 제품을 수입해 주면서 일본과 한국 같은 신흥국들의 발전을 불러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달러 수요는 ‘달러 패권’을 유지시켜줬고, 신흥국들은 그만큼 저렴해진 자국 화폐로 더 유리한 수출 시장을 개척했다. 이 ‘누이 좋고 처남 좋은’ 글로벌 교역시장은 중국의 성장으로 더 복잡해지고 더 민감해 졌다. 

지난 2011년, 중국은 42년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자리를 지키던 일본을 밀어내고 정상을 위협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화웨이와 샤오미를 거느린 거대한 제조업 강국이 된 것이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믿는 중국은, 그 믿음을 앞세워 이제 모든 이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서방세계와 충돌하고 있다.

이 충돌은 미국·일본·호주·캐나다의 비공식안보협의체 쿼드(QUAD)를 불러왔다. 쿼드는 베트남과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의 참여를 원한다. 여기에 인도가 참여하면 중국을 겨냥한 거대한 바닷길 봉쇄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중국에게 미얀마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시진핑 주석이 2020년 유일한 해외 순방국으로 미얀마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얀마를 ‘운명을 같이할 나라’로 규정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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