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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코로나19 위기와 동유럽 백신의 정치: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를 중심으로

슬로바키아 / 체코 / 헝가리 조홍식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1/05/27

유럽통합을 촉진하는 코로나19 위기
유럽통합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장 모네(Jean Monnet)는 위기 속에서 유럽이 만들어지며 유럽이란 결국 위기에 대한 해결책의 집합이라고 설명했다.1) 실제 유럽통합이 시작된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여파로 유럽은 심각하게 파괴된 상황이었고, 철의 장막이 유럽을 동서로 나누었으며, 서유럽도 심각한 이념분쟁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로 상징되는 유럽통합은 전쟁의 피해를 딛고 일어나 번영과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2020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위기도 유럽통합을 촉진하는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로 인해 유럽은 가장 심각한 질병과 경제적 피해를 경험한 지역에 속하며, 그 과정에서 유럽통합의 성과인 이동의 자유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회원국 사이에 국경이 다시 세워졌을 뿐 아니라 각 회원국 내에서도 격리와 봉쇄조치로 초유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코로나19 위기에 대항하면서 유럽연합은 두 분야에서 공동 전선을 펴는 데 성공했다. 하나는 경제사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차원의 재정정책 기반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7,500억 유로 규모의 차세대유럽연합기금(NGEU, Next Generation EU Fund)은 미국 조 바이든(Joe Biden) 행정부의 재정 지출 규모보다는 작지만 유럽이 재정 연방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평가받는다.

유럽연합 백신의 정치
코로나19 대책에서 또 다른 공동 전선의 성공 사례는 백신 구매와 배분에 관한 보건 정책 분야다. 원래 보건 정책은 회원국 정부가 담당하는 정책 영역이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종합적 위기를 맞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백신을 확보하고 분배하는 과정에서 유럽 차원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2020년 여름, 집행위는 제약회사들과 협상을 통해 백신 확보에 나섰고 회원국은 이 권한을 기꺼이 유럽연합에 맡겼다. 공동 대응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에 더해 불확실한 정책에 대한 책임을 유럽연합으로 전가하려는 수동적 회원국들의 태도 덕분이다.
유럽연합의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백신 정책 덕분에 유럽은 4억 5,000만 명의 인구를 위한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EC가 중앙에서 백신을 회원국 별로 분배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회원국끼리 서로 얼굴을 붉히며 경쟁하고 싸울 필요도 없었다. 2020년 1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은 백신 정책을 ‘유럽의 성공 스토리(European success story)’라 부르며 자랑할 정도였다. 유럽은 특히 국가 간 경쟁을 피하면서 공동 구매에 나섰기에 제약회사들로부터 저렴한 가격을 확보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위기라는 충격과 비극의 와중에 백신의 신속한 개발은 희망이었다.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선진국들과 비슷하게 유럽은 2020년 연말에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하지만 2021년 5월 현재까지 가장 더딘 접종 속도때문에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협상 과정에서 문제 발생 시의 책임소재와 백신 가격에 집중하느라 공급 일정을 확실하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 Zeneca) 사와는 2021년 1분기 공급에 대해서 분쟁이 발생하여 집행위가 유럽 내 생산 제품의 역외 수출을 금지해야 하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이런 다양한 문제를 통해 보건이라는 새로운 정책 권한에 대한 집행위의 미숙함이 드러난 셈이다.

유럽은 선진국 가운데 백신 접종이 가장 저조하다.2) 3월 말까지 적어도 한 번의 접종을 받은 인구 비율은 영국이 58%, 미국이 38%인데 비해 유럽은 14%에 불과하다. 물론 인구 10만 명당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는 영국이 187명, 미국이 166명으로 유럽연합의 137명보다 높다. 현재까지는 유럽의 방역 성과가 미국이나 영국보다 좋은 편이지만 백신 접종이 효과를 발휘할 미래에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유럽은 회원국에 따라 코로나19 현황의 차이도 현저하게 드러났다. 2021년 상황이 급격히 나빠진 헝가리, 체코, 벨기에 등에서는 사망자 비율이 미국이나 영국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동유럽의 백신 국제관계
2020년 초 코로나19 위기가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을 때 가장 심각한 피해 지역은 국제 교류가 왕성한 서유럽이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 관광 산업이 발달한 지역은 코로나19의 첫 타격을 입은 곳이었다. 그러나 2021년 위기는 균등하게 유럽을 때렸고 동유럽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은 급속한 전염의 피해 지역이다.
헝가리는 백신 정책의 유럽 공동 전선을 제일 먼저 무너뜨렸다. 2021년 2월 24일부터 중국에서 개발한 시노팜(Sinopharm) 백신의 접종을 시작했고 이어 러시아제 백신인 스푸트니크 V(Sputnik V)도 허용하였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Orbán Viktor Mihály) 총리는 자신이 직접 2월 28일 중국 시노팜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모범’을 보였다. 국가 지도자가 국민도 안심하고 중국 개발의 백신을 맞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하지만 헝가리의 의료진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는 보도다.3) 중국의 시노팜이 국제 사회에서 인정한 백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5월 8일이 돼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시노팜을 뒤늦게 인정하기는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처리 과정에서 WHO에 대한 국제 신뢰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WHO가 너무 중국의 입김에 노출되어 있다는 우려가 수차례 제기되었고 코로나19의 기원을 밝히는 과정에서도 중국의 책임 은폐에 공조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럽의약품청(EMA, European Medicines Agency)은 아직 중국이나 러시아의 백신을 공식 인정하지 않은 상태다.4)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러시아제 백신 스푸트니크 V의 수입에 나섰다. 이 두 나라는 영국으로 이민간 자국민들이 영국 변이 코로나19를 옮겨 질병이 급격하게 확산하고 위기가 심화한 경우다. 포퓰리즘 성향의 체코의 바비스(Andrej Babiš) 총리는 코로나19 위기를 당장 넘기기 위해 러시아 백신 수입을 추진하였다.5) 

슬로바키아에서는 러시아 백신 수입 문제가 정치 위기로 발전했다. 이고르 마토비치 (Igor Matovič) 총리가 3월 1일 러시아 백신 수입을 결정하자 연정을 구성하던 세력들이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연합 정부가 위험에 빠진 것이다. 마토비치는 2020년 3월 총선에서 반부패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포퓰리즘 세력을 대표한다. 하지만 그와 연정을 구성한 중도 우파의 ‘자유와 연대(SaS, Sloboda a Solidarita)’나 중도 친(親) 유럽 세력인 ‘국민을 위하여(ZA ĽUDÍ)’는 러시아 백신 수입을 반대하며 연정이 계속될 수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 백신 20만 회분이 도착하자 공항까지 나가 마중한 총리를 더 용납할 수 없다는 정치적 판단의 결과다. 따라서 마토비치 총리는 3월 28일 사임했다.6) 백신 공급의 사안은 이처럼 슬로바키아에서 기존 정부를 붕괴시킬 정도로 뜨거운 정치적 감자로 부상한 셈이다.

이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백신의 국제정치는 유럽 내에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의 특수성을 잘 드러낸다. 비셰그라드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의 공동 전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제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특히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우파 포퓰리즘이 집권하면서 유럽통합에 잦은 반대 정책과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신 정책은 2019년 부임한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회의 야심 찬 공동 전선이었는데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세 나라는 노골적으로 백신 공급의 문제를 지적하며 중국이나 러시아라는 역외의 공급책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들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슬로바키아는 다른 국가들과 비슷하게 반(反)유럽 포퓰리즘이 집권하기도 하지만 연정 붕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친(親) 유럽 성향도 강하다. 이는 슬로바키아가 비셰그라드 그룹에서 유일하게 유로 화폐를 채택한 나라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럽통합과 동유럽
유럽에서 공식 허가도 받지 못한 중국이나 러시아의 백신을 수입하는 정책은 EU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럽통합에 대해 대체로 적대적인 입장을 보여왔으며, 분열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중국은 유럽연합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세르비아를 통해 백신을 공급함으로써 외부로부터 유럽을 공략해 들어가고 있다.7) 세르비아는 중국의 유럽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으며, 주변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에도 중국 백신이 활발하게 수출되고 있다.
러시아 또한 가장 먼저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백신 스푸트니크 V를 통해 유럽연합을 공략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체코나 헝가리의 포퓰리즘 정부를 통해 백신 외교를 펴고 있으며 유럽연합이 겪고 있는 백신 부족을 보충해 주는 대체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우크라이나의 경우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V를 활용하는 길이 막혀 있지만 말이다.8) 중국과 러시아가 백신을 소프트파워의 무기로 삼아 유럽연합에서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동유럽 지역을 복합적으로 공략하는 셈이다. 

유럽연합 내부의 다른 동유럽 국가들은 기존의 분배 시스템 속에서 자신들의 몫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4월 초 유럽이 화이자로부터 1,000만 회분의 백신을 확보하자 코로나19가 심각하게 확산하고 있는 일부 동유럽 지역은 원래 인구 비중보다 높은 몫을 요구했고, EU 내부 협상을 통해 원래 인구 비율보다 많은 양을 받을 수 있었다.9) 

유럽연합 특유의 복합적인 정치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이 구현되었다. 27개국이 만장일치로 합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재조정에 반대하는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베니아는 기본 몫만을 얻었다. 나머지 24개국이 유럽 차원의 재분배에 합의하여 19개국이 양보한 285만 회분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가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합의와 협력으로 필요한 국가에 더 많은 백신 양을 배당하는 정치적 틀이 작동하는 셈이다.
동유럽 백신의 정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유럽통합에 대한 각 회원국의 입장이 백신 부분에서도 거의 정확하게 반영된다는 점이다. 헝가리나 체코가 가장 반(反) 유럽적 태도를 유지하는 한편 발트 3국이나 슬로바키아 등은 친(親) 유럽의 경향이다. 2020년대에 유럽의 재정 연방주의가 점차 실현된다면 제일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역이 동유럽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동유럽에서 유럽 회의주의의 미래는 백신을 넘어 유럽통합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 각주 
1) Jean Monnet. Mémoires. Paris: Fayard. 1976.
2) The Economist. How Europe has mishandled the pandemic. April 3rd, 2021.
3) Le Monde. Avec le vaccin chinois, la Hongrie veut faire mieux que le reste de l’UE. le 4 mars 2021.
4) The Economist. A protracted swell of cases highlights Europe’s vaccine problems. March 13, 2021.
5) Le Monde. Débordés par le variant britannique, les Slovaques et les Tchèques font appel au vaccin russe. le 1er mars 2021.
6) Le Monde. En Slovaquie, le Premier Ministre forcé de démissionner après avoir importé le vaccin russe Spoutnik V. le 29 mars 2021.
7) The Economist. Serbia is outpacing nearly every country in the EU at vaccination. April 3rd, 2021.
8) Le Monde. “En termes de Soft Power, le rendez-vous de l’Europe et du vaccin est un fiasco géant”. le 3 mars 2021.
9) Le Monde. Le partage de 10 millions de doses du vaccin Pfizer-BioNTech provoque une mini-crise au sein de l’UE. le 2 avril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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