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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동남아의 바다 지름길, 크라(Kra) 운하의 빛과 그림자

태국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종합정책연구본부 본부장 2021/06/07

운하와 세계의 역사 
 세계의 전쟁과 무역의 역사에서 운하는 중요한 장면에 항상 등장한다. 전쟁과 무역은 개념상으로는 매우 다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항상 같은 궤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이러한 전쟁에 굴복한 나라를 수탈의 대상이자 자국 생산품의 시장으로 이용하였던 것이 불과 반세기 전까지 수백 년간 이어온 강자들의 무역과 연계된 침략의 방식이었다. 이러한 노골적인 침략과 착취가 사라진 현재에도 선진국들은 여전히 무역 전쟁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원칙에 충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물류 루트, 특히 해상 물류루트를 선점하거나 확보하는 것은 결정적인 힘을 가지는 요인이 되어 왔다. 최근 수에즈 운하의 선박 고장으로 지구촌 무역이 일주일간 멈춘 사건이 무역에서 해상루트, 특히 운하의 중요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 이면에 있는 어두움도 동시에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운하는 여전히 무역과 경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운하는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였던 상업혁명1) 이후 세계 해상무역이 촉발되었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그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다.2) 아직도 중량기준으로 세계 교역의 거의 90% 가량이 해상을 이용하고 있으니 운하를 잡는 자가 세상을 잡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운하가 주는 빛과 그림자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운하와 패권
운하는 위치, 상황 그리고 크기에 따라 제각각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의 운하를 만들어 기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서 가던 뱃길을 약 1만 km  단축한 수에즈(Suez) 운하는 영향력이 엄청난 사업이었다. 수에즈 운하 사업은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운영하면서 1956년 운하 국유화로 이집트 정부에 소유권을 넘길 때까지 유럽과 아시아의 교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독점했다. 파나마(Panama) 운하 역시 같은 강대국인 미국의 개입이라는 유사한 역사적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1903년 미국이 사업권을 인수하여 1914년에 개통하게 되었는데, 파나마 운하 개통으로 태평양과 대서양 간을 이동할 때 이용하던 기존의 남아메리카 우회 항로가 1만 5,000km 단축되는 엄청난 혁신이 이루어졌다. 85년간 파나마 운하의 운영권을 쥐고 있던 미국은 1999년 12월 31일에 마지못해 파나마 정부에 운하 운영권을 이양하게 되었다.3) 이처럼 운하는 세계를 지배하던 강대국들이 주도권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개발된 측면이 있으며, 정치,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취하면서 지배권과 영향력 확대를 위한 기반으로 활용했었다.

동남아의 바다 지름길, 크라 운하
<그림 1>처럼 세계의 주요 운하와 해협들이 중요한 길목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새로운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전히 사업의 진행 여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운하 사업들도 존재하고 있다. 특히 눈여겨 볼 대상이 세계의 해상 무역의 중심지인 싱가포르와 말라카 해협을 우회해서 질러 갈 수 있는 지름길인, 태국과 말레이시아 국경 지역의 크라 지협을 연결하는 크라(Kra) 운하이다. 크라 운하는 1677년 태국의 나라이 국왕이 추진했던 오랜 논의의 역사를 가진 운하이다. 기술부족, 당시 강대국인 영국의 반대, 국경지역 이슬람 분리주의자들로 인한 정치 리스크 등으로 사업이 계속 지연되어 오던 중, 1966년 2차대전 패전국이었던 태국과 승전국인 영국이 체결했던 보우링(Bowring) 조약에서 크라 운하 추진 불가 조항이 폐기되면서 다시 사업의 가능성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1973년에 미국의 민간기업이, 1999년에는 일본의 국부펀드에서 관심을 보이며 크라 운하 사업을 검토했으나, 대규모 공사비, 환경 파괴 문제, 투자대비 경제성 문제, 국토분단과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의 테러 등으로 인해 결국 추진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게 된다. 

<그림 1> 세계 주요 운하와 해협 위치도
* 출처: 코리아쉬핑가제트, https://www.ksg.co.kr/bizlogistics/news/news_view.jsp?pNum=120500 



크라 운하는 타이만 춤폰(Chumphon)과 안다만 라농(Ranong) 지역을 연결하는 곳으로 6개 사업 대안에 따라 위치가 달라져 지명이 다르게 표기되기도 한다. 크라 운하는 싱가포르를 통과해서 지나가는 말라카해협 루트보다 동아시아와 인도양 사이를 1,200~1,400km 정도 단축하고 해상운항 거리로 약 2일 정도 절감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수에즈와 파나마 운하보다는 단축거리가 짧아서 경제적 효과가 적으나 군사 전략적 관점에서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싱가포르를 통해 선박들이 지나가는 말라카 해협은 동아시아 상품과 자원의 대부분이 통과한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좁은 해로로 중국 원유 수입량의 80%가 지나가는 생명줄이다. 그런데 이 해협은 미국의 해군이 항공모함을 싱가포르에 주둔시키면서 관리하고 있어 미국과 다방면으로 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무역을 떠나 에너지 안보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만약 중국과 미국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말라카 해협은 미국 해군에 의해 차단될 것이므로, 이는  중국의 안보와 직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말라카 딜레마’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지금 중국이 ‘말라카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몇가지 대안 중 가장 강력한 방법이 크라 운하를 통한 우회 항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2015년 태국정부에게 크라 운하 건설을 위해 당시 환율기준 한화 약 21조 원을 투자해 5년 안에 완공하겠다는 제안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과 싱가포르의 반대, 태국의 정정불안 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크라 운하 역시 중국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안보 딜레마를 완벽하게 극복하는 데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크라운하가 개통이 되어도 안다만과 타이만 사이의 해수면 높이 차이가 10m 이상인 데다가, 대규모 공사비로 인해 수로 폭을 400m 이상 확보하기 어려워 대형 유조선(VLCC)이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동, 아프리카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원유의 대부분이 대형 유조선을 통해 운송되기 때문에 결국 이러한 문제로 인해 여전히 잠재적 가능성만 언급이 될 뿐 사업 실행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림 2> 크라 운하 위치도
* 출처: 연합뉴스 자료 편집



운하의 대안: 랜드브릿지
최근 태국정부는 지지부진하던 크라운하의 문제를 랜드브릿지(Land bridge) 개념을 통해서 우회로를 찾고 있다. 2021년 태국 교통부 장관은 글로벌 컨스트럭션 리뷰(Global Construction Review)와 방콕 포스트 등을 통해 2021년 6월에 해상운송과 육상운송을 결합한 랜드브릿지 방식으로 타이만 춤폰과 안다만 차농 지역 양쪽에 두 개의 항만을 건설하고 육상으로 철도, 도로,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춤폰-라농 랜드브릿지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의도를 싫어하는 미국과의 대립을 피하면서 싱가포르에게 빼앗긴 지역 물류 주권을 이 사업을 통해 확보해서 새로운 경제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태국 정부의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성 측면에서 해당 랜드브릿지 사업이 가지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 의문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물류에서 화물을 운송하는 데 가장 큰 비용이 드는 행위가 화물을 들어서 올리고 내리는 부분이다. 그래서 항만들이 화물을 선박에 내리고 올리는 과정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랜드브릿지는 이 과정을 양쪽에서 각각 한번씩, 전체 두 번을 하게 되므로 2일 단축이라는 효과 대비 양하역비 증가로 전체 물류비에서 수익성 확보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랜드브릿지 프로젝트의 성사는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서 경제성을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을 통해 2012년 크라 운하 사업 타당성에 대한 연구를 실시한 바가 있다. 당시 보고서 역시 미국, 일본 등의 연구보고서와 같은 맥락에서 경제성의 한계, 국내 정치 리스크, 생태계 파괴 그리고 미국과 싱가포르의 심각한 반대와 연계된 국제정치적 리스크 등이 이 사업의 추진에 가진 큰 걸림돌로 지적한 바가 있다. 

전망과 시사점
운하는 과거에는 주로 정치적 요인에 비중이 더 있었다면 근대에 와서는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경제적 요인에 비중을 두면서 그 중요성이 과거 보다 더 커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에즈 운하의 봉쇄가 글로벌 경제에 미친 영향력을 보면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자연적인 해협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운하를 만들었으나 이 역시 부족함을 인식한 글로벌 강국들은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등 추가 운하를 만들어 무역의 길을 트고 교역을 통해 세계의 경제 지도를 바꿔 놓았다. 

이러한 꿈은 오늘날에도 여러 나라가 꾸고 있으며, 크라 운하를 포함해서 니카라과 운하, 북극항로 등이 그 중요한 도약의 기회를 제공할 지도 모른다. 만약 서남아와 동남아를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 대신 크라 운하가 만들어지면 싱가포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운하의 개발과 새로운 항로의 이용은 단순한 한 국가나 단일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에 정치, 경제적으로 영향을 미칠 만큼 파급력이 있는 것이다.

반면, 해당 운하의 길목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한 도시 혹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남아와 동남아를 구분 짓는 말라카 해협을 지키고 있는 싱가포르이다. 싱가포르는 말라카 해협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말라카 해협을 통하지 않으면 수천km의 험한 바다를 돌아가야 하므로 해당 해협은 경제적 운항을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전략적 지름길이다. 싱가포르는 인구 600만의 작은 도시국가지만 세계 일류의 경제수준을 가지고 있는데, 무역로를 통과하는 해운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한 세계 최고의 항만을 중심으로 다양한 무역, 금융, 물류산업을 연결시켜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만약 싱가포르 위쪽에 있는 크라 운하가 열리게 되면 또 다른 싱가포르가 탄생할 것이 예측되며, 지금 싱가포르의 미래는 암울해 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미국이라는 힘을 통해 해당 사업의 추진을 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미국 역시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아주 큰 카드를 놓치기 싫을 것이다.

글로벌 운하는 가진 자에게는 큰 빛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 길목을 빼앗긴 자들에게는 항상 불안감을 가져다 주는 그림자가 될 수 있다. 수에즈 운하의 봉쇄를 계기로 운하관리에 대한 지구적 관점의 관심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크라 운하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역시 평화적인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도록 합리적인 대안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과거와 달리 하나밖에 없는 지구 환경에 대한 부분도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어야 한다. 지구환경 파괴, 생태계 교란은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부분을 고려한 현명한 판단들이 크라 운하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요 결정 요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 각주
1) 15세기 초부터 대항해(大航海) 시대에 콜럼버스는 신대륙 항로를, 바스코다가마는 아프리카 남단을 회항(回航)하는 동양항로를 개척하였고 그 결과 지중해·북해·발트해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상인들이 쇠락하고, 대신 스페인의 신대륙, 즉 서인도 무역과,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즉 동인도 무역이 활발해짐. 상권은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었고 약 1세기 동안 두 나라가 지배하였으며, 이런 변화를 상업혁명이라 함. 이는 결과적으로 유럽의 상업자본 발전에 혁신을 가져왔고 네덜란드·영국의 상업자본이 주로 동인도 상업권에 침투하여 영국 식민지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시대를 여는 역할을 함(자료: 두산백과, 2021.4.14)
2) 이성우, 나는 커피를 마실 때 물류를 함께 마신다, 바다위의정원, 2020.9
3) 두산백과, 202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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