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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아세안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을 위한 역외 국가의 기여

동남아시아 일반 박재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2021/06/14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중국 선박 200여 척이 2021년 3월부터 떼를 지어 정박하고 있는 것을 둘러싸고 중국과 필리핀의 해양 분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파도를 피해 정박 중이라는 중국의 주장에 맞서 필리핀은 민병대가 탑승한 계획된 도발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중국은 일부 아세안 국가(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들과 남중국해에서 이 같은 영토/영해권 분쟁을 지속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가 코로나19 대응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남중국해 분쟁 수역에서 공세적 군사 행위를 지속하면서 동남아에서 ‘중국 피로감’이 노정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세안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maritime capacity building)’을 위한 역외 국가들의 기여가 주목받고 있다. 

역외 국가의 기여
대부분 아세안 국가의 해군력과 공군력은 열악하다. 중국에 대항하여 영토주권을 지키고 다양한 해양안보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해야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무엇보다도 아세안 국가들의 경제력을 고려할 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최신 군사장비를 구매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 또한, 미국과 EU가 인권탄압을 이유로 다수의 권위주의 동남아 국가로의 방산 수출에 제한을 두고 있다. 따라서, 동남아 국가가 역내 해양 안보를 주도하기 위해 갖추고자 하는 ‘정보, 감시, 정찰(ISR, 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 자산과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자산 사이에 차이가 큰 이른바 ‘ISR 공백’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더해 아세안 국가 간 영토분쟁과 일부 아세안 국가의 ‘불법·비보고·비규제(IUU, Illegal, unreported and unregulated) 어업’으로 역내 국가 간 감정의 골이 깊어서, 동남아 국가들은 해양안보를 위해 필수적인 정보공유를 꺼리는 경향이 크다. 일례로 20개 국가가 가입한 ‘아시아 지역 해적퇴치협정(ReCAAP, Regional Cooperation Agreement on Combating Piracy and Armed Robbery Against Ships in Asia)’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아직도 가입하고 있지 않은데, ReCAAP-정보공유센터(ISC, Information Sharing Center)가 싱가포르에 있다는 것이 이들 국가 미가입의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즉, 정보 융합의 주체가 싱가포르이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ReCAAP에 가입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가 2004년에 해적퇴치를 목적으로 결성한 ‘말라카 해협 순찰’의 경우에도 관장 범위를 말라카 해협과 싱가포르 해협으로 국한하였으며, 당면한 실질적 문제인 해적퇴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지역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는 것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다수의 동남아 국가가 해양 능력 배양에 있어 역외 국가의 기여를 수용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일본, 호주 등 역외 국가가 정찰기, 정찰선, 훈련기, 경비함, 감시 레이더 등의 장비를 공적개발 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형식으로 각국에 제공해 왔다. 수혜국은 공여국이 공여한 장비 사용을 위한 교육 훈련 제공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공여국은 해안경비대, 해양경찰, 해군을 수혜국에서 교육하거나 혹은 공여국으로 초청하여 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다.

미국의 기여
미국은 일본 및 호주와 함께 동남아 역내 거점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기여하는 것에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 국방성은 이미 2015년에 발간한 ‘아시아·태평양 해양안보전략(Asia-Pacific Maritime Security Strategy)’에서 해양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동남아 지역 해양의 투명성을 증진에 미국이 기여하고자 공동군사훈련·원조·방산 수출 등을 추진해 왔다. 

미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해양능력 배양을 위한 ‘해양 안보 이니셔티브(MSI, Maritime Security Initiative)’를 추진하고, 2016년부터 5년간 4억 2,500만 달러(한화 약 4,724억 6,300만 원)를 지원하고 있다. MSI는 미국이 해양능력 배양을 위해 가용하고 있는 다양한 자원 중 하나이다. ‘외국군대 지원 자금(FMF, Foreign Military Financing)’에서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해양 능력 배양을 위해 일정 금액을 할당하고 있다. 또한, 국무부의 ‘국제 마약 및 법 집행국(International Narcotics and Law Enforcement Affairs)’이 ‘동남아 국가들의 해양법 강화 이니셔티브(SEAMLEI, Southeast Asia Maritime Security Law Enforcement Initiative)’에 예산을 할당하고 있다.
미국은 전차, 장갑차, 해상 초계기 등을 주로 잉여 군수물자 판매(EDA, Excess Defense Articles)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에 공급하고 있는데,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에 적극적이다. 미국은 동남아 주요 국가의 해양 정보 획득 능력배양에도 적극적이다. 필리핀의 ‘연안감시 시스템(CWS, Coastal Watch System)’과 말레이시아의 ‘해안경비 레이다 기지국(Coastal Surveillance Radar Stations)’ 설치에 도움을 주었고, 인도네시아의 레이더와 해양 정찰 능력 증진에도 기여했다.

최근에는 미국 국방부가 MSI를 통해 무인 항공기 총 34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의 ISR 자산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미국은 동 프로그램에서 무인 항공기 1기당 140만 달러(한화 약 15억 5,600만 원)의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 말레이시아에 무인 항공기 12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각각 8대, 베트남에 6대를 제공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미 상당수가 해당 국가에 전달되었다. 말레이시아는 2021년 3월에 공여 받은 무인기로 공군 비행대(Squadron)를 창설하였다.

타 쿼드 국가의 기여
일본은 한동안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경비함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차관 형식을 이용했지만, 법 개정으로 무상 지원이 가능해지며 군사장비 공여에 나서고 있다. 2014년에는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정해 사실상 무기수출 금지법을 무력화했고, 2017년에는 자위대의 중고장비를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외국에 제공할 수 있도록 ‘재정법’을 개정하였다. 이후, ODA 형태로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정찰선, 해양감시 레이다 등을 제공하고, 운영을 위한 지원팀을 파견하고 있다. 2020년 8월에는 일본 미쓰비시 전자(Mitsubishi Electric Corp.)가 4기의 레이다를 필리핀에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남태평양 지역에서 1987년부터 1997년까지 20여 년간 ‘태평양 순찰선 프로그램(PPBP, Pacific Patrol Boat Program)’을 수행했고 이어 ‘태평양 해양안보 프로그램(PMSP, Pacific Maritime Security Program)’을 가동 중인 호주는 남태평양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남아에서도 역내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인도의 경우, 베트남·싱가포르·필리핀·미얀마 등에 방산 수출은 물론 군사 기술을 전수하기도 하였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양국 정상은 2018년에 ‘인도태평양 지역 양국 해양협력에 관한 공통 비전’을 선언하였다. 또한, 인도의 인공위성들이 남중국해를 포함한 동남아 지역을 관측할 수 있는데, 인도는 별도의 허가 없이도 인도의 위성이 촬영한 영상 정보를 직접 송신 받을 수 있도록 베트남에게 허용해주고 있다. 그러나 해양안보와 관련하여 인도의 관심 지역은 아직 동남아보다는 인도양이다.

중국의 기여
중국은 동남아 역내 해양 능력 배양을 위한 쿼드 국가의 기여에 직접적인 반응은 자제해 왔다. 중국은 역내 국가에 기본적인 정찰 장비나 네비게이션 도구 정도를 제공했을 뿐, 선박이나 정찰기 등의 공여는 하지 않았다. 필리핀이 이슬람 반군과 전투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소총과 탄약 등을 지원하였고, 캄보디아에 베트남을 견제하기 위한 구형 전차와 장갑차를 지원하는 정도였다. 동티모르(East Timor)가 2010년에 중국에서 2척의 정찰선 구매하였고, 미얀마와 말레이시아도 중국의 전함을 구매하였으나, 공여가 아닌 구매였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행보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2018년에는 필리핀과의 영토분쟁에도 불구하고 4척의 정찰선을 필리핀에 제공하였다. 하지만, 동 선박은 12m 정도의 소형으로 필리핀이 이를 해안경비에 활용하지 않고 관광지 세부(Cebu)에 배치하였다. 
그런데 중국은 쿼드 국가의 동남아 지역 해양 능력 배양에 대한 기여의 양과 질이 향상되고 있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쿼드 국가가 역내 비전통안보 이슈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기여의 목적으로 내세우지만, 중국은 수혜국과 공여국의 특성상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에 대비하는 것을 실질적 목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여국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이고, 주요 수혜국은 미국의 동맹국 또는 중국과 안보적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공여가 아직은 성능이 낮은 소형 정찰선 정도이나, 향후 중국이 해양 능력 배양을 위한 쿼드 국가의 기여가 중국 경계의 방향으로 노골화된다고 인식한다면 중국도 질과 양을 높여 나갈 공산이 크다. 


역외 국가의 기여에 대한 아세안의 시각
아세안의 관점에서, 동남아 역내 국가가 해양협력을 주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역내 국가간 상호 신뢰뿐만 아니라 장비, 기술 및 자본력 또한 상당히 부족한 대부분 아세안 국가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쿼드 국가에 해양안보를 의존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미국, 호주, 인도, 일본, 즉 쿼드 국가들의 해양 능력 배양을 위한 기여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동남아 수혜국 내에서 다음과 같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첫째, 공여국의 공여 결정은 철저히 자국의 가치와 이익에 기반하며, 수혜국에 공여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조의 대가로 수혜국의 이익과는 크게 상관없는 공여국의 이익을 위한 해양안보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거나, 공여국이 수혜국의 민주주의, 인권 문제에 간섭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공여국이 안보 관련 장비 및 수리·보수 서비스 용역을 판매하기 위한 수단으로 원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즉, 원조로서 제공한 장비와 연계하여 무기를 수출하고, 해당 장비와의 호환성을 명분으로 방산 수출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가는 미국인데, 일례로 미국은 필리핀에 해양 안보에 필요한 장비를 공여하면서 해양 안보 자산이 부족한 필리핀이 러시아제 잠수함을 구매하자 경고를 보낸 바 있다. 

이에 더해, 쿼드 국가의 동남아 해양안보 이슈에 대한 기여로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대립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대두되고 있다. 쿼드 국가의 기여로 역내 국가의 해양안보 능력이 배양되면 역내 국가들은 보다 효율적으로 중국 어선의 IUU 어업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Grey Zone 전략)’을 무력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불법 조업 활동을 제어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다. 더군다나, 향후 쿼드 국가가 역내 국가들의 해양 능력 배양을 위해 공동으로 ISR 정보와 자원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쿼드 국가의 기여는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의 공세적 해양정책에 대한 헤징(hedging)의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쿼드 국가의 기여가 중·장기적 관점에서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대립을 심화시킨다면, 이에 연루되기를 원하지 않는 역내 국가에서는 쿼드 국가의 기여가 중국을 배제하지 않고 개방적으로 전개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한국의 고려사항
한국도 동남아 역내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대한 기여를 높여왔는데, 아세안 국가 중에는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 중점 대상 국가였다. 일례로 2019년에는 퇴역한 ‘충주함’을 100달러를 받고 필리핀에 공여하였다. 필리핀은 400만 달러를 들여 공여 받은 충주함을 개조하고 ‘콘라도 얍(BRP Conrado Yap)’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필리핀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군함으로, 필리핀 해군의 전투함 가운데 유일하게 함대함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다. 한편, 동남아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대한 기여가 방산 수출로 이어지기도 했다. 현대 중공업이 필리핀에 2척의 ‘호세 리잘급(Jose Rizal class)’ 호위함(2,800톤)을 척당 1,800억 원에 2020년과 2021년에 판매하였는데, ‘충주함’ 공여가 징검다리가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동남아 지역 해양안보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방산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역내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더욱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우리 해군이 차기 호위함(FFG) 취역에 맞춰 2020년대 중반까지 포항급 초계함을 모두 퇴역시킬 예정인 바, 공여를 위한 자원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역내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을 위해 쿼드 국가와 협업 시, 그러한 협업이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쿼드 국가가 역내 국가의 ‘ISR’ 자산 확보에 협력하여 기여하자고 제안한다면, 이를 해양안보의 관점에서만 접근하기보다는 미·중 지정학적 경합의 관점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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