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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르완다의 발전과 카가메 대통령

아프리카ㆍ 중동 기타 김영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2021/09/09

르완다의 발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인 르완다는 1994년에 일어난 집단 학살 사건으로 과거 국제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당시 100일 정도 되는 짧은 기간에 르완다 전체 인구의 대략 20%인 80만 명에서 100만 명 정도가 학살된 것으로 집계된다. 또한, 이 집단 학살은 군인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광범위하게 참여하여 저지른 사건으로 파악된다. 다수인 후투족과 소수인 투치족 사이에 일어난 집단 학살은 대부분의 희생자가 투치족이었지만 후투족 역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집단 학살 후 르완다의 거의 모든 사람이 가족이나 이웃을 잃은 희생자 혹은 이웃을 살해한 가해자가 됨으로써 전 국민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으며, 급작스러운 인구 감소로 경제 활동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국가 전체가 어려움을 겪었다. 

르완다는 집단 학살이 일어난 후 빠른 속도로 사회 안정을 찾았고 어려움을 극복하였다. 안정된 사회를 기반으로 활발한 경제적 활동을 하였으며, 2019년까지 10년간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7.2%에 달했다1). 코로나19로 인해 전년에 비해 대략 6% 정도 감소하였지만, 2020년 명목상 일인당 국내총생산은 849달러이며 구매력지수 기준으로는 2,098달러를 기록하였다2). 물론 아직 충분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대규모 집단 학살이 일어난 시점에서 불과 30년도 지나지 않은 것을 고려한다면 르완다 경제 발전은 놀라운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르완다는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르완다는 다른 사하라 이남 국가에 비해 개발협력사업 진행상의 투명성이 확보되어 있고 효율적으로 진척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무역량과 해외직접투자액을 살펴보면 르완다가 국제 시장에 적극적으로 편입된 것을 알 수 있다. 외교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데, 르완다의 폴 카가메(Paul Kagame) 대통령은 2018년 8월 당시 아프리카 연합(AU, African Union)의 의장으로서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 African Continental Free Trade Area)가 성공적으로 출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동아프리카의 소국인 르완다에서 아프리카의 많은 주요 국제 회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르완다 발전의 요인 
인구의 20%가 희생되고 나머지 80%가 트라우마를 겪는 크나큰 위기를 겪은 르완다가 빠른 시일에 사회적으로 안정을 찾고 일정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룬 이유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회 통합과 정부 효율성 제고를 모색한 카가메 대통령의 리더십이 주요 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다3).

카가메 대통령은 집단 학살 이후 실질적인 권력자로 부상하면서 2003년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지난 20여 년간 카가메 대통령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는 인종 갈등을 성공적으로 봉합한 것이다. 후투족와 투치족은 집단학살 이후에도 르완다에 함께 살고 있기에 다시 집단 학살을 겪지 않도록 두 집단 간의 갈등을 봉합할 필요가 있었다. 르완다 정부는 집단학살 기념관을 르완다 곳곳에 세워 집단학살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물론 정치적으로는 소수인 투치족이 다수인 후투족을 지배하기 위해 집단 학살을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회 분위기는 인종 차별과 갈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르완다는 가차차(Gacaca)라고 불리는 르완다 전통의 분쟁 해결 기구를 현대적으로 재정립하여 2001년 전국에 1만 2,100개의 마을에 설치하였다. 가차차를 통하여 인종청소에 가담한 가해자들이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경우, 낮은 징역형이나 노역형으로 사회적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공식적인 성격을 띄고 있는 비공식적인 사회 통합 제도를 사용한 이러한 방법은 성공적인 갈등 해결 사례로 국제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카가메 대통령은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 10만여 명에 달하는 범죄자들을 차례대로 석방하기도 하였다. 

사회 통합과 함께 카가메 대통령은 제도적으로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집단 학살의 주요 희생자이기도 했던 여성은 집단 학살 이후 재건 과정에서 정치 세력에 제도적으로 편입되었다. 집단 학살 이후 2003년 새 헌법이 채택되기까지 성인지(性認知) 헌법과 성 할당제가 도입되었으며 정부의 의사결정기관 내 여성의 비율을 최소 30% 보장하였다. 이를 통해 2003년 의회 선거에서 여성은 48.8%의 의석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4). 최근 여성은 의회에서 60%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제적으로 르완다의 성평등 지수는 세계 10위권 안에 들고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르완다 정부는 해외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와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적극적으로 받기 위해 정부 내 투명성을 확보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였다. 르완다개발청이 운영하는 원스톱 센터(One-stop center)는 투자자가 일정 금액 이상의 투자만 하면, 비자와 토지 문제를 포함한 사업에 관련된 모든 사안들을 48시간 안에 일괄 처리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또한 투자자들은 정부로부터 세금 공제나 감면 등의 여러 가지 혜택을 받고 있다. 르완다는 공여국이 선호하는 수원국으로서 원조가 투명하게 쓰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이미히호(Imihigo)라는 연 단위 성과 계약 제도를 통해 직급에 상관없이 매년 달성 목표들을 세우고 이에 대한 성과를 보고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공여 받는 자원들이 낭비없이 국가의 발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이 카가메 대통령 개인의 역량만으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집단 학살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충격 요법으로 작동하여 사회 전체가 협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국제 사회 역시 집단 학살의 책임을 통감하며 르완다가 회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가메 대통령의 치적을 언급하는 것은 다른 사하라 이남의 독재자나 정치가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노력을 하였으며, 경제 개발을 위해 부패를 척결하는 과감한 정책을 도입하였고 사회를 안정시켰다. 다른 사하라 이남 국가들이 마이너스 경제 성장을 하는 동안 르완다는 꾸준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르완다의 수도인 키갈리는 서구의 여느 도시와 같이 잘 정리되어 있으며 치안에 대한 걱정이 없는 곳이다. 

르완다의 개발 독재
카가메 대통령은 투치족으로서 어린 시절을 우간다의 난민촌에서 보내고 르완다 애국전선(RPF, Rwandan Patriotic Front)을 이끌어 집단 학살 이후 르완다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2003년 치러진 대선에서 95% 득표율로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며, 7년 임기의 대통령직에 2010년, 2017년 모두 90%가 넘는 득표율로 3선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015년 헌법 개정을 통해 카가메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있었으며, 또한 두 번의 선거를 더 치른다면 2034년까지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는 방안까지 마련하였다. 이미 독재자로 20여 년 동안 장기 집권을 하고 있으며, 대략 40년 동안 르완다를 통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카가메 대통령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3선에 성공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국가가 20여 년 동안 한 개인에 의해 통치되는 상황은 독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2010년 대선 당시 유력 야당 지도자들이 투옥되거나 살해되어 재집권에 성공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르완다의 언론 자유 지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카가메 대통령이 이끄는 르완다 RPF는 르완다의 경제를 독점하고 있다. 많은 부동산이 RPF의 소유이며 RPF는 우량 기업을 다수 운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독재를 미사여구로 포장한다면, 개발 독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개발 독재는 경제성장을 위해 정치적 안정이 불가결하다는 이유로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독재를 정당화하는 체제를 일컫는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많은 국가가 개발 독재 시대를 거쳤다. 하지만, 개발 독재라는 개념 자체는 사실상 독재를 미화하고자 하는 세력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경제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국가가 사실상 우리나라를 포함한 극소수의 국가이며, 대부분 국가가 경제 발전 없이 독재만을 오랫동안 겪었기 때문이다. 

르완다의 미래
카가메 대통령을 다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독재자들과 비교하자면 나름의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또한, 강력한 리더십의 표본으로 카가메 대통령을 언급하는 아프리카의 많은 정치가와 카가메 대통령을 존경하는 대중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세 번의 선거에서 모두 90% 이상의 득표 자체는 독재에 기반한 통치를 의심받을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르완다 대중의 카가메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카가메 대통령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독재자와 강력한 리더십의 표본으로 극명하게 나눠져 있다. 

르완다에서 집단 학살이 발생한지 이제 30년이 가까워져 오고 새로운 세대들은 집단 학살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새로운 세대들은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요구하고 있다. 카가메 대통령은 이미 2024년의 대선에는 “아마도 출마하지 않을 것(Most likely no)”이라는 대답을 한 바 있지만 2024년에도 충분히 통치 가능한 67세라는 나이임을 고려한다면 출마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현대 사회에서 모든 독재자의 말로는 좋지 않았고, 독재자의 정치는 결국 혼란으로 마무리되었다. 카가메 대통령이 만약 2024년에도 대선에 출마해서 또다시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부정적으로 바뀔 것이다. 카가메 대통령 개인이 아무리 부패를 통제하고 청렴한 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를 둘러싼 정치 세력은 오랫동안 르완다를 통치하면서 이미 기득권이 되었으며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또 한번의 집권은 카가메 대통령을 사하라 이남의 여느 독재자와 같이 만들 뿐이다. 집단 학살을 완전히 극복한 새로운 르완다를 위해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어야 한다. 카가메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다가오는 대선은 카가메가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선택에 따라 르완다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르완다가 경제적으로 새로운 도약을 하고 안정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치에 있다.



* 각주
1) https://www.worldbank.org/en/country/rwanda/overview
2) https://knoema.com/atlas/Rwanda/topics/Economy/National-Accounts-Gross-Domestic-Product/Real-GDP-per-capita
3) 본고는 저자가 작성한 다음 연구를 참고하고 인용하여 작성되었음. 김영완. 2016. “경제성장에 대한 르완다와 부룬디 비교 연구: 국내외적인 요소 분석.” 국제지역연구 25: 1-30.
4) 유숙란. 2006. “르완다 종족갈등 이후의 성평등체제 구축과정.” 아시아여성연구. 45(1): 29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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