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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민주주의와 헌법: 인도네시아와 미얀마 사례의 비교

미얀마 / 인도네시아 고우정 성신여자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 2021/10/06

코로나19(COVID-19)로 전 세계가 멈춰버린 지금, 미얀마는 전혀 다른 이유로 멈춰 있다. 30년 전, 1989년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던 미얀마에서 다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2021년 민주화 운동은 2020년 총선거 결과에 반발한 군부 쿠데타에서 기인한다. 땃머도(Tatmadaw, တပ်မတော)로 알려진 미얀마 군부는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를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또한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를 구금하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미얀마 시민들은 30년 전의 그들과는 달랐다. 2010년 이후 단계적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경험한 미얀마 시민들은 군부 쿠데타를 용인할 수 없었다. 미얀마 각지에서 민주화 운동은 점차 격화되고 있고,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은 미얀마의 사례에서 보듯 쉬운 일은 아니다. 동남아시아 역시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지 못한 채, 권위주의 혹은 민주주의와 비자유민주주의 요소가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발전했지만 비민주주의 국가인 싱가포르, 군부 쿠데타로 과거로 회귀한 태국,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여전히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 민주화 이후, 조금씩 민주주의를 성장시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인도네시아는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였다. 1965년 수하르토(Haji Mohammad Soeharto)는 군부세력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골카르(Golkar, Golongan Karya)라는 군부의 직능단체를 중심으로 정당을 재편하면서 신질서(1966~1998)를 수립하였다. 신질서 시대의 인도네시아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받지 못하였고, 집권여당의 반대세력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수하르토의 권위주의 체제는 1998년 민주화 이전까지 32년 동안 계속된다.

그러나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하였던 수하르토 정부도 경제위기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1997년 인도네시아에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그동안 쌓였던 시민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표출되면서 정치적 자유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민주화 요구로 수하르토는 하야하게 되었고, 바하르딘 유수프 하비비(Bacharuddin Jusuf Habibie)의 과도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하비비 정부는 1999년 1월 정당 및 선거에 관한 새로운 법안들을 통과시켰고, 골카르 중심의 패권적 3당 체제를 해체했다. 그리고 정당 설립 및 정치활동에 대한 비민주적 제한들을 철폐하고, 자유로운 정당 설립과 선거 참여를 보장하였다. 이후 인도네시아는 네 차례의 헌법 개정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를 구축하였다. 

인도네시아 민주화 과정에서의 헌법 개정
헌법은 정치변혁의 내용을 반영하는 동시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국가가 변화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를 제시한다. 인도네시아는 1998년 5월 이후 2002년까지 국민협의회(MPR, Majelis Permusyawaratan Rakyat, People's Consultative Assembly) 주도로 총 네 차례에 걸친 헌법 개정을 통해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이루어 냈다. 네 차례의 헌법 개정은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 정치체제의 근간을 이룬 1945년 헌법(UUD 1945, Undang-Undang Dasar Negara Republik Indonesia Tahun 1945)1)에 근본적인 수정을 가한 것이다. 1945년 헌법(UUD 1945)은 인도네시아 독립과 함께 선포되어 인도네시아의 건국이념과 국가운영의 원리를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였다. 즉, 1945년 헌법(UUD 1945)은 선언적인 성격의 임시 헌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Indrayana 2008, 2).

1945년 헌법(UUD 1945)은 두 가지 구조적인 모순을 보인다. 1945년 헌법(UUD 1945)은 대통령에서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균형과 견제가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국가기관들의 역할과 기능, 협조관계, 권력의 경계도 명확하게 규정 하지 않아, 집권세력의 해석에 따라 임의로 운영될 수 있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1945년 헌법(UUD 1945)은 권위주의 정권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최난경 2002, 10).

이러한 이유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위해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헌법 개정이었다. 1999년 10월 국민협의회(MPR)는 압두라흐만 와히드(Abdurrahman Wahid)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헌법 개정을 시작하였다. 제1차 헌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1945년 헌법(UUD 1945)에서 주어진 대통령과 행정부의 과도한 권력 집중을 완화하여 권력을 분립하는 것이었다. 특히 대통령직을 2회에 한해 중임할 수 있도록 개정하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다음으로 국회(DPR, Dewan Perwakilan Rakyat, People's Representative Council)의 입법기능을 강화하여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구체적으로 법률의 제정을 위한 입법초안은 국회가 제출하게 되었고, 대통령의 대사 및 외교사절의 임명과 관련하여 국회가 권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였다(변해철 2004, 6).

2000년 8월 제2차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2차 헌법 개정은 지방자치의 기본원칙들과 인권에 대한 보편적 선언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가 대통령제 국가임을 분명히 하는 한편, 군부의 정치적 기능을 상실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군부와 경찰은 더 이상 비선거직, 즉 임명에 의해 국회의원이 될 수 없도록 명시되었다. 2차 헌법 개정으로 인도네시아의 모든 국회의원은 총선거를 통해서만 선출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2001년 11월 제3차 헌법 개정에서는 대통령제에 대한 기본골격을 세웠다. 특히 대통령을 직선제를 통해 선출하도록 바꾼 것이 3차 헌법 개정의 가장 큰 성과이다. 또한 3차 헌법 개정으로 지역대표의회(DPD, Dewan Perwakilan Daera, Regional Representative Council) 의원은 각 주에서 선거를 통해서 선출하도록 명문화하였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기존의 대법원으로부터 분리하여 신설하도록 합의하였다. 

2002년 8월 제4차 헌법 개정에서는 2004년 총선거를 위한 제도를 정비하였다. 4차 헌법 개정으로 직선제를 통해 대통령과 부통령의 선출이 규정되었고, 공정한 선거를 치루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KPU, Komisi Pemilihan Umum)는 독립기관으로 격상되었다. 또한 국민협의회(MPR)의 기능을 축소하고, 헌법재판소에 대통령 탄핵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였다. 가장 중요한 개정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 군부의 정치적 역할이 완전하게 폐지된 점이다. 2차 헌법 개정에서 논의된 국회에서의 군부의석 할당의 폐지를 목적으로 군부의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보장하였다. 이러한 헌법 개정으로 인도네시아는 민주적 제도를 구축하였고,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할 수 있었다.


<표 1> 인도네시아 헌법 개정 과정
* 자료: 저자 정리


미얀마 민주주의의 불안정성: 헌법에서의 군부의 안전장치
인도네시아 사례에서 보듯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헌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헌법은 국가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민주적 제도를 구축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얀마가 민주화의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민주적 헌법을 완전하게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얀마는 2010년 이후 단계적 민주화를 진행하였지만,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헌법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0년 이후, 미얀마는 단계적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화해 나갔다. 아웅산 수치의 국민민주주의연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이 합법화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2015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가 압승하면서 선거의석의 약 88%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정부가 수립되었다. 민간정부의 수립 이후, 틴조(Htin Kyaw) 대통령은 36개 중앙부서를 21개로 축소하는 중앙부서의 개편을 단행하였다. 이러한 중앙부서의 개편 조치는 아웅산 수치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키려는 의도였다. 2016년 4월 6일, 아웅산 수치는 국가고문(State Counsellor)직에 취임했고, 국가고문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국가고문부도 신설 되었다. 아웅산 수치는 국가고문부를 통해 내각을 통제하고 의회를 장악하여, ‘대통령 위의 존재’로 군림하였다(장준영 2017, 188). 

2020년 총선 역시 NLD의 압승으로 끝났다. 특히 2017년과 2018년 보궐선거에서 패배했던 NLD는 아웅산 수치의 인기와 버마족 거주지역에서의 지지를 바탕으로 2015년 총선보다 더 많은 의석을 획득했다(장준영 2021, 214-220). 상ㆍ하원과 지방의회의 전체 의석 1,117석 중 920석을 획득하면서 아웅산 수치와 NLD의 권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선거 결과를 쿠데타로 역전시켜버렸다.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는 민주주의 제도 구축을 위한 헌법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단계적 민주화 이후에도 미얀마에서는 민주적인 헌법으로의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얀마 군대는 군대뿐만 아니라 경찰과 민병대, 국경경비대 인원도 운영하며 통제하였고, 모든 공권력을 가진 군부는 여전히 미얀마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헌법상에서 국회 의석 중 25%를 군부에게 할당하는 것이 보장되기 때문에, 국가의 중요한 결정에서 군부의 정치적 결정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즉, 선거를 통해 선출된 아웅산 수치-NLD와 군부-군부의 직능 비례대표의 ‘이중적 권력 체제’가 유지된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권력 체제 속에서 정치적 불안과 쿠데타 우려는 상존해왔었다. 결국 미얀마의 단계적 민주화로 형식적인 민주화 조치는 시행되었지만 군부의 기득권은 계속 유지되었고, 군부의 기득권에 도전한다면 언제든지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존재하였다. 2020년 총선 결과는 군부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결과로 받아들여졌고, 이것이 현재의 쿠데타로 이어진 것이다. 

민주주의 구축에서의 헌법의 역할
현재 미얀마의 상황은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위해서 민주적 헌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헌법으로 개정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민주화 이후, 네 차례의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하여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균형, 사법부의 독립성 보장 등의 민주주의 제도를 구축하였다. 특히 국회에서 군부의 정치적 역할을 완전하게 상실시킴으로써 제도적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완성시켰다. 반면에 미얀마는 민주적 헌법으로의 전환 없이, 군부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비민주적 헌법 속에서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즉, 비민주적 헌법 속에서 단계적 민주화가 이루어져 체제의 불안정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군부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현재의 헌법에 대한 개정부터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미얀마의 민주화가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만약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이 성공하여 군부의 항복을 받아낸다면, 미얀마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헌법부터 개정되어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경험처럼 미얀마 역시 민주적 헌법으로 전환하고, 민주적 제도를 구축해야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가능하며, 궁극적으로 권위주의로의 회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아진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미얀마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기대해본다.



* 각주
1) 1945년 헌법(UUD 1945)은  UUD 1945 또는 UUD’45로 불리며, 인도네시아의 기본적인 법률로써,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국가행정을 위한 헌법이다. 1945년 헌법(UUD 1945)는 1945년 8월 18일 인도네시아 독립준비위원회(PPKI: Panitia Persiapan Kemerdekaan Indonesia)에 의해 비준 되었다. 이후 1950년에 헌법이 개정되면서 부분적인 수정이 이루어졌다가 1959년 수카르노 대통령에 의해 다시 복귀되었다. 1999~2002년에 진행된 4차례의 헌법 개정으로 인해 민주적인 헌법으로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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