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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미-중 패권경쟁 맥락 안에서 본 칠레의 행보와 미래

칠레 Diego Telias Universidad Católica de Chile - 202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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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WTO에 공식 가입한 이래 국제 정치 무대의 주요 국가로 등극한 중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이전보다 더욱 가시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2001년에는 장쩌민(Jiang Zemin) 주석이, 2004년에는 후진타오(Hu Jin Tao) 주석이 각각 방문하면서 중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가 크게 발전되었다. 오늘날 중국-라틴아메리카 관계는 무역, 투자, 금융 등 다양한 경제 분야에 더해 국제 정치 분야에서도 크게 성장했으며,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중국에서 추진하는 정치·경제 구상을 지원하거나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고는 라틴아메리카의 주요국 중 하나인 칠레가 미국 및 중국과 맺어온 관계를 살펴보고, 지금까지의 미-중 패권경쟁이 칠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둔다.

라틴아메리카 지역 내 중국의 부상
지난 20세기에는 라틴아메리카가 이른바 미국의 뒷마당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1세기에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글로벌 패권경쟁이 벌어지면서 라틴아메리카도 그 영향에 노출되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와 중국 간의 공식적 외교관계는 1970년대에 역내 많은 국가들이 대만을 대신해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한 중국과 수교하며 시작되었지만, 특히 경제 분야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급진전된 것은 이보다 수십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일례로 21세기가 시작된 2000년대 초반에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지역 국가들의 대중(對中) 무역액은 100억 달러(한화 약 12조 원)로 역내 무역액의 1%가량에 지나지 않았지만(Wise and Chonn Ching 2018), 현재에 이르러서는 해당 액수가 3,000억 달러(한화 약 360조 원)에 달해 중국이 미국, EU, 일본 등 전통적 무역 대상국을 제치고 최대 무역국으로 발돋움했다.

석유, 구리, 철, 대두 등 원자재의 중국 수출이 늘어나면서 브라질 등 많은 국가들은 수출 특수를 누렸고, 중국은 무역뿐 아니라 투자 및 금융 분야에서도 큰손으로 등장해 시노펙(Sinopec, 중국명 중국석화)이나 국가전력공사(SGCC, State Grid Corporation of China) 등 중국 대기업이 채광 및 전력 사업에 투자하거나 중국수출입은행, 중국개발은행 등 금융기관이 베네수엘라, 브라질, 에콰도르 등 국가에 자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비단 경제뿐 아니라 정치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08년과 2016년에 발간된 라틴아메리카 백서에서 중국은 대만 수교국 중 절반이 위치한 해당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 분야에서 양 지역간 대화의 핵심 주체는 미국을 제외한 역내 33개국간의 정부간 협력기관인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Community of Latin American and Caribbean States)를 중심으로 한 CELAC-중국 포럼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미국도 해당 지역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투자 분야에서 여전히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핵심 파트너이며, 지역 북부에 위치한 멕시코 등에 있어서는 최우선 무역대상국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미국 외교 관계자들은 일대일로 구상(BRI, Belt and Road Initiative)이나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Asian Infrastructure and Development Bank)과 같은 중국의 글로벌 구상이 지닌 위험성이나 이면의 목표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상기 맥락에서 라틴아메리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패권 경쟁에 휘말려 있는 상황이라 진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Actis and Creus 2020).

칠레의 대미(對美)/대중(對中) 관계
민주주의의 수준과 인간개발지수 상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선진국 중 하나인 칠레는 미국과 긴 시간동안 매우 유동적인 정치·경제·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Fuentes-Julio 2021). 2차대전 당시 미국은 칠레의 핵심 동맹국이었고, 그 이후로도 무역과 투자 면에서 미국은 확고부동한 최대의 영향력을 지닌 파트너였다(Morandé Lavín 1992). 또한 냉전기에는 미국이 칠레에서 발생한 우익 쿠데타를 지원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정권 수립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후 칠레에서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후에도 미국은 2003년에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규모로 투자하며 칠레의 확고한 동맹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다른 한편으로 칠레는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주의 회복 이후 칠레는 경제적 개방성을 강조하면서 호주,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등 많은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으며, 특히 남아메리카에서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첫번째 국가로서 중국의 WTO 가입을 지원하고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이처럼 중국이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나서기 훨씬 전부터 많은 분야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해왔다는 점에서 칠레가 외교 분야에서 이룬 고유한 성과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칠레는 1970년에 중국과 수교한 이래 꾸준히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피노체트의 극우 독재정권 하에서도 양국 관계에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은 칠레와 중국 모두 이념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용적 자세로 외교에 임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06년에 양국간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서 무역액도 급속히 증가하였으며, 오늘날 중국은 칠레의 제1 무역 대상국이다(<그림 1> 참조). 한편 미국과의 무역액은 150억 달러(한화 약 18조 원)로 2위를 기록했고, 그 뒤를 브라질, 일본, 한국이 잇고 있지만 1~2위와 나머지 순위 국가 간에는 큰 격차가 존재한다.

< 그림 1> 칠레와 주요국간 무역액 추이(단위: 100만 달러)
* 자료: Trade Map


하지만 여타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칠레-중국간 관계는 단순히 무역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발 대규모 투자는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철도건축총공사(CRCC, China Railway Construction Corporation), SGCC, 티안키리튬(Tianqi Lithium) 등 기업이 칠레에 큰 금액을 투자한 바 있다(<표 1> 참조). 칠레는 중국의 국제 영향력 확대 사업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핵심적 위치에 있으며(Borquez 2019), 해당 지역 내 공자학원의 본산일 뿐 아니라 기술 협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칠레-중국간 협력이 지닌 특성을 확인해볼 수 있다.

< 표1> 최근 3년간 중국의 칠레 투자 주요 사례
* 자료: Red Académica de América Latina y el Caribe sobre China & China Global Investment Tracker.


2016년에는 칠레와 중국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는 협정을 체결하면서 양국간 정치적 관계도 진전 국면을 맞이했다. 이에 더해 칠레 정부는 각 행정부 집권당의 이념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중국 시진핑(Xi Jinping) 주석이 제안하는 글로벌 구상에 긍정적으로 화답해왔다. 칠레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관련한 양해각서를 이미 체결한 상태이며, 본 구상과 관련해 베이징에서 열린 두 차례의 대면 정부 포럼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Serrano Moreno, Telias, and Urdinez 2021). 또한 칠레는 새로운 재정원이자 중국과의 연계를 상징하는 AIIB에도 가맹했다.

미-중 경쟁 아래 칠레의 생존 전략 
하지만 칠레와 중국의 관계가 언제나 순항한 것은 아니었으며, 특히 미-중 강대국간 패권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칠레도 이로 인한 압력에 노출되었다.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는 2019년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án Piñera) 칠레 대통령의 방중 일정에 앞서 칠레를 방문해 중국의 투자로 인한 부채 함정(Debt Trap)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화웨이와 중국 정부간의 연결고리를 지적한 일이었다. 중국의 슈 부(Xu Bu) 전 칠레 대사는 이 발언에 외교적 항의 의사를 전달했으며, 슈 대사는 이전 2019년에도 칠레 의원이 홍콩 시위대 지도자를 만난 일을 비판한 바 있다.

칠레 정부가 건설을 추진한 해저 케이블도 원래 화웨이의 주도 하에 아시아로 연결될 계획이었으나, 궁극적으로는 화웨이가 협력사에서 배제되고 케이블은 오세아니아의 호주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는데, 여기에도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칠레의 기술 분야 투자에서 배제된 또다른 중국 기업은 아이시노(Aisino)로, 해당 기업은 원래 여권 및 신분증 제작 사업에 참여하고자 했지만, 칠레 국민의 사적 정보 및 국가 안보 자료 유출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입찰 과정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기술 투자 분야에서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며 칠레-중국간의 긴밀한 관계가 다시 한번 조명되었다. 칠레가 중국으로부터 받은 의료 지원 액수는 액수는 1,000만 달러(한화 약 12억 원) 수준으로 지역 내 3위를 기록했으며 (Telias and Urdinez 2021), 칠레 국내에서 접종된 백신 중 절반 이상이 중국 의약품 회사에서 제조된 것이다. 또한 칠레 가톨릭 대학(Pontificia Universidad Católica De Chile)과 체결한 협약을 통해 중국에서 개발한 시노백(Sinovac)의 칠레 국내 자체 생산이 개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팬데믹의 와중에 공공보건 및 의료 등 이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더욱 긴밀한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혹자는 무역 및 기업활동 관련 자료만을 보고 중국이 칠레의 유일한 파트너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칠레는 미국과도 자국 영토 내 공동 군사훈련, 태평양 지역 군사 공조 등 국방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궤를 같이 하는 차원에서 칠레의 2020년 국방정책도 인도태평양 지역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으며, 양국군 고위급 회담도 다수 개최했다(Jenne 2021).

한편 칠레가 현재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내정치적 사안이다. 2019년의 대규모 시위사태 이후 칠레는 신헌법 제정 과정에 착수했으며, 2022년에 새로이 마련된 헌법의 채택 여부를 가리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국가 정치 체제를 확정하고 피녜라 현 대통령을 대신해 신정부가 들어설 예정이다. 국내 일각에서는 새 정부에서 이른바 적극적 비동맹 노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Fortín, Heine, and Ominami 2020), 지금까지 대외정책은 선거전에서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추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게 되든 미-중간 경쟁의 장이 될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정세를 헤쳐 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이 과정에서 한국 등 다른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을 모색해 국가적 발전을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원동력을 발굴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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