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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아세안 디지털 경제-슈퍼앱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일반 고영경 서울대학교 동남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 2022/02/17

신남방정책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아세안 지역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생산시설의 이전이 집중된 베트남이 기회의 땅이라는 흐름 속에서도 아세안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나, 반도체 병목현상과 글로벌 공급망이 화두가 되면서 새로운 시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또 다른 한 측면에서는 아세안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이 쏟아지면서 기업가치가 높은 스타트업들이 대거 등장했고 여기에 투자한 한국 투자자들이 얼마를 벌었다는 뉴스가 쇄도했고, 2021년은 아세안 유니콘의 해라고 할 만큼 많은 유니콘이 탄생했다. 무려 25개의 유니콘이 탄생해 총 46개가 되었고 유니콘 수를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 인도에 이어서 3위에 해당한다. 



아세안의 립프로깅
아세안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 20년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평균 5%의 경제성장률을 지켜왔으며, 6억 7,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소비시장이면서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대한 경제공동체이다.  비록 아세안 경제가 중위소득의 덫(middle income trap)에 걸려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으나 디지털 혁신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서도 중국이 변화한 길과 유사하게 모바일퍼스트로 립프로깅(Leapfrogging)을 이루며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되었고, 젊은 층 인구 비중이 높고 이들의 노동시장 편입이 가속화되면서 디지털 기반 서비스의 확장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기반이 위에 46개의 유니콘과 고속성장 스타트업들이 대거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세안 디지털 경제 규모
아세안 디지털 경제 규모는 2015년 320억 달러(한화 약 38조 원)에 불과했지만, 2020년 1,170억 달러(한화 약 140조 원), 그리고 2021년에는 전년 대비 49%가 증가한 1,740억 달러(한화 약 208조 원)로 추정된다(구글, 테마섹, 베인앤컴퍼니, 2021). 과거에는 2025년 아세안 디지털 경제가 3,000억 달러(한화 약 359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2021년 예상으로는 그보다 더 큰 3,630억 달러(한화 약 434조 원)에 달하고 2030년에는 7,000억에서 1조 달러(한화 약 837조 ~ 1,119조 원)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 지역이나 성장하고 있지만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 슈퍼앱 5
아세안 디지털 경제의 가파른 성장을 이끄는 한 축은 혁신을 앞세운 스타트업이고 그 가운데 게임체인저의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 행위자들은 바로 슈퍼앱이다. 슈퍼앱은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하나의 아이디로 제한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이다. 중국의 위챗(WeChat)과 알리페이(Alipay)-알리바바(Alibaba)가 그 원류이다. 아세안에서는 그랩(Grab)과 고투그룹(GoTo Group), 씨(SEA), 라인(Line), 잘로(Zalo)가 슈퍼앱의 길을 만들어냈으며, 저가 항공의 대표주자인 에어아시아(AirAsia)도 슈퍼앱 경쟁에 뛰어들었다. 슈퍼앱의 핵심요소 중 하나는 결제 수단이다. 어떤 서비스라도 이용자가 값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가 될 수 없다. 서비스 이용시에 불편함이 없이 결제가 가능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므로 모든 슈퍼앱은 자신들만의 결제 장치를 갖추고 있다. 그랩은 그랩페이를, 고투그룹은 고젝페이를 보유하고 있고 다른 슈퍼앱들도 각자의 페이먼트를 보유하고 있다. 슈퍼앱이 중국과 아세안에서 디지털 전환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유는인프라 부족이나 특정 서비스의 접근성이 낮은 여러 부문에서 혁신 솔루션을 제공한 덕분이다. 예를 들어 은행 서비스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인구가 많고 신용카드 보급률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알리페이나 고젝페이는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아세안 슈퍼앱 5를 하나씩 살펴보자.

 

아세안 1등 슈퍼앱 그랩
아세안의 대표 슈퍼앱이라면 먼저 그랩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랩은 아세안 8개 국가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라이드헤일링(차량공유)과 음식 배달, 디지털 페이먼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라이드헤일링 부문은 아세안 시장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랩은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택시 예약앱 마이택시(MyTeksi)로 출범했으나 이후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기고 택시와 일반 차량 공유로 확장하면서 단기간 내에 확장을 이루었다. 그랩이 아세안 내에서의 지역적 확대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그랩페이와 음식 배달 그랩푸드, 장보기 그랩마트, 퀵배송 그랩익스프레스 등 다양한 서비스들을 앱 안에 추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크게 줄어들어서 그랩카 매출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랩푸드와 그랩마트 등의 서비스는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그랩은 싱가포르에서 디지털 뱅킹 라이선스를 취득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랩은 이미 운전자와 이용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여러 종류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고 이들을 대상으로 대출을 비롯해 여러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본격적인 디지털 뱅킹이 시작되면 그랩의 비즈니스가 한 단계 도약하면서 수익성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네시아 슈퍼앱, 고투그룹
라이드헤일링에서 슈퍼앱으로 진화한 또다른 슈퍼앱은 인도네시아의 고젝이다. 교통혼잡으로 유명한 자카르타에는 오젝이라는 오토바이 택시가 널리 이용되었는데, 현장에서 즉석 거래하는 대신 전화로 기사와 손님을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2010년 첫 선을 보였다. 고젝이 호출 전화예약 시스템을 모바일 서비스로 전환해 고젝 앱이 런칭한 때는 2015년이었다. 앱 출시가 늦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낮은 인도네시아의 스마트폰 보급률과 비싼 데이터 이용요금제 등 시장환경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5년 고젝 앱이 출시되자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고젝은 고페이와 고푸드, 고마사지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으며 인도네시아 생활 필수 앱으로 자리잡았으며 데카콘(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2021년 인도네시아 토종 이커머스 토코페디아와 합병해 고투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시가총액 최대, 씨(SEA)
씨는 아세안 슈퍼앱 가운데 시가총액이 가장 크며 2017년 가장 먼저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씨의 모태는 2009년 중국 출신의 포레스트 샤오동 리(Forrest Xiaodong Li)가 설립한 게임퍼블리셔 가레나(Garena)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피파 온라인3’ 등 내놓은 게임이 연달아 대흥행을 거두면서 일찍이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가레나 플러스라는 게임 플랫폼에 디지털 결제 에어페이를 런칭했고, 자체 게임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2017년 씨가 내놓은 ‘프리 파이어(Free Fire)’는 글로벌 모바일 게임 1위를 차지했으며 여전히 전 세계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과 결제 다음의 목표로 이커머스를 조준했다. 씨의 자회사 쇼피(Shopee)는 이커머스 업계에서 후발주자이지만 공격적인 마케팅과 판매자 관리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더니 마침내 라자다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나우(Now)를 인수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쇼피푸드를 런칭하면서 사업 분야를 확장시켰다. 또한 2020년 싱가포르에서 디지털 뱅킹 라이선스 취득,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 BKE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금융사업에 뛰어들었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와 이커머스, 푸드딜리버리 그리고 디지털 뱅킹까지 다양한 사업부문을 보유한 씨는 팬데믹 기간 동안 주가가 1500% 이상 폭등하면서 2021년 11월 시가총액 1,970억 달러(한화 약 236조 168억 원)의 최고점을 찍기도 했다. 

태국의 라인과 베트남의 잘로(VNG)
메신저 기반 슈퍼앱으로 성장한 두 기업은 라인과 VNG이다. 라인은 네이버가 일본에서 세운 메신저 플랫폼 기업이며, 태국과 대만,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특히 태국에서 라인의 위상은 국민메신저라 불리울 정도로 일상 생활의 필수 메신저로 자리잡았다. 메신저를 기반으로 각종 뉴스와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일종의 모바일 포털로 성장했고, 딜리버리의 라인맨과 라인택시, 라인페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태국 슈퍼앱이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라인은 1등 메신저는 아니지만 하나은행과 함께 라인뱅크 바이하나를 런칭해 핀테크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베트남의 VNG는 씨와 유사하게 게임퍼블리셔로 시작해 유니콘이 되었고, 이후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다가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주목하고 2012년 잘로(Zalo)를 런칭했다. 당시 베트남에서 많이 쓰이는 스마트폰의 기본 사양이 많은 데이터를 소화할 수 없었고 인터넷 속도도 느렸기 때문에 VNG는 가볍고 단순한 메신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베트남인들이 문자보다는 음성 메시지 기능을 선호한다는 점을 파악하고 이 기능을 강조했다. 런칭 다음해부터 이용자가 늘기 시작해 2018년 사용자가 1억 명에 도달하면서 베트남 1등 메신저, 1등 인터넷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잘로의 비즈니스 모델은 다른 슈퍼앱들과 유사하다. 잘로페이가 출시되었고, 음악과 기프트 사업 등 30개 이상의 신규 서비스가 추가되었다. 현재 VNG가 기대하고 있는 또다른 분야는 클라우드 사업이다. 베트남의 경제성장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에 따른 클라우드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2020년 VNG의 매출은 2억 6,150만 달러(한화 약 3,130억 원)를 기록하고 있지만 게임 부문의 비중이 80%로 압도적이다.  

슈퍼앱 경쟁 구도
그랩과 고투그룹, 씨, 그리고 추격자 라인과 VNG 등 슈퍼앱 5는 동남아 생활밀착형 혁신을 가져왔고 아세안 어느 곳에서는 누구나 한 개 이상 사용하는 필수 앱이 되었다. 처음 시작은 라이드헤일링이나 메신저 등 하나의 분야에 머물렀지만 곧 푸드딜리버리와 전자결제 등 여러 서비스를 추가하면서 각각의 영역에서 서로 경쟁하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결제부문은 슈퍼앱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자들이 활동하면서 레드오션으로 변모하였고 이는 금융서비스로 그 경쟁이 더 확장되고 있는 양상이다. 각종 라스트마일 배송서비스 역시 슈퍼앱들이 치열하게 시장 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이는 이커머스나 장보기 등 쇼핑사업과 연결이 된다. 


두 개의 키워드- Regionalization & Hyperlocalization
슈퍼앱 5가 아세안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카피캣이나 후발주자를 넘어서 어떻게 우버나 알리바바가 인수한 라자다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지, 어떤 전략이 효율적으로 작용했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들은 여러 국가의 이용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불만 사항(Pain point) 혹은 사회문제를 찾아내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교통혼잡이나 금융 불편함은 비단 쿠알라룸푸르나 자카르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들의 이웃국가로 시장확대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랩은 설립 이듬해부터 태국, 싱가포르 등으로 진출했고 쇼피도 아세안 7개 국가로 나아갔으며 인도네시아에 집중했던 고젝 역시 해외 진출을 감행했다. 지역화(regionalization)는 확장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서 향후 성장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어 기업가치 상승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두번째는 외국기업들이 찾아내지 못한 동남아 이용자들의 수요와 선호도에 초점을 맞춘 철저한 현지화, 하이퍼로컬라이제이션(hyperlocalization) 전략이다. 우버는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지역에서도 자신들의 결제 방식을 고수하면서 이용자들의 진입을 막았고, 라자다는 판매자 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쇼피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라인이 현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해 게임과 스티커 창작자들의 마켓을 오픈하면서 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라인은 이러한 전략을 문화화(culuralization)이라 정의하고 있다. 잘로 역시 베트남 사람들이 문자보다 통화나 음성메세지를 선호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용자 수를 빠르게 늘려갈 수 있었다.

맺음말 
최소 1억 명 이상의 이용자를 갖는 슈퍼앱 5는 이들이 남기는 막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과 개인화된 맞춤 서비스들이 등장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슈퍼앱의 성공은 아세안 디지털 생태계 전체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디지털 기반 서비스를 내세운 스타트업들이 곳곳에서 탄생하면서 물류와 교육, 헬스케어, 농수산업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벤처캐피탈에서부터 현지 대기업까지 투자도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중국의 빅테크 규제 리스크로 인해 아세안 스타트업들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하루 하루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아세안 시장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과거 동남아를 바라보던 시각을 내려놓고, 적어도 이들 슈퍼앱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방향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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