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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여성 대표성과 성평등 문제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Meltem Ince Yenilmez Izmir Demokrasi University Associate Professor 2022/05/15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각지에서는 성평등과 여성 및 여아의 권익 신장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성평등을 강조하는 법과 정책, 공공 프로그램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공공 기관 및 국가적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가시적 활동이 늘어나고, 여성의 권리와 복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단체도 여럿 생겨나는 등 어느 정도의 진전이 목격되었다(WEF, 2020). 하지만 중동·북아프리카(MENA,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지역에서 여성 인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고, 해당 분야에서 나타난 진전의 속도도 너무 더뎌 유엔이 추진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SDG, Sustainable Development Goal) 2030 의제의 이상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에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UNICEF, 2020).

세계 각국은 지금까지 성평등 문제 접근법에 있어 여성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 집중해 왔지만, 여성 및 청소년을 대변하는 시민 사회의 참여 증대를 통해 각종 권익을 신장하려는 노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여성 시민 사회는 특히 여아 보호, 평화, 안전의 담론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왔는데, 일례로 유엔 안보리에서 발언한 여아 인권 활동가들은 전쟁 등 폭력 사태가 일어날 경우 해당 지역에 사는 여성에 특히 많은 피해를 가져다 준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UNICEF, 2019). 하지만 현대의 일부 권익 신장 사례에도 불구하고 개별 국가는 물론 세계적 차원에서도 나타나는 사회·경제적 영역의 성별 격차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여성 인권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한 채 정체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OECD, 2020).

성평등을 위한 중동·북아프리카의 노력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는 약 10년 전 일어난 아랍의 봄(Arab Spring)에 대한 반작용으로 각국 정부가 종교적 보수주의로 돌아서면서 여성 및 여아 인권을 옹호하는 단체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 역내 각지에서 일어나는 분쟁이 국경을 넘어선 민족 갈등이나 불평등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점(UNFPA, 2020), 그리고 가부장제에 기반한 각국 정부의 인식이 기존 정치·사회·문화적 제도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고착화하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중동·북아프리카의 성평등 분야는 전반적 진전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Burki, 2020),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도 또한 세계 평균 약 50%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25% 수준으로 집계된다. 한편 국제 노동 기구(ILO,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교육이나 보건의료 분야에서 성별 격차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및 정치 분야에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를 중동·북아프리카의 역설(MENA Paradox)이라 칭했고(ILO, 2017), 유엔은 해당 지역 여성이 금전적 대가 없이 보육·가사 등으로 제공하는 무보수 노동의 양이 남성의 4.7배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UN Women, 2020). 이 점과 관련해 유엔이 설정한 SDG 세부 목표 5.4는 공공 서비스, 인프라, 사회 보장 정책 등을 제공하고 가정 내 책임을 다양한 구성원에 분산함으로써 무보수 보육·가사 노동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 중요성을 인정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이 세부 목표 달성이 요원한 상황에 놓여 있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성평등 달성의 장애물
중동·북아프리카 전역에는 여성이 가정과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구성원으로 기능하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평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장애물이 다수 존재하며,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 요소 중 하나는 가족 관계와 관련한 법률(이하 가족법)이다. 중동·북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결혼, 이혼, 자녀 양육 등 가족 관계를 규율하는 데 있어 한편으로는 종교적 규범이,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영국이나 프랑스의 식민 통치 당시 도입된 서구식 법 문화가 혼재하는 혼합식 법체계가 나타난다. 이 중 종교적 규범이 얼마나 엄격히 적용되는지는 국가마다 편차가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튀니지의 가족법은 세속적 성격이 매우 강하지만, 예멘은 이슬람 전통의 샤리아(Sharia)법이 가족 관계를 규율하는 유일한 법으로 통한다. 하지만 종교색이 얼마나 짙게 나타나는지와는 무관하게 이들 국가에서 발견되는 가족법은 가부장제 이념에 기반해 여성을 차별하는 의식과 전통을 고착화하고, 여성 인권 침해와 성별 간 영향력 격차를 가져온다는 공통점을 지닌다(GJC, 2020).

그 외에 결혼과 이혼, 국적과 이동의 자유 등 다양한 분야를 관할하는 민사법이나 형사법 체계에 구조화된 여성 차별도 가정 내에서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법적 권한을 강화 및 보장하는 가부장제 규범의 근간이 된다. 중동·북아프리카  내의 많은 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처벌하는 규정이 미비하거나 각종 학대에 대한 자유로운 신고 절차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법적 불평등은 여성의 사회 참여도를 낮추고 폭력에 대한 취약성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게다가 헌법이나 법령, 종교적 규범을 통해 여성의 권리가 명시적으로는 보장된 국가에서도 사적 영역에서의 관습이 공식 법체계보다 우위에 서면서 국가적 차원의 권리 보장이 유명무실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이슬람 법체계에서 여성에게 보장하는 상속권도 국가가 지정한 최소 연령 규정에 미달해 결혼한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가족 관계는 남성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관할한다는 관습에 따라 관련 분쟁이 발생해도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사례는 적다. 공식적인 사법 절차를 통해 권리를 구제받고자 하는 여성들도 그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실제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는 소수에 그친다. 즉,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세속적·종교적 법령보다 관습과 사회적 압력이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여성의 권익을 제대로 보장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중동에 소재한 다수의 국가에서는 여성이 판사나 검사로 재직할 수 없도록 법으로 못 박았고, 여성의 법조계 진출이 형식적으로는 허용된 나라에서도 상위 법원의 요직에는 등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역내 일부 지역에서는 전문성을 지닌 법조인이 아닌 종교나 부족 집단의 영도자가 각종 송사를 자의적으로 처리하기도  하며, 이와 같은 과정 대부분에서는 여성이 철저히 배제된다. 또한, 특정 법률의 적용이나 해석에 관한 법원의 판단 과정에서 판사의 주관적 견해가 개입될 여지가 많다는 점도 문제이다. 상기한 여러 문제점들은 여성의 사법 체계 대표성 결여를 불러옴과 동시에 가족이나 개인 관계 영역에서 여성이 법체계를 통한 혜택을 받기 어렵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온다.

여성 경제 참여의 빛과 그림자
여성 취업 문제는 지난 30여 년간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의 고민거리였고, 아랍의 봄이 발생한 이후 가정과 공적 영역, 그리고 경제 분야에서 여성이 지는 책임에 관한 담론이 대두했다(Nazier and Ramadan, 2018). 역내 국가들은 교육이 사회 전반에 큰 이익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는 데에도 중요하다는 점을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교육을 국가적 성장 전력의 중점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지난 수십 년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내 전 학년에 걸쳐 진학률은 상당한 상승세를 보였고, 역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초등학교 진학률이 100%를 기록하고 있다(Farzaneh and Moghadam, 2003).

하지만 학교 교육 분야에서의 성별 격차가 이전보다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 시장에서의 성평등은 아직 달성이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 통계 자료에 따르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은 여성의 경제 참여도와 경제 활동 기회 면에서 세계 최하위를 차지하고(WEF, 2018), 남성과 여성 간의 실업률 격차도 여타 지역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Mcloughlin, 2013). 일례로 중동·북아프리카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율은 21%에 불과해 남아시아의 40%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60%에 비해 크게 떨어지며(Nazier and Ramadan, 2018), 이처럼 여성의 경제 참여가 제한되면서 잠재 지역내총생산(RGDP, Regional Gross Domestic Product)의 27%가 그대로 흘려 보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Abbott, 2017). 이와 같이 중동·북아프리카에서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나 여성의 교육 수준 상승, 평균 혼인 연령의 증가라는 긍정적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율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현상은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 대상이 되는 수수께끼이다(WEF, 2012).

여성의 정치적 권리 문제
중동·북아프리카에서는 분쟁, 성폭력, 여성 권익 제약, 법체계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여성의 정치 참여도가 낮은 수준에 머물렀지만, 아랍의 봄에 따른 민주화 열풍이 지역 전체를 휩쓴 이후에는 각국 정부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금 고민하고 있으며, 시위의 선봉에 섰던 여성 지도자들이 각국 정계의 전면에 진출할 자격을 충분히 지녔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이 점에 주목한 비영리 미국 NGO인 국제 민주 연구소(NDI, National Democratic Institute)에서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여성의 권익 신장과 정치 참여 독려를 통해 기존의 정치적 제약을 완화하고 사회적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UN, 2017; UNDP, 2019).

2011년에 촉발된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는 여성이 다수 참여했는데,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예멘에서는 한편으로는 여성 해방 담론이 전면에 등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운동에 참여한 여성 활동가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성추행의 대상이 되는 등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며 많은 논쟁을 낳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루어진 민주화 운동의 결과는 여성에 있어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것이었으며, 아랍의 봄 초기 이집트와 튀니지 등지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계 정당이 득세하면서 이들 신정부가 여성의 권리와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려 들 수 있다는 우려가 여성계와 진보계, 그리고 서방 언론계를 중심으로 다수 제기되었고, 신정권 등장과 함께 개편될 헌법의 내용에 대한 논쟁에서도 이와 같은 우려가 나타났다(ILO, 2017; Dalacoura,2019). 또한 상기 과정에서 여성 운동을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은 이전까지 가족 관계를 비롯한 많은 영역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던 법적 장치가 정권 교체에 따라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걱정을 내비쳤다.

여성의 권리가 정치적 이슈로 부상한 것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닌데,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권익을 보장한다는 기조를 표명한 기존 권위주의 정권, 그리고 기성 권력에 반기를 들고 새롭게 등장한 이슬람계 집권당 모두는 자신만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여성의 권리나 신체의 자유에 대한 논리를 이용했다. 하지만 혁명의 열풍이 한차례 지나간 이후로는 여성의 정치적 활동도 여타 정치 운동의 사례처럼 집권 세력이 단순히 억압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을 넘어선 무언가로 성장했다(OECD, 2014; ESCWA, 2020, UNDP, 2020). 이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여성의 권리와 정치적 영향력을 신장하기 위한 오늘날의 노력은 현존하는 기타 정치적 분쟁과도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고, 보편적인 문화보다는 각국의 고유한 정세와 맥락에 따라 더욱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결론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지난 수십 년간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미비하거나 사실상 부재했다는 사실은 주로 권위주의 정부의 비민주적 국정 운영이나 엄격한 통제 기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향후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의 가사 노동 책무가 적절한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 정책적 개혁을 실시해 여성의 경제 참여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성의 노동을 국가에서 명시적으로 관리하는 경제의 공식적 부문으로 편입하는 노력도 여성을 위한 사회 안전망 확보에 있어 중요하다. 중동·북아프리카 각국의 내부 정치적 상황이 상기한 노력을 통해 작금의 상황을 벗어나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이 활발한 활동을 통해 핵심 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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