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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지역 체험기 공모전 당선작] 아픈 심장, 볼리비아
볼리비아 박창우 - - 2022/06/09
남아메리카의 심장. 볼리비아가 가진 많은 별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 별명 답게 볼리비아는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한 중남미의 내륙 국가다.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심장이라는 별칭이 붙지만,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의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이고 그들의 문화가 아직 살아 숨 쉬며, 이들의 존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정체성을 심장처럼 뛰게 한다는 의미에서도 이 별칭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오늘날의 볼리비아는 심장이라는 별칭만큼이나 중남미대륙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는 아니다. 중남미 내에서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존재감이 작은 국가에 속한다. 가까운 과거에는 칠레나 아르헨티나, 심지어 더 약소국이라 평가받던 파라과이에도 전쟁의 패배를 맛본 아픈 상처가 있는 국가이다.
2014년 9월,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 미지의 나라로 18살 나이에 홀로 떠났다. 그곳에서 나는 약 5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나의 학창 시절의 마지막과 20대의 초반을 모두 보낸 곳이다.
볼리비아는 지리적으로 크게 수도 라파스(La Paz), 코차밤바(Cochabamba), 오루로(Oruro), 포토시(Potosí) 등을 중심으로 알티플라노(Altiplano)라 불리는 서부 고지대와 산타크루스(Santa Cruz)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 열대 평야 저지대 두 지역으로 크게 나뉜다. 문화적, 인종적으로 서부 고지대 지역은 ‘꼴랴(Colla)’로 지칭되는 원주민들의 인구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동부 저지대는 ‘깜바(Camba)’로 지칭되는 백인 크리올과 메스티소 인구가 다수를 이루는 지역으로 나뉜다. 이 두 지역은 인종, 문화, 음식, 언어, 생활양식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서로를 무시하고 경멸한다. 깜바는 꼴랴를, 꼴랴는 깜바를. 깜바들은 꼴랴들을 ‘따까뇨(tacaño)’라 부르며 지독한 구두쇠라 하고 ‘에디온도(hediondo)’라며 악취가 나는 사람들이라고도 조롱한다. 또한 꼴랴들은 깜바들을 ‘플로호(flojo)’라 부르며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이라 부른다. 사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지리적,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 요소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꼴랴들은 고지대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만큼 날씨가 춥고 물이 귀해 저지대만큼 자주 씻을 수 없던 환경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탓에 이런 모습이 있는 것이고 전통적으로 추운 지역에서 살면서 생존해야 했기에 억척스럽고 강인하다. 반대로, 깜바들은 저지대의 열대기후로 인해 고지대 사람들보다 오랜 시간 낮에 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후 만큼이나 낙천적이고 정이 많으며 따뜻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볼리비아의 동부 저지대의 대도시인 산타크루스델라시에라(Santa Cruz de la Sierra)라는 도시에 도착하여 볼리비아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산타크루스는 2022년 기준으로 볼리비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시로 지난 20년간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이 기간에 산타크루스는 볼리비아의 경제,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2021년 기준으로는 산타크루스의 인구가 볼리비아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336만 명에 도달하기에 이르렀다. 산타크루스는 중남미 대륙 전체로 범위를 확대해도 그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때문에, 볼리비아 내에서 가장 많은 해외투자와 해외이민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으리라.
나는 볼리비아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열심히 스페인어와 그들의 문화를 배워갔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 교내의 유일한 동양인으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남들보다 훨씬 눈에 띄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머나먼 타국에서 홀로 유학 생활을 하는 내게 감사하게도 좋은 친구들이 있어 줘서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학창 시절 나를 많이 챙겨준 ‘앙헬’이라는 친구는 자신을 꼴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알티플라노 지역 출신의 가족 배경을 둔 친구였다. 나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꼴랴, 깜바 구분 없이 많은 친구와 어울려 지내면서 언어도 많이 늘었고 볼리비아에 대한 이해도 넓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산타크루스 현지의 대학에 입학하여 학업을 지속했다. 내가 들어간 학교는 산타크루스 내에서도 부유한 백인들이 주를 이루는 학교였다. 나는 평소 학교로 버스를 타고 통학할 때면 버스가 신호등에 멈춰서 서 있는 동안 길거리의 원주민 꼴랴 아이들이 버스 유리창을 닦고 횡단보도에서 텀블링 묘기를 하며 구걸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때로는 버스에 올라타서 노래를 부르거나 사탕을 팔면서 돈을 벌기도 했는데 이런 어린아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등굣길에 이런 모습을 보면서 대학교 정문에 도착해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비싼 옷으로 말끔하게 차려입고 최신 휴대폰을 사용하며 자가용이 있는 백인 깜바 친구들을 보면서 큰 괴리가 느껴졌다. 이곳이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서의 모습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고 이렇게 상반된 두 부류의 사람들을 같은 날 수도 없이 마주치는 이 순간들이 나는 왠지 불편하기도 했다. 볼리비아는 여전히 표면적으로는 한 나라여도 실제로는 철저히 분열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문화적, 인종적, 경제적 분열은 볼리비아의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어왔다. 때는 2019년, 볼리비아에 대선이 있는 해였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는 2006년부터 오랜 기간 동안 볼리비아의 대통령을 지내고 있었고 2019년의 재선으로 4 연임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에 볼리비아 민중은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선거 결과에 대한 의문과 부정선거 의혹이 더해지며 볼리비아는 큰 혼란 사태로 접어들었다. 당시에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고 언제나처럼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학교는 휴교가 되었고 무려 한 달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산타크루스를 중심으로 한 볼리비아 전역에서 반정부시위가 발생했다. 이 기간 동안 도시 전체의 공공기관과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마트나 상점 또한 전혀 영업하지 않았다. 택시조차 운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이동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혹시라도 오토바이 택시에 타서 이동하는 날에는 거리에서 야유가 들렸다. 한국에 계시던 부모님도 크게 걱정하셨고 당시에 나는 많이 지치고 힘들었었다.
다행히도 반정부시위는 무력 시위가 아닌 평화적인 비폭력시위로 이루어졌고 오랜 시간 끝에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자진 퇴임하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이 정치 위기에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에 가장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었던 곳도 백인 깜바 인구가 다수인 산타크루스가 중심이었다. 이듬해 2020년 다시 치러진 대선에서 원주민 인구의 지지로 또다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집권당이었던 사회주의 운동당(MAS)이 승리하면서 볼리비아의 꼴랴와 깜바의 갈등은 지속되는 모습을 보였다.
볼리비아는 물론 높은 잠재력을 가진 나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강한 나라가 되어 중남미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많은 문제 중에서도 꼴랴와 깜바로 대표되는 인종과 문화적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물론 이 문제가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되기를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종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볼리비아 국민들의 단합을 이룰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볼리비아가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할 때면 꼴랴와 깜바는 서로의 적대는 없고 오직 볼리비아라는 정체성으로 똘똘 뭉쳐 함께 응원한다. 2019년의 대통령 부정선거 반정부 시위 때도 오직 깜바들만이 이에 저항했다면 민주주의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만큼은 볼리비아 전체가 불의에 대항해 서로가 힘을 모아 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볼리비아는 여전히 남아메리카의 심장이 맞다. 하지만 상처 많은 아픈 심장이다. 오랜 수탈과 차별의 역사가 남긴 수많은 상처는 아직도 많은 볼리비아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지난날의 상처는 오늘의 서로에 대한 불신과 경멸로 아직도 제대로 아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볼리비아 사람들의 순박함과 근면함, 그리고 겸손함을. ‘두 손은 차갑게, 심장은 뜨겁게’라는 스페인어 격언처럼 나는 꼴랴와 깜바의 뜨거운 애국심을 가진 볼리비아 사람들이 보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으로 그들의 손으로 직접 지금보다 훨씬 번영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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