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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특집이슈

[신흥지역 체험기 공모전 당선작] 강직하고 따뜻한 나라, 세르비아를 느끼다

세르비아 범윤미 - - 2022/06/09

유럽 동남부의 작은 내륙국가, 구유고슬라비아 시절 발칸의 맹주, 1차 세계대전 발발의 첫 시작점, 코소보 사태와 민족 대학살 같은 전쟁범죄와 내전으로 1990년 국제뉴스를 장식했던 나라, 그리고 지금은 세계 1위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의 조국으로,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와 4강전에서 붙은 여자 배구의 강국으로 유명한 나라 세르비아. 
  
현재보다 역사 속에서 더 명성이 높은 세르비아에서 2년이나 살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해외근무로 파견을 받았지만, 한국과의 교류가 많지 않은 곳이었고, 한인 동포도 사실상 없는 지역이었다. 직항 항공편이 없어 터키나 카타르를 경유해 14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였고, 언어는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고유어였으며, 종교는 기독교도, 카톨릭도 아닌 세르비아 정교회를 믿는 국가였다. 물리적 거리 만큼이나, 문화, 정서적으로 낯설고 생소한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세르비아에서 지내는 2년 동안, 우리 가족은 세르비아에 흠뻑 젖어 살았다. 외모도, 언어도, 음식도 다른 문화였지만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따뜻한 편이었다. 유럽 특유의 자유분방함도 편안했고, 동유럽만의 독특한 문화가 이색적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아픈 역사를 거친 민족성에 내재된 따뜻한 정서가 우리와 닮아 있었다. 


빈번하게 전쟁이 발발하는 중동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상황을 제외하고,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최근에 큰 전쟁을 겪은 국가 중에는 세르비아가 있다. 작은 나라지만,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부침(浮沈)을 온전히 맨몸으로 겪었고, 전후(戰後) 경제는 꺾일 대로 꺾였다. 이를 상징하듯, 수도인 베오그라드 도심 지역에는 아직 1999년 3월 나토(NATO)의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전 유고슬라비아 육군본부 건물이 부서진 모습 그대로 철골을 드러내며 서있다. 전언에 의하면 파괴된 건물을 복구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던 사정이 있기도 하지만, 전쟁의 기억을 남겨두기 위해서 재건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과거의 상처가 세르비아의 관광책자에 ‘관광 명소’로 소개되어 있다는 점이 역설적인데, 아픈 과거가 현재의 돈벌이가 된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의 구시가지는 전쟁으로 파괴되지 않은 오래된 건물들이 꽤 남아 있는데, 오스트리아나 헝가리의 구시가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높은 건물보다 낮고 고딕 형식의 기둥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오래된 교회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도심 한가운데 유명한 칼레메그단(Kalemegda)은 성벽은 중세 유럽에 돌아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풍스럽다. 

 이곳에서 본 도심은 하늘이 탁 트여 있다. 높은 건물이 우후죽순으로 솟아 있는 서울의 중심과 달리, 넓고 높은 하늘은 시원하고 시야가 탁 트여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중세의 도시는 이런 느낌이었을까. 성곽 옆으로 흐르는 다뉴브강과 사바강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었겠지. 오래된 돌과 흐르는 물과 넓은 하늘이 주는 편안함을 이 곳에서 한껏 즐길 수 있었다.

 베오그라드는 수도이지만 사통팔달의 위치는 아니다. 한강이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어 서울이 위, 아래, 좌우로 자연스레 확장하는 경우와 달리, 베오그라드 도심은 북쪽과 서쪽이 큰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도심확장을 위해서는 다리(Bridge)가 필수적이다. 사바강을 잇는 서너 개의 다리가 베오그라드의 교통의 핵심이자 도시의 동맥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노비베오그라드(New Belgrade)라는 신도시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이 말하자면 세르비아판 신도시에 해당한다. 
  
베오그라드에서 노비베오그라드로 나오는 길목 곳곳에 외국 투자를 받은 높은 건물들이 속속 올라가고 있다. 도심에 비해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세르비아의 경제가 외자유치로 열심히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감상에만 젖어 아쉬워할 일은 아닐 것이다. 높은 건물들은 주로 고층 아파트, 외국계 대기업이 입주한 상업시설 등이며 당시만 해도 시범적으로 운행하던 메트로 공사도 아직 한창 진행 중이다.

다른 발칸 국가들과 마찬 가지로, 세르비아에도 중국의 자본이 대규모로 쏟아지고 있다. 인접국만 8개국인 대륙국가로 도로, 철도, 가스관 등 인프라가 경유하기에 핵심적인 지리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기획하는 헝가리에서 그리스로 이어지는 대규모 국제 철도 건설 사업에 세르비아가 중심 구간을 차지하고 있으며, 2023년 완공을 목표로 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간 고속철도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어서 그런지 현지인들이 동양인에 대한 어색함도 크지 않은 편이다. 덕분에 한국인들이 겪을 이국인으로서의 불편함은 많이 해소되어 있는 상태였고, 한국 식당이나 한식 재료를 찾기 어려운 먼 나라에서 중국이라도 가까이 있어 한국인 입장에서 실생활에 유용한 경우가 많았다. 노비베오그라드에 있는 70지구는 유명한 중국인 집성촌인데, 허름하지만 세상의 모든 ‘메이드 인 차이나’가 몰려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 물건의 대부분은 세르비아인들이 구매했다. 

 그렇다고 세르비아가 중국에만 온전히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르비아의 가장 큰 국가적 목표는 유럽연합(EU) 가입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직 유럽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특히 독일, 러시아와의 관계가 긴밀하다. 러시아와는 역사적, 사상적, 정서적 유대가 깊다면, 반대로 독일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에 가깝다. 누군가 세르비아 사람들을 ‘가난한 독일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직 개도국에 속하면서도 민족적 자긍심이 강하고 독일식 발전 모델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가까운 유럽 선진국들의 영향을 받은 제도나 제조품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생활하기 편리한 측면도 있다. 리들(LiDl)이나 메트로(METRO) 같은 대형 도소매업체가 입주해 있고, 독일, 헝가리 등 유럽 제조 상품을 구하기도 어렵지 않다. 유럽 명품 향수나 화장품, 의류 같은 기성품은 운송비 절감 덕분인지,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머지않아 세르비아가 유럽연합 권역으로 포함된다면,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지금도 노르웨이에서 시작해 그리스까지 이어지는 유명한 E-75 고속도로가 세르비아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어, 물류측면에서는 사실상 유럽 권역에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에게 주는 가장 큰 이점은 세르비아를 기점으로 여행할 수 있는 국가들이 많다는 점인데, 인접한 8개국(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코소보)을 포함해서, 그리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까지 육‧항로 접근성이 좋다. 아직 세르비아의 교통 인프라가 주변국에 비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내륙국의 장점을 활용해 중간 경유지로서 입지도 활용할 날이 조만간 오지 않을까 예상한다. 
  
이러한 물류 장점과 유럽 접근성 덕분에, 우리나라 대표 제조업체들도 조금씩 세르비아로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자동차 부품 같은 제조업 부문에 투자가 많은데, 세르비아의 저비용, 우수한 인적자원도 주요 이유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세르비아 인건비 수준은 높지 않지만, 젊은 인력들은 대부분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유하고 있고, 사회주의 체제를 겪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근면성을 보이는 편이다. 현지에서 만난 파트너들은 한국 정부, 한국 기업에 상당히 협조적이었고, 개발도상국 특유의 활기와 적극성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세르비아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빨리 일어서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희망적으로 말했다. 전쟁으로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솟아오른 우리나라이기에, 그들의 심정을 더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십 여 년 전 전쟁으로 많은 젊은이들을 잃었지만, 다시 새로운 젊은이들이 자라나 재기를 꿈꾸고 있는 점도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닮았다. 아픔을 노력으로 승화하는 억척스러움도 느껴졌다. 


이러한 역사 때문인지 세르비아 사람들 내면의 슬픔 옆에 따뜻한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 동네 쓰레기장에 가보면 한 귀퉁이에 늘 새로운 빵이 봉지에 담겨 걸려있었다. 배가 고픈 누군가를 위해 매일 빵을 사다 놓는 마음이 바로 이 따뜻한 슬픔이 아닐까. 이것이 세르비아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존심과 긍지도 놓지 않는다. 언젠가 차가 밀리는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저글링(juggling)을 하며 구걸을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한번은 공을 놓쳐서 ‘공연’이 엉망이 돼 버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팁을 내밀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망친 공연에 대한 팁을 거부한 것이다. 그는 극한의 밑바닥에서도 자신이 지키고 싶은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세르비아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난 2년간 지켜본 세르비아의 모습이기도 했다. 세르비아는 따뜻하면서도 강직한, 멀지만 가까운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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