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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잔게주르 회랑: 코카서스 남부 경제 협력 강화의 미래 기반
러시아ㆍ유라시아 일반 Orkhan Baghirov Center for Studies of the South Caucasus (CSSC) Leading Advisor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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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의 종식에 따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3개국이 2020년 11월 10일에 서명한 공동 성명문은 이른바 잔게주르 회랑(Zangezur Corridor)의 개통을 주요 구상으로 제시했다.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은 양국 간 국경 폐쇄 및 고속도로와 철도선 연결 중단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여기서 양국을 잇는 도로망이 지나던 요충지가 바로 아제르바이잔에서 역사적으로 잔게주르라고 통칭해온 아르메니아의 메그리(Meghri) 지역이다. 소(小)코카서스(Lesser Caucasus)산맥과 아나톨리아(Anatolia)고원, 자그로스(Zagros)산맥의 연결점에 위치한 잔게주르는 전통적으로 역내·외 국가 간 무역과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해 왔고1),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지닌 잔게주르 회랑이 성공적으로 개통된다면 인접국을 서로 연결하는 수송망 건설과 경제 협력 강화 차원에서도 큰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그림 1> 참조). 잔게주르 회랑이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대표적 혜택으로는 코카서스 남부 국가들의 경제 발전과 상호 관계 개선, 코카서스 남부의 수송 중심지 도약, 그리고 튀르크어권 국가기구(OTS, Organization of Turkic States) 회원국 사이의 통합 강화를 들 수 있다.
<그림 1> 잔게주르 회랑의 지도상 위치
* 자료: Vahid. T., “If the Zangezur corridor is not opened, Lachin corridor can be closed”, Azvision, November 18, 20212)
잔게주르 회랑 개통의 첫번째 수혜자: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와의 갈등이 발생한 이래 아제르바이잔의 월경지인 나크치반 자치공화국(NAR, Nakhchivan Autonomous Republic, 이하 ‘나크치반’)은 본토와의 연결로를 상실해 오랜 기간 경제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었다3) . 나크치반은 아제르바이잔 본토와 직접 접하지 않기에 최단 육상 수송로가 아르메니아 영토를 경유하는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의 발생과 함께 양국 간 국경이 폐쇄되면서 고립된 내륙 월경지가 된 나크치반의 주민들은 대규모 식량 부족을 비롯해 다양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제르바이잔은 나크치반과의 교류를 통해 해당 영토의 경제적 발전을 지원하는 데 있어 이란 영토를 거쳐 빙 돌아가는 수송로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송 거리가 늘어남에 따른 각종 안보 및 경제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만약 잔게주르 회랑이 개통된다면 나크치반이 아제르바이잔 본토 서부로 다시 연결되면서 상기한 경제적 고립 및 안보 문제를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잔게주르 회랑은 이외에도 아제르바이잔의 주요 교역국 중 하나인 튀르키예와의 수송 거리를 줄이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현재 아제르바이잔과 튀르키예의 유일한 접경지는 나크치반에 위치한 11km 길이의 국경선인데, 지금까지는 양국을 오가는 화물이 조지아나 이란과 같은 제3국을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면서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했다4).
하지만 잔게주르 회랑을 통해 아제르바이잔과 튀르키예 사이에 직통로가 열리게 된다면 이전까지 사용되던 바쿠-트빌리시-카스(BTK, Baku-Tbilisi-Kars) 철도선에 비해 수송 거리가 약 343km가량 단축될 것으로 예상되며5), 이에 따라 교역 효율성 향상과 양국 간 경제 관계 개선이라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아제르바이잔과 튀르키예는 잔게주르 회랑 개통과 함께 튀르키예 동부 지역에 신규 철도선을 신설해 수송 연결망을 강화하는 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2020년 2월에 양국 정부가 체결한 양해각서에서 튀르키예는 기존 BTK 철도선에 나크치반을 통과하는 추가노선을 건설해 철도 수송량 한도를 늘린다는 구상을 공개했다6). 여기서 언급된 230km 연장의 BTK 철도선 추가노선은 나크치반을 거쳐 튀르키예 동부의 이디르(Iğdır)까지 이어지며, 건설에 투입되는 자금은 2억~2억 7,000만 달러(한화 약 2,600억~3,500억 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7). 본 추가노선이 완공될 경우 아제르바이잔과 튀르키예 각지를 잇는 순환 철도선이 새로이 등장하게 되면서 양국 교류가 증진되고, 이에 따라 잔게주르 회랑이 지니는 중요성도 한층 더 높아지게 될 전망이다(<그림 2> 참조).
<그림 2> 잔게주르 회랑 주변 아제르바이잔-튀르키예 연결 철도선
* 자료: Yenisafak.com, US expert touts Azerbaijan’s efforts on Zangezur corridor, slamming Armenian apathy, August 15, 20218)
잔게주르 회랑 개통의 두번째 수혜자: 아르메니아
비록 아르메니아 여론은 잔게주르 회랑을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여기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9), 사실 아르메니아도 잔게주르 회랑 개통을 통해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전 분쟁에서 아르메니아가 일부 영토를 획득한 대가로 자국 국경의 80% 이상을 차지10)하는 아제르바이잔 및 튀르키예와의 국경이 근 30년간 폐쇄되면서 아르메니아의 경제도 국외로 떠나는 이주민 증가와 빈곤율 상승 등의 큰 타격을 입은 바 있는데11), 이에 따라 1991년부터 2020년까지 아르메니아의 인구가 357만 명에서 296만 명까지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12).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타격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는 민족주의적 감정을 바탕으로 영유권 주장을 고수함으로써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 측면에서 2020년에 일어난 44일간의 전쟁 결과 아르메니아가 기존에 점유했던 영토를 포기하게 된 점은 오히려 아르메니아가 경제적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잔게주르 회랑의 개통은 아르메니아가 이전까지 보였던 공격적 정책을 철회하는 대신 그 반대급부로 주변국과의 경제적 통합을 진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비록 아르메니아의 민족주의 진영과 일부 전문가들은 양국을 연결하는 새로운 수송로 개통을 확약한 2020년 11월 10일의 공동 성명문13) 내용이 자국의 주권 영토인 메그리(Meghri) 지역에 대한 통제 상실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여기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14), 회랑 개통이 지금까지의 경제적 고립이 초래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은 아르메니아 정부에 있어서도 본 구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만한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는 유인책이 되어줄 것이다.
잔게주르 회랑이 아르메니아에 가져오는 구체적 혜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제르바이잔을 경유하는 대체 수송로가 새로 등장하면서 아르메니아의 주요 교역국인 러시아와의 연결망이 강화된다. 지난 2008년 러시아와 조지아가 벌인 전쟁 이후 압하지야(Abkhazia)를 지나던 철도선이 단절되면서 아르메니아와 러시아를 잇는 육상 수송로는 날씨 조건에 따라 수시로 폐쇄되는 라스 고지대(Upper Lars) 고속도로 하나로 한정되어 왔다15). 따라서 잔게주르 회랑이 개통되면 안정적인 수송로가 새로 열리면서 러시아를 비롯한 여타 유라시아 경제연합(EEU, Eurasian Economic Union) 가맹국과의 경제 관계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3> 코카서스 남부의 국가 간 철도선 부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