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의 좌파정권 등장 배경

콜롬비아 차경미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 2022/08/19

2022년 콜롬비아 대선결과
2022년 5월에 실시된 콜롬비아의 대선은 역사상 최초의 게릴라 출신 대통령이 탄생한 선거였고, 최초의 좌파 정권의 등장, 최초의 좌파 진영의 동맹 형성 그리고 최초의 패권적 거대양당의 몰락 등 ‘콜롬비아 역사상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장 많이 붙일 수 있는 선거였다. 결선 투표에서 당선된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의 러닝메이트인 프란시아 마르케스(Francia Márquez) 역시 최초의 흑인 부통령이다.

<그림 1> 지역별 지지 현황



<표 1> 후보자별 득표 현황

* <그림 1>, <표 1> 자료: Elecciones en Colombia: el huracán electoral que barrió a los políticos tradicionales (incluido el uribismo) Luis Fajardo BBC Monitoring 30 mayo 2022 재구성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보수적인 국가인 콜롬비아에서 좌파 정권이 등장했다. 20여 개의 좌파 정당과 사회 운동조직의 연합체인 ‘콜롬비아에 의한 역사 협정(El Pacto Histórico por Colombia)’당의 후보 페트로가 2차 결선투표에서 50.4%로 무소속의 로돌포 에르난데스(Rodolfo Hernández) 후보에게 승리했다. 페트로는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종이 분포된 태평양과 카리브 해 지역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수도 보고타에서도 페트로를 지지했다.    

페트로의 승리는 독립 이후 지속되어 온 전통적인 패권적 양당제의 패배이며, 지난 20년간 최고의 권력을 누려온 알바로 우리베(Alvaro Uribe)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를 의미한다. 무소속의 에르난데스 후보의 부상도 콜롬비아의 새로운 변화를 반영한다.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젊은 층과 소통하며 시대적 변화와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후보라는 이미지 부각을 통해 기존 정치세력과 차별을 유지하며 인기가 급상승하였다(Noticias Caracol. 31 de mayo de 2022). 

사실 선거 초반 페트로의 대항마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구티에레스(Federico Gutiérrez) 후보였다. 그는 2021년 10월 여론조사에서 페트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11월 유력대선후보 초청 기자토론회에 페트로 그리고 파하르도와 함께 초대된 구티에레스는 페트로에 대한 대중적 두려움을 확산시키며 반(反) 페트로 세력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우파연합 정치동맹인 ‘콜롬비아 연합(El Equipo por Colombia)’당은 구티에레스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준비에 박차를 가했다(El País, 14 de mayo de 2022).

그러나 구티에레스는 현안에 대한 뚜렷한 정책적 대안과 구체적인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페트로에 대한 두려움 확산에 집중하였다. 또한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Medellín)의 전 시장을 역임한 구티에레스의 정치적 인지도는 지역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현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구티에레스는 ‘현상유지’를 상징하는 후보로 인식되었다. 결정적으로 선거 일주일을 앞두고 콜롬비아의 주요 일간지 ‘엘 에스펙타도르(El Espectador)’가 구티에레스 선거캠프 총괄본부장인 세자르 히랄도(César Giraldo)의 마약 조직과의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보도(El Espectador, 14 de mayo de 2022)함에 따라 우파세력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중도를 표방하던 파하르도, 잉그리드 베탕쿠르(Ingrid Betancur) 그리고 알레한드로 가비리아(Alejandro Gaviria) 후보는 일관성 있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유권자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유권자에게 준비된 후보는 페트로 였다. 

II. 콜롬비아 게릴라조직 M-19와 페트로
페트로는 게릴라 출신이다. 콜롬비아의 게릴라 활동은 1940년대 중반 보수집권당의 탄압정치 아래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본격화되었다. 이후 쿠바혁명의 영향으로 1960년대 조직적인 좌파 게릴라 운동이 확산되었다. 1963년 민족해방군 (ELN, Ejercito de Liberación Nacional) 그리고 1964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이 등장했으며, 1967년 공산당의 분열로 자유민중군 (EPL, Ejercito Popular de Liberación)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게릴라조직은 1970년대 중반부터 무력으로 정부를 위협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마약 조직과 연계하여 조직을 유지하였다. 

1970년대 접어들어 부정선거로 인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집권 보수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상황아래 1973년 민족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게릴라조직인 4월 19일 운동 M-19(Movimiento de 9 de Abril, 이하 M-19)가 등장하였다. M-19는 지식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게릴라 조직이다. 페트로는 1977년부터 M-19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1985년 체포되어 2년 동안 투옥되었다. 석방이후 조직의 핵심인물로 성장하여 최고사령관 카를로스 피사로 레온고메즈(Carlos Pizarro Leongómez) 그리고 안토니오 나바로 볼포(Antonio Navarro Wolff)와 함께 비질리오 바르코 바르가스(Virgilio Barco Vargas) 집권당시 평화협상을 주도하였다. 

게릴라 조직의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콜롬비아 정부는 게릴라에 대한 사면조치와 사회복귀를 지원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1990년대 초 다수의 불법무장조직은 정전협정을 체결하며 세력이 약화 되었다. M-19는 1990년 게릴라조직 최초로 정전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최고사령관 피사로는 민주동맹 M-19(AD-M-19, Alianza Democrática M-19)를 조직하여 정치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대선후보로 다양한 정치 행보를 이어가던 피사로가 1990년 4월 26일 괴한의 습격으로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게릴라 출신 정치지도자에 대한 우익 암살단의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자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 게릴라 조직은 무력으로 정부를 더욱 위협하였다(Diego Felipe, 2014:7-17). 피사로의 사망으로 나바로는 AD-M-19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그는 정부와의 전쟁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조직의 완전 무장해체를 추진하였다. 그리고 AD-M-19후보로 대권에 도전하여 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나리뇨(Nariñ)주 지사, 시장, 상원위원을 역임하며 좌파진영의 정치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우파집권강세 속에 AD-M-19의 핵심인물 나바로, 페트로 그리고 에버스 부스타만테(Everth Bustamante)은 각각 ‘대안적 민주주의 정점(el Polo Democrático Alternativo)’, ‘인간답게 사는 콜롬비아(Colombia Humana)’ 그리고 ‘중도민주(Centro Democrático)’라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여 우파 견제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III. 페트로의 승리배경
페트로 승리의 배경은 첫째 ‘우리베 주의’의 몰락이다. 2000년대 접어들어 남미전역에서 좌파 정권 우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콜롬비아에서는 우리베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더욱 보수화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지난 20년간 콜롬비아 정부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우리베 주의’였다. ‘우리베 주의(Uribista)’는 콜롬비아의 전통적인 거대양당의 패권을 계승한 보수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다. 

2002년 등장한 우리베 정권(2002~2010년)은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어 국내 안보를 위협하는 마약과 게릴라조직에 대한 강경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병력증강과 함께 민병대를 동원하여 게릴라에 대한 전면전에 돌입했다. 그 결과 무력 분쟁은 격화되었으며, 점령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우익무장조직은 농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차경미, 2009:429-432). 이러한 상황 아래 국내외적인 비난에 직면한 우리베 정권은 우익무장조직을 해체하였으나, 해체 후 우익 무장조직은 신흥불법무장조직을 결성하여 마약 및 무기 밀거래에 개입하였다. 결국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우리베 정권은 붕괴되었다. 

2010년 출범함 후안 마누엘 산토스(Juan Manuel Santos) 정부(2010~2018년)는 무력분쟁 확산으로 인한 실향민 문제의 심각성과 국제사회의 평화협상 권고를 수용하여 평화구축을 위한 안보정책을 수립하였다(Alejo Vargas, 2011: 14-23). 무엇보다도 국내최대 게릴라조직 FARC 그리고 ELN과의 평화협상에 주력했다. 2016년 콜롬비아 정부와 FARC의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산토스 정부는 협정 이행을 위한 다양한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국제사회 지원에 의존하여 추진된 산토스의 협정이행정책은 재원 부족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을 초래했다.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농민과 원주민 시위가 전개되었으며 우리베를 중심으로 한 우파세력은 평화협정 반대시위를 주도하였다.  

2018년 우리베의 지지로 정치적 경험이 전무 한 이반 두께(Iván Duque) 현 정부가 등장하였다. 우리베는 정권의 실세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두께 정부 등장 이후 평화협정 이행을 위한 정책이 수정 및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아래 정부의 평화협정 이행의지와 사회통합 능력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팽배해졌다. 결국 현상유지를 상징하는 ‘우리베 주의’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범국민 시위가 확산되었다.  

둘째, 불완전한 평화협정이다. 2016년 콜롬비아 정부와 최대 게릴라 조직 FARC 사이 체결된 평화협정은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을 의미했다. 토지개혁, 마약생산 및 밀매퇴치, 내전희생자보상 등 평화협정의 주요쟁점은 지난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콜롬비아 내전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콜롬비아의 지속가능한 평화유지를 위한 최대 과제이기도 하다. 그동안 평화협정 반대세력은 시위를 주도하며‘관대한 정부의 희생’으로 성사된 협정이 또 다른 폭력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협정체결 이후에도 평화협정을 반대해온 FARC 잔존세력과 우익무장조직에 의한 폭력이 발생하였다. 평화협상을 거부한 제2의 반군 ELN는 FARC에서 이탈한 인력을 충원하여 대화보다는 무력으로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평화협정이행 정책추진 과정에서 농촌개발과 토지개혁을 둘러싼 갈등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FARC는 마약생산 및 밀매에 의존하며 활동 자금을 확보해 왔다. 평화협정은 체결되었으나 불법작물 거래나 생산은 감소하지 않았으며 남부 마약생산지에서 FARC의 경제적 특권은 유지되고 있다. ELN 역시 마약재배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해 왔으며 FARC잔존 세력을 흡수하여 마약 밀거래에 개입하고 있다.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ELN는 지속적으로 조직의 목적달성을 위해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와 실업 증가 그리고 소득 불평등 심화는 국내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기악화 상황에서 두께 정부가 추진한 의료서비스의 민영화, 공공요금인상 및 조세개혁으로 국민의 부담은 가중되었다. 노동자들은 연금과 임금문제를 놓고 전국적인 파업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평화협정을 주도했던 주요 인물 120여 명이 연이어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의 평화협정이행을 촉구하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대학생 역시 공공교육 확대를 주장하며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였다. 군을 동원한 정부의 강경 대응은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동반하였고 결국 정권퇴진과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격렬한 시위가 전개된 지역일수록 페트로에 대한 지지는 급상승하였다. 

넷째, 지난 20여 년간 라틴아메리카 지역정부의 미국에 대한 태도와 국제환경은 크게 변화하였다. 미국이 배제된 지역기구의 역할은 강화되었으며 좌파 정권 등장의 우세와 반미주의 확산으로 중국이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2018년 중국이 세계적 사업인 ‘일대일로’ 구상에 라틴아메리카를 포함시키고 세계전략을 위한 동맹의 일환으로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의 역할을 확대하였다. 중국의 라틴아메리카지역 내 영향력이 증대함에 따라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지역을 대상으로 마약 및 이민 문제 등 공동해결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쿠바와의 외교관계도 정상화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미국 대통령 등장 이후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에 기초한 일방적 외교정책은 협력동반자로서의 미국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지역 정부의 신뢰가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온두라스 쿠데타, 니카라과 다니엘 오르테가(Daniel Ortega) 정부에 대한 제재,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친미 임시 대통령 인정 등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라틴아메리카 지역 정부에 대한 정치적 개입은 반미주의 확산과 함께 역내 연대강화의 계기가 되었다(Wolf Grabendorff, 2018:47-61). 

IV. 결론
최근 대선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또다시 ‘핑크 타이드(Pink Tide, 좌파 물결)’ 형성 가능성이 높아졌다. 좌파 정권 퇴조 속에 우파가 집권했으나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경제사정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공요금 인상과 유류보조금 폐지와 같은 긴축정책을 통해 국민적 불만이 야기되었다. 칠레, 볼리비아, 에콰도르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콜롬비아에서도 대규모 파업이 발생하였다. 

그동안 콜롬비아는 전통적인 미국의 맹방으로서 미국의 대외정책에 순응해왔다. 콜롬비아는 라틴아메리카 유일의 한국전 참전국으로 1960년대 ‘진보를 위한 동맹’의 최대 수혜국이었으며, 1990년대 마약 생산지에 대한 원천봉쇄 일환으로 추진된 ‘플랜 콜롬비아(Plan Colombia)’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콜롬비아 정부는 힘에 의한 국가안보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콜롬비아의 무력 분쟁은 더욱 확산되었다. 결국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통한 콜롬비아의 군사화는 인권, 환경, 그리고 난민 문제와 같은 새로운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콜롬비아 정부의 평화협정 이행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지원감소는 역내 좌파 정권 강세분위기 속에 ‘현상유지’에 대한 변화를 기대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