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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 동유럽의 ‘신냉전 무대’ 부상과 그 시각

중동부유럽 일반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대학 교수 2022/09/05

우크라이나 전쟁과 동유럽의 ‘신냉전 무대’ 부상
‘경계 지역론’ 추종자인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은 “유럽의 위기는 유럽이 지닌 지정학적 요인에서 발생할 것이며, 그 시작은 유럽의 변경, 즉 러시아와의 경계 지역에서 비롯될 것이다”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대(對) 중국·러시아 간 ‘신냉전’ 가속화 속에 일어난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의 주장을 확인해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은 국가 간 위기감과 분열이 더욱 증폭되는 중이며, 전 세계 모든 지역에 경제적 심각성과 세계대전 불안감 역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은 근대 이후 러시아와 서유럽 간 ‘경계 지역’이자, 양자 간의 ‘완충지대’였던 동유럽 국가들을 21세기 ‘신냉전’ 무대의 한가운데로 소환한다는 점에서 국제 사회의 고민이 크다 할 것이다. 
   
국제관계사적 관점에서 동유럽의 ‘신냉전 무대’ 부상 배경에는 크게 ‘동유럽을 바라보는 러시아의 전통적 시각’과 ‘NATO 동진과 영향력 확대’라는 두 가지 요인이 자리한다. 첫째, 러시아의 전통적,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18세기 이후 동유럽 진출은 러시아 국력 확대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다. 13세기 몽고 침략과 이후 약 250년간 이어진 그 지배 유산은 러시아를 오랫동안 유럽의 변방으로 취급받게 하였다. 하지만 표트르(Pyotr) 대제 이후 서구주의와 근대화에 성공하고 스웨덴과의 북방전쟁 승리, 흑해 연안 진출 등으로 러시아는 동유럽 영향력 확대와 함께 유럽 질서 속 중요 강대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도중 러시아 혁명(1917) 발발로 인해 잠시 그 영향력을 상실해야 했지만,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배경으로 동유럽에서의 완전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체제 전환은 ‘냉전’ 시기와 정반대 상황을 불러왔고, 동유럽 상당 국가들은 EU, NATO 가입을 통한 미국, 서유럽 영향력 하 편입을 서둘러 진행하였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의 NATO 가입은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의지에 맞서려는 생존 본능에 따른 것으로, 여러 현실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을 강행한 시도 또한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러시아의 위기감과 함께, 러시아 부활을 국가 목표로 내건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을 도발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동유럽이 ‘신냉전 무대’로 급부상하게 된 또 다른 배경에는 동유럽을 향한 NATO의 영향력 확대 그리고 이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을 들 수 있다. 미국은 체제 전환 직후인 1990년대부터 동유럽 영향력 확대 전략을 모색해 왔고, 이에 따른 ‘NATO 동진 구상’을 추진하게 된다. 1990년대 동유럽 체제 전환과 러시아 영향력 쇠퇴는 동유럽을 향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 의지에 큰 동력을 제공하였지만, 미국으로서는 동유럽을 전통적 ‘이해 영역’으로 간주하던 러시아의 입장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것은 양자 간 상호 이해가 합치된 1997년 5월 ‘NATO-러시아 기본법 조약’의 결과물로 이어지게 된다. 동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NATO의 동유럽 확대를 묵인했고, 대신 NATO는 신규 회원국 영토에 상주 군사 병력과 핵무기 배치, 항구적 군사기지를 두지 않겠다 약속해 주었다. 러시아는 동유럽에 대한 미군의 상주 군대 주둔을 막음으로써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미국 또한 동유럽으로의 영향력 확대를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99년 UN과 러시아의 반대를 무시한 NATO의 코소보 공습 그리고 그 대응에서 비롯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장악은 이제 더 이상 양자 간 합의가 유효하지 않음을 확인시켰다. 2015년 이후, 미국은 NATO 집단안보 조약 제5조를 들어 동유럽 지역에서의 신속대응군 규모 확대를 비롯한 대규모 군사 훈련을 단행해 왔고, 2016년 6월 미국은 NATO 국방장관 회의를 통해 동유럽 방어 목적의 신속 대응군 규모 확대는 물론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위기 발생 시 즉각적인 병력 동원 체제를 갖추기로 한다. 더불어 동년 7월 비(非)회원국인 우크라이나가 참여한 가운데, NATO 정상들은 2017년 이후 본격적인 동유럽 파병이란 결의를 이끌어 내게 된다. 러시아는 이를 강력히 비난하였고, 곧바로 폴란드와 발트3국 등 국경 지역에서 벨라루스와 함께하는 대규모 공동 군사 훈련 및 군사력 강화를 병행해 나갔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이제 미국은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의 미군 상주 병력 구축을 공식화하는 중이다. NATO의 동진 속에 미군의 동유럽 주둔 구체화는 과거 서유럽과 러시아 간 ‘경계 지역’ 및 ‘완충지대’였던 동유럽을 이제 미국-러시아 간 직접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신냉전’의 가장 첨예한 갈등 무대로 부상하게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동유럽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동유럽의 시각에서 이번 전쟁 시작 요인에는 첫째, ‘신냉전’ 가속화 속에 동유럽에서의 기존 주도권 유지를 위한 미국의 전략적 이해 추진과 이상주의적 가치 확대, 둘째, 동유럽 전통적 이해 영역 확보 의지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오판, 셋째,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미숙한 위기관리 능력과 지정학적 특징 간과 등이 자리한다. 
   
전쟁 시작 요인에 있어 동유럽 국가들은 우선, ‘신냉전’ 가속화와 이에 따른 미국의 조급함을 지적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 중인 미국 조 바이든(Joe Biden) 정부의 지나친 블록화 작업 추진에 대해 동유럽 국가들은 ‘신냉전’ 가속화 과정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의 이상주의적 국제질서 구상에 따른 것이라 이해한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가 추진 중인 국제 사회의 양분화, 즉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블록’ 대(對) ‘비(非)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블록’, 즉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대결 구도가 중국과 러시아를 크게 자극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특히 미국이 자국 중심의 ‘민주주의 블록 구상’을 국제 사회 질서 유지의 ‘선의 행동’으로 구체화하면서 양자 간의 충돌 선상에 자리한 동유럽에서 그 위기가 확대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에서처럼 이에 자극받은 러시아가 비이성적 행동으로 동유럽에서의 영향력 확대 시도를 이어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냉전 시기 대(對)소련 봉쇄전략 창안자로 ‘봉쇄의 아버지’로 불린 조지 케넌(George Kennon)을 비롯해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등 미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전략 접근주의자들은 동유럽의 경계 지역과 완충지대 역할론을 고려해 러시아를 자극하지 말 것을 요구해 왔다. 실제, 과거 제1·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통해서도 동유럽에서의 충돌은 곧바로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해 왔던 게 사실이다. 즉, 동유럽은 자신들의 ‘경계 지역’ 및 ‘완충지대’ 역할이 무시될 때마다 필연적으로 유럽에선 세계대전이 발발해 왔음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동유럽 여론조사기관인 글로브섹(GLOBSEC)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한 달 이후 동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가진 조사(2022년 3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 조사에 따르자면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인들의 약 50% 정도만이 전쟁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음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 시민들의 경우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 비해 우크라이나가 돈바스(Donbass) 지역 등 러시아 소수민족을 억압함에 따라 이번 전쟁이 발발했다는 인식이 다소 높게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경우 오히려 NATO 등 서방이 러시아를 자극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고 언급하는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등 전쟁 발발 책임에 있어 동유럽 국가들은 각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경험, 강대국 불신, 경제적 국익 여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와 미래 관계 전망에 따라 다양한 답변을 피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 1> GLOBSEC 여론조사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단위 %
* 자료: GLOBSEC, GLOBSEC Trends 2022, CEE Amid the War in Ukraine, https://www.globsec.org



전쟁 발발 요인에 대한 동유럽의 또 다른 시각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략적 오판 또한 담겨 있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대응 의지를 간과했고, 미국과 서유럽의 신속한 대규모 군사 지원이 이처럼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 오판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푸틴이 신속한 승리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1차 이해 영역’이라는 점을 미국에게 확인시켰으며, NATO와 서유럽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일부 동유럽 국가들 즉 자신들에게 경고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동유럽을 향한 푸틴 대통령의 집착에는 지난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러시아의 무기력함에서 비롯된 ‘러시아의 부활’ 약속과 함께 러시아 민족주의 엘리트들의 이념적 지원에 근거하고 있다. 현재 ‘푸틴의 두뇌’ 혹은 ‘푸틴의 철학자’로 간주되는 알렉산드르 두긴(Aleksandr Dugin)등 민족주의자들은 미국이 체제 전환 이후로도 러시아를 잠재된 적으로 간주했으며, NATO 확대를 통해 러시아를 향한 군사 포위망을 가속화 해 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아무리 러시아가 서방을 향해 화해 제스처를 보내도, 결코 서방은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으며, 또 자신들과 같은 편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따라서 오히려 ‘신유라시아주의’에 입각해 과거 냉전과 같은 양극 구도 형성이 러시아의 국익에 더 유리하다 주장하고 있다. 동유럽 국가들은 동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를 실천하려는 푸틴 대통령과 그를 강력히 지지하는 러시아 대중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중이다.

이번 전쟁 발발의 또 다른 요인에는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 정부의 내적 부패와 무기력한 위기관리 능력도 자리한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정치가들은 자국이 지닌 지정학적 한계와 특징을 의도적으로 간과한 채, 2014년 유로마이단 성공 이후로 중립국 포기와 무리한 NATO 가입 추진 그리고 돈바스 지역 영토 탈환을 둘러싼 무리수, 러시아 소수민족 박해 등을 통해 러시아를 크게 자극하는 등 이번 전쟁의 동기를 제공해 왔다. 지난 2014년 2월 유로마이단 운동 성공 이후 이에 자극받은 러시아는 소수 민족이 다수 거주하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병합을 공식화했고, 첫 번째 조치로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곧이어 4월 6일, 러시아 민족이 다수 거주하던 돈바스 자치권 확보를 둘러싼 양측 간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2014년 9월 5일, 민스크 협정(Minsk Agreement) 이후로도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계속된 공격과 러시아 민병대 저항이 이어졌던 돈바스 분쟁 배경에는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지속된 중앙정부 부패와 경제 분야 무능함, 그리고 이에 따른 이 지역 산업 기반 몰락과 경제위기에 따른 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불어, 강대국 사이 ‘경계 지역’에 속한 상당 약소국의 운명처럼, 미래 국가 생존 문제를 둘러싼 집권 세력 간 친서방과 친러시아 사이에서의 잦은 노선 변화는 국민 간 합의를 급격하게 약화했고, 무엇보다도 주변 강대국들의 개입이 더 거세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현재 서방을 향해 제3차 세계대전 언급과 함께 우크라이나 핵무장 필요성 제기, 그리고 미국과 NATO의 직접 전쟁 개입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점 등은 우크라이나가 지닌 지정학적, 지전략적(geo-strategic) 위험도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정부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동유럽 국가들의 불안감이 더 커지는 이유이다. 

시사점 
우크라이나 전쟁은 동유럽의 지정학적 핵심 코드이자 그동안 잠재됐던 ‘신냉전 무대로의 부상’을 급격하게 부추겼다. 동유럽 지역이 21세기 ‘신냉전’의 주요 무대가 된 배경에는 동유럽을 둘러싼 미국-러시아 간 영향력 확보 노력과 역내 역학 구도의 변화 등 국제관계사적 배경과 함께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며 동유럽 국가들은 과거 자신들이 겪었던 국제관계사적 경험과 ‘경계 지역론’에 따른 지정학적, 지전략적 위험도를 다시 상기하는 중이다. 

동유럽 국가들은 이번 전쟁의 조기 종료를 강력하게 희망하지만, 과거 역사적 경험에서 보듯 이번 전쟁 또한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물론 실질적 위협에 놓인 동유럽 국가들의 의지와는 별개로, 미국과 러시아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대국 간 ‘경계 지역’에 속한 중소국의 경우 자신들의 힘과 의지만으로 전쟁 종결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력전이’ 가능성과 그 시기를 예측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결과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놓인 동유럽 국가들은 선택에 따른 대가를 치를 것으로 예측된다. 동유럽 국가들과 한국은 지정학적, 지전략적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며, 이로 인한 국제관계사 경험 또한 매우 비슷하게 전개되어왔다. ‘신냉전’ 고도화와 블록화 확대 속에 동유럽의 고민과 두려움이 우리에게 그대로 투영된다는 점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시사점과 교훈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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