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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라틴아메리카 신좌파 출현에 내재된 복합적인 의미

중남미 일반 김은중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2022/09/07

변화하는 조류, 좌파의 귀환?
2022년 6월 19일 치러진 대선에서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Francisco Petro Urrego)가 콜롬비아 역사상 첫 번째 좌파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외신들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두 번째 ‘핑크 타이드(Pink Tide, 좌파 물결)’가 밀려오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냉전이 종식되고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선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0년대에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전례 없는 정치사회적 변화로 소용돌이쳤다. 대륙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정치 지형의 변화를 주도한 세력들은 자신들을 좌파 혹은 중도좌파로 규정했다. 학계와 언론은 좌파의 등장을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차별하기 위해 ‘핑크 타이드’라고 불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역사의 종언’이 선언된 시점에 나타난 시대착오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좌파 도미노’, ‘좌파 휘몰이’라는 우려와 조롱이 뒤섞인 언사를 사용하기도 했다.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던 첫 번째 핑크 타이드는 21세기 두 번째 10년이 다 지나가기도 전에 밀려올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퇴조했다. 대륙 전체의 정치적 변화의 전위에 섰던 베네수엘라는 2013년 우고 차베스(Hugo Rafael Chávez Frías)가 사망한 이후에 친(親)차베스 진영과 반(反)차베스 진영으로 분열되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고, 브라질 좌파 진영은 노동자당 출신 룰라 다 시우바(Luis Inácio Lula de Silva)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집권했던 지우마 호세프(Dilma Vana Rousseff) 대통령의 탄핵으로 심각한 정치적·도덕적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2015년 이후 치러진 아르헨티나(2015), 칠레(2017), 브라질(2018), 페루(2018), 파라과이(2018) 대선에서 보수우파 정권이 잇따라 승리하면서 대륙 전체의 정치 지형은 급격하게 우경화되었다. 그러나 ‘핑크 타이드’를 밀어냈던 우파 세력은 큰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부서졌다. 2018년 멕시코 대선에서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가 승리하고 아르헨티나(2019), 볼리비아(2020), 페루(2021), 칠레(2021)에서 연달아 좌파 정권이 재집권함으로써 두 번째 ‘핑크 타이드’의 흐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구스타보 페트로의 합류로 더욱 뚜렷해 졌다. 아마도 2022년 10월 룰라의 대선 승리는 이러한 흐름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세계화 내부에는 대안이 없고, 세계화 외부에는 구원이 없다”
지난 20여 년 동안 롤러코스터처럼 좌파와 우파의 조류를 만들고 있는 시대의 바람은 무엇인가? 첫 번째 핑크 타이드의 퇴조는 ‘신’좌파의 실패를 의미하는가? 정치권력을 장악했던 우파의 조류가 순식간에 소멸된 이유는 무엇인가? 두 번째 핑크 타이드의 출현은 우파의 실패 때문인가, 좌파의 혁신과 새로운 가능성 때문인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라틴아메리카는 1960~1970년대의 군부 독재와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 정치에서 벗어나 민주화로 이행했다. 그와 동시에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먼저,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실험장이 되었다. 외채위기의 수렁에 빠져 있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가 제시한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선거 캠페인 내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정당들도 정권을 잡자마자 공약을 곧바로 공약(空約)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세계화라는 외피를 쓴 신자유주의적 시장근본주의는 자본주의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강력한 신탁(神託)을 유포하면서 사회적 배제와 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1). 그 결과는 빈민계급(pobretariado) 혹은 불안정계급(precariat)으로 불리는 대규모 사회집단의 출현이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조직되지 않고 동원되지 않았던 빈민계급/불안정계급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대열에 합류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지형을 바꿔 놓은 첫 번째 핑크 타이드는 멕시코 사파티스타(Zapatista) 반란,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원주민운동, 아르헨티나의 피케테로스(Piqueteros)운동, 칠레의 국민적 저항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결과물이었다. 불평등하고 가난한 민주주의라는 역설적 상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활성화된 비계급적이면서 탈정치적이지 않은 사회운동은 정치를 확장하고 공공성 영역의 회복을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을 좌파로 규정한 세력들의 시급한 목표는 계급투쟁을 통한 사회주의의 건설이 아니라 재정
정책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강화함으로써 빈곤을 퇴치하는 것이었다. 룰라가 실시했던 ‘기아 제로(Fome Zero)’, ‘가족 기금(Bolsa Familia)’, 빈민층 취학지원 프로그램이나 차베스가 추진했던 다양한 ‘사회적 미션’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선별적 복지정책의 사례였다. ‘사회적 미션’ 프로그램은 교육과 보건, 고용과 식품 보급 등에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었고 빈곤율을 감소시키는데도 크게 기여했다2). 좌파 정부가 이런 프로그램들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가져온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 덕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시장과 국제금융기구에 종속되어 있는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후퇴하고 국가 교역 조건이 크게 악화되면서 경제적․사회적 혁신의 동력을 상실했다. 핑크 타이드의 퇴조는 좌파 정부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불평등 사이의 괴리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좌파 정권의 실패로 권력을 가져간 우파 정권 역시 이러한 괴리를 좁히지 못했다.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네가 진다’는 냉소적인 표현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이름의 시장근본주의는 제3세계인 라틴아메리카가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더 나아가, ‘대안은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신탁은 세계를 전 지구적 북부(the global North)와 전 지구적 남부(the global South)로 재편하고 있다. 전 지구적 북부와 전 지구적 남부는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정치적 위치이며,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전 지구적 북부와 전 지구적 남부를 가리지 않고 사회적 배제와 경제적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있다3). 브라질의 페르난도 카르도주(Fernando Enrique Cardoso) 대통령이 사임(2002)하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세계화 내부에는 대안이 없고, 세계화 외부에는 구원이 없다”. 시민들이 무장투쟁보다 단호한 선거혁명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신’좌파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스펙트럼
두 번째 핑크 타이드의 출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정치세력의 교체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가 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현실에서 우파와 좌파를 구분하는 것은 뫼비우스 띠를 내부와 외부로 구분하는 것처럼 의미가 없다. 두 번째 핑크 타이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신’좌파 출현에 내재된 복합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첫째, ‘신’좌파는 ‘민주주의=자본주의=자유주의’ 대(對) ‘사회주의=국가주의=전체주의’의 이분법적 도식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신’좌파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해야 한다. 20세기 역사에서 1950년대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Juan Jacobo Árbenz Guzmán) 정권, 1959년 혁명 이후 쿠바, 1970년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Guillermo Allende Gossens) 정권, 그리고 1979년 니카라과 산디니스타(Sandinista) 정권을 제외하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했다. 20세기 초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한 것은 외부의 공산주의와 파시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주의 체제 내부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부딪히고 있다.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의 급진화, 즉 고강도 민주주의(high-intensity democracy)를 지향한다면, 자유주의는 저강도 민주주의(low-intensity democracy)를 주장한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체제에 포괄되며, 민주주의 내부에서 민주주의와 적대하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의 핵심은 국가로부터 개인과 개인의 사적 이익을 독립시키는 것이지 민주주의적 기구와 국민주권의 원칙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고강도 민주주의는 차베스 대통령의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가 제기하는 사회주의는, 누군가 생각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와 반목하지 않는다. 지나간 시대의 사회주의는 우리가 제기하는 사회주의와 달랐다. 다른 현실, 다른 상황이었다.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지금 베네수엘라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우리가 제기하는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민중 민주주의(democracia popular), 참여 민주주의(democraciaparticipativa), 주체적 민주주의(democracia protagóica)이다.”4)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에는 토지 이용의 민주화, 천연자원으로부터 얻어진 지대의 재분배, 공공성이 강한 산업의 재국유화 등이 포함되었다. 민주주의 내부에서 민주주의와 적대하는 자유주의는 20세기 초의 정치적 파시즘과 다른,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파시즘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적 파시즘이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라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면, 사회적 파시즘은 민주주의와 공존하면서 민주주의를 하찮은 것으로 만든다. 사회적 파시즘의 상황에서 국가는 방관자이다.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각자도생하는 파시즘적 사회가 민주적 국가와 공존하는 것이 사회적 파시즘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적 파시즘은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엘리트 과두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율주의와 지방분권을 주장하고, 공권력을 무력화하는 준군사주의적 폭력을 저지른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인종차별주의가 작동하고, 사회적 항의는 무자비하게 진압된다. 노예노동이 여전히 존재하며 군부 독재 시기에 저질러진 인권 탄압이 제대로 단죄되지 않고 있는 것도 사회적 파시즘의 특징적 양상이다. 

둘째, ‘신’좌파 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세력과 사회운동의 역학 관계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사회운동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가속화시킨 경제적 불평등 사이의 괴리를 통해 활성화되었다. 정치세력과 사회운동의 역학 관계는 공세적인 투쟁과 수세적인 투쟁이 혼합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공세적인 투쟁에서 국가는 투쟁의 주체인 반면에, 수세적인 투쟁에서 국가는 투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차베스가 주도한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Juna Evo Morales Ayma)의 볼리비아와 원주민운동의 지지를 받은 에콰도르의 변혁적 신헌법의 제정, 천연자원을 국가의 통제 아래 둔 자원민족주의, 단일 민족-단일 국가를 상정하는 근대적 국민국가와 대립하는 다민족국민국가(plurinational State)의 선포는 국가가 주체가 된 공세적인 투쟁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반면에, 국가가 투쟁의 대상이 되는 수세적인 투쟁의 사례로는 사회운동의 지도자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기소함으로써 사회적 항의를 범죄화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 대륙 전체에 만연된 준군사주의(paramilitarism)와 정치적 암살에 맞서는 투쟁, 2009년 온두라스의 군사 쿠데타가 촉발시킨 군부의 정치적 개입에 대한 저항, 언론 장악을 통해 점진적인 사회변혁을 가로막는 과두자본가 세력에 대한 저항을 들 수 있다. 국가가 투쟁의 주체가 되는 공세적 투쟁과 국가가 투쟁의 대상이 되는 수세적 투쟁의 혼재는 최근 라틴아메리카 정치의 특징적 현상이면서 라틴아메리카 정치의 이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이다. 

셋째, ‘신’좌파는 대의민주주의, 법, 인권, 입헌주의 같은 헤게모니적 정치 도구를 이용하여 대항-헤게모니를 만드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근대 법치 국가에서 정당성과 통치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헤게모니적 정치 도구가 중요하다. 헤게모니적 도구가 자본주의 계급 사회의 확대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처럼, 민중계급이 공동선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대항-헤게모니적 도구가 필요하다. 요컨대, ‘신’좌파가 자유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경제의 정치경제적 틀을 넘어서서 자신들의 정치적 어젠다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헤게모니적 도구를 창조적으로 전유하여 대항-헤게모니를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입헌주의(new constitutionalism), 여성, 원주민, 아프리카계 후손의 집단적 권리에 대한 인정, 대의민주주의와 병행되는 참여민주주의 촉진, 성차별과 인종 차별의 종식을 법률적 개혁, 천연자원의 국유화 등은 대항-헤게모니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넷째, ‘신’좌파의 출현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문화적 차원으로서 문명 논쟁이 존재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 문제와 직결되는 문명 논쟁은 아메리카 정복과 동시에 시작되었지만 식민지 시기에는 원주민 학살과 복음화, 독립 이후에는 동화(assimilation)와 인종 민주주의 같은 수단을 통해 계속해서 배제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흑인)이 중요한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면서 문명 논쟁이 정치적 의제에 포함되었다. 원주민의 문명은 서구의 근대적 세계관과 매우 다른 문화적․정치적 세계관에 근거한다. 부연하자면, 서구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은 동일한 세계(우주)를 문화적으로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세계(우주)를 인식한다. 근대 서구인이 천연 자원이라고 부르는 것을 원주민은 파차마마(Pachamama, 대지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발전(development)이라는 서구적 개념은 에콰도르 신헌법(2008)에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로 명시되었다. 수막 카우사이는 ‘살림(살리다)’이라는 뜻으로 ‘죽임(죽이다)’의 반대말이다. 즉 발전이 생산을 토대로 한다면 수막 카우사이는 생명을 지향한다. ‘상품으로서의 토지(land)인가, 정체성과 존엄성의 근거로서의 영토(territory)인가?’, ‘국민국가(nation-State)인가, 다국민국가(plurinational State)인가?', '시민사회인가, 공동체인가?’ 같은 또 다른 많은 이항대립이 문명 논쟁을 구성한다. 문명 논쟁은 헌팅턴이 예언했던 ‘문명 충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주의적인 상호문화성(egalitarian interculturality)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요컨대, 문명 논쟁은 아메리카 정복 이후 500년이 지난 시점에 비로소 진정한 탈식민적(decolonial)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좌파의 출현과 관련하여 문명 논쟁이 보여주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라틴아메리카적 맥락에서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는 다르지만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두 개의 지배 체제이며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본주의와의 대결에서 ‘신’좌파가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2005년 원주민운동의 지원을 받은 에보 모랄레스가 볼리비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 프랑스의 월간시사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는 “볼리비아 원주민운동이 라틴아메리카 좌파에 합류했다5)”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러나 원주민운동에 합류한 쪽은 라틴아메리카 좌파였다. 

신자유주의와 내적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
라틴아메리카 ‘신’좌파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최근 30~40년간 진행된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에 대한 저항이면서, 아메리카 정복 이후 300년에 걸친 식민주의, 정치적으로 독립한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내적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신’좌파의 출현에는 정치구조와 경제정책에 대한 단기적인 처방과 문명의 이행에 관한 장기적인 실천의 문제가 절속되어 있다. 그 결과, ‘신’좌파의 정치적 목표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권력을 획득하고 국가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핵심적 목표가 되기도 하고, 원주민운동이 보여주는 것처럼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반(反)국가적 주장도 있다. 국가가 처해 있는 역사적·정치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신’좌파를 구성하는 사회적 기반과 정치적 의제 또한 다양하다. 요컨대, 최근의 핑크 타이드의 귀환은 기존의 지배적인 일원론적인 좌파 이론으로는 독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 각주
1) 이성형, 2009. 『대홍수: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20년의 경험』, 그린비.
2)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Rincón Soto, Idana Berosca. 2014. “Pobreza en Venezuela (2000-2010)”, Omnia, vol. 20, núm. 2, 2014, pp. 162-176. 브라질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https://www.scielo.br/j/neco/a/HgbVyjbgykrFkhSBD93VqwL/?format=pdf&lang=pt
3)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86689.html
4) Chávez, Hugo. 2006. “Discurso sobre el partido único.” Rebelión. 15 de diciembre. http://www.rebelion.org/noticia.php?id=43422.
5) Maurice Lemoine, "Coup de tonnerre a La paz: La Bolivie indienne rejoint lagauche Latine;' Le Monde diplomatique, 22 December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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