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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동지중해 천연가스 분쟁 구도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양상: 이스라엘-키프로스-그리스-튀르키예의 역사적 이해 관계에 주목해야

중동부유럽 일반 권세라, 윤희두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관계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 2022/10/11

동지중해 천연가스 발견과 분쟁 배경
2010년 이스라엘 연안에서 대규모의 천연가스가 발견된 뒤, 다음해 키프로스(Cyprus, 사이프러스)에서도 대량의 천연가스 매장량이 확인되었다. 이후 진행된 추가 탐사의 결과, 현재까지 이스라엘 연안에 약 1조㎥, 그리고 키프로스에는 3,000~4,000억㎥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발견 초기인 2011~2014년, 이스라엘 정부는 단가가 높은 아시아 시장으로의 수출을 위해 중동-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협력해 가스관 건설을 진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시아행 가스관 건설은 레바논, 시리아, 튀르키예 등 인접국들과의 심각한 안보 및 외교 문제로 인하여 진행이 어려워졌고, 이에 이스라엘은 단가는 낮지만 안정적인 유럽 시장으로 수출을 결정했다. 그 결과 2020년 1월 이스라엘과 키프로스에서 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연결되는 2,200km의 세계 최장 해저가스관 건설 프로젝트가 착수되었고, 건설비에만 70억 달러(한화 약 8조 4,000억 원)가 책정되었다. 2025년 완공 예정인 이 동지중해 가스관(EastMed pipeline)은 구체적으로 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약 10%를 충족시킬 것으로 예상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매년 약 15억 달러(한화 약 1조 8,000억 원)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해 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림 1> 동지중해 가스관 지도
* 자료: 이스라엘 에너지부(Israeli Ministry of Energy1)


하지만 이와 같은 천연가스의 발견은 한편으로 동지중해 지역을 새로운 국제 분쟁의 주요 무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의 배경에는 해당 지역 이해당사국들의 뿌리깊고 복잡한 역사 및 외교 관계가 작용하고 있다. 먼저 이스라엘과 그리스∙키프로스는 천연가스 발견을 계기로 전례 없는 관계 개선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스는 1947년 11월 UN의 팔레스타인 분할안(A/RES/181)에 대해, 유럽에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표명한 국가였다. 그리고 이는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키프로스가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로 분할될 것을 우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그리스의 사회당 정권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그리스계 키프로스인들 또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지지하면서 그리스와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천연가스 발견과 함께 형성된 이스라엘-키프로스-그리스 삼자협력 구도는 최근 10년 이내에 이루어진 외교적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급진적 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단 상태인 키프로스의 정치적 상황은 천연가스 분쟁 해결과정에 쉽지 않은 중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키프로스는 1974년 이후 남측의 그리스계와 북측의 튀르키예계로 완전히 분단되었고, 양측의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튀르키예계 정부인 북키프로스튀르키예공화국(Turkish Republic of Northern Cyprus)은 키프로스 연안의 천연가스 탐사∙시추에 대한 공동 권한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북키프로스튀르키예공화국은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UN과 EU의 공식 회원국이자 그리스계인 키프로스공화국이 키프로스 연안의 천연가스 개발 및 시추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튀르키예에서는 튀르키예계 주민들의 권리를 찾겠다는 명목으로 키프로스 연안에 탐사선과 함께 해군 함대나 정찰기를 파견하고 있으며, 그리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프랑스 등 EU 회원국들은 튀르키예의 군사적 행동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2019년 3월 출범한 동지중해가스포럼(EMGF, East Mediterranean Gas Forum)에는 튀르키예를 제외한 8개 국가-이스라엘, 키프로스, 그리스, 이집트,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탈리아, 프랑스-가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키프로스 분단문제, 에게해(Aegean Sea) 영해권 분쟁과 같은 사안에서 외교적 마찰을 겪어왔다. 여기에 동지중해 에너지 자원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해당 지역의 분쟁 수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대통령은 동지중해 가스관을 새로 건설할 필요 없이, 이미 존재하는 트랜스아나톨리안 가스관(TAP, Trans-Anatolian pipeline)을 통해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할 것을 주장하면서 그리스∙키프로스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반면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여전히 높은 정부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는 그리스로서는 에너지 허브국으로서 누릴 경제적 이권과 주변국들과의 협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미국은 2022년 2월 초, 동지중해 가스관 계획에 대한 공개적 지원을 철회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정부는 이스라엘-키프로스-그리스 삼자협력을 지지하며 튀르키예의 군사적 행동에 경고를 보냈으나, 조 바이든(Joe Biden) 정부가 출범하며 이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동지중해 가스관 건설이 환경 보호정책과 상반되며 막대한 가스관 건설 비용으로 경제적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대외적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보다는 중동 지역 내 미국의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인 튀르키예의 강한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두 NATO 회원국인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에너지 갈등이 주변 이해당사국들의 블록 경쟁으로 확대되자 미국은 이 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동지중해 천연가스 중요도 상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천연가스 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유럽 전체 차원의 대응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 각국의 정상들은 동지중해 천연가스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에너지 수입 경로의 다변화와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 동지중해 천연가스에 주목하고 있다. 동지중해가스포럼은 실제로 유럽 에너지 수요에 재빠르게 대응해 2022년 8월 15일, 향후 20년 간 이스라엘 연안에서 유럽으로 5,000㎥의 천연가스를 수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더해 7일 뒤인 8월 22일, 키프로스 에너지부 장관은 이탈리아 ENI사(社)와 프랑스 Total사(社)가 키프로스 연안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의 가스전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동지중해 천연가스의 전략적 가치와 경제적 규모는 상승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럽의 주요 가스 공급처로서의 위상과 역할도 확보했다. 

향후 전망: 동지중해 안보 불안 장기화 
그러나 동지중해 지역의 안보 상황은 불안하다. 키프로스 섬의 자원을 공동으로 누려야 한다는 튀르키예계 주민들의 주장은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외교 마찰 및 군사적 충돌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8월 17일 이스라엘과 튀르키예는 4년 만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며 지역 정세 안정화에 나섰지만, 큰 규모의 장기 프로젝트를 지속하기에 이스라엘-튀르키예 양국 관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여기에 9월 16일, 미국 정부가 2023년부터 그리스계인 키프로스공화국 정부의 무기금수 조치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동지중해 지역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튀르키예 외무부 장관은 그리스계 편파적인 미국의 결정을 비판하면서 북키프로스 주둔 터키군 병력을 증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수십년 째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의 애매한 외교 방식은 동지중해 지역의 안보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동시에 동지중해 천연가스 분쟁의 구조 또한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차선의 전략쌍을 선택한 것이 되지만, 그리스, 키프로스, 튀르키예의 입장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누가 가질 것인가 경쟁하는 제로섬게임 구조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프랑스를 비롯한 EU회원국들과 이집트, 요르단 등 동지중해가스포럼 회원국들은 협력에 의해 수익을 확대할 수 있는 사슴사냥게임의 행위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주요 행위자인 이스라엘과 키프로스는 EU회원국들과의 파트너십 유지를 통해 최대한의 경제적 이득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겠지만 이에 만족할 수 없는 국가들과의 외교적 마찰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 향후 치러질 각국의 총선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정세 변화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당사국들의 경제적∙정치적∙역사적 이해 관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 각주
1) https://eastmednews.org/biden-administration-kills-israel-to-europe-gas-pipeline/ 검색일: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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