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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미국의 규칙기반 질서 구축과 한-아세안 해양안보 협력

동남아시아 일반 이숙연 국방대학교 조교수 2022/12/14

위협받는 규칙기반 질서
미국은 2012년 아시아 재균형에 이어 2017년 인도-태평양 전략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대한 봉쇄 수위를 높여갔으나 <그림1>과 같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계속되었다. 일대일로는 해가 거듭될수록 서쪽으로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까지, 동쪽으로는 남태평양까지 뻗어 나갔고, 이를 기반으로 한 항구(2022년 11월 기준 59개국 79개항) 중 파키스탄, 캄보디아, 적도 기니, UAE 등의 항구는 사용권 획득을 통한 군사지기화도 진행 중이다. 이에 더해 중국도 러시아와 함께 반미세력 규합도 가속화하고 있다. 2022년 6월 23일, 5개 회원국에 추가 13개국이 참여한 브릭스 플러스(BRICS+) 정상회의가 개최되었고, 이어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2개월 만의 해외순방으로 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를 선택해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러는 8개 SCO회원국 외 준회원국(4개국)과 대화 파트너(6개국), 추가 가입 희망국(4개국)을 통해 SCO 외연을 확장하여 반(反)서방 플랫폼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도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Indian-Pacific Economic Framework) 구상에 맞서기 위해 2021년 9월에는 글로벌 발전구상(GDI, Global Development Initiative)을, 2022년 4월에는 글로벌 안보구상(GSI, Global Security Initiative)을 제안했다. 특히, 10월 개최된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 대표회의에서 이전과 달리 투쟁, 전쟁 준비, 신형 국제관계 구축 등을 강조한 것과 건군 100주년인 2027년을 시한으로 한 군사대국 건설 목표를 고려할 때 향후 중국의 현상변경 시도는 보다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이 더 이상 단독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1> 일대일로 MoU 체결현황
* 출처 : “Countries of the Belt and Road Initiative” The Green Finance & Development Center. <https://greenfdc.org/countries-of-the-belt-and-road-initiative-bri/>



규칙기반 질서를 위한 전략
인도-태평양 지역과 국제체계를 재편하려는 중국에 대한 위협인식은 2022년 미국이 발표한 여러 전략문서들에 반영되어 있다. 2019년 국방부과 국무부 차원에서 발표했던 인도-태평양 전략을 2022년 2월에는 백악관 명의로 발표하면서 그 첫 줄을 ‘미국은 인도-태평양 국가’라 기술하고 ‘규칙기반 질서’ 수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어 10월 공개한 국가안보전략과 국방전략서에서도 미국은 ‘국제질서 재편 의도와 능력을 가진 유일한 경쟁자’인 중국과의 대결에 결기를 보여주며, ‘가장 역동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래가 지구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기에 ‘향후 10년’이 결정적 시기임을 강조한다. 

 이 3개의 전략 문서들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키워드는 연결과 통합이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국가안보전략에서 동맹을 68회 언급할 정도로 과거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나토(NATO) 및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체제를 연결하는 동맹체계의 통합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도-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고자 한다. 국가안보전략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 ‘오직 역내 유사입장국(like-minded states)과 유럽의 강화된 연결을 통해 구축된 집단적 힘’을 통해서만 달성 가능함을 규정하고, 국방전략서에서는 이를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개념으로 구체화하였다. 또한 중·러 세력이 제도를 통해 반미연대를 형성하려는 것처럼 미국도 쿼드(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오커스(AUKUS, Australia, United Kingdom, United States),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와 같은 맞춤식 협의체 혹은 전략적 소다자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는 대중 압박을 위한 단합된 블록 형성이 어렵다는 인식 하에 스포크들 간의 양자 제휴 및 소다자 협력을 통해 이들을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그림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쿼드나 오커스, 인도-태평양의 스포크들 만으로는 아라비아해와 홍해로 향하는 중국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서쪽으로 진출할수록 미국은 유럽과 인도-태평양을 연결하여 봉쇄범위를 확장할 수밖에 없다. 

<그림 2> 일대일로 지역과 인도-태평양 지역
* 자료: Andre Wheeler, “Has China’s Belt and Road Initiative Shifted the Geo-Political Regional Debate from APAC to the Indo-Pacific?” Nov 04, 2020.


인태전략의 취약점과 아세안의 가치
이와 같은 미국의 인태전략은 어느 정도 구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1년 한해 동안 유럽국가들은 총 21척의 군함을 인태지역으로 파견하였고, 나토는 12년 만에 새로운 전략개념인 ‘2022 전략 개념’을 채택하면서 2010년 문서에는 언급되지 않던 중국의 위협을 체계적 도전으로 명시했다. 대서양과 인태지역의 연결을 위해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를 나토 정상회의에 초청하고, 동맹국 개별국가 차원에서도 일·호 상호접근협정(RAA, Regional Access Agreement) 체결과 안보공동선언 채택, 영·일 무기 공동개발, 연합 군사훈련 확대 등을 통해 미국 전략에 호응하고 있다. 
     
하지만 규칙기반 질서 구축을 위한 인태전략에는 2가지의 잠재적 취약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인도의 일탈에 따른 쿼드의 상대적 약화로 지정학적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인태전략의 핵심 거점국가들은 영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역내에 위치하고 있어 인도가 약해지면 인도양 자체는 물론 유럽의 안정적 관여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미국이 인태전략에서 역내 파트너들과의 관계 강화, 쿼드 강화와 별개로 '인도의 지속적 부상과 역내 리더십 지원'을 포함한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인도의 태도로 쿼드의 전략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퇴색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동맹 및 지역 간 연결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아세안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이 더욱 긴요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취약점은 미국이 동맹국과 오커스를 통해 통합된 군사적 억제역량을 확충하고 있지만, 준군사 혹은 비군사 자산을 활용한 회색지대 전략에는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 해경선과 민병대는 무력공격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상변경을 시도하면서 국제법에 기반한 질서를 와해시키고 있다. 그러나 2012년 남중국해 스카보러숄(Scarborough Shoal, 중국명 황옌다오) 사례에서 보듯 이를 제지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부재하고, 무력공격의 경우에만 작동하는 동맹체계를 통해 군사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중국은 이러한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기존 4개의 해양 집행기관을 통합하여 준군사조직화한 ‘해경국’을 출범시켰고, 2021년에는 해경의 무기사용을 허가한 해경법도 제정했다. 이는 해상에서의 분쟁 발생 시 해군보다는 해경정이나 민병대를 투입함으로써 주변국 반발을 피하고 군사적 대응이나 동맹체계 작동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회색지대 전략에의 궁극적 대응주체는 영유권 및 관할권 분쟁 당사국이기 때문에 미국은 아세안 국가들이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확장을 저지할 수 있도록 대응역량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규칙기반 질서에 기여하는 한-아세안 협력
한국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82%로 도서국가인 일본(31%)과 경제대국인 미국(26%)에 비해서도 매우 높고, 수출입 물동량의 99.7%(원유의 경우 100%)가 해상을 통하기 때문에 해상교통로가 하루만 차단되어도 약 6,024억원의 경제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규칙에 기반한 해양질서 수립과 이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준수는 한국의 안정과 번영의 기반이자, 아세안과의 이해관계가 핵심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11월 11일 한-아세안 정상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에 아세안이 핵심 파트너임을 밝히고, 아세안 중심성과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 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에 기반한 한-아세안 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을 새롭게 발표했다. 또한 2024년 대화관계 수립 35주년 계기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격상을 제안하고, 외교·국방회의 정례화, 아세안의 해양안보 능력구축 지원 강화, 한-안세안 국방협력 강화 등 안보 부문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합당한 역할 수행을 위해 아세안과 다양한 해양안보 협력을 모색할 수 있겠지만, 본고에서는 아세안의 수요와 상호 호혜, 한국이 목표로 한 규칙기반 질서를 고려하여 해양영역인식(MDA, Maritime Domain Awareness) 역량 강화와 아세안 메커니즘을 통한 국제법 협력을 강조하고자 한다.

2022년 쿼드 정상은 ‘해양영역인식을 위한 인도-태평양 파트너십(IPMDA)’을 통해 실시간 감시 체제와 수집된 정보를 인태국가 간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MDA는 해상의 모든 물체를 추적·감시할 수 있으나, 인공위성·유무인 함정/항공기·자동식별 시스템(AIS, Automatic Idintification System) 등의 정보수집 자산뿐만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고 융합하는 조직,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비용과 높은 기술, 국내외 거버넌스가 요구된다. IPMDA가 사실상 중국의 해상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임에도 해양에 기반한 복합적 위협에 직면한 아세안 국가들이 환영하는 이유이다. 즉, 중국에 대한 안보기능을 내포하면서도 동시에 초국가적 위협 관리, 항행안전, 재난구호, 환경 및 어족자원 보호 등의 측면에서 중요성을 갖기 때문에 중국의 민감성은 낮출 수 있다. 
     
현재 아세안의 MDA는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시아 해적방지 협정 (ReCAAP, Regional Cooperation Agreement on Combating Piracy and Armed Robbery Against Ships in Asia) 관련 정보공유센터, 24개국 해군장교가 파견된 정보융합센터(IFC)가 위치할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해군은 다국적 해양정보 공유 훈련(MARISX, Maritime Information Sharing Excercise)을 주관하고 여기서 사용하는 웹 기반 정보교환 체계도 운용 중이다. 한국은 2019년부터 한국형 MDA 체계를 위한 소형 관측위성, 통신위성,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Korean Positiong System) 위성 등을 동시에 개발중인 바, 현 추진 단계에서부터 동남아 및 인도양 지역과의 MDA/IPMDA 체계를 어떻게 연동하고 이들에 기여할 것인지를 구상해야 한다. 또한 지금으로서는 한국 역시 MDA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IPMDA에의 참여는 우리에게도 이익이며, 쿼드와 연계한 적극적 역할 모색을 통해 중추국가 비전과 인태전략에도 추동력을 얻을 수 있다. 이와 병행하여 MDA를 통한 ‘인식’ 이후의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해 해군/해경 장비의 공여를 확대하고1), MARISX를 비롯한 다양한 훈련의 참여와 교류활동도 필요하다.

둘째는 해양법 협력 강화이다. 규칙기반 질서의 핵심이 국제법에 대한 존중과 이를 통한 갈등, 분쟁의 해결이므로 아세안 기반 제도들을 활용하여 UN 해양법협약(UNCLOS, UN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을 포함한 국제법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UNCLOS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도, 2016년 국제상설재판소 판결에 패소한 중국도 국제법을 강조하지만, 정작 UNCLOS는 작성 당시부터 해양 강대국들의 입장이 많이 반영되었고 이들 간의 의견 불일치로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군사활동, 해양과학조사 등의 예민한 사안은 모호하게 작성되어 오히려 갈등을 촉발시키거나 해양 약소국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가령, 오커스를 통한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에 대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유독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 수역의 많은 군도항로대(archipelagic sea lanes)에서 모든 선박은 통과통항(transit passage)과 유사한 군도항로대통항이 보장되어 잠수함의 부상 의무와 연안국의 선박 정지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UNCLOS 초안이 작성된 1970년대는 핵추진 잠수함이 오늘날처럼 많지 않았고, 이후 과학기술 발전으로 새롭게 식별된 해양공간이 증가했으며, 힘이 아닌 법에 의한 분쟁해결에 유용한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양법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

따라서 한국은 아세안 확대 해양포럼(EAMF, Expanded ASEAN Maritime Forum),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ASEAN Regional Forum) 해양법 집행 협력 강화 워크숍,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 ASEAN Defense Ministers Meeting-Plus) 해양안보 분과회의 등을 활용하여 해양법의 개선 및 보완, 구속력 강화를 통해 진정한 규칙기반 질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중소국 의견을 한데 모으는 구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이처럼 해양영역인식 제고와 해양법 집행 공조를 확대하여 자유롭고 안전한 해상교통로를 확보하고 규칙기반 질서가 구축될 때, 한국과 아세안은 진정한 ‘상생 연대’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1) 11월 22일부터 개최된 ADMM-Plus 계기 양자회담에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은 모두 한국과의 방산협력, 초계함 공여 등 해양안보 협력 강화를 요청하였다. 특히 베트남은 이번 양자회담에서 과거 양도받은 초계함(2척)이 해양안보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한다며 추가 양도를 희망하였는데, 베트남은 아세안 무기수입 1위 국가임에도 러시아 의존도가 높아(84%)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시 양도함정의 긍정적 경험 확대는 한국의 무기체계 수입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2) Mohd Hazmi Mohd Rusli, “The legality of passage of nuclear-powered submarines through SLOCs in the ASEAN Region : Are Malaysia and Indonesia in CATCH-22?” 2022 KIAS-BUFS International Conference, October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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