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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노벨 평화상 : 러시아의 언론 자유와 인권

러시아 정세진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2023/02/16

인권 단체 및 인권 활동가, 2022년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
2022년 노벨평화상은 벨라루스 인권 활동가인 알레스 비알리아츠키(Ales Bialiatski), 러시아 시민단체인 메모리얼(Memorial),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시민자유센터(CCL, Center for Civil Liberties)가 공동 수상했다. 노벨상 위원회는 2022년 10월 7일 평화상을 발표하면서 인권 옹호자들이 “전쟁 범죄, 인권 침해, 권력 남용을 기록하기 위한 탁월한 노력”을 보여주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위원회는 이들이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보여주었으며, 수상자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의 시민사회를 대표하며 시민의 기본적, 근본적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비알리아츠키는 벨라루스의 알렉산더 루카셴코(Alexander Lukashenko) 대통령 정권에 저항한 인물이며 인권단체 바스나(Viasna)를 창설하고 활동하였다. 그는 2021년 7월부터 탈세 혐의로 투옥된 상태이다. 우크라이나 CCL은 2007년 설립되었으며, 우크라이나의 시민 자유를 위한 활동을 벌여왔고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자행한 전쟁 범죄를 기록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강력 비난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2022년 12월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렸는데,  CCL의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Oleksandra Matvichuck) 대표, 메모리얼 이사회 의장인 얀 라친스키(Yan Rachinsky), 그리고 투옥 중인 비알리아츠키를 대신하여 아내인 나탈리야 핀추크(Natalia Pinchuk)가 참석했다. 라친스키는 시상식 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포함, 구소련 국가들에 역사, 국가 지위, 독립을 폄하하는 시도를 해 왔다고 비판하였다. 라친스키는 러시아 대중 매체들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는데, 오히려 러시아 언론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웃국가에 대한 무력 침공, 영토 병합, 점령지 민간인을 향한 테러, 전쟁 범죄를 오직 파시즘과의 전쟁에 필요한 정당화로 치부한다고 주장했다. 라친스키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미친 전쟁”으로 표현했다. 
   
마트비추크 대표도 “러시아에 전쟁범죄 책임을 적절하게 묻지 않으면 동유럽의 평화는 오지 않는다”고 밝히고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국제재판소에 전쟁범죄 혐의로 회부해야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비알리아츠키의 아내인 핀추크는 남편의 수상 소감을 대독했는데, 비알리아츠키는 “나의 조국 벨라루스 전역이 감옥에 갇힌 채 의존적 독재 체제하에 놓여 있으며, 이는 러시아가 원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벨라루스 통치 체제를 비난했다. 그는 이 상은 정부에 의해 폭행과 고문을 당한 수만 명의 시민들과 인권운동가들을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언론인들은 이번 노벨평화상에 대하여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암묵적인 질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얼은 어떤 단체인가? 
노벨상위원회는 메모리얼의 수상 이유를 “과거에 자행된 범죄 행위에 맞서는 일이 새로운 범죄 예방에 필수적이라는 개념에 그 기반을 두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메모리얼이 러시아의 군사주의와 맞서 싸웠으며, 인권과 법치에 기반한 통치를 증진하기 위한 최전선에서 활동한 사실이 수상 이유였다. 이로써 메모리얼은 소련과 러시아연방에 걸쳐 국가 탄압에 맞서 싸운 공로를 인정받았다. 메모리얼은 수십 년 동안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에 정면으로 대항해 왔다. 이 단체는 러시아의 전체주의적 과거, 그 역사적 기억이 오늘 이 시대까지 이어져 온 여러 범죄 사건들을 파헤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메모리얼은 정치 억압을 받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소련 시기인 1987년 설립되었다. 197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를 포함, 인권 운동가 그룹은 소련 공산 정권의 희생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메모리얼을 창립했다. 초대 의장은 사하로프였는데, 그는 설립 당시 10명의 대표 그룹 중에서 의장으로 뽑혔다. 사하로프는 핵물리학자였다. 메모리얼은 스탈린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대중 운동을 펼쳤다. 소련 강제 수용소 시스템, KGB 고문실, 역사 책 출판, 학생 교육, 전시회 주최, 심지어 소련 시기 공포심을 표현하기 위해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역사적 도보 여행을 제공하는 등, 이러한 내용을 문서화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메모리얼은 소련 시기 범죄와 관련된 방대한 아카이브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이오시프 스탈린(Josheph Stalin) 시기 참상을 은폐한 공식 담론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서기장 집권 시기 페레스트로이카(개혁, Perestroika) 정책이 펼쳐지던 당시 메모리얼은 소련 국내의 정치적 탄압을 연구하고 기록하였으며, 인권 상황을 감시해 왔다.

메모리얼은 소련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의 정치적 탄압과 인권침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해 러시아 최대 규모의 인권단체가 되었다. 특히 1994년 체첸 전쟁 이후 자행된 권리 침해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으며 시리아에서 활동한 러시아 용병에 대한 법적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동시대의 권리 남용에 대한 국제 지원에도 나섰다. 역사 교육 단체로 창설되었으나 1991년 인권 분야로 그 영역을 넓힌 메모리얼은 1990년대 초 러시아가 혼란스러운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메모리얼은 최근에는 ‘여호와의 증인’ 등 금지된 종교 단체의 회원들, 치명적인 중독 공격에서 살아남아 교도소에 수감된 푸틴의 최고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Alexey Navalny) 등 정치범의 목록을 편집하는 활동을 펼쳤다. 메모리얼은 과거 구소련 국가에 지부를 가지고 있으며, 해당 국가는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라트비아, 조지아 등이다. 

러시아 정부의 정치적 탄압과 메모리얼 해산 
러시아연방 정부는 메모리얼에 대해 정치적 탄압을 자행하였다. 2021년 말, 메모리얼은 불법화되고 폐쇄되었다. 직원 중 일부는 러시아를 떠났지만 나머지는 러시아에 남아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 발표 당일, 일부 직원들은 모스크바 중심지의 메모리얼 사무실에 대한 압류 재판과 관련된 청문회에서 판사가 메모리얼에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 중이었다.      
   
현 시점에 메모리얼의 존재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있다. 메모리얼의 인권센터(Human Rights Center)는 소련 시기 범죄가 아니라 바로 현 시점의 국가 범죄를 파헤쳐 왔는데, 정부는 이를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소위 외국 대리인(foreign agent)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단체들의 활동을 억누르고 있다. 정부는 외국 대리인은 해외 국가와 결탁, 러시아 안보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메모리얼도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하고 메모리얼 본부, 산하기관 등을 2021년 2월 해산시켰다. 2021년 말에는 러시아 대법원이 메모리얼에 대한 폐쇄 명령을 발동했다. 러시아 검찰은 이미 과거에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된 메모리얼이 스스로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해야 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이를 수차례 위반하고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러한 행동은 ‘테러리즘’과 ‘극단주의’를 옹호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메모리얼은 심각한 위반 행위를 부인하고, 법을 어긴 일도 없으며, 테러와 극단주의 단체를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를 부인했다. 메모리얼 인권 센터는 2015년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되었고, 1년 이후 국제 메모리얼(Memorial International)도 등록되었다.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할 때에는 개인이든, 단체든, 자금 출처를 공개하고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포함한 모든 출판물에 태그를 표시하도록 법에 정해져 있다.

러시아 정부는 독립 미디어를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부를 비판하는 단체들에 대한 단속 강화 차원이다.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되면, 까다로운 법적 공개 요건을 준수해야 한다. 당국은 독립 뉴스 미디어, 시민 사회 단체, 인권 운동가 등을 단속하면서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해왔다. 그리고 러시아 정부는 2021년에 하나의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률 내용에는 소련 시기 행해진 잔학 행위를 언급하면 공적 인물이 투옥될 수 있으며, 독일 나치를 소련과 비교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러시아 정부는 스탈린 시대의 잔혹하고 어두운 사건들에 대한 비판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법령을 제정했다.

2021년 노벨평화상도 2022년처럼 공동 수상이었다. 러시아 언론인으로 노바야  가제타(Novaya Gazeta; Hовая газета)의 드미트리 안드레비치 무라토프(Dmitri A. Muratovв) 편집장과 필리핀의 마리아 레사(Maria Ressa) 기자가 수상했다. 러시아에서 2년 연속 평화상 수상자가 배출된 셈이다.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 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독립적 보도를 근본적으로 범죄화하는 신 법령에 따라 신문사 운영이 중단된 상태이다. 

인권을 위한 메모리얼의 투쟁 
국제 언론상 수상 경력을 가진 저널리스트이자 인권 운동가인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Natalia Estemirova)는 메모리얼 체첸 지부에서 활동했는데, 노바야 가제타에 기고문을 자주 게재했다. 에스테미로바는 2009년 7월 체첸 수도인 그로즈니에서 납치된 몇 시간 후 머리와 가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녀의 나이 50세였다. 에스테미로바는 체첸에서 발생한 인권 유린 사건 등 ‘극도로 민감한’ 사건을 취재하였다. 그녀는 주로 러시아군, 혹은 친러시아군의 민간인 대상 전쟁 범죄에 관련된 정보 수집 작업을 해왔다. 
   
메모리얼 활동가들 중에는 다른 피해 사례가 있다. 러시아의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자치공화국인 카렐리아(Karelia) 공화국의 메모리얼 지부 책임자인 유리 드미트리예프(Yuri Dmitriev)는 스탈린 비밀경찰에 의해 수천 명이 사망한 러시아판 킬링필드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의 활동에 대한 정부의 보복적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2020년 성적 학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2022년 10월 7일 노벨평화상이 발표되던 날은 푸틴 대통령의 70번째 생일이었는데, 동시에 체첸 인권 문제를 줄곧 제기한 언론인 안나 폴릿코프스카야(Anna Politkovskaya)의 사망 16주기이기도 했다. 수상 발표 직후 메모리얼 지도자인 올레그 오를로프(Oleg Orlov)는 기자회견에서 사하로프 박사의 말을 인용했는데, “평화, 진보, 인권은 뗄래야야 뗄 수 없고 연결된 3가지 목표”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하여 “특정 국가에서 인권이 억압되면, 그 국가는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라며 러시아의 인권 상황을 비판했다. 

인권 운동가이자 메모리얼 창립자 10명 중 한 명인 레프 포노마레프(Lev Ponomarev)는 “메모리얼의 수상은 매우 기쁘지만, 알렉세이 나발니 등 수감 중인 정치범들이 이 상을 받았다면”이라며 개인적 희망을 피력했다. 그는 파리에서 열린 러시아 망명자 회의 도중 인터뷰를 통해 메모리얼이 창립된 35년 전에 노벨 평화상 수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포노마레프는 푸틴 대통령과 맞서는 최전선의 인사들이 그런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는데, 나발니 이외에 정치인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Vladimir Kara-Murza), 일리야 야신(Ilya Yashin) 등 세 명을 언급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물리적으로 푸틴과 맞서는 영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평의회는 노벨평화상이 발표된 직후인 2022년 10월 10일, 무르자에게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 인권상을 수여했다. 카라-무르자는 러시아 인권단체를 이끌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한 반정부 활동가이다. 그는 현재 푸틴 대통령의 언론 탄압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 반역 혐의로 수감돼 있다. 야신은 러시아 침공 이후 반전 연설을 해 왔으며, 러시아 군대에 대한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범죄 행위 혐의로 2022년 12월 9일, 징역 8년6개월이 선고되고 수감 상태에 있다.  
   
메모리얼은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 인권 활동을 펼치면서 지속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공격과 보복을 겪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인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AFP 통신은 메모리얼을 ‘푸틴 정권 아래 금지된 러시아의 양심’으로 묘사했다. 메모리얼의 폐쇄 이후 2021년 12월, 인권 운동가들은 푸틴에게 메모리얼 폐쇄에 대한 법적 조치에 개입하도록 요청했다. 푸틴은 메모리얼이 테러리스트 및 극단주의 조직을 옹호하고 있다고 언급, 폐쇄 조치에 대한 지지를 나타낸 바 있다. 이 단체가 폐쇄되면서 러시아의 많은 유명 인사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메모리얼의 소멸은 “깊은 도덕적 타락의 상징이며, 21세기 문명으로부터 러시아 인의 결정적, 상징적인 소외의 상징”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러시아가 소련 해체 이후 지금까지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해 다시 피가 흐르는 상태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2021년 노벨 평화상 러시아 수상자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 무라토프 
2021년 노벨 평화상은 마리아 레사기자와 공동으로 러시아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이 수상했다. 노벨상 위원회가 2인의 기자에 평화상을 수여한 이유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용기 있는 투쟁과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옹호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민주주의와 항구적 평화의 전제 조건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용감한 투쟁이었다. 노바야 가제타는 체첸의 부패 및 인권 침해 등에 대한 특집 기사를 많이 게재했으며, 이런 활동으로 기자 등 노바야 가제타와 관련된 6인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에서 가장 독립적인 신문으로 권력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특히 이 신문은 사실에 기반한 저널리즘과 직업적 성실성을 바탕으로 다른 언론 기관에서 거의 언급하지 않는 러시아 사회에서 비난받아 마땅한 사건의 주요 정보 출처가 되어 왔다. 특히 창간 이후로 부패, 경찰 폭력, 불법 체포, 선거 사기, 러시아 내외부에서 군대 권력과 폭력 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비판 기사를 게시해 왔다. 노바야 가제타의 반대자들은 이 신문사와 기자들에게 괴롭힘, 위협과 폭력으로 대응하였다. 체첸 전쟁과 전쟁의 인권 유린 사례 등에 관한 폭로 기사를 쓴 매우 저명한 폴리코브스카야 기자도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언론인보호위원회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1992년부터 2021년 사이 58명의 언론인이 살인 등의 사건으로 사망했다.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적 가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언론인들에 대한 살해 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은 국가적 치욕이 될 수 있다. 

기자 6명 의문의 죽음, 그리고 그 이유  
노바야 가제타와 관련된 첫 번째 희생자는 이고르 돔니코프(Igor Domnikov)이다. 그는 2007년 7월 그의 아파트 입구에서 공격을 받고 몇 달 후에 사망했다. 돔니코프는 신문사 내에서 문화와 교육 관련 이슈를 다루었는데, 신문사 동료들은 석유 산업의 부패를 조사한 후 살해 위협을 받은 또 다른 노바야 가제타의 기자로 착각을 하고 엉뚱하게도 돔니코프를 공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두 기자는 동일한 아파트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그러한 정황이 충분하다. 두 번째 희생자는 유리 쉬체코치킨(Yuri Shchekochikhin) 편집장이었는데 방사능 중독 의심을 받는 질병으로 2003년에 사망했다. 그는 1999년 모스크바와 러시아의 다른 도시에서 발생한 일련의 아파트 폭탄 테러에 러시아 보안 기관이 연루되었을 가능성에 관해 조사하고 있었다. 
   
세 번째 희생자가 그 유명한 안나 폴리코프스카야 기자였다. 그녀는 노바야 가제타 기자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체첸 전쟁 인권 침해를 다룬 저서 ‘그랴즈나야 바이나(грязная война ; 더러운 전쟁)’와 ‘푸틴의 러시아(Putin’s Russia) 저서로 유명하였다. 2006년 10월 7일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고위급 부패와 체첸 등 북캅카스의 인권 침해를 심층 취재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희생자는 같은 날에 사망했는데, 아나스타시아 바부로바(Anastasia Baburova) 프리랜서 기자와 인권 변호사인 스타니슬라브 마르켈로프(Stanislav Markelov)이다. 이들은 2009년 1월 모스크바에서 기자 회견 이후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가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그들은 체첸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가장 악명 높은 학대 사례를 폭로하였다. 여섯 번째 희생자가 상기에 언급한 메모리얼 체첸 지부에서 활동한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살해당했을까? 2021년 8월 21일에 자동차 폭발 사건으로 사망한 알렉산드르 두긴(Aleksandr Dugin)의 딸인 다리아 두기나(Darya Dugina)를 누가 살해하였는지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듯이 이들의 사망도 누구에 의해 자행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진실이 오랫동안 감추어질 수 있다. 추측 이외에는 정확한 살해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체첸 전쟁, 정부 비판과 관련하여 극도로 민감한 자들에 의해 사건이 자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필자는 오랜 시기 19세기 캅카스 전쟁과 20~21세기 체첸 전쟁에 관해 연구해 왔다. 만약 필자에게 체첸 전쟁을 몇 줄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정리할 것 같다. 1차 체첸 전쟁(1994~1996)은 체첸 인들이 자유와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전면전(total war)이었다면, 2차 체첸 전쟁(1999~2002)은 당시 푸틴 총리가 모스크바 아파트 폭탄 테러 등의 사건을 활용하여 2000년 3월 대통령으로 선출될 기반을 제공한 ‘정치적 도약대’로 기능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21년간 러시아 정치의 최정상에서 군림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에게 체첸 전쟁과 인권 침해 사례를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러시아의 역사적-정치적 사건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2004년 체첸 반군에 의해 저질러진 북오세티야의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테러범들은 폴리코브스카야를 러시아의 협상 대표로 요청하기도 했으나 이는 불발되었다. 협상, 대화, 조정, 중재도 결국 없었다. 러시아 군 특공대가 들어가서 양측 간 치열한 총격이 교환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2002년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 벌어진 인질 사태 때 러시아 정부는 매우 강력하게 테러 진압에 나섰다. 극장 안으로 강력한 가스를 투입하여 50명 가까이 인질범이 기절하였고 이들은 즉시 사살되었다. 무고한 러시아 국민 100명 이상도 그 가스로 사망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 어떠한 협상도 거부하고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렇다면 2020년과 2021년 러시아와 관련된 기관 및 인물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함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재적 의미에서보다는 거시적으로 본다면,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감행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러시아가 평화를 배척하는 국가로 각인될 수 있고, 러시아가 전통적으로 유지하고자 했던 글로벌 강국으로서의 위상 역시 퇴색되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가 단지 지역의 강국으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 러시아 지도자들은 인권 단체 및 인권운동가들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주는 국제사회적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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