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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특집이슈

[월간정세변화] 빅데이터로 보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분쟁에 촉각 세운 강대국들

러시아ㆍ유라시아 일반 EMERICs - - 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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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영토 분쟁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평화 협상 중 분쟁 지역서 무력 충돌

6월 말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에서 아제르바이잔군과 아르메니아의 지원을 받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군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측은 아제르바이잔군의 포격과 드론 공격으로 4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며,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군의 공격으로 아제르바이잔군 병사 1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이번 유혈 충돌은 아라라트 미르조얀(Ararat Mirzoyan) 아르메니아 외무부 장관과 제이훈 바이라모프(Jeyhun Bayramov) 아제르바이잔 외무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평화 협상을 이어가던 중에 발생해 더욱 충격을 안겨 주었다. 2020년에 발발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이후 양국은 휴전했으나 평화 협상을 이어가는 중 유혈 사태가 간혹 발생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러시아 등이 중재자로 나서며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 평화를 촉구했지만 양국간 갈등의 골이 너무 깊은 나머지 쉽게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라친(Lachin) 회랑 폐쇄로 인도주의 물품 수송 제약

2023년 들어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갈등이 깊어진 계기는 아제르바이잔이 4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라친 회랑(Lachin Corridor)에 검문소를 설치하면서였다. 2022년 12월 아제르바이잔의 환경 단체라고 불리는 조직이 라친 회랑을 임의로 점거하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아르메니아에 오가는 교통에 차질이 생겼는데, 이제는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직접 라친 회랑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제르바이잔 국경관리국은 라친 회랑에 파견된 러시아 평화유지군에 검문소 설치를 통지했으며 이것이 정당한 행위라고 발표했다.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아제르바이잔의 검문소 설치를 제재하지 않은 가운데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의 검문소 설치가 휴전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니콜 파시니안(Nikol Pashinyan) 아르메니아 총리는 라친 회랑에 검문소를 설치한 아제르바이잔의 행동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인도주의적 문제를 일으킬 뿐만이 아니라 인종청소에 해당하는 행동이라면서 아제르바이잔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라친 회랑 교통이 통제되면 인도주의 물품 수송에 제약이 발생해 해당 지역 주민들이 필수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아제르바이잔 외무부는 아제르바이잔이 좋은 뜻으로 검문소를 설치했다고 반박했다. 


7월 11일에는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라친 회랑 검문소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적십자사가 자사의 구급차를 활용해 나고르노-카라바흐에 휴대폰 등을 밀매했다면서 라친 회랑을 봉쇄한 이유를 설명했다. 제네바(Geneva)에 있는 적십자사 본부는 아제르바이잔의 의혹 제기를 부인하면서, 적십자사가 고용한 운전기사 네 명이 적십자사의 승인 없이 적십자 마크를 단 차량을 활용해 상품을 거래한 사실을 확인했다.


20년 넘게 이어져 온 두 나라의 갈등, 혼합된 문화가 공존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

파시니안 총리의 인종청소에 대한 두려움이 상징적으로 나타난 사건은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마을 배르드조르(Berdzor)의 교회의 모스크 전환 시도다. 현지 언론에 의해 보도된 이 사건은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의 기독교 문화를 이슬람 문화로 바꿔버리려 한다는 공포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던 지역으로, 비록 거주민 중 아르메니아인의 비중이 더 크긴 하지만 다양한 문명과 국가가 흥망성쇠를 반복하면서 복합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왔던 지역이다. 


20세기 말부터 이어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발단은 소련 시절의 영토 획정 과정 때문이었다. 아르메니아인이 더 많이 살고 있던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아닌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속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고르노-카라바흐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이 크게 반발했다. 소련의 통제력이 강할 때는 이 지역의 소속 문제가 대두되지 못했지만, 소련이 붕괴하자 다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1994년까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중심으로 전쟁을 벌였고,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다.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자국의 영토로 합병하는 방식보다는 두 나라 사이의 완충지대와 같은 형태로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독립을 승인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거주하던 아제르바이잔인들은 고향을 잃고 아제르바이잔 본토로 이주하게 되었다. 


국제정치적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소련이 해체된 후에도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인정받았다. 비록 아르메니아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국제 사회에서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미승인국으로 남아있다.


중재 시도하는 러시아와 서방 각국


EU, 몰도바에서 양국 정상회담 주재

6월 1일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파시니안 총리가 유럽정치공동체(European Political Community) 정상회담이 열린 몰도바 수도 키시나우(Chisinau)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두 나라의 정상회담 자리에는 샤를 미셸(Charles Michel)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프랑스와 독일 정상이 배석했다. 그러나 과거의 대화들처럼 다섯 명이 모인 정상회담은 특별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으며 서면 합의도 이뤄내지 못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2023년 들어 한 달에 최소 한 번꼴로 정상회담 혹은 장관급 회담을 개최하고 있지만,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파시니안 총리는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라고 인정하면서, 대신에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제외한 2만 9,800㎢에 달하는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영토를 현대 아르메니아의 영토로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가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 뿐만이 아니라 2020년 전쟁을 통해 새롭게 확보한 영토도 자국의 영토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특히 자국의 본토와 월경지 나흐츠반(Nakhchivan)을 잇는 잔가주르(Zangazur)/메그리 회랑(Meghri Corridor)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두 나라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 양국에 대화 촉구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 적십자사의 밀무역을 이유로 라친 회랑을 봉쇄한 다음 날인 7월 12일, 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 미 국무부 장관은 알리예프 대통령과 통화를 하며 아제르바이잔이 자유로운 이동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라친 회랑의 봉쇄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블링컨 장관은 파시니안 총리와 통화하면서 미국이 두 나라의 평화 회담을 지원할 것이며, 두 나라가 직접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두 나라의 정상은 7월 15일 EU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Brussels)에서 다시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셸 의장은 두 나라의 정상이 진솔하고 내실 있는 대화를 오갔다고 발표했지만, 이번에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EU는 10월 스페인에서 올라프 숄츠(Olaf Scholz)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이 배석한 상태에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정상회담을 다시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3자 회담 마련하겠다는 러시아… 아제르바이잔은 중재자 러시아에 실망감 표출

러시아도 미국과 EU처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을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러시아 외무부는 모스크바(Moscow)에서 두 나라의 외무부 장관을 초청해 3자 회담을 조만간 개최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 내용에 대해 아제르바이잔은 상당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러시아가 발표한 성명에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의 권리와 안전에 대한 신뢰할만하며 확실한 보장”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의 성명이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보전을 지지한다는 러시아의 선언과 모순된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가 2020년 전쟁 이후 러시아의 중재 하에 체결된 휴전 협정을 러시아가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특히 라친 회랑에 주둔하는 러시아의 평화유지군이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무기를 공급하는 상황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했다면서 러시아가 진심으로 이 지역의 평화를 원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분쟁을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힘겨루기


민주주의 국가 아르메니아, 러시아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현실

내륙국인 아르메니아는 1990년대 초 아제르바이잔과 전쟁을 벌인 이유로 조지아 외에는 육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통제된 상태이다. 아제르바이잔의 혈맹국을 자처하는 튀르키예가 아르메니아와 접한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 상당히 불리한 가운데 기독교 정교계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같은 기독교권인 러시아로부터 지원과 보호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국제 질서인 유라시아 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가입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고자 했다. 


서방 국가들은 아제르바이잔과 달리 민주주의적 체제를 갖춘 아르메니아와 관계를 강화하고자 한다. 2022년 9월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 하원의장이 아르메니아를 방문했는데, 그는 아르메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아르메니아를 방문한 가장 높은 지위의 미국 공직자가 되었다. 2022년 12월에는 캐나다가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Yerevan)에 총영사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와 관계를 강조하는 서구권 국가 중 가장 돋보이는 나라는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평화 협상을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있으며, 프랑스 의회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에 상당히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프랑스 상하원은 프랑스 정부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독립을 승인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은 프랑스에 상당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프랑스가 진정으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평화를 희망하는지 의구심을 제기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의 궁극적 평화는 중재자 자처하는 러시아의 영향력 약화할 것

한편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항구적인 평화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남코카서스 지역에서 계속 갈등이 있어야만 이 지역 국가들이 러시아에 의존할 수 있고,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 러시아의 평화유지군이 철수해야 하므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마이클 도란(Michael Doran) 허드슨 연구소(Hudson Institute) 이사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평화가 이뤄지면 미국과 유럽이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며, 특히 유럽은 에너지 안보에 있어서, 미국은 조지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있어서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미국의 중재 속에 두 나라가 평화를 이루게 된다면 남코카서스에서 힘의 균형이 러시아에서 미국 쪽으로 크게 기울어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5월 초 나고르노-카라바흐 평화유지군을 이끄는 수장으로 노련한 알렉산드르 렌초프(Alexander Lentsov)를 임명했다. 렌초프는 2014년 돈바스(Donbas)에서 휴전과 지역 안정화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었고, 그전에는 체첸, 남오세티야, 시리아 등에서 활약했다. 맷 와틀리(Mat Whatley) 영국군 예비역 대령 및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도네츠크(Donetsk) 담당 전 대표는 러시아가 남코카서스 지역에서 영향력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렌초프를 나고르노-카라바흐로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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