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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특집이슈

[월간정세변화]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영향권 벗어난 독자 행보 강화

사우디아라비아 EMERICs - - 202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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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미국 관계의 변화


80년 이상 이어진 국교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1930년대 첫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후 80년에 걸쳐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사우디는 중동 지역 안보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처로서 미국에게 중요한 파트너였고, 사우디 또한 불안한 중동 정세와 이라크와 이란 등 중동 주요 국가의 위협 속에서 미국을 필수적인 안보 제공자로 간주하며 양국은 오랜 기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사우디가 일방적으로 원유 감산을 발표하며 발생한 1970년대 오일쇼크와 같이 양국 관계가 항상 우호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국 관계는 전반적으로 우호 기조를 유지해왔으며, 특히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사우디 안보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국은 적극적으로 나서 군사적으로 개입해 걸프 국가의 안보를 유지했다. 걸프전은 안보 제공자로서 미국이 걸프 국가에게 가지는 중요성을 상기하는 사건이었다. 


국제정세 변화 속 변모하는 사우디아라비아-미국 관계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양국 관계에는 긴장이 나타났다. 9/11 테러, 아랍의 봄, 이란 핵협상과 같은 국제정세 변화가 그 요인이었다. 2001년 9/11 테러에 가담한 범인 대다수가 사우디인인 것이 알려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사우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었다. 또한 미국에서 셰일가스 산업이 발전하면서 에너지 공급처로서 사우디의 입지가 축소되었고, 2011년 아랍의 봄 시기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취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는 사우디가 안보 제공자로서 미국의 역할을 불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바마 행정부가 펼치는 우호적인 대(對)이란 정책과 이란 핵 협상 타결도 이란을 주요 위협으로 간주하는 사우디의 불만을 야기했다. 그러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며 다시 개선되었고,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의 예멘 공습을 지지하고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을 허용했다. 


양국 관계 균열 발생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는 사우디가 미국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하는 상호 협력 관계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미국이 셰일가스를 통해 에너지 자급 수준을 높임에 따라 미국 대외정책에서 사우디의 입지는 축소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이동(pivot to Asia)’ 정책을 추진하며 중동에 대한 관심을 축소했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에 대한 공격 빈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미국이 소극적 반응을 보이자 사우디는 미국의 중동 안보 유지 능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사우디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고 예멘 전쟁에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은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를 더욱 냉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국경제의 부상과 중동 패권 이동의 징후

일대일로 정책으로 경제영토 넓히는 중국
2013년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추진한 일대일로(BRI, Belt and Road Initiative) 정책을 통해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일대일로 정책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중국 자본으로 철도, 도로, 항구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중국과의 무역 연결망을 강화해 중국의 경제적 영향권을 확대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대일로 정책이 완수되면 다수의 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와 중국의 경제적 연결이 강화되고, 더 나아가 일대일로에 참여한 국가의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인프라 건설을 위해 중국이 제공하는 대출과 투자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의 대(對)중국 부채 의존을 높여 중국의 의지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 경제 발전에 따른 거대 원유 수입시장 확보
일대일로 정책은 결국 중국 경제를 성장시키려는 정책의 하나로, 중국이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이다. 사우디 역시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 시장을 개척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해당 상황은 양국의 경제적 관계 수립과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사우디 원유의 최대 수입국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2022년 기준 사우디의 최대 원유 수출국은 중국이다.

경제 및 안보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야욕
경제 발전에 힘입은 중국은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으며, 일대일로는 이러한 목표에서 발현된 정책이다. 중국의 부상에 대응할 필요성은 미국의 관심사를 중동에서 아시아 지역으로 돌리는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로 중동 내 친미 동맹국은 중동 안보를 유지하는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중동 국가들은 미국에 의존하던 기존 정책 대신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고,이에 따라 아시아 국가와도 관계를 강화해 외교 다각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속 중동 국가가 새로운 경제 협력 파트너로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중동 내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란 견제라는 대전략에 입각한 미국의 중동 정책이 이란을 적으로 돌리는 반면,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스라엘  등 서로 대립하는 중동 국가 모두와 양자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민주주의나 인권 중시를 표방하는 미국의 외교 정책은 중동 각국 정권과 미국의 관계에 긴장을 형성하는 요인이 되었으나, 타국의 국내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중국은 중동 국가에게도 편리한 협력 상대였다.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은 바로 2023년 3월에 있었던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다. 양국 관계 정상화는 중국의 중재로 이루어졌다.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는 사우디와 이란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중립적 입장을 취해온 중국이 오랜 기간 이어져온 갈등을 봉합할 정도로 중동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관계 정상화는 또한 단순한 경제 협력 대상을 넘어 중국이 중동 안보와 정세 안정화에 기여할 능력이 있으며, 갈등 중재자로서 미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중국은 더 나아가 2023년 6월에는 팔레스타인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의지를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러한 행보가 갈등의 중재자로서 중동 내에서 중국의 입지를 굳히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중동에까지 침투함에 따라 중동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입지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중동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중-미 경쟁
2023년 2월 중국은 중국의 안보 전략의 기조를 담은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 Global Security Initiative)를 발표했다. 중국은 지역 내 갈등에 외부 세력이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밝히며 갈등 중재자로서 중국의 입지를 굳히고 세계 각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해 안보 유지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란-이스라엘 갈등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한 중국의 대(對)중동 정책 또한 GSI의 기조에 따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대(對)중동 정책의 궁극적 목적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동 지역 안정이며, 중국은 미국과 같이 군사력을 통한 직접적 안보 유지 능력과 의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의 중동 내 영향력 확대가 미국의 입지에 타격이 될 것이라는 단순한 전망은 섣부르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은 사우디를 필두로 한 중동 국가에게 미국에 대항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외교적 수단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국주도 세계 경제질서에 대항하는 움직임 대두

사우디아라비아-중국 연대 강화
사우디와 중국의 연대 강화는 특히 경제 부문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사우디는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의 대화 파트너 지위를 얻었다. 대화 파트너 지위는 정회원국으로 가기 전 단계다. 사우디의 SCO 가입은 이미 2022년 12월 시진핑 중국 주석이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에 논의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SCO 가입은 아시아, 특히 중국이 사우디의 원유 수출 시장으로서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사우디가 아시아 국가와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양국은 첨단기술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Muhammad bin Salman) 사우디 왕세자가 추진중인 사우디 경제구조개혁인 ‘비전 2030’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첨단기술산업 발전에서 사우디는 중국의 도움을 받고 있다. 2016년 시진핑 주석과 빈 살만 왕세자가 상대국을 방문한 이후 양국의 과학기술분야 협력 수준이 크게 강화되었으며, 양국 협력은 항공, 우주개발, 첨단과학인재양성 등 과학기술분야 전반을 아우른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과학기술분야에서 사우디와 가장 많이 협력하는 국가다.

사우디와 중국이 첨단기술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중국의 통신장비 및 스마트폰 제조기업인 화웨이로, 사우디의 5G 통신망 개발과 정보통신전문인력 양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화웨이는 또한 9월 4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를 개설했다. 화웨이는 해당 데이터 센터를 통해 AI, 언어처리, 정보통신기술 등 다방면에 걸쳐 사우디의 첨단기술분야 산업 발전과 디지털 전환에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월 화웨이는 사우디에 4억 달러(한화 약 5,324억 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4월에는 사우디로 중동 지역본사를 이전할 것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적극적으로 사우디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사우디는 원전 기술 이전에 소극적인 미국 대신에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화력 발전 의존도를 줄이고 탈(脫)탄소화 및 전력 수요량 증가에 대비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에 필요한 기술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조건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대한 지원을 미국에 요청했으나, 미국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금지, 자체 우라늄 채굴 금지 등의 조건을 사우디에 제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8월 사우디가 중국 기업이 제시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제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로이터통신과 알자지라 등 외신은 사우디가 미국 대신에 원전 기술 이전에 별다른 조건을 내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의 협력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놓았다.

그러나 사우디와 중국 관계 강화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중동에서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것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있다. 사우디가 미국과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지난 6월 압둘아지즈 빈 살만(Abdul Aziz bin Salman)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은 중국과의 협력 강화는 계속되어야 하지만, 사우디가 미국과 중국 중 반드시 한 쪽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사우디와 중동 국가에 가지는 주요 관심사는 경제로, 중국은 미국과 달리 중동 국가의 안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거나 중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의지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더라도 여전히 미국은 중동 국가에게 핵심적 안보 제공자로서 남을 것으로 예측된다. 오히려 중국의 중재로 중동 정세가 안정되는 상황은 미국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관계 정상화 이후 양국 관계 회복 급 물살
사우디와 이란 관계는 정상화 이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지난 6월 이란이 먼저 사우디 주재 대사관을 정식으로 재 개관하고 9월 3일 주(駐)사우디 대사를 파견한 데 이어 9월 5일에는 사우디도 이란에 대사를 파견했다. 8월 사우디를 방문한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Hossein Amir-Abdollahian) 이란 외교장관은 파이살 빈 파르한(Faisal bin Farhan) 사우디 외교장관을 만나 양국 관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언급했고, 파이살 장관은 에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 이란 대통령에게 살만 빈 압둘아지즈(Salman bin Abdul Aziz) 사우디 국왕의 초청을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한편 8월에는 양국 외교장관 간의 회담과는 별개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양국 국방부 고위 관료가 만나 안보 협력에 관해 회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는 걸프해의 도르라-아라쉬 (Dorra-Arash)가스전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과 같이 여전히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양국 관계의 전반적 진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대화를 이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사우디아라비아 BRICS 가입..서방국가에 대응하는 블록 형성인가?
8월 24일 사우디와 이란, 아랍에미리트, 이집트가 BRICS에 공식적으로 가입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사이 긴장과 진영 간 대립 구도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이루어진 BRICS 확대는 기존 BRICS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패권에 경쟁할 수 있는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목적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서방과 대립하는 이란이 BRICS에 가담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 이란의 협력과 결속이 강화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서방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결집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사우디의 BRICS 합류는 사우디가 비서구 국가와의 외교 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는 신호를 미국과 서방 국가에 보내 국제 발언력을 높이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BRICS 확대가 정말 서방에 대항하는 블록 형성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먼저 BRICS 회원국이 5개 국가였을 때도 회원국 간 의견이 쉽게 일치되지 않아 효과적인 공동 행동이 어려웠다는 문제가 있다. BRICS 규모가 더 커진 상황에서 회원국 간 의견 조율과 공동 행동이 더욱 어려워지면 BRICS를 통해 서방을 견제한다는 중국과 러시아의 목적이 쉽사리 달성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란의 가입이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과 같은 중동 분쟁을 BRICS 내부로 끌고 와 이스라엘에 대한 회원국 사이의 입장 차이를 더 벌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오히려 서방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가 합류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BRICS를 지나치게 반(反)서방 진영으로 끌고 가는 것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사우디와 UAE가 추구하는 것이 외교 관계의 다각화일 뿐 미국과 서방과의 전면적 대립이 아니라는 점도 BRICS 확대가 견고한 반(反)서방 진영의 형성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탈(脫)석유화와 탈(脫)달러화에 기인한 사우디 독자 행보 개시

사우디 우선주의(Saudi First) 정책 시행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우디의 독자 행보는 빈 살만 왕세자가 Vision 2030과 더불어 추구하는 ‘사우디 우선주의‘ 정책과도 관련되어 있다. 젊은 빈 살만 왕세자는 당초 미숙하고 국내•외에서의 도전과 위협에 취약할 것으로 여겨졌으며 인권 침해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빈 살만 왕세자는 그런 의혹을 불식시킬 정도로 강력한 국정 운영과 사우디의 국익을 철저히 우선시하며 때로는 미국과의 관계 경색도 불사하는 과감한 외교 행보를 펼치고 있다. 미국의 경쟁 국가인 중국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서방 국가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유 정책에서는 오히려 협력하며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해 유가를 안정시켜줄 것을 바라는 미국의 뜻에 반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그 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의 이익 극대화를 이해 미국,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 구도를 이용해 미국에 의존하던 사우디의 과거 정책에서 벗어나는 노련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석유 의존에서 벗어난 사업 다변화 추진
빈 살만 왕세자가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은 원유 의존도가 높아 유가 변동에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Vision 2030으로, 제조업과 관광업 등 비(非)석유 부문과 민간 부문을 육성하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며 첨단산업을 발전시켜 경제를 다각화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파이살 알-이브라힘(Faisal Al-Ibrahim)사우디 경제기획부 장관은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발언하며 경제 다각화를 위한 강한 의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는 2023년 들어 유가 하락에 따른 석유 부문의 침체를 상쇄할 정도로 비(非)석유 부문이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관광업과 건설업이 비(非)석유 부문 성장을 견인했다. 이에 지난 5월 지하드 아주르(Jihad Azour)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중동·중앙아시아국장은 경제를 다각화하고 원유 의존도를 줄이려는 사우디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유 외화 다각화로 달러 중심 경제에서 탈피
사우디의 경제 다각화는 달러화에 자국 통화인 리얄화의 가치를 페그(peg)한 사우디의 달러화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도 나타났다. 특히 대(對)러시아 제재는 미국과의 관계가 경색되는 상황에서 높은 달러화 의존도가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사우디는 탈(脫)달러화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달러화를 대체할 유력한 후보로는 위안화가 지목된다. 실제로 사우디는 중국과의 원유 거래에서 위안화로 원유 수출 대금을 결제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또한 2020년부터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을 41% 이상 줄이고 고위험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해외 자산의 탈(脫)달러화를 통한 다각화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탈(脫)달러화 논의가 가시화된 시점에서 사우디가 달러화를 대체할 통화에 관한 논의가 활발한 BRICS에 가입한 것이 탈(脫)달러화 속도를 앞당길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가 원유 거래에 달러화 대신 다른 통화를 사용할 경우 원유 결제 대금으로서 달러화가 가지고 있던 패권이 약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우디가 완전히 달러화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우디가 달러화 의존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리얄화와 달러화의 페그부터 해제해야 하지만, 이 경우 리얄화 가치가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미국과의 관계도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고 미국의 압박도 더 강해질 가능성도 크다. 달러화 대신 위안화를 사용할 경우 종속 대상이 미국에서 중국으로만 바뀔 뿐 다른 경제 대국에 종속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문제도 있다.

탈(脫)석유화 기조 속에서 이어가는 감산..원유 가격 견인 주도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사우디가 유가 안정에 기여해주기를 바라는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사우디는 러시아와 함께 감산을 지속하고 있다. 사우디는 지난 4월 160만 배럴을 감산한 데 이어 6월에는 추가로 100만 배럴을 자발적으로 감산했으며 9월 5일에는 감산 규모를 올해 말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의 감산 연장 발표는 유가에 충격을 가져왔고, 6월 배럴당 70달러(한화 약 9만 3,170원) 선을 유지하던 유가는 감산 연장 발표 이후 폭등하여 배럴당 90달러(한화 약 11만 9,790원)까지 올라 2022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우디는 감산 연장 결정이 수요 전망을 고려해 국제 유가를 안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유가를 끌어올려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재정 흑자를 달성하고자 하는 사우디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2023년 4/4분기 감산의 영향으로 하루 110만 배럴에 달하는 공급 부족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함에 따라 유가가 더 오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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