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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새로운 시대의 도전을 맞이한 브라질 룰라 행정부의 외교적 모험

브라질 Dawisson Belém Lopes Federal University of Minas Professor 2023/12/20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이하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21세기 초반 이전 임기에서의 관행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대외정책 노선을 제시하고 있다1). 물론 이전 정책과의 기본적인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룰라 행정부가 채택한 기조는 국제이슈 접근법의 일신, 그리고 오늘날 세계정세에 변화를 몰고 온 현대적 도전과제에 대한 대응 강조라는 측면에서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보인다.

한 때 전 세계 각국에 안정적으로 정착되었던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 세계질서는 현재 중국의 부상이라는 핵심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압력에 직면해 있다. 아울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자유진영’과 ‘철의 장막’ 간 역사적 갈등이 재현될 징조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국제법 규범과 세계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아래 각국은 정책환경의 불확실성이라는 문제를 안고 각자의 입지 보전 및 강화를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이러한 세계정세의 변화는 1955년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를 무대로 등장했던 ‘제3세계(Third World)’ 개념이 다시금 주요 노선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법에서 규정하는 중립성은 타국이 벌이는 전쟁에 휘말리기를 원하지 않는 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방침이 되어주는데, 지금처럼 양극화된 정세에서 중립성의 근간인 대외정책상의 자율성을 유지하는 데에는 확고한 결의와 목적의식이 요구된다. 또한 세계 각국의 관계 안정화라는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려면 많은 비용과 노력을 감수해야 하며, 이전 시대를 주도하던 위대한 정치가들의 맥이 끊긴 현재에는 더욱 큰 인내심이 요구된다.

룰라 대통령은 취임 이래 11개월간 과거의 전략과는 결을 달리하는 적극적 대외정책을 펼쳤으며, 이집트와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환경 및 지역통합 문제에 관해 큰 목소리를 냈다.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카리브국가공동체(CELAC)와 메르코수르(Mercosur)에 재차 힘을 실어주면서 국가간 통합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유럽, 미국, 중국 등 역외 주체와의 교섭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5년 전에 국가주권론을 내세우며 자국 채광업계의 성장을 지원하던 브라질은 현재 녹색경제와 환경 거버넌스 기준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선회했고2), 중남미 지역주의 측면에서도 좌파 독재정권에 대한 지지를 줄이고 역내 제2의 핑크타이드(Pink tide)에 대해서도 제한적 환영의 의사를 보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룰라는 남미지역을 넘어 멕시코와 중미, 카리브 지역과도 교류에 나섬과 동시에, 서반구의 맹주인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실용적 노선을 견지한다.

룰라3기 행정부가 이전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으로는 국제질서 재편 계획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적극적 대외정책 노선으로의 선회를 들 수 있다. 비록 브라질이 자임하는 국제 분쟁의 중재자 역할은 완전히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없지만, 룰라 행정부가 보이는 대외적 자신감은 2004년 아이티 평화유지군 파견 당시에 브라질이 보이던 조심스러운 자세와 큰 대비를 이룬다. 브라질의 이처럼 담대한 대외노선은 브라질을 신시대의 국제정세를 주도하는 적극적 주체로 올려놓겠다는 룰라 대통령의 비전을 내포한다.

농업 및 환경분야 강국을 지향하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 참석한 자리에서 “브라질이 돌아왔다”고 선언하며 세계 환경 거버넌스 전략을 발표했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이 국제경제적 압력이 만들어냈던 기존의 보수적 환경정책에서 탈피해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미래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브라질의 환경정책은 1992년 리우 정상회의 등에서 제기된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수립되는 경향을 지녔는데, 이 시기 원주민 영토와의 경계선을 확정한 것도 세계가 아마존 밀림의 훼손과 원주민들의 삶의 위기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즉, 이 시기까지 브라질은 국제무대에서 수동적 주체로 남아있었으며, 대표적 국가주권론 주창자였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전 대통령 재임기에는 특히 2018년 이후 불거진 산림훼손 문제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의 압력이 가중되기도 했다.

하지만 2023년에 룰라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브라질은 경제 및 외교분야의 도전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적 기조를 취하는 전환기에 들어서게 된다. 룰라는 국제사회의 비판 가중과 이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장애물을 맞아 효과적인 기후정책, 정치적 대표성과 포용성 확보를 강조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신기준 수립을 주장했으며, 농업계의 이익을 위한 자연환경의 훼손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세계적 경향을 의식해 브라질을 지속가능 관행에 기반한 농업 및 환경분야 강국으로 만들고자 한다.

브라질의 농업부문은 한편으로 돼지열병 유행,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적 여건에서 반사이익을 보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2000년대 초반 이래 산림훼손을 대가로 생산된 브라질산 상품에 의구심을 보이는 유럽연합(EU)의 견제조치를 비롯한 외교적 난항도 존재한다. 이에 룰라 행정부는 브라질이 농업부문에서 보유한 주도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환경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상기 여건 아래 브라질은 앞으로도 기후, 식량, 금융, 국제안보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자 한다. 여기서 브라질의 목표는 자국이 보유한 막대한 천연자원을 활용해 농업 및 환경분야에서 글로벌 강대국들과 비견되는 핵심 주체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는 경제적 이익 확보는 물론 세계무대에서 환경구상을 후원하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일도 중요하다.

러-우 전쟁에 관한 브라질의 역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19개월이 지난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많은 도시가 파괴당하고 수십만 명의 사상자와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2022년에 우크라이나 경제는 전년 대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상실하며 전쟁이 불러온 피해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지지를 받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국민은 조기 항복을 점치던 당초의 예상을 깨고 현재까지도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전 수행에 무시할 수 없는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으로 러시아를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서방 진영의 대러제재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국제통화기구(IMF)의 추산에 따르면 러시아의 2023년도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영국과 독일을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로 들어가는 전략물자나 금융자본에 대한 서방의 제재는 일부 기술집약도가 높은 상품의 수급에 장애물이 되기는 하지만, 중국과 인도, 튀르키예 등 여타 국가가 러시아에 제공하는 간접적 지원을 막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국제무대에서 전쟁 당사국 각각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는 지금의 상황에, 러-우 전쟁의 중심부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는 중견국인 브라질의 올바른 처신은 무엇인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벌이는 전쟁을 관망할지, 혹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관여할지의 여부는 브라질의 정책결정자들이 답해야 하는 중대한 질문이다. 앞으로의 상황 전개를 예상하지 못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전쟁 발발 이전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와의 연대를 공표했다. 그러다 개전 이후 해당 발언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국내외 세력의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짤막하고 일관성 없는 언급을 거듭 내놓았고,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에 당면한 당시 브라질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감안해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국제연합(UN) 총회 결의안에 찬성하면서도 당사국들과의 관계에서는 중립을 표방하는 이중적 자세를 취했다.

이와 같이 브라질이 러-우 전쟁에 관한 진정한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집권한 룰라 대통령은 전쟁의 간접적 파급효과에만 대응하던 기존의 소극적 접근법에서 탈피해 외교적 해법을 주도적으로 제안하는 적극적 입장으로 선회했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200년간 분쟁 중재역을 맡았던 자국의 역사적 전통을 바탕으로 브라질을 세계평화의 주도국으로 만들고자 하며, 헌법 원칙과 역사적 경험을 기반으로 평화와 자율성을 강조하는 외교 정책을 구사한다. 룰라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하여 ‘평화 클럽’ 계획을 구상하여 각국의 동참을 권유한 바 있다3).

브라질의 대미관계와 베네수엘라 문제
브라질 언론은 최근 수개월간 국내외 정보를 인용해 룰라 대통령이 반미주의 혹은 반서방주의적 경향을 보인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에 관한 논란은 ▲미국 달러와는 독립된 독자적 금융체계 옹호 ▲미국과 유럽의 러-우 전쟁 접근법에 대한 비판 ▲대러제재 참여 및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거부 ▲2023년 4월 방중을 비롯한 룰라의 취임 이래 행보를 근거로 삼는다. 역사적으로 브라질은 독립 직후 세계의 중심이던 유럽과 비대칭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나, 20세기에 미국이 열강 지위에 등극하면서 이 상황도 바뀌게 된다. 이후 상당기간에 걸쳐 미국은 브라질의 최대 교역국이자 2차대전 등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 동맹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브라질의 최대 교역국 자리에 오른 21세기에는 이 질서가 다시금 재편되고 있다. 브라질과 미국은 종종 특정 사안에 대한 견해차를 보이고, 브라질 대통령이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상호간 이견 해소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근본적으로 다른 양국 경제구조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시각차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각국이 저마다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자율성을 보여주는 긍정적 신호이기도 하다. 브라질리아(Brasília)에서 개최된 남미 정상회의에서 룰라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정권을 옹호하는 입장을 들고 나온 점은 브라질과 미국의 입장차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 중 하나이다. 룰라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비민주국으로 규정짓던 기존의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역내 안정을 강조하는 입장을 펴고, 베네수엘라의 고립이 남미 지역에 초래하는 에너지 공급 부족이나 이민자 폭증 등 수많은 문제를 거론하면서 재통합 노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룰라 대통령의 마두로 옹호론은 여러 현실적 고려 이외에도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는 자신의 철학에 기반해 있다. 룰라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정상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브라질의 지원을 약속했는데, 이 방면에서 향후 과제는 베네수엘라 재건 작업의 시발점이 될 마두로 대통령의 상징적 양보를 받아내는 일이 될 것이다. 비록 마두로 정권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룰라 대통령의 입장이 일각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 행보는 역내 안정화를 지향하는 룰라 대통령의 성향, 그리고 소속 정당인 브라질 노동자당(Workers’ Party)이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정권과 맺고 있는 역사적 연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4).

브라질이 이처럼 기존의 예상과는 배치되는 대외노선을 밟고 있는 가운데, 룰라 대통령은 당면한 문제의 외교적 해법을 제시하면서도 브라질의 국제적 입지를 훼손시키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있다. 따라서 그의 향후 과제는 브라질만의 입체적 외교를 전개하면서도 자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적절히 관리해 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결론: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 대안적 강국으로서의 브라질
브라질의 대외관계가 변혁을 맞게 된 역사적 계기는 미국 9·11 테러 사건 이후 국제질서가 격변하고 다극체제가 등장하던 2003년을 전후한 일련의 진보정권 집권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브라질은 2009년에 정식 출범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소속 주요국 모임인 브릭스(BRICS)를5) 토대로 인도 및 중국 등과 대외정책을 조율해 글로벌 거버넌스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브라질의 최근 행보에 반대하는 비판론자들은, 브라질에는 인도와 같은 핵심 신흥국의 지정학적 장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연구의 주제가 된 인도의 부상도 자연적 현상이 아닌 인위적 산물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5,000년에 걸친 문명의 역사와 10억 단위의 인구를 지닌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배에 대한 유혈저항으로 힘겹게 주권을 쟁취했으며, 핵확산금지조약(NPT) 서명을 거부함으로써 국제규범 위반에 따른 낙인과 악영향을 감수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국가이기도 하다. 즉, 인도가 국제무대에서의 주요국으로 인정받는 지금의 상황은 저항과 희생을 대가로 한 복잡한 협상의 결과물로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난 세기 중국의 ‘화평굴기’도 객관적 역사분석의 측면에서는 대가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일항쟁, 대전 이후 1971년까지 이어진 정부 비승인기, 그리고 세계적 지탄을 받은 천안문 사태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언제나 외교적 난관에 직면해왔다. 과거에는 대체로 중국에 우호적이던 미국 내 여론이 최근에는 압도적인 중국 경계론으로 전환된 사실도 국제적 위계질서 내 중국의 지위 상승에 복잡한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술한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브라질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 대안적 강국을 지향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브라질은 다른 신흥 강국들과는 달리 핵무장이나 여타 역내국 통제, 국제규범에 대한 도전을 기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국제기준을 준수하면서도 세계무대에서의 정당한 자리를 확보하려는 보편주의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과연 브라질이 앞으로 이러한 대외기조를 바탕으로 급속히 진화하는 국제정세를 성공적으로 헤쳐 나갈지, 오직 역사만이 진실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1) https://pp.nexojornal.com.br/ponto-de-vista/2023/A-nova-pol%C3%ADtica-externa-brasileira
2)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23/dec/02/lula-climate-leader-cop28-brazil-undermined-by-opec-move
3) https://blog.politics.ox.ac.uk/pacifism-as-pragmatism-brazils-stance-on-the-war-in-ukraine/
4) https://www.bbc.com/news/world-latin-america-65750537
5) 2024년까지 10~11개국으로 가맹국 확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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