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 추가 부과
EU, 러시아에 대한 12번째 제재 부과...벨라루스는 기존 제재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지원에 대한 제재까지 추가
2023년 12월 말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추가 제재를 부과했다. 새로 도입된 제재는 러시아에 대한 수출입 금지 조치를 확대하고, 제재의 우회와 허점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EU가 발표한 제12차 제재에 따르면 러시아산 천연·인조 다이아몬드 및 가공품의 대(對)유럽 수출이 금지되고, 개인과 법인 등 러시아의 경제 주체140개 이상이 추가 제재 목록에 올랐다. 특히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 불법 선거에 동참하거나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소위 ‘재교육’에 책임이 있는 인물과 기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가짜정보와 정치 선전을 확산한 행위자들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이외에도 EU는 러시아 석유 가격 상한제 및 액화석유가스(LPG)에 신규 제재 도입, 운송 금지 조항의 범위 확대 등 더욱 강력한 제재 우회 대처 방안도 마련했다.
EU는 벨라루스에 대한 기존 제재도 보다 강화했다. EU는 1999년과 2000년 민주화 인사 탄압과 관련하여 벨라루스에 이미 무기 금수조치, 내부 탄압을 위한 물품 수출 금지, 자산 동결, 제재 대상 인물의 여행 금지 등의 제재 조치를 시행해 왔으며, 2020년 대통령 선거 이후 부정선거, 시위 참가자 탄압 등의 이유로 추가 제재가 부가된 상태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벨라루스가 러시아를 지원하자 EU는 벨라루스에 재차 추가 제재를 가했다. 이에 따라 벨라루스의 개인과 법인 200곳 이상이 EU의 제재 목록에 올랐으며, 금융 및 경제 제재도 가해져 벨라루스 국립은행의 자산이 동결되고, 은행 통신망인 SWIFT에서도 퇴출됐다. 또한 벨라루스에 유로화를 지급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이외에도 EU 회원국들은 벨라루스에 대한 시멘트, 철강, 고무, 목제, 광물연료, 기체 탄화수소, 염화 칼륨 등의 수출이 금지되었고, 군사, 기술, 국방 및 안보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이중용도 제품과 특정 고급 제품 및 기술 수출 또한 제한되었다.
미국, 영국도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추가 제재 발표
EU가 추가 대러 제재를 발표하기 전 2023년 12월 5일과 6일 미국과 영국 정부도 신규 제재를 부과하고 수출 제한 조치를 강화했다. 이번 제재에는 러시아의 국방산업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는 제3국의 개인과 법인도 포함됐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은 벨기에인이 러시아, 벨기에, 키푸르스, 스웨덴, 홍콩, 네델란드의 개인과 법인들로 구축한 네트워크를 대상으로 제재를 가했다. 해당 네트워크는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활용 가능한 전자기기를 러시아에 공급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을 지지하고 재정 지원을 제공하는 개인과 단체 46곳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개안과 법인에는 벨라루스, 중국, 세르비아, 튀르키예, UAE, 우즈베키스탄 군수업체들도 포함됐다.
러시아 Arctic LNG2 프로젝트에도 제재 부과….외국기업들 줄줄이 참여 중단 선언
러시아의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인 북극 LNG2(Arctic LNG 2) 프로젝트도 대러 제재의 대상이 됐다. Arctic LNG 2 프로젝트는 매년 LNG 1,980만 톤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러시아와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러시아와 글로벌 기업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투자한 비용은 누적 213억 달러(약 28조 4,95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기업인 노바텍(Novatek)이 전체 지분의 60%, 프랑스 토탈에너지(TotalEnergies)와 중국의 CNPC, CNOOC, 일본의 미츠이(Mitsui) 등이 각각 지분의 10%를 보유했다. 이들 기업들은 불가항력 조항을 내세우며 사업에서 철수했다. 한국의 삼성중공업 역시 러시아 조선소에서 진행하고 있던 LNG 운반선 건조를 중단했다. 삼성중공업은 2019~2020년 Arctic LNG 2 프로젝트에 투입될 쇄빙선 15척의 건조 계약을 체결한 바 있는데, 당시 계약 금액은 4조원을 넘어서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으로 기록된 바 있다.
Arctic LNG 2 프로젝트 중단으로 LNG 수출에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미국을 비난했다. 러시아 측은 미국이 Arctic LNG 2 프로젝트에 제재를 가해 글로벌 에너지 안보를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23년 12월 말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Arctic LNG 2 프로젝트를 중단시키려 한 미국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Arctic LNG 2 프로젝트를 중단 없이 지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산드르 노박(Alexander Novak) 러시아 부총리는 미국의 제재에도 Arctic LNG 2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것이며, 2024년 1/4분기 첫 수출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벨라루스와 러시아, 제재에 공동 대응... 서방의 제재 대상국들과 협력 강화, BRICS·SCO 중심으로 반서방 연대 추진
벨라루스와 러시아, 경제적·정치적·군사적 통합 추진 시도했던 최우방국…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심적 역할 수행
러시아와 전방위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결정적인 지원 역할을 했다. 벨라루스 국경이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Kyiv)와 80km 밖에 되지 않는 다는 점은 전쟁 초기 러시아에게 큰 전략적인 이점이 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과 드니프로강(Dnipro River)를 건너지 않고도 키이우를 손쉽게 공격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벨라루스는 러시아 용병 단체였던 바그너 그룹(Wagner Group)의 기지로 활용되었다. 또한 서방과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벨라루스에 러시아의 전술 핵병기가 배치되기도 했다. 벨라루스가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벨라루스와 접경한 폴란드와 발트 3국, 더 나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간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루카셴코 대통령, 러시아-벨라루스-북한 삼자 협력 제안
지난 2023년 9월 러시아의 소치(Sochi)에서 알렉산데르 루카센코(Alexander Lukashenko) 벨라루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 간의 회담이 이루어졌다. 이번 회담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벨라루스-북한 삼자 협력을 제안하였으며, 벨라루스가 3자 협력에서 활약할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루카셴코 대통령의 발언은 러시아와 북한이 협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의 최신 전투기 공장을 방문하였으며, 당시 미국과 서방 전문가들은 북한이 러시아에 금지된 무기를 공급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서방과의 갈등 빚고 있는 중국도 러시아·벨라루스와 협력 추진
중국도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협력에 동참했다. 지난 2023년 8월 리샹푸(Li Shangfu) 중국 국방부장은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방문하여 양국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리샹푸 장관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국제안보 컨퍼런스에 참여하여 연설하였으며, 러시아를 비롯한 참여국들의 군사 지도자들과 회담했다. 당시 왕 웬빈(Wang Wenbin)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과 러시아 지도자들이 다양한 현안에서 전략적인 소통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이 최신 국방 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으나 고고도 미사일 등 새로운 형태의 무기가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러시아, 중국과 협력하여 북극항로 장악하여 서방국 압박할 계획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은 북극 지역에서도 이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다음 해인 2023년 러시아는 북극을 횡단하는 두 개의 주요 항로 중 하나인 북극 항로를 따라 중국과 함께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한 협력을 추진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 지역에서 협력을 강화하자 전문가들은 양국이 해당 지역에서 공유하는 경제적인 이익이 증대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지난 2023년 8월 러시아와 중국의 군함 11척이 일본해에서 베링해협을 거쳐 미국령 알류샨 열도 인근을 통과하기도 했는데, 러시아 뉴스 매체인 인테르팍스(Interfax)는 양국이 합동 대잠수함, 대항공모함 훈련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미국은 북극 지역의 군사 정책을 재고하고 예산 추가 배정 및 그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3년 11월에는 NATO 군의 발트해 군사 훈련에 미 해병대를 파견하였다.
이란, 공식적으로 벨라루스와 경제-군사 부문 협력 선언
지난 2023년 8월 벨라루스와 이란은 긴밀한 군사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고위 군사 장교들은 군사 협력을 위한 위원회 설립을 논의했다. 이란 측은 세계적인 권력 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벨라루스와 이란의 협력이 확대되어야 한다며 양국 간 군사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란 측은 강압적인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국가들이 서로 협력하여야 한다고 첨언했다. 한편 이란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공격용 드론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인도, 우호관계 확인….국방 및 무역 부문 협력 증진 논의
인도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여러 차례 확인했다. 2023년 12월 말 수브라흐마냠 자이샨카르(Subrahmanyam Jaishankar) 인도 외교부 장관은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 및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회담했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양국 무역액이 500억 달러(한화 약 66조 7,150억 원)을 넘어섰으며, 양국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이샨카르 장관은 라브로프 장관과의 회담에서 양국이 최신 무기의 공동 생산 등 군사 기술 협력도 확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인도는 제재로 가격이 낮아진 러시아산 석유를 다량으로 구매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
BRICSs·SCO 중심으로 반서방 연대 구성 추진
러시아는 다자적인 차원에서도 새로운 세계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다자주의 세계질서를 강조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인 세계질서에 도전한다. 이러한 도전은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브릭스는 신흥국가 간 경제 협력으로 시작하여 새로운 세계 질서를 논의하는 장이 되었으며,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UAE가 2024년부터 정회원국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한편 과거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국가 간 국경 구획을 위해 설립되었던 SCO도 공동 테러 대응, 경제, 사회문화 협력으로 협력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벨라루스에 대한 경제 제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
러시아, 오히려 경제 체력 강화? 다양한 제재 회피 경로 확보…서방국들이 제제 결함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비판도
경제 전문가들은 대러제재가 오히려 러시아 경제에 보탬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야니스 클루게(Janis Kluge) 독일국제안보연구소(Germa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nd Security Affairs) 경제 전문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어 본격적인 제재가 가해진 2022년이 러시아에 역사적으로 큰 이익을 안겨준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클루게는 국제 가스와 석유 가격 폭등으로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러시아가 추가 수입을 얻었으며, 이로 인해 2022년과 2023년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서양 협의회(Atlantic Council) 소속 전문가인 다니엘 프라이드(Daniel Fried)는 유럽의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수출과 이들 국가들의 대러시아 수출이 대폭 늘어났다면서, 러시아가 이러한 방법으로 제재를 우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도 EU가 벨라루스 제재의 공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벨라루스의 야권 운동가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Sviatlana Tsikhanouskaya)는 벨라루스 제재에 큰 공백이 있으며, 이로 인해 제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서방국들이 제재의 결함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제재 약화에 대한 비난 제기, 수많은 예외와 허점 존재…서방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아직 남아있다는 반론도
서방 국가들이 여러 차례 제재를 도입하였으나, 제재 일부가 오히려 완화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방송 계열인 라디오프리유럽(RadioFreeEurope)은 지난 2023년 11월 제재안에서 제재 대상 기업 31곳 중 카자흐스탄 기업 두 곳이 포함되었으나, 12월 18일 최종 안에서는 카자흐스탄 기업 2곳이 빠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과 유럽은 대러제재를 위한 추가 선택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타임(Time)은 서방이 러시아가 전쟁에 필요한 틈새 기술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러시아의 유령 선단을 추적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타임지는 러시아 은행의 해외 계좌에 있는 3,000억 달러(한화 약 400조 3,800억 원)를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