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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상반된 리튬 접근법

아르헨티나 / 칠레 이승호 전북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2024/03/04

4차산업혁명 시대 핵심 광물로 주목받는 리튬
4차산업혁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나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와 같은 4차산업의 주요 산출물을 발전시키는 핵심 원동력으로 인식된다. 리튬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전달하는 배터리의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로, 최근 배터리 시장의 급성장으로 인해 핵심 광물로서 중요성이 더욱 부각 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리튬의 안정적인 확보는 급변하는 국제 산업 구조 속에서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국가와 기업 간 경쟁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배터리 분야는 신산업의 핵심이며, 해당 분야 가치사슬을 둘러싼 경쟁에서 ‘원재료’라 할 수 있는 리튬에 대한 접근은 국가와 기업의 전략적 우위와 직결되고 있다. 미·중 경쟁의 지속과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이 비용 최소화와 효율성이라는 논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보편화된 탓이다. 

이렇게 핵심 광물의 확보가 국익과 직결되는 시대에 리튬을 채굴하거나 가공할 수 있는 국가가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남미 국가 중에서는 특히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리튬 매장량과 생산량에서 모두 세계 4위 안에 드는 두 국가가 리튬을 어떻게 관리·규제하느냐가 리튬 이온 배터리 가치사슬에 얽혀 있는 많은 국가와 기업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별다른 가치가 없어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리튬의 가치가 폭등하자, 칠레와 아르헨티나 정부로서는 리튬을 어떻게 관리하고, 리튬을 매개로 어떻게 국가 발전을 도모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느 광물자원과 마찬가지로, 리튬을 둘러싼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으며, 이에 따라 정부 정책이 시행되거나 민간 부문에서 변화가 일어날 때 다면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리튬 주요 생산국 입지를 굳히고 있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그림 1>은 2024년 1월 미국 지질조사국(U.S. Geological Survey)이 발표한 국가별 리튬 매장량을 보여준다. 칠레에만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33.6%인 930만 톤이 매장되어 있다. 뒤이어 호주에 620만 톤, 아르헨티나에 360만 톤이 매장되어 있어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22.4%와 13.0%가 두 국가에 각각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명실공히 리튬 매장량 세계 1위, 3위 국가다.

<그림 2>는 미국 지질조사국이 발표한 2023년 기준 국가별 리튬 생산량을 보여준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2023년 전 세계 리튬 생산량을 약 18만 톤으로 추산했는데, 이 중 호주의 생산량이 약 8만 6,000톤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46.6%를 담당했다고 추산했으며, 칠레는 약 4만 4,000톤, 아르헨티나는 약 9,600톤을 생산해 각각 전 세계 생산량의 23.8%와 5.2%를 담당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리튬 생산량에서도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세계 2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 1> 2024년 1월 기준 국가별 리튬 매장량 (단위: 천  톤)


<그림 2> 2023년 기준 국가별 리튬 생산량 (단위: 톤)


<자료> U.S. Geological Survey, Mineral Commodity Summaries (2024.1)을 활용하여 저자 재구성


리튬을 생산하는 방식은 크게 광석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경암형과 염도가 높은 물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염수형으로 나뉘는데,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살라르 데 아타카마(Salar de Atacama)나 옴브레 무에르토(Hombre Muerto)와 같은 염호에서 리튬을 생산해 주요 리튬 생산국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리튬 거버넌스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
리튬은 수출 증진, 정부 수입 증가, 일자리 창출, 외국인 투자 유입, 배터리 가치사슬에서 새로운 분야 진입과 같이 경제 발전에 대한 다양한 기대와 연결되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높은 천연자원 부존이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자원의 저주’ 발생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정부 또는 지역사회와 외국인 기업 간 힘겨루기 문제도 있다. 리튬 채굴과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제품의 생산을 관리하고 규제하려는 정부 또는 지역사회와 리튬 채굴·생산에 참여하는 외국인 기업 간 이익 분배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정부, 지역사회, 채굴을 허가받은 외국인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저마다 다른 시각으로 리튬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리튬 거버넌스는 외교·안보 문제와도 얽혀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핵심 광물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 간 줄다리기와 결부될 수밖에 없다.

리튬 채굴이 불러올 수 있는 환경 파괴 문제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 섞인 시각이 많다. 리튬은 전 지구적 탄소 중립 목표 달성에 필수적인 광물로 여겨지지만, 역설적으로 채굴 과정 전반에서 계속해서 탄소가 발생한다. 또한,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는 염수형으로 리튬을 추출하기 위해 소금물을 증발시켜야 하므로 염호 주변의 농지와 습지가 건조해지고 주변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지역사회의 많은 사람이 리튬 채굴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으며, 리튬 채굴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적절히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많다.

칠레 보리치 정부의 국가 리튬 전략
칠레는 이렇게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리튬 산업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 대통령이 이끄는 칠레 정부는 2023년 4월 국가 리튬 전략(Estrategia Nacional del Litio)을 발표했고, 6월에는 전략의 세부 사항을 밝혔다. 정책 발표 전까지는 2022년부터 집권한 그의 이념적 성향과 그동안의 언사로 비추어 보아 칠레의 리튬 산업이 국유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시장 논리에 입각한 교육제도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며 2010년대 초반 반정부 시위를 이끌어 명성을 얻은 보리치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내 왔으며, 주요 전략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 강화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보리치 정부가 리튬 산업의 완전한 국유화를 추구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민관 협력을 통해 리튬 산업의 확장을 도모하는 동시에, 확장되는 리튬 산업 전반에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리튬 산업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영 리튬 기업을 설립하겠다는 내용이 가장 눈에 띈다. 보리치 정부는 민간 기업에 대한 리튬 채굴 허가를 늘리는 대신, 신규 채굴 사업은 국영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리튬 생산량을 늘리되, 생산에서 국가의 통제권을 확보해 배터리 가치사슬에서 자국 부가가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한편, 민간 기업에 새로이 리튬 채굴을 허가할 때는 해당 기업의 생산성뿐만 아니라 투자 기업이 칠레의 자국 부가가치 강화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역시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의 전기차 기업 BYD가 칠레에 리튬 이온 배터리의 음극재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하고 리튬 채굴 권리를 보장받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리튬 채굴권을 통해 배터리 가치사슬에서 채굴을 넘어 더 큰 국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공정이 칠레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칠레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 방향인 것으로 보인다.

칠레 국가 리튬 전략의 또 다른 주요 내용은 현재 칠레에서 리튬을 채굴하고 있는 기업인 SQM, 앨버말(Albermarle)과의 리튬 채굴권 재협상과 관련이 있다. 중국 기업이 4분의 1가량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칠레 기업 SQM과 미국 기업 앨버말과의 계약은 각각 2030년과 2043년에 만료되는데, 채굴권 재협상은 칠레의 국영 기업이 두 민간 기업의 리튬 관련 사업에 대한 어느 정도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대신 두 기업은 리튬 채굴권 만료 기한을 연장받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리튬 산업이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무와 환경 보호 의무를 다할 것을 주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리치 정부가 발표한 국가 리튬 전략은 사실 전임 정부들이 리튬에 접근해 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칠레의 리튬 전략은 정부의 성향과 관계없이 정부가 전략 광물인 리튬에 대한 일정 수준의 통제권을 가지고 단순한 채굴·수출을 넘어 산업 내 자국 부가가치 향상과 배터리 가치사슬 참여 확대라는 목표를 지향해 왔다. 보리치 정부의 리튬 국가정책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리튬 정책 방향과 밀레이 정부 출범에 따른 변수
리튬 산업 전반에 걸쳐 중앙 정부가 민간 기업의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규제 환경을 조성해 온 칠레와는 달리, 아르헨티나의 리튬 거버넌스는 민간 투자에 대한 높은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리튬이 매장된 지역의 주 정부가 저마다의 리튬 규제 체계를 갖는 연방주의 원칙에 입각한다.

민간 자본에 너그러운 아르헨티나의 리튬 거버넌스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상당한 유인책을 제공한다. 리튬이 매장되어 있는 대부분 주에서 로열티는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현지 조달이나 기술 이전과 같은 조항을 강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외국 자본에 아르헨티나는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할 수 있다. 주 정부는 리튬 채굴 면허 발급을 통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로열티 수입 등으로 주 정부 세입을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내 고용 창출과 중앙 정부에 대한 재정적·정치적 자율성까지 강화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와 주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아르헨티나로의 리튬 관련 외국인 투자 유입은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리튬 자원을 기반으로 산업 내 자국 부가가치 향상과 배터리 가치사슬 참여 확대라는 이른바 산업화 목표를 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칠레 정부와는 다르게, 아르헨티나의 리튬 거버넌스 구조는 비슷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주 정부가 리튬을 관리하는 연방주의 원칙은 중앙 정부가 명확한 산업화 의제를 통해 국가 차원의 조율된 리튬 정책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대규모 외국인 투자 유입으로 급성장하는 리튬 산업에서 발생하는 기회와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중앙 정부 차원의 메커니즘이 부재한 것이다. 이는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빈번한 아르헨티나 경제의 다른 부문들과 대조된다.

이러한 가운데, 급진적 자유주의 수사로 집권에 성공한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대통령이 앞으로 리튬에 어떻게 접근해 나갈지 주목된다. 밀레이 대통령이 그간 보여온 성향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는 신자유주의 원칙에 입각한 현재의 리튬 거버넌스 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예상할 수도 있지만, 아르헨티나의 외교 정책을 미국 중심으로 전환하여 중국과 거리를 두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혀온 그가 중국 기업의 투자에 크게 의존해 온 리튬 부문에 어떤 변수를 새로 만들어 낼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미국이 주도하는 배터리 가치사슬에서 편입하고자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가며
리튬 채굴을 둘러싼 정부, 외국인 기업, 지역사회 간 이해관계 조율과 이익 분배는 분명히 복잡한 일이고, 외국인 기업의 투자 유치와 자국의 배터리 가치사슬 참여 확대는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문제다. 환경적 책임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무 역시 고도의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리튬 확보 및 배터리 가치사슬 전반에서의 경쟁 역시 리튬 정책에 복잡성을 더한다.

리튬이 매장되어 있는 여러 국가에서 리튬을 어떻게 관리하고, 리튬을 매개로 어떻게 국가 발전을 도모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발돋움해야 하는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보이는 리튬에 대한 상반된 접근은 흥미롭다. ‘신자유주의의 요람’으로 인식되던 칠레에서는 전략 광물에 대한 통제가 지속되어 왔고, 반대로 전통적으로 경제 전반에서 국가의 개입이 강한 아르헨티나에서는 오히려 리튬 거버넌스가 신자유주의와 연방주의 원칙에 입각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연방주의라는 상수와 경제위기 상황이라는 단기적인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리튬에 대한 상반된 접근의 배경과 결과에 관한 다면적 탐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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