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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아르헨티나 밀레이 정부의 경제정책과 전망

아르헨티나 장명수 대구가톨릭대학교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2024/06/05

아르헨티나 신정부 출범
아르헨티나는 만성적인 정부 재정적자와 이를 메꾸기 위한 중앙은행의 과도한 통화 공급 등의 영향으로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고질적인 외환보유고 부족과 이에 따른 왜곡된 경제정책 및 외환통제 등으로 거의 10년을 주기로 채무불이행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지난 2023년 12월, 페로니즘과의 결별을 주장하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였다. 2023년 11월 19일 시행된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기존 아르헨티나 정치계에서 이단아로 불리던 경제학자 출신의 초선 하원의원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후보가 2차 결선 투표에서 55.69%의 득표율로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대통령 후보로서 유세 당시 전기톱 모형을 들고 다니며 과도하고 불필요한 정부 조직과 행정 규제를 잘라내겠다고 주장했던 밀레이 후보는, 페로니즘과 보수 야당이라는 기존 양대 정치세력이 아닌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만성적인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무엇보다 먼저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강력한 긴축재정과 세제 개혁, 달러화(Dollarization) 및 중앙은행 폐지를 주장하였다. 아울러 정부 부처들의 전면적인 축소, 국영기업 민영화, 경제규제 철폐 및 완화, 그리고 무역 개방 등의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고에서는 밀레이 대통령의 신행정부가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 1>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 추이(2017년 1월 ~ 2024년 3월)


자료: Refinitiv Eikon, INDEC


IMF의 7차 EFF 검토 결과
아르헨티나는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전 대통령 정부 시절이던 2018년 6월, 페소화의 급격한 가치하락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을 방지하고자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부터 3년간 약 570억 달러(약 78조 4,833억 원) 규모의 막대한 대기성 차관(SBA: Stand-by Arrangement)을 들여온 바 있다. 그러나 이 중 440억 달러(약 60조 5,836억 원)를 약속한 기한 내에 상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아르헨티나는 2020년부터 IMF와 2년 이상 해당 대출금의 차환 협상을 진행하였다. 2022년 3월, 어려운 협상 끝에 아르헨티나는 IMF로부터 향후 30개월에 걸쳐 440억 달러 규모의 확대신용공여(EFF: Extended Fund Facility)를 받기로 합의하였다. IMF의 대기성차관(SBA)이 단기적이거나 잠재적인 국제수지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회원국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확대신용공여(EFF)는 구조적 취약성, 고질적 저성장 등에 따른 심각한 중·장기적 문제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회원국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IMF가 아르헨티나에 EFF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아르헨티나의 국제수지가 단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수년에 걸친 구조적인 개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IMF는 이 새로운 EFF 프로그램에 따라 약 3개월마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제반 정책에 대한 검토를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동 검토 결과에 따라 이미 합의된 440억 달러 범주 내에서 지원금을 단계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2024년 2월에 시행된 IMF의 검토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IMF의 EFF 공여 합의 이후 일곱 번째이지만, 밀레이 신정부 출범 이후에는 첫 번째였으므로 그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 아르헨티나가 추진해야 하는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가늠해 볼 수 있으며, 이는 곧 밀레이 신정부가 추진해 나가야 할 과제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2024년 2월에 진행된 7차 검토 결과에 따라 IMF는 47억 달러(약 6조 4,714억 원)를 아르헨티나 정부에 지원하기로 했다. 이로써 IMF는 약속한 지원금 440억 달러 중 누적 406억 달러(약 55조 9,021억 원)의 지급을 승인했다. IMF는 검토 보고서를 통해 대통령 선거 기간이었던 2023년 4/4분기에 시행된 심각한 정책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현 밀레이 정부가 적극적인 안정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번 자금은 거시경제 안정성을 회복하고 IMF가 제시한 정책들을 다시 정상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신정부의 노력을 확고하게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IMF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향후 강력한 재정 준칙을 바탕으로 인플레이션을 꾸준히 감소시키고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며,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여러 가지 시장 왜곡 요소들과 뿌리 깊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밀레이 신행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IMF의 검토보고서에는 IMF와의 협의를 통해 밀레이 대통령의 신정부가 작성한 경제정책 추진 방향이 첨부되어 있는데, 사실상 이것이 아르헨티나가 앞으로 추진해 나갈 경제정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아르헨티나 신정부는 무엇보다 기초재정수지 흑자(primary fiscal surplus) 기조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왜냐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만성적인 재정적자가 △ 현재에도 매우 높은 인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며 △ 외채의 재조정을 어렵게 만들고 △ 유입 자본을 통한 시장 정상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 국가의 생산성 향상을 제약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는 기초재정수지 흑자 규모의 목표치를 제5차 및 6차 검토 시 IMF에 제시하였던 GDP의 0.9%에서 이번 7차 검토에서는 GDP의 2%로 상향 설정하였다. 

밀레이 신행정부는 이러한 재정수지 개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비효율적인 에너지 보조금 합리화 조치를 통해 전기 및 가스요금의 현실화는 물론 에너지의 생산, 운송 및 공급 비용까지도 합리화를 통해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또 국가가 보유하는 외환은 엄격한 우선순위에 따라 지출하며, 가스관의 보호 및 유지,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된 기존 프로젝트 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예정이다. 아울러 인프라 투자를 민간 부문으로 이양하는 방안도 모색하기로 하였다. 주 정부 및 국영기업들에 대한 보조금도 삭감하며, 연방정부 예산도 관계부처 축소 및 공공부문의 인력조정 등을 통해 감축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정부의 재정수입 증대를 위해 수입업자들의 수입대금 지급을 위한 외환 구매에 부과하는 세금(impuesto pais)의 과세 대상을 모든 재화와 용역으로 확대하고, 세율도 평균 7.5%에서 17.5%로 인상하였다. 또한 비농산물에 대한 수출세를 7%에서 1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밀레이 신정부는 전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심각한 사회적 상황을 감안하여 사회 안정을 위한 지출은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특히 사회취약계층과 2023년의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소득이 감소한 연금생활자를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아르헨티나 통계청(INDEC)은 2023년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이 211.4%로 199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밀레이 신정부는 과도한 인플레이션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통화 과잉 공급을 꼽았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정부의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메꾼다는 명분으로 화폐를 무분별하게 발행해 왔는데, 밀레이 신정부에서는 이러한 관행을 중단하고 국내 자본시장 강화를 통한 정부 재정적자 해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정부는 또한 정상적인 외환 제도를 구축하여 외환 보유고는 물론 보다 광범위한 경제 안정화 노력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밀레이 대통령의 긴급정부령(DNU 70/ 2023)과 종합입법안(Omnibus Law)
밀레이 대통령의 신행정부는 2023년 1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두 가지 입법 조치를 발표했다. 하나는 포괄적 규제 완화를 통한 아르헨티나 경제 분야의 잠재력 실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긴급정부령(Necessity and Urgency Decree, DNU 70/2023호)이다. 이 긴급정부령은 2025년 12월 31일까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시장의 기능을 저해하는 다수의 법률과 정부령을 폐지하거나 일부 조항을 수정함으로써 경쟁을 강화하고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인해 저해된 경제의 효율성을 되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국영기업들을 주식회사로 변경함으로써 경영이 부실하면 일반기업과 같이 파산위험을 부담하도록 하였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종합입법안(Omnibus Law)이다. 종합입법안을 통해 △일부 입법권의 행정부 위임 △선거제도 개혁 △수출세 인상 △국영기업 민영화 등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행정부에 위임되는 입법권은 시장가격, 계약, 채무 및 채권, 공공행정기관 구조조정 및 탈규제화 등 경제 전반에 관련된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한다. 특히, 국영기업 민영화와 관련하여 에너지(YPF), 항공(Aerolineas Argentinas), 우편(Correo Argentino),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공사(AySA) 등 41개 기업을 민영화 후보 기업으로 지정함으로써 민영화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아울러 종합입법안은 정부에 입법권의 행정부 위임이 허용되는 국가비상사태 기간을 2년간 연장할 권한을 부여했는데, 이 법인이 통과되면 사실상 밀레이 대통령 정부 임기 종료 시까지 국가비상사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밀레이 대통령이 제시한 긴급정부령과 종합입법안의 앞날은 불확실하다. 밀레이 대통령의 여당은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소수당인데, 다수당인 야당연합 측 의원 대부분이 긴급정부령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아르헨티나 노동총연맹 등도 법원에 동 긴급정부령의 무효 소송을 제기하였고, 지난 2024년 3월 14일  아르헨티나 상원은 의회의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긴급정부령을 부결시켰다. 이로써 밀레이 대통령의 긴급정부령은 사상 최초로 신임 대통령이 서명했으나 상원에서 부결된 법안이 되었다. 만일 하원에서도 의원 과반수가 반대투표를 하게 되면 긴급정부령은 효력을 상실하게 되며, 이는 신정부의 경제개혁 노력에 상당한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종합입법안 역시 현재 의회에서 많은 논의와 협상이 진행 중인데, 종합입법안의 가결을 위해 신정부 측이 당초 법안에 포함되어 있던 상당수의 조항을 삭제 또는 수정한 결과 지난 5월 1일 하원에서 통과되어 이제 상원에서의 토의와 표결을 앞두고 있다. 만일 이 종합입법안 역시 야당 측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상원에서 부결될 경우 밀레이 대통령 신정부의 경제개혁 추진을 위한 노력은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2024년 6월 5일 기준 해당 법안은 상원 위원회의 토의를 거쳐 수정안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으며, 표결이 곧 진행될 예정이다. 

아르헨티나 경제 전망
BMI(Business Monitor International)가 작성한 2024년 1/4분기 아르헨티나 국가위험보고서는 아르헨티나의 정치 분야 SWOT 분석에서 위험 요소(Threat) 가운데 하나로 밀레이 대통령 신정부하에서 이루어질 공공부문 고용과 사회보장 지출의 급격한 감소가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사회적 불안과 대중의 소요를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현재 빈곤율이 57%에 달하는 아르헨티나에서는 노동계와 공립대학 등을 비롯하여 사회 각층에서 신정부의 긴축재정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밀레이 신정부의 긴축재정 노력은 2023년 12월 25.5%에 달했던 월별 인플레이션율을 2024년 1월과 2월에 각각 20.6%와 13.2%로 낮추는 성과를 보였고, 3월에는 더욱 낮아져 11%를 기록하였다. 또 신정부가 출범했던 2023년 12월에 213억 달러(약 29조 3,280억 원)였던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외환 보유고도 2024년 4월 말 기준 275억 달러(약 37조 8,647억 원)로 증가하였다. 이제 아르헨티나는 밀레이 대통령의 신정부가 추진하는 과감한 경제개혁 조치를 통해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초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국가경쟁 력을 회복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소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도 있는 이 기회가 아르헨티나 신정부와 의회 그리고 국민 모두의 협력과 양보를 바탕으로 조속한 경제 정상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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