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 공식 결과 발표
1차 및 2차 투표 모두 개혁파 후보 승리
개혁 성향 후보인 마수드 페제쉬키안(Masoud Pezeshkian) 후보가 1차, 2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얻으면서 보수 성향의 사에드 잘릴리(Saeed Jalili)를 제치고 9대 이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결선 투표에서 페제쉬키안 후보는 1,630만 표를, 잘랄리 후보는 1,350만 표를 획득하였다. 결선 투표율은 49.8%로, 1차 투표보다 높았지만, 지난 선거보다 낮게 나타났다.
69세인 페제쉬키안 이란 대통령 당선인은 쿠르드인이자 아제리인으로, 아제르바이잔인들이 거주하는 지역 출신이며, 의사, 의원, 장관 등 다양한 직위를 경험해 본 인물이다. 심장 외과 의사 출신으로, 이란 의회에서 여러 차례 의원을 역임하고, 제10대 의회 부의장, 보건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그는 여성에 대한 처우 악화, 인터넷 검열 등 사회 문제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 현 정부의 보수적인 정책을 비판해왔다.
대선 캠페인 기간에도 이러한 페제쉬키안 당선인의 성향이 공약에 반영됐다. 페제쉬키안 당선인은 후보 시절 서방과의 관계 개선, 히잡 착용 의무화 법안의 시행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2015년 미국과 체결한 핵 협상을 복원하고 국제사회와 원활한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전반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은 위 공약들을 환영하였으며, 결국 보수 경향의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뒤엎고 페제쉬키안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페제쉬키안은 이란이 품고 있는 다양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특히 국내에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 그는 선출직과 달리 강력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아야톨라 알리 호메이니(Ayatollah Ali Khamenei)를 설득하여야 한다. 특히 이란 내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강경파들이 그의 공약을 이행할지 전문가들은 의구심을 표명했다. 국제적으로도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 이란의 대외정책의 도전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 성향의 대통령이 선출되었지만 이번 이란 선거가 시사하는 바 역시 작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여러 도시는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였으며, 인터넷이 차단되는 등 대중의 불만과 회의적인 정서가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페제쉬키안 후보의 당선이 개혁주의 정치인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준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수십년 간 정치적인 억압을 받아온 분노한 대중들을 설득하는 것도 주요 과제라고 논평했다.
이란의 실질적 개혁은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란에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최고지도자가 실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정책은 최고지도자와 이란혁명군 수뇌부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최고지도자는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하고 정당성을 부정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권한에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외교 정책을 포함한 주요 국가 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된다. 또한 사법부와 군대 등 하메네이가 통제하는 기관에 자리 잡은 강경파는 페제쉬키안 당선인이 추진하고자 하는 국내 자유화와 개방을 위한 노력을 견제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페제쉬키안의 당선이 이란의 정치 지형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란 정치 시스템이 지닌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당선인이 공약을 이행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또한 페제쉬키안 당선인의 개혁 공약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존재했다. 그의 공약은 제도적인 지원을 받기 어려우며, 보수 측에서도 당선인의 공약 이행을 지지한다는 실질적인 의사 표명도 부재한 상황이다. 미국 언론 복스(Vox)는 페제쉬키안이 의회 개혁파 출신이지만 정권과 협력하고 정권 내에서 일하는 데 전념하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알리 바에즈(Ali Vaez) 국제위기감시기구(ICG: International Crisis Group) 이란 프로그램 담당자는 페제쉬키안이 처한 상황과 그간의 정치 행보를 바탕으로 무장 세력이나 이념적인 개혁주의자가 아니라 경계선 위에 있는 개혁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란 신임 대통령 당선과 주요 분야별 영향
국내 정치적 영향…최고 지도자에 대한 존중과 함께 정부 정책 비판
페제쉬키안 당선인은 선거 기간 동안 개혁에 대한 전면적인 약속을 피하고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대한 충성심과 1979년 혁명의 원칙을 강조했다. 한편 그는 정부의 정통성 문제와 광범위한 대중의 불만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페제쉬키안 당선인은 유권자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문제 의식은 현 이란 정부의 문화와 검열 문제에서 가장 부각됐다. 페제쉬키안 당선인은 정부의 히잡 착용 의무화 및 인터넷 검열을 비난하였으며, 히잡 시위 중 사망한 마사 아미니(Mahsa Amini)의 죽음에 대한 도덕 경찰의 책임을 묻겠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X(이전의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금지 조치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향후 페제쉬키안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면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하여 문화혁명 최고위원회와 사이버공간 최고위원회에서 이슬람 복장 규정 시행 및 인터넷 정책에 관여할 수 있게 된다.
이외에도 당선인은 소수민족과 종교 소수자들을 이란 당국이 더욱 폭넓게 포용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제르바이잔인 어머니와 쿠르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페제쉬키안 당선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란인 쉬아파가 주류를 차지한 이란 당국과 사회를 비판했다. 그는 이란 내에서 차별 받는 수니파 쿠르드인들을 배제한 이란 내 사회 문제를 지적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외교/안보 분야 영향
전문가들은 페제쉐키안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이란의 외교정책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 이란의 체제는 최고 지도자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며, 특히 외교정책에서 최고지도자의 영향력은 두드러진다. 또한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출신들이 국방, 안보, 외교 정책 요직을 다수 차지하면서 반미 및 반이스라엘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란의 외교정책에서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긴 하지만 이란 외교정책의 전반적인 변화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라이시 전 대통령이 생존하였을 당시 이란은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입장을 피력하였으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다른 걸프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기조는 페제쉐키안 당선인의 취임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이란은 강대국과의 관계도 증진해왔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이란은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였으며,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에도 가입했다. 또한 이란도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의 군사, 경제, 외교적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페제쉐키안 당선인은 미국과의 핵 협정을 되살리는 것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반면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는 모든 발전의 길이 미국으로부터 온다고 믿는 사람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면서 간접적인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대선은 미국-이란 관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행정부는 이란과의 핵 협상을 추진하고 중동에서 이란의 불안정화 노력을 줄이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 핵 협정의 갱신이나 기타 진지한 협상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핵 협정을 재개하는 경우 행정부가 테러 지원국에 보상을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생긴다. 바이든은 재임 기간 이란에 양보하기 위해 정치적 자산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나, 중동보다 유럽, 특히 아시아를 우선시하는 그의 태도로 이란 문제는 주목받지 못했다.
RBC 블루베이 자산관리사의 수석 신흥 시장 전략가인 팀 애시(Tim Ash)는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미 공화당 매파가 이란과의 관계 진전에 관심이 적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이란이 걸프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내 정치적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경제 문제에 집중하려 할 것이지만, 미국의 정치 사이클과 가자지구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이 이란 개혁파에 개방할 가능성은 낮다고 예측했다.
힌편 EU는 이란에 개혁파 대통령이 당선된 것에 기대를 표명했다. EU 측은 이란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과 핵 활동, 중동에서의 전쟁 확대가 유럽에 큰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란의 정권 교체가 주목할만하며, 이란과 원칙적인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EU는 이란과의 외교 목표가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중단한 다음 철회하도록 설득하고 중동에서 추가적인 군사적 확전을 막는 것이라고 밝혔다.
對이란 제재 등 경제분야 영향
페제쉬키안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높은 실업률, 정부의 잘못된 관리, 만성적인 부패 등 어려운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는 정부 지출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부 지출을 줄이며, 부정부패와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페제쉬키안 당선인은 경제를 더 잘 관리하기 위해 전문가와 경험 많은 기술자를 다시 불러들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7월 2일 토론에서도 그는 현재 상황의 원인은 무능하고 경험이 없으며 자격이 없는 관리자들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페제쉬키안은 미국의 제재가 완화되고 자금 세탁에 관한 국제 표준을 준수하지 않으면 경제 성장이 제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7월 1일 토론에서 그는 제재는 심각한 해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토론에서 페제쉬키안 당선인은 저의 외교 정책은 세계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자금세탁방지기구(FATF)와 2015년 핵 합의 포괄적 공동 계획의 이행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2020년부터 FATF는 이란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여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이란을 사실상 차단했다. 그 결과 이란의 공공 및 민간 부문은 외국인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2024년 현재 북한과 미얀마만이 고위험 관할 지역으로 지정된 유일한 국가로 선정되어 있다.
쿠르드 민족 등 소수민족에 미치는 영향
앞서 언급한 것처럼 페제쉬키안 당선인은 소수민족의 권리를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히잡 강제 착용에 반발하는 시위 중 사망한 마사 아미니 역시 쿠르드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내에서 쿠르드인들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과 문화적 박해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쿠르드인 남성들은 위험한 지형에서 초국경 노동자인 콜바르(Kolbar)나 짐꾼으로 근무한다. 쿠르드족 출신 지도자인 페제쉬키안은 쿠르드족이 많이 거주하는 외딴 국경 지역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 데 전념해 왔다. 페제쉬키안은 이란 소수 민족의 문화적, 언어적 권리를 보호하고, 쿠르드어를 이란의 교육 시스템에 통합하는 것을 추진해 왔다.
이란 신임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미국, 이란의 정책적 변화에 대한 기대는 낮아
이란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발표된 이후 미국 정부는 이란의 중대한 정책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계속해서 주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언급하는 한편, 외교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미국 측은 이란과의 핵 협상 재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백악관은 아직 이란과 협상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과의 대화에 신중을 기하고 있으며, 더 광범위한 전략적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엔 특사, 이란의 인권상황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평가
자바이드 레흐만(Javaid Rehman) 유엔이란인권특사는 1979년 혁명 이후 지속되어 온 이란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가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개선될 것 같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 체계가 최고 지도자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 독립적으로 사법 체제가 운영될 수 없으며 민주주의 거버넌스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레흐만 특사는 이란 당국의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구가 탄압을 하고 있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 러시아,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국의 축하 메시지 발신
미국 이외의 주요 국가들도 페제쉬키안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페제쉬키안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며 중국과 이란 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축하의 말을 전하며 러시아와 이란의 강력한 양국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과 모헤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발전의 잠재력을 강조하며, 페제쉬키안에게 축하를 보냈다.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는 페제쉬키안의 취임을 축하하며 이란과의 양국 관계 강화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