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2024년 튀르키예 지방선거의 함의와 향후 정치의 향방
튀르키예 이희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2024/08/02
글을 시작하며
2024년 3월 31일에 실시된 튀르키예 지방선거에서 공화인민당(CHP) 중심의 야당연합이 압승을 거두었다. 이번 선거는 30개 대도시 시장, 1,393개 군소도시 군수, 시장, 동·면장과 1,282명의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5년 주기로 열리는 지방선거였다. 선거 직전까지 2023년 2월 발생한 카라만마라시·가지안테프 일대의 대지진 참사의 후유증과 연간 인플레이션 65.4%에 달하는 최악의 민생경제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지방선거는 22년째 장기 집권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대통령 소속 정의개발당(AKP)의 참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심각한 내부 정치의 균열과 민심 이반이 반영된 결과인 것으로 평가된다. 집권 20여년 만에 최악을 성적을 거둔 이번 선거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민심을 돌리기 위해 새로운 정책과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특단의 조치들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에르도안의 철옹성 같은 권력 구도나 통치 스타일에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의개발당의 참패와 정책 변화의 가능성
튀르키예 전역의 81개 지방자치단체장과 시장을 선출하는 이번 총선은 총유권자 6,143만 934명의 78.6%가 참여하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그 결과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부르사, 안탈리아 등 5대 시장 자리를 야당인 공화인민당이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박빙이 예상되던 일부 시도 지역에서도 야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30개 대도시 시장직 중 14개를 야당이 차지한 반면 집권당은 12개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이는 튀르키예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전국 득표율은 야당인 공화인민당이 37.8%, 집권당 정의개발당이 35.5%를 기록한 것으로 최종 집계되었으며, 정의개발당은 2001년 창당 이래 처음으로 제2당으로 주저앉았다. 직전 지방선거인 2019년 3월 선거에서 정의 개발당이 득표율 44.3%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충격적인 참패이다. 반면 야당인 공화인민당으로서는 1977년 이후 전국 규모 선거에서 처음으로 제1당이 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더욱이 집권당의 득표율 35.5% 속에는 후보를 내지 않았던 지역에서의 극우성향의 국민행동당(MHP)의 연대득표가 포함되어 있어, 실질적인 득표율은 27.0~28.0%로 추산된다는 분석도 있어 더욱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선거유세 기간 내내 이스탄불 시장직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던 집권당의 노력이 무산되면서 정의개발당은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되었다. 인구 1,600만 명의 튀르키예 최대 도시 이스탄불은 튀르키예 정치의 실질적 대표성뿐만 아니라, 에르도안 대통령의 오늘을 있게 한 정치적 고향이기 때문이다. 30년 전인 1994년 통상적으로 세속주의 인민공화당 소속 인사가 역임해 왔던 이스탄불 시장에 40세의 이슬람당 후보 에르도안이 도전장을 던졌고,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승리함으로써 튀르키예 정치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던 진원지가 바로 이스탄불이었다. 따라서 이스탄불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는 강한 정치적 애착이 남아있는 도시였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의 상흔이 더욱 크다.
선거결과 이스탄불에서는 공화인민당 소속 에크렘 이맘오울루(Ekrem Imamoglu)가 50.9%로 과반 이상을 득표한 데 비해, 강력한 후보였던 집권당 무라트 쿠룸(Murat Kurum)은 에르도안 내각의 장관직을 수행했던 최측근임에도 불구하고 40.5%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10%p 이상의 표차로 참패했다.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여론 조사에서는 박빙이거나 전반적으로 야당인 인민공화당이 불리할 것으로 분석되었다. 민심의 준엄한 심판에 일단 에르도안 대통령과 집권당은 겸허하게 민심을 수용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야당들도 민심의 결과를 받들고 그 교훈을 바탕삼아 새로운 정책과 변화를 주문했다. 그런데 총선 패배 직후 발표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성명은 민심 이탈에 대한 반성이나 개선 의지에 대한 진정성이 다소 희석된 느낌을 주었다.
“3월 31일 선거는 우리에게 패배를 안겨준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국면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이다”
그러면서도 이탈 여론을 향해 화합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번 선거의 승자는 오직 8,500만 우리 국민들이고,
우리의 민주주의다”
또한 기존 정책을 계속할 뜻을 내비쳤다.
“지금까지 모든 선거에서 이겼다.
이번에만 기대 이하의 결과가 나왔다.
지금까지 잘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성공하면서 오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공화인민당의 전략과 대안
1989년 지방선거에서도 튀르키예 국민들은 집권당이었던 중도우파 조국당(ANAP)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리면서 당시 좌파 야당이었던 사회인민당(SHP)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사회인민당은 이런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고, 5년 뒤 1994 지방선거에서는 오히려 우파 이슬람 정당인 복지당(Refah Partisi)에게 집권 기회를 넘겨 주었다. 오랜 침묵과 억압 속에서 얻은 소중한 민심을 잘 받들면서 복지당은 지방선거 여세를 몰라 연정을 구성하고 복지당 당수 네즈메틴 에르바칸(Necmettin Erbakan)이 튀르키예 공화국 역사상 최초로 이슬람당 출신의 총리가 되는 파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런 교훈을 되새겨 본다면, 이번에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공화인민당(CHP)이 개혁과 변화로 지지층을 견고히 묶어 두면서 집권당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우려가 섞인 반응이 튀르키예 정치의 현실이자 또 다른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거의 표심을 분석해 보면 유권자들이 공화인민당 후보에게 골고루 신뢰를 던진 것은 아니었다. 수도 앙카라 시장인 만수르 야와시(Mansur Yavas)와 튀르키예 최대도시 이스탄불 시장인 에크렘 이맘오울루에게 표가 크게 쏠렸다. 평소 대중적 인기가 높고 정책승부를 하는 두 시장들이 재선되면서 더욱 단단한 정치적 기반을 확보했다. 특히 이스탄불 시장 에크렘 이맘오울루는 에르도안 대통령에 맞설 가장 강력한 대선 라이벌 후보로 위상을 확고히 했다.
이번 선거가 야당의 승리인 것은 맞지만, 본질은 22년 장기 집권한 정의개발당의 실책에 대한 경고성 민심이다. 경제 실책으로 인한 치솟는 물가와 생활의 어려움이 더 나은 삶을 바라면서 변화를 갈구하는 시민들에게 그나마 야당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야당이 민심을 적극 받들어 대안적 정책 추진으로 희망을 보여준다면 2028 대선에서 집권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승리의 분위기에 취해 비판을 위한 비판에만 머무르고 여론 추이에 따라 조기총선 실시 같은 정치적 계산만 한다면 오히려 야당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투표를 통해 드러난 민심은 앞으로 5년간 지금보다 나은 정치와 민생경제를 챙겨달라는 요구이고, 5년 뒤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집권당의 실책이 심하다 해도 야당에게 정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왜나하면 튀르키예 정치문화의 특성상 강력한 탈종교-세속주의를 정당 정책의 기본으로 하는 공화인민당이 국민의 98%가 이슬람을 믿고 있는 국민정서상 단독 집권을 할 수 있는 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공화인민당이 지난 100년간의 튀르키예 정치문화의 전통인 연정을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지리멸렬했던 배경 중 하나가 새로운 리더십으로의 교체 실패 때문인 측면이 매우 강하다. 지난 23년간(2010~2023)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Kemal Kilicdaroglu) 1인 야당 대표가 주어진 정치권력에 안주하면서 실질적인 정권교체 능력을 상실한 점이 지난 대선 패배의 결정적 이유로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위기 의식이 반영되어 이번 선거에서는 노회한 터줏대감을 퇴진시키고 비교적 신예인 50세의 약사 출신 외즈귀르 외젤(Özgur Özel) 체제로 출발한 점도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주요한 배경이었다. 외젤 새 총재는 취임 일성으로 화해와 포용을 다짐했다. 야당 내의 단일대오로 중도층 표심을 잡아 다음 선거를 준비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이슬람 성향의 정당인 현 집권 정의개발당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이슬람 정책을 버리고 서구적 가치와 이슬람의 전통을 조화롭게 접목하는 보다 대중성 있는 정당의 정체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22년간 이슬람의 가치를 표방한 집권당으로부터 정권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중적 정서를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대선 경쟁구도의 본격화와 군소정당의 약진
일부 야당측에서 집권당의 지지기반이 와해되는 이 시기에 조기총선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조기총선이 성립되기위해서는 의회 총 400석 중 적어도 360석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아니면 대통령의 조기선거 결단이 필요한데 이건 현행법상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관심은 온통 2028년의 대선 구도로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로 지난번 대선 때도 끊임없이 관심의 중심에 섰던 이스탄불 시장 에크렘 이맘오울루(53세)와 앙카라 시장 만수르 야와시(69세)가 야당 대선후보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2023년 대선에서도 에르도안 현 대통령에 맞설 강력한 야당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2028년 강력한 야당 대선후보로 위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노쇠한 에르도안 현직 대통령(70세)에 대항할 젊고 강력한 대통령 후보를 갖고 있다는 점은 야당에게는 매우 중요한 잠재력이다. 두 후보에 대한 야당의 지지층이나 일반 국민들의 지지 성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야당으로서는 성공한 현직 시장으로서 정책 경쟁이나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2028년을 준비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갖게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또 하나의 변수는 중도 우파 성향의 ‘좋은정당(Iyi Partisi)’의 참패다. 이는 이슬람 성향의 집권 정의개발당과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MHP(국민행동당)의 선거 연대 구도에서 중도 우파의 정치적 공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 여성 총재인 메랄 아크세네르(Meral Aksener)를 내세워 지난 2019년 지방 선거에서 7.5%를 득표하는 돌풍을 불러일으키며 제3당이 되었던 ‘좋은 정당’은 이번에 총선에서 득표율 4.6%를 기록하며 6위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총재 메랄 아크세네르가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새로운 입지를 다질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이러한 현상은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체제에서 핵심 참모로 참여했던 인사들이 정의개발당에서 떨어져 나와 세운 재무장관 출신의 알리 바바잔(Ali Babacan)이 창당한 ‘민주혁신당’이나 외무장관 출신의 아흐메트 다우트오울루(Ahmet Davutoglu)의 ‘미래당’등 실용적 중도 우파 정치집단들이 1% 미만의 득표로 모두 참패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눈여겨 볼 만한 또 다른 선거의 특징은 극우 이슬람 정당인 신복지당(Yeni Refah Partisi)의 약진이다. 물론 많은 수의 국회의원 배출에는 실패했지만, 7.0% 득표로 일약 제3당이 됨으로써 많은 중소도시에서 집권당에게 뼈아픈 타격을 주기에 충분한 역할을 했다. ‘신복지당’도 전통적으로 여당의 표밭이었던 튀르키예 남동부 산르우르파 시장을 배출하며 정치적 입지를 마련했다.
튀르키예 정치에서 쿠르드 문제와 쿠르드정당의 캐스팅보트
튀르키예에는 약 1,700만 명 이상의 쿠르드인들이 살고 있다. 전체 튀르키예 인구의 약 20.0% 수준이다. 종족성과 언어,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 사회에 동화를 강요당하다가 2000년대 이후 문화적 정체성 화복과 정치적 자치 투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쿠르드노동당의 약칭인 PKK는 1984년 설립된 이후 쿠르드인들의 자치 독립 투쟁을 기치로 내세우며 무장 투쟁을 벌여 지금까지 4만 명 이상의 터키 군경을 살해했다. 현재 PKK의 우두머리인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쿠르드 노동당인 PKK가 무력 투쟁을 감행하면서 튀르키예 정부와 미국, EU 국가에서 테러조직으로 소탕과 궤멸의 대상이 되자, 법적 테두리내에서 정치조직과 사회참여를 하는 합법적인 쿠르드계 정당들이 등장하였다. 쿠르드계 정당은 튀르키예의 EU 가입 신청 논의가 본격화되던 2005년을 기점으로 튀르키예 내의 쿠르드인들의 문화적 자치와 경제적 권리 향상, 정치적 자율성을 내세우며 정치적 투쟁을 통해 튀르키예 정부에 맞서 왔다. 통상 10.0% 전후의 지지율을 얻으며 제도권 정치 정당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튀르키예 정부는 이러한 투쟁을 반국가 행위로 보고 수시로 PKK와의 연계를 내세우며 쿠르드계 정당을 해산하거나 심지어 정당 대표를 포함해서 수많은 쿠르드인 시위 관련자들을 투옥하기도 했다. 현재의 인민평등민주당(DEM) 이전의 쿠르드 정당이었던 인민민주당(HDP)의 공동대표 셀라하틴 데미르타쉬(Selahattin Demirtas)는 인민민주당 정당해산과 함께 총 42년형을 선고받고 8년째 복역 중이다.
이처럼 열악한 정치환경에서도 쿠르드계 인민평등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5.8% 득표로 제5당으로 우뚝 서면서 나름대로 정치적 위상을 과시했다. 일부 시군에서는 야당인 인민공화당과 연대하면서 야당의 승리에 기여했다. 예를 들면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쿠르드 정당인 인민평등민주당의 득표가 미미하게 나타났는데, 많은 쿠르드인의 표가 당선 가능성이 없는 쿠르드 정당보다는 야당에게 쏠림으로서 이맘오울루의 당선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에크렘 이맘오울루 시장이 얻은 표가 모두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라는 메랄 다느시 베쉬타쉬(Meral Danis Bestas) 쿠르드당 부대표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인민평등민주당은 쿠르드 인구 집중도시인 튀르키예 동남부 10개 시도에서 승리했다.
이번 선거에서 쿠르드 정당 인민평등민주당의 부상은 향후 에르도안 정권 재창출의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10.0% 이상의 표 집결 능력을 갖춘 쿠르드 정당은 주요한 국면에서 결정적 캐스팅보트를 거머쥐면서 에르도안 정권에 대한 조직적인 반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이 20여 년간 단독 집권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친 쿠르드 정책으로 그들의 표심을 우군으로 받아들였던 점이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면 에르도안 정권의 자국내 쿠르드인 국민들과 쿠르드계 정당에 대한 태도변화와 정책변화가 앞으로의 대선가도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 당장은 쿠르드 압박 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에르도안 정부의 적대적 쿠르드 관리 정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선거 이후 일부 쿠르드 당선자의 당선을 무효화시킨 일이었다. 선거 직후인 4월 2일 튀르키예 당국은 동부 도시 반(Van)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인민평등민주당 후보자 압둘라 제이단(Abdullah Zeydan)의 당선무효를 통보하고 재선거를 명령했다. 제이단 후보는 55.5%를 득표했고, 에르도안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던 집권당 후보는 27.2% 득표에 그쳤다. 2배 이상의 표차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 선거 이틀 전 법무부는 업무 시간이 종료되기 5분 전에 제이단의 후보 자격을 문제 삼는 공지를 전송했다. 이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그의 피선거권 자격 박탈을 통보하게 된다. 당선 무효 통지가 되자 반의 수많은 유권자들은 “이것은 선거 쿠데타다”라는 구호와 함께 시위를 벌였고, 주변 도시는 물론 이스탄불 등지에서도 대규모 규탄시위가 벌어졌다. 인민평등민주당의 공동 대표인 툴라이 하팀오울라르(Tulay Hatimogullari)는 즉각 선거관리위원회에 부당함을 알리고 시정을 요구했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제1 야당대표까지 나서 주권을 짓밟는 행동을 즉각 중지하고 권리의 원상 회복을 촉구하고 나섰다.
금번 산르우르파에서도 인민평등민주당 후보자가 33.2%의 득표율로 당선이 확정되었지만 30.8%라는 근소한 표차로 2위를 차지한 집권당 후보가 일부 투표소에서 부정 투개표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재선거가 실시되었다. 한편 인민평등민주당 관계자들도 집권당에 의한 여러 부정 투표 사례를 폭로
하며 선거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시르나크(Sirnak)시에서는 집권당 후보가 47.6%(18,033표)로 4.01%(15,553표)를 획득한 인민평등민주당 후보를 눌렀는데. 바크르한(Bakirhan), 비틀리스(Bitlis), 카르스(Kars) 등에서도 부정 투표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향후 전망
지난 22년간 수많은 우여곡절을 딛고 내각책임제 총리로서, 또 대통령제 개헌 이후의 대통령으로서 집권과 재집권을 거듭해 온 에르도안 대통령의 단단한 정치 지형에 당장 근본적인 지각변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지방 선거 결과가 22년간 절대권력을 유지해 온 집권당 정의개발당에 사상 가장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안겨준 것만은 확실하며, 향후 튀르키예 정국의 향방을 다음과 같이 예측해 볼 수 있다.
첫째, 2001년 창당 이후 처음 제2당으로 전락한 정의개발당의 정치적 추진 동력이 약화되고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개헌을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연장을 가능케 하려던 집권 플랜은 상당 부분 위축될 전망이다.
둘째,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참패 요인이 된 민생경제의 파탄을 수습하기 위한 특단의 경제적 조치들이 감행될 전망이다. 우선은 65.0%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인하와 최저임금 상향, 세제 혜택, 외국인 투자 유치, 관광산업 활성화, 복지 혜택의 확대와 같은 전면적인 제도개혁과 정책 전환을 꾀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관광업과 제조업의 타격,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의 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역내 정세의 불안, 설상가상으로 2023년 2월 남동부 카라만마라시를 중심으로 연이어 발생한 진도 7.6 규모의 대지진 참사의 후유증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과제로 에르도안 정부가 안고 있는 딜레마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민심의 향방을 좌우할 전망이다.
셋째, 이번 지방선거 대승과 집권당에 대한 싸늘한 민심을 의식하여 야당 일각에서 조기 총선을 통한 국면 쇄신을 요구하고 있으나, 자칫 야당에게는 민심의 역풍을 만날 수 있고, 집권당으로서도 민심 반전의 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조기 총선 카드가 본격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마지막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살펴 보면, 지난 20여 년간 양국 관계는 괄목할 만한 경제교류와 대규모 공사 수주(유라시아 해저터널, 보스포루스 제3교, 세계 최장의 차나칼레 1915 현수교 등), 활발해진 학술-문화교류의 성공적인 우방으로서 단단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한-튀르키예 양국 관계는 ‘형제국가’라는 국민적 정서를 공감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권 교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글로벌 가치를 포괄적으로 공유하는 보다 민주적인 튀르키예 정부의 등장을 응원하고 있다.
공화인민당은 그동안 노회한 야당 대표로서 20년 이상 당을 이끌어 왔지만 대선에서 뚜렷한 개혁 청사진이나 민생 경제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해 패배를 자초했던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가 퇴진하고 외젤이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내세웠다. 또한 이스탄불과 앙카라 시장으로 재선에 성공한 에크렘 이맘오울루와 만수르 야와시라는 쌍두마차가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를 바탕으로 차기 대선에서 에르도안에 맞설 강력한 대권 후보군으로 각인된 것이 야당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101년간 튀르키예 공화국은 1960년대 초(1963년 11월 17일)부터 지방자치제를 실시하였고, 3번의 군사 쿠데타를 경험하면서도 수십 차례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하는 등 정치적 성과를 이루어 왔다. 앞으로 튀르키예가 시대의 트랜드를 따라 ‘스트롱맨’ 에르도안 대통령 체제를 유지할지, 아니면 이슬람 중도 세력을 끌어안을 유연한 정책 전환과 새로운 리더십의 비전으로 공화인민당 중심의 중도 좌파 정권으로 재창출될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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