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해 휴전의 배경과 국제적 중재
미국의 중재와 흑해 휴전 협정의 의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Riyadh)에서 진행된 3일간의 협상에서 미국은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각각 별도의 양자 회담을 통해 흑해 휴전 협정을 이끌어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이번 협상에서 양측은 ▲흑해에서의 안전한 항해 보장, ▲해상에서의 무력 사용 중단, ▲상선의 군사적 목적 사용 금지, ▲양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 등 주요 합의에 도달했다.
특히 이번 협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러시아의 농산물 및 비료 수출에 대한 글로벌 시장 접근성 개선을 약속했다는 점이다. 이는 해운 보험료 인하, 항만 접근성 향상, 결제 시스템 이용 확대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조치는 러시아의 협정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루스템 우메로프(Rustem Umerov)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이 협상에 참여했으며, 협정의 세부 사항과 기술적 측면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러시아 군함이 흑해 동부 지역을 벗어날 경우 우크라이나의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평화 회담과 그 결과
리야드 회담은 단순한 해상 휴전을 넘어 포괄적인 평화 협상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합의 사항은 ▲포로 교환 및 민간인 억류자 석방 촉진, ▲강제 이주된 우크라이나 아동의 귀환 지원, ▲에너지 인프라 보호를 위한 구체적 조치 마련, ▲장기적 평화 정착을 위한 협상 기반 구축 등이다.
그러나 협정 발표 직후부터 양측의 상호 비난이 이어지면서 합의 이행의 불확실성이 드러났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미콜라이프(Mykolaiv) 항구 공격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각각 주장하며 긴장이 고조되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정이 전면적 평화 협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양측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와 불신이 여전히 큰 장애물로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러시아의 영토 요구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가입 문제 등 핵심 쟁점들에 대한 합의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흑해 휴전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미치는 영향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이점과 도전 과제
우크라이나는 흑해 휴전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전략적 이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표적으로 항구 인프라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중단됨으로써 무역로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다. 특히 오데사(Odesa)를 비롯한 주요 항구 도시들의 안전이 보장되면서 곡물 수출 등 해상 무역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드미트로 플레텐추크(Dmytro Pletenchuk) 우크라이나 해군 대변인은 "휴전의 핵심은 항구 인프라 공격 중단과 곡물 수출 안전 보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점 이면에는 상당한 도전 과제도 존재한다. 올렉시 곤차렌코(Oleksiy Goncharenko)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은 "오데사뿐만 아니라 헤르손(Kherson)과 미콜라이프(Mykolaiv) 항구의 안전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러시아가 설치한 기뢰로 인해 이들 항구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가 그동안 성공적으로 수행해 온 흑해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일부 양보해야 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통해 러시아 흑해함대를 세바스토폴(Sevastopol)에서 노보로시스크(Novorossiysk)로 후퇴하게 만드는 등 상당한 전략적 성과를 거두었는데, 휴전으로 인해 이러한 군사적 압박을 완화해야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입장과 장기적 목표
러시아는 흑해 휴전을 통해 여러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러시아는 휴전의 대가로 식량 및 비료 수출 관련 기업들에 대한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농업은행(Rosselkhozbank)의 SWIFT 시스템 재연결을 핵심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서방의 경제 제재를 우회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러시아 대표단의 율리아 즈다노바(Yulia Zhdanova)는 비엔나 회담에서 "분쟁의 동결이 아닌 근본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30일간의 휴전 제안과 관련하여 전선 전체에서의 효과적인 휴전 보장, 우크라이나군 재무장 중단, 강제 동원 중지 등을 주요 조건으로 제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휴전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몇 가지 우려 사항을 제기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휴전 기간을 군사력 재정비에 활용할 가능성과 휴전 이행을 감시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검증 체계의 부재를 지적했다. 또한 러시아는 휴전 합의가 자국의 장기적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Dmitry Peskov) 러시아 대변인은 "러시아는 평화적 해결을 선호하지만, 이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러시아가 단순한 전투 중단이 아닌,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포괄적 합의를 추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흑해 휴전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에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항구 안전 보장과 무역로 확보라는 실질적 이익을, 러시아는 제재 완화와 전략적 우위 확보라는 장기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향후 휴전 협상과 이행 과정에서 주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흑해 휴전의 국제적 반응
유럽과 글로벌 사우스의 반응
흑해 휴전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반응은 지역과 입장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 Security Council)에서는 미국이 제안한 결의안이 러시아를 규탄하는 내용을 배제하고 "신속한 분쟁 종식"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채택되었다. 이는 드미트리 폴랸스키(Dmitry Polyansky) 유엔 주재 러시아 차석대사가 언급했듯이, 오랜만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단일한 목소리를 낸 사례로 평가받았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경우, 중국과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평화의 친구들(Friends of Peace)' 플랫폼이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였다. 동 플랫폼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포용적 대화를 목표로 하며, 개방적인 구조를 통해 더 많은 국가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특히 유라이 블라나르(Juraj Blanar) 슬로바키아 외무부 장관은 중국, 인도와 같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의 외교적 도전과 협력
미국과 유럽 간의 입장 차이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새로운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대화 복원과 타협을 통한 분쟁 해결을 추구하는 실용적인 접근법을 채택했다. 이는 군사적 해결을 강조하던 이전 행정부의 입장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새 미국 행정부가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지속하고 러시아에 대한 양보를 거부하는 등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미국과 유럽 간의 입장 차이는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 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는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 사이의 차이를 확대하고, 나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관계까지 이간질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서방 국가들의 입장이 "우크라이나가 승리해야 한다"는 초기 입장에서 "우크라이나가 강력한 협상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없이 우크라이나에 관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는 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접근 방식이 점차 현실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는 평화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Donbas)와 노보로시야(Novorossiya) 지역 철수, NATO 가입 포기, 러시아어 사용 주민의 권리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토 양보 가능성을 포함한 선의의 협상 의지를 표명했으며, 푸틴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이러한 복잡한 외교적 상황 속에서 미국과 유럽은 기본적으로 핵심 사안에 대해 공통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양측 모두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보존하고, 평화 협상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미국과 EU 사이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활용하여 추가적인 양보를 얻어내려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흑해 휴전 이후의 전망과 지속 가능한 평화 구축
지속 가능한 평화 구축을 위한 조건
흑해 휴전 협상에서 러시아는 평화 구축을 위한 몇 가지 핵심 조건을 제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휴전이 지속 가능한 평화로 이어지고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는 30일간의 휴전 제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우려 사항을 제기했다.
첫째, 휴전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의 강제 동원 중단과 무기 보충 금지가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약 2,000km에 달하는 접촉선 전체에 걸쳐 효과적인 휴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과거 합의를 여러 차례 위반한 전력이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러시아 대표단은 비엔나 군사안보협력회의에서 "단순히 분쟁을 동결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며, 최종적인 해결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EU가 일시적 휴전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재무장시킬 계획이라는 독일어권 언론의 보도를 인용하며 이러한 입장을 정당화했다.
지역 안보와 경제적 안정의 전망
흑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에 매우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식량 수출에 있어 핵심적인 무역로로서,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시행된 이전의 흑해 곡물 협정을 통해 3,200만 톤의 곡물이 45개국으로 수출된 바 있다. 유엔 사무총장은 이 협정이 세계 식량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경우, 흑해는 남부 지역의 곡물 수출에 핵심적인 경로다. 2021-2022년에는 전체 곡물 선적의 86%가 아조프-흑해 분지의 항구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우크라이나 역시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 중 하나로, 북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가 주요 수입국이다.
현재 흑해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해상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를 동부 해역으로 밀어냈으며, 이로 인해 곡물 교역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크림반도 불법 병합 이후 흑해 연안의 약 3분의 1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법상 러시아가 보유한 10%의 해안선보다 훨씬 큰 규모다.
향후 전망과 관련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현재의 휴전 협상에서 양측이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이행 조건을 둘러싸고 이견이 존재한다. 러시아는 자국 농업·비료 수출 관련 제재 완화와 해상 보험비용 인하, 항만 접근성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완화가 "외교의 재앙이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흑해 휴전이 러시아에게 실질적인 비용 부담 없이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는 최소한의 양보로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는 협상 과정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조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작성자: 이경은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