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카자흐스탄의 대외전략 전환과 유라시아 경제 연결망 재편
카자흐스탄 Bexultan Zhapar International Institute For Counter-Terrorism Researcher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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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론
카자흐스탄은 1991년 독립 이후 30년에 걸쳐 러시아·중국·서방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실리적 관계를 유지하는 균형 외교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지켜 왔다. 이 전략은 북쪽의 러시아, 동쪽의 중국, 서방 세계 사이에서 카자흐스탄이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지역 안정을 유지하는 중립적 완충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 경제의 국제적 고립, 탈냉전 이후 구축되어 온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수동적인 완충국 역할만으로는 국가 이익을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인식 아래 카자흐스탄은 단순히 물류를 통과시키는 역할에서 벗어나, 이를 직접 주도하는 '내륙 연결형' 국가, 나아가 중앙아시아의 핵심 지정학적 거점으로의 전환을 능동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질서는 카자흐스탄이 소극적 중립에서 벗어나 외교 주도권을 직접 행사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본 보고서는 카자흐스탄의 2030년을 향한 외교정책 방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대등한 파트너십' 원칙의 실제 운용 양상에 초점을 맞춘다. 이 원칙은 과거의 공여국-수원국 관계에서 탈피하여, 카자흐스탄이 보유한 핵심 자원·물류 역량·외교적 영향력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술 현대화와 정치적 주권을 확보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의 세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분석을 전개한다. 첫째는 핵심 원자재와 녹색 에너지 분야에서 유럽연합(EU)과 맺어 가고 있는 전략적 협력이며, 둘째는 카스피해 횡단 국제 수송 루트(TITR: Trans-Caspian International Transport Route)*, 즉 '중부 회랑(Middle Corridor)'**의 물리적·디지털 인프라 구축이다. 셋째는 '전략적 비인접국'인 한국과의 첨단기술 협력을 우선시하는 전략 로드맵이다. 카자흐스탄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단순한 물류 중개 역할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박 건조·철도 제조·디지털 거버넌스 역량을 내재화함으로써 물류 연결망의 부가가치를 보다 주도적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카스피해 횡단 국제 수송 루트(TITR: Trans-Caspian International Transport Route): 중국·중앙아시아에서 카스피해를 건너 코카서스·터키를 경유해 유럽으로 이어지는 물류 경로를 제도적으로 운영·조율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조지아·터키 등이 참여해 구성한 국제 협력 이니셔티브
** 중부 회랑(Middle Corridor): TITR 경로를 지칭하는 통칭으로, 러시아를 경유하는 '북방 회랑', 이란을 경유하는 '남방 회랑'과 구분되는 표현. 본 보고서에서는 두 표현을 같은 의미로 혼용함
카자흐스탄의 이러한 전략 전환은 일련의 공식 문건을 통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이 2020년 서명한 「대외정책 개념 2020~2030」(대통령령 제280호)은 주권 강화, 경제외교 확대, 투자 유치, 국제 운송·물류 연계성 강화를 카자흐스탄 외교의 핵심 목표로 명시하고 있으며, EU를 교역·투자·기술 현대화의 전략적 협력 대상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는 2024년 정부가 승인한 「수소에너지 개발 개념(2030)」이 수소를 저탄소 전환의 핵심 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토카예프 대통령은 2025년 9월 국정연설에서 향후 5년간 6.3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추가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하였다. 2장에서 살펴보듯, 이러한 국내 정책 기반은 2025년 4월 제1차 EU-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핵심원자재·배터리·그린수소 협력의 2025~2026 로드맵이 공식 승인되면서 대유럽 협력의 구체적 행동 계획으로 이어졌다.
2. 유럽 파트너십 재설계: 원조를 넘어 상호의존으로
카자흐스탄의 대유럽 접근은 외교 수사에 그치지 않고 정상외교 성과를 통해 구체적 제도로 거듭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외정책 개념 2020~2030」의 틀 위에서, 2025년 4월 제1차 EU-중앙아시아 정상회의는 교역·투자·지속가능발전·기후·TITR을 EU-중앙아시아 협력의 5대 우선 분야로 재확인하고, EU-카자흐스탄 간 핵심원자재·배터리·그린수소 협력 로드맵을 공식 승인했다. 카자흐스탄의 대유럽 정책이 규범적 가치외교를 넘어, 자원·물류·에너지 전환을 묶은 실용적 경제안보 외교로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25년에 이르러 카자흐스탄과 유럽연합(EU)의 관계는 공여국-수원국 중심의 협력 틀에서 벗어나 양측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대등한 협력 관계로 전환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EU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처와 공급망 회복력 확보가 EU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EU는 카자흐스탄을 단순한 지역 파트너가 아니라 자국 경제 안보에 없어서는 안 될 전략적 동반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2024년 양자 간 교역액이 500억 유로(약 85조 6,000억 원)에 육박하면서 경제적 협력이 파트너십의 안정적인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으며, 과거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벗어나 동등한 협력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2.1 발효 10주년을 맞은 EPCA: 대등한 파트너십의 틀
2025년 12월은 카자흐스탄과 유럽연합(EU)이 중앙아시아 국가 최초로 체결한 강화된 파트너십 및 협력 협정(EPCA: Enhanced Partnership and Cooperation Agreement) 발효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22차 협력이사회는 양자 관계의 성격이 뚜렷하게 변화하였음을 보여주었다. 회의 의제는 일반적인 개발 원조에서 운송 연결성·디지털화·산업 탈탄소화에 관한 고위급 전략 협력으로 전환되었다.
EPCA는 원조 중심의 협정에서 실리적 협력 틀로 발전하였으며,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를 활용해 '없어서는 안 될 협력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혀 가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이 틀을 통해 자국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유럽 시장 접근권 및 첨단기술 도입과 맞바꾸고 있다. 그 결과 기존 패권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자국 현대화에 필요한 자본을 확보하면서 대외 협력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2.2 핵심 원자재(CRM: Critical Raw Materials) 협력 전략
EU-카자흐스탄 협력의 핵심축은 '지속가능 원자재·배터리·재생 수소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2025~2026년 로드맵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EU의 그린딜(Green Deal) 이행과 디지털 전환은 리튬·코발트·티타늄·희토류 원소의 안정적인 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은 이들 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EU의 희토류 수요는 2030년까지 현재의 6배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공급처 다변화는 EU의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자국 자원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는 대신, 채굴한 자원을 카자흐스탄 내에서 직접 가공하도록 하는 조건을 명확히 요구하고 있다. 로드맵이 '기술 이전', '기술 훈련', '연구·혁신'을 핵심 요소로 명시한 것은 단순 채굴에 그치는 방식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카자흐스탄의 입장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에 따라 유럽 기업들은 자원 채취에 그치지 않고 카자흐스탄 현지에 정제·제조 역량을 실질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는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원자재 수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공급망의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편입되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방향성은 2025년 정상회의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EU 측은 카자흐스탄을 EU 핵심원자재법(CRM Act)상 전략 프로젝트 후보국으로 공식 인정하였으며, EBRD를 통해 EU-중앙아시아 핵심원자재 협력에 300만 유로 규모의 지원 사업을 별도로 시행하기로 하였다. 카자흐스탄이 EU 경제에 필요한 34종의 핵심 원자재 중 19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양자 협력이 일방적 자원 공여가 아닌 전략적 상호 의존 구도임을 보여준다.
2.3 비자(사증) 편의 협정: 주권 인정의 척도
2025년 12월, 카자흐스탄과 유럽연합(EU) 간 비자(사증) 편의 협정(Visa Facilitation Agreement)과 재입국 협정(Readmission Agreement) 협상이 공식 개시되면서 주목할 만한 외교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그간 유럽인은 카자흐스탄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었던 반면, 카자흐스탄 국민이 솅겐(Schengen) 지역에 입국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비대칭적 상황이 오랜 외교적 마찰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번 협상 개시는 브뤼셀이 카자흐스탄의 행정적 성숙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토카예프(Tokayev) 행정부에는 균형 외교의 실질적 성과를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정치적 성과로 평가된다. 대유럽 협력이 기업 수익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이동 자유를 실질적으로 넓혀 준다는 점에서 그 상징적 의미가 크다.
2.4 녹색 주권: 수소와 탈탄소 전환
카자흐스탄은 광활한 영토를 재생에너지 생산에 활용함으로써 탈석유 경제로의 전환을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전환의 핵심 사업은 망기스타우(Mangystau) 지역에서 독일-스웨덴계 스베빈드 에너지 그룹(Svevind Energy Group)이 주도하는 '하이라시아 원(Hyrasia One)' 메가프로젝트이다. 약 500억 달러(약 73조 7,500억 원)의 투자를 통해 2032년까지 풍력·태양광 발전용량 40GW를 구축하고 연간 200만 톤의 녹색 수소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프로젝트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공식 에너지 전환 전략과 맞닿아 있다. 2024년 승인된 「수소에너지 개발 개념(2030)」은 수소를 저탄소 경제 전환의 핵심 축으로 명시하고 2030년까지 수소 생산 2만 5,000톤 이상 달성을 목표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을 녹색수소로 충당할 계획이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2025년 9월 국정연설에서 향후 5년간 6.3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추가 확충하겠다고 발표하였는바, 이는 하이라시아 원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뒷받침할 국가적 의지를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이라시아 원의 규모는 지정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이 파워-투-엑스(Power-to-X)* 허브는 유럽과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녹색 암모니아를 연간 최대 1,100만 톤 생산할 계획이다. 카자흐스탄은 EU의 녹색 에너지 공급망에 편입됨으로써 석유·가스 수출에 의존하던 수익 구조를 대체할 장기적·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하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경제적 연결은 일종의 '연성 안보(soft security)' 기능을 수행한다. EU가 카자흐스탄의 안정에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게 될수록, 양자 간 경제적 유대 자체가 외부의 위협이나 불안정에 대한 지정학적 방패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파워-투-엑스(Power-to-X, PtX):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수소·암모니아·합성연료 등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 또는 화학물질로 변환하는 기술의 총칭. 'X'는 변환되는 최종 산물의 종류를 의미함
3. 중부 회랑: 인프라를 통한 능동적 지정학
EPCA가 카자흐스탄이 스스로 외교적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라면, 카스피해 횡단 국제 수송 루트(TITR: Trans-Caspian International Transport Route), 즉 중부 회랑(Middle Corridor)은 그것을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는 인프라이다. 2022년 러시아에 대한 전례 없는 국제 제재가 부과된 이후,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Trans-Siberian Railway)를 통한 러시아 경유 물류 체계, 이른바 '북방 노선'이 사실상 기능을 잃으면서 글로벌 물류에 커다란 공백이 생겨났다. 러시아를 경유하는 화물에 대한 보험료가 급등하고 서방 다국적기업들의 평판 리스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면서, 교역로 전환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은 카스피해를 가로질러 러시아와 이란을 우회하는 새로운 경로를 개척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으로 연결되는 독자적인 물류 통로를 확보하고 단순한 통과 지역에서 물류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림 1] 유라시아 주요 교역 회랑 비교
출처: World Bank (2023)
3.1 대안에서 중추로
여러 운송 수단을 연계해야 하는 복잡성 때문에 한때 보조적 대안으로 여겨졌던 중부 회랑은 이제 전략적 필수 노선으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는 수치로 확인된다. 중부 회랑의 화물 운송량은 2021년 35만 톤에서 2024년 약 450만 톤으로 3년 만에 12배 가까이 급증하였으며, 세계은행은 현재의 인프라 투자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30년에는 1,10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성장은 주요 3개 회랑과의 비교를 통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러시아를 경유하는 북방 회랑(TSR)은 2022년 이후 서방의 제재와 보험료 급등으로 사실상 서방 다국적기업에게 봉쇄되었으며, 2023년 상반기 물동량은 전년 동기 대비 56% 감소하였다. 이란을 경유하는 남방 회랑은 독자적인 대이란 제재 리스크로 인해 여전히 제한적이며, 수에즈 운하를 통한 해상 노선은 비용 면에서 가장 유리하지만 2023년 말부터 이어진 홍해 후티 공격으로 상당수 화물이 희망봉 우회로 전환되면서 운송 기간이 최대 10일 더 늘어났다.
중부 회랑의 경쟁력은 ’절대 우위’라기보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반영한 상대적 우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부 회랑은 러시아를 통과하는 북방 회랑보다 운송 시간이 대체로 길며, 2022년 이전에는 카자흐스탄에서 흑해 연안까지 50일 이상이 소요되어 북방 회랑 대비 약 두 배 이상의 운송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최근 인프라 개선과 운영 효율화로 약 30일 내외 수준까지 단축되는 등 경쟁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부 회랑의 핵심적인 전략적 가치는 러시아 제재·보험·평판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2030년까지 카스피해 횡단 물동량이 2021년 대비 약 3배인 1,100만 톤 수준으로 늘 수 있다고 전망하며, 2024년 TITR 물동량은 11개월 기준 약 410만 톤을 기록하였고 연간으로는 약 450만 톤 수준에 달한 것으로 평가되는 등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하였다. 즉 중부 회랑은 아직 비용·시간 면에서 북방 회랑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지정학적 안정성과 공급망 분산 효과 덕분에 ’보조 대안’에서 ’필수 대안’으로 위상이 바뀌고 있다.이 노선은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 출발한 화물이 코카서스와 터키를 경유해 유럽에 닿을 수 있는 핵심 동서 교역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2 병목 구간 해소: 국내 인프라 투자
카자흐스탄은 중부 회랑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물류 병목 구간을 체계적으로 개선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프라 투자를 단순한 개발 사업이 아닌 '운송 주권' 확보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 철도 확장: 핵심 사업은 도스틱-모인티(Dostyk-Moyynty) 구간 복선화로, 완공 시 철도 통과 용량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중국과의 세 번째 국경 연결 지점 확보를 위해 박티-아야고즈(Bakhty-Ayagoz) 신규 노선이 건설 중이다. 총 272km의 이 복선 철도가 완공되면 연간 약 2,000만 톤의 화물 처리 용량이 추가되어 기존 호르고스(Khorgos)·알라샨커우(Alashankou) 국경 통과 지점의 혼잡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항만 현대화: 악타우(Aktau) 항은 중국 롄윈강 항만그룹(Lianyungang Port Group)의 투자를 받아 컨테이너 처리 능력을 확충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향하는 중국 화물의 주요 환적 거점으로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 쿠리크(Kuryk) 항에서는 아랍에미리트 AD포츠그룹(AD Ports Group)의 투자로 사르자 복합해양터미널(Sarzha Multifunctional Marine Terminal)이 곡물·유류·일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확장되고 있어, 단순 페리 운항을 넘어 항만 기능의 다각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3.3 카스피해의 도전: 환경 위협
이러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카스피해는 중부 회랑에서 가장 심각한 병목 구간으로 남아 있다. 연속적인 철도 구간과 달리, 중부 회랑은 카자흐스탄의 악타우·쿠리크 항과 아제르바이잔의 알라트(Alat) 항 사이에서 해상 환적이 이루어지는 구간을 포함하고 있어 카스피해의 환경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카스피해 수위는 2006년 이후 약 2미터 하락하였으며, 기후변화와 볼가강(Volga River) 유입량 감소가 맞물리면서 이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수위 하락으로 선박들은 항구 입구의 얕은 수심에서 좌초를 피하기 위해 최대 적재량의 70~80% 수준으로만 화물을 실어야 한다. 이는 컨테이너당 운송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해상 운송 대비 중부 회랑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여기에 기존 선박들의 노후화까지 겹쳐 향후 증가할 화물 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카자흐스탄이 물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려면 항로 준설과 선박 현대화를 통해 해상 구간에 대한 실질적 운송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3.4 디지털 주권: 디지털 통상 회랑
도로와 철도 같은 물리적 인프라 못지않게, 국경을 넘는 디지털 시스템도 중부 회랑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다. 카자흐스탄은 국경 통과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첨단 디지털 통관 시스템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 PSA 인터내셔널(PSA International)과 협력하여 구축 중인 디지털 통상 회랑(Digital Trade Corridor)은 통관 절차를 보다 간편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테즈 커스텀스(Tez Customs)'* 모듈의 도입으로 환적 신고서 제출과 발급이 자동화되면서 화물 통과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디지털 시스템은 글로벌 물류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신속한 정보 공개와 일관된 처리 기준을 제공하며, 카자흐스탄은 이를 통해 단순한 물리적 통과 지점을 넘어 동서 교역의 디지털 관문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 테즈 커스텀스(Tez Customs): 카자흐스탄이 싱가포르 PSA 인터내셔널(PSA International)과 협력하여 구축 중인 디지털 통상 회랑(Digital Trade Corridor)의 핵심 모듈. '테즈(Tez)'는 카자흐어로 '빠르다'는 의미로, 환적 신고서 제출·발급 자동화를 통해 화물 통과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4. '제3의 이웃' 전략: 기술 협력 파트너로서의 한국
카자흐스탄은 인접 강대국들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제3의 이웃', 즉 영토 문제와 무관하게 자본과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선진국과의 협력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최근 들어 한국은 이 전략에서 핵심적인 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으며, 'K-실크로드(K-Silk Road)' 이니셔티브를 통해 한국의 유라시아 전략과 카자흐스탄의 산업 발전 목표가 맞물리게 되었다.
한국은 누적 투자액 약 100억 달러(약 14조 7,000억 원)로 카자흐스탄의 주요 투자국 중 하나이며, 주요 한국 기업들은 카자흐스탄의 산업 현대화 사업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기아 카자흐스탄(Kia Qazaqstan)은 코스타나이(Kostanay)에 단순 조립을 넘어 용접·도장 공정까지 갖춘 완성차 제조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하였으며 , 두산 에너빌리티(Doosan Enerbility)는 카자흐스탄 남부의 전력 부족 해소를 위해 투르키스탄 지역에 1,000MW급 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이는 카자흐스탄이 자국 물류 인프라를 구성하는 핵심 수단을 직접 생산·제조할 수 있는 역량을 내재화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5. 결론
2024년부터 2030년까지는 카자흐스탄이 자국의 전략적 위상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결정적인 시기이다. 카자흐스탄은 더 이상 유라시아 지도 위의 수동적인 공간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외교적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능동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EPCA와 핵심 원자재 협력을 통해 유럽과의 관계를 대등한 협력 관계로 재정립하였으며, 광물 자원 접근권을 현금이 아닌 산업화 기술과 맞바꾸는 전략을 실현하고 있다. 중부 회랑 구축을 통해서는 기존 교역로 의존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으로 연결되는 독자적인 물류 경로를 확보하였다.
유럽은 카자흐스탄의 광물 자원을, 중국은 러시아를 우회하는 대체 물류 경로를, 한국은 중앙아시아 시장을 필요로 하는 복합적 상호의존 관계가 형성되면서, 카자흐스탄은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자국의 주권을 지켜 낼 수 있는 외교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선박 건조·철도 제조·디지털 거버넌스 역량을 직접 갖춤으로써 단순히 타국의 물류를 연결해 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연결망의 부가가치를 스스로 창출하는 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세 가지 방향으로 심화할 필요가 있다. 첫째, 물류 인프라 주권 확보 차원에서 쿠리크 항에 한국 조선사와의 합작 조선 시설을 구축하고, 알틴콜(Altynkol) 구간 표준궤 시범 노선 건설과 철도 기술 현지화 거점 조성을 병행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연결망 고도화 차원에서 한국의 유니패스(UNI-PASS) 통관 시스템을 중부 회랑 전 구간에 도입하여 국가 간 통관 절차를 단일 플랫폼으로 통합하고, 블록체인·AI 기반 '그린 디지털 레인' 시범 사업을 통해 국경 통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전략적 노선 포지셔닝 차원에서 중부 회랑을 유라시아 핵심 간선 노선으로 적극 홍보하는 동시에, 알마티와 알라타우 시티를 잇는 고속철도 구축을 통해 스마트시티 개발과 물류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의 심화는 카자흐스탄의 물류 주권 확보와 한국의 유라시아 전략 거점 확대라는 양국의 이해가 맞닿는 지점에서 그 추진 동력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 The Kazakhstan–EU partnership on Critical Raw Materials | Germanwatch e.V., accessed on January 30, 2026, https://www.germanwatch.org/en/91087
∙ EU and Kazakhstan take the next step in their cooperation on critical raw materials - EEAS, accessed on January 30, 2026, https://www.eeas.europa.eu/delegations/kazakhstan/eu-and-kazakhstan-take-next-step-their-cooperation-critical-raw-materials_en?s=222
∙ Expanding Activities in Critical Raw Materials in Central Asia - EBRD, accessed on January 30, 2026, https://www.ebrd.com/home/work-with-us/projects/tcpsd/21762.html
∙ Strategic partnership with Kazakhstan on raw materials, batteries and renewable hydrogen, accessed on January 30, 2026, https://international-partnerships.ec.europa.eu/policies/global-gateway/strategic-partnership-kazakhstan-raw-materials-batteries-and-renewable-hydrogen_en
∙ EU-Central Asia Cooperation on Critical Minerals within a Global Geopolitical Race, accessed on January 30, 2026, https://trendsresearch.org/insight/eu-central-asia-cooperation-on-critical-minerals-within-a-global-geopolitical-race/
∙ Hyrasia One: Value Engineering Studies completed | SVEVIND ENERGY Group, accessed on January 30, 2026, https://svevind.energy/2025/08/27/svevind-energy-group-completed-value-engineering-studies-for-its-hyrasia-one-project-in-kazakh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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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ace to ship in the Caspian Sea - Ship Technology Global | Issue 87 | September 2023, accessed on January 30, 2026, https://ship.nridigital.com/ship_sep23/race_ship_caspian_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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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ndai Rotem rolls out first high-speed train for Uzbekistan | ROLLINGSTOCK, accessed on January 30, 2026, https://rollingstockworld.com/passenger-cars/hyundai-rotem-rolls-out-first-high-speed-train-for-uzbekistan/
∙ Hyundai Rotem unveiled EMU-320 high-speed train - Rolling Stock, accessed on January 30, 2026, https://rollingstockworld.com/passenger-cars/hyundai-rotem-unveiled-emu-320-high-speed-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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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cept of the Foreign Policy of the Republic of Kazakhstan for 2020–2030, Decree of the President No. 280, March 6, 2020, https://www.akorda.kz/en/legal_acts/decrees/on-the-concept-of-the-foreign-policy-of-the-republic-of-kazakhstan-for-2020-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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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ND, “The Middle Corridor: A Renaissance in Global Commerce,” March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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