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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정세변화] EU-메르코수르와 남미 국가의 전략:잠정 발효 후 각국의 이해관계와 과제
중남미 일반 이경은 EC21R&C 연구원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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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메르코수르 FTA의 경과와 잠정 발효 구조
25년 협상의 귀결과 이원적 협정 구조
EU와 메르코수르*(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 간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1999년 공식 출범한 이래 여러 차례 중단과 재개를 거쳐 왔다. 2019년 정치적 합의에 도달하였으나, EU 내 농업 분야의 반발과 환경 규제 논쟁으로 비준이 지연되었다. 이후 2024년 12월 6일 최종 정치적 합의가 도출되었으며, 2026년 1월 17일 파라과이 아순시온(Asunción)에서 공식 서명이 이루어졌다.
이번 협정은 두 개의 법적 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EU-메르코수르 포괄협정(EMPA: EU-Mercosur Partnership Agreement)은 정치 대화, 협력, 무역·투자를 포괄하는 종합 협정으로 EU 전체 회원국의 개별 비준을 필요로 한다. 잠정무역협정(iTA)은 무역·투자 자유화만을 다루는 별도 문서로, EU 이사회의 가중다수결** 승인과 메르코수르 측 비준만으로 잠정 적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이원 구조는 비준 절차의 장기 지연을 우회하기 위한 것으로, EMPA가 발효되면 iTA는 자동 대체된다.
잠정 발효까지의 경과
EU 이사회는 2026년 1월 9일 가중다수결로 서명을 승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폴란드,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5개국이 반대표를 행사하였으며, 벨기에는 기권하였다. 반대국들의 주된 우려는 남미산 농산물 수입에 따른 역내 농업 부문의 타격이었다. 서명 직후인 1월 21일, 유럽의회는 334 대 324의 표결로 CJEU에 협정의 EU 법 합치성 의견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로써 유럽의회의 동의 절차는 사실상 16~18개월간 정지되었다.
이에 대해 유럽집행위원회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위원장은 2월 27일 CJEU 심사 결과와 무관하게 iTA의 잠정 적용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하였다. 메르코수르 측에서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2월 26일 동시 비준을 완료하였고, 브라질이 3월 4일, 파라과이가 3월 17일 비준을 마무리하면서 4개국 전원의 국내 절차가 완결되었다. 이에 따라 2026년 5월 1일부터 iTA가 잠정 발효되어, 양측 간 관세 인하와 시장 접근 확대가 실질적으로 개시되었다.
* 메르코수르(Mercosur: Mercado Común del Sur): 남미공동시장. 1991년 아순시온 조약에 의해 창설된 남미 경제통합체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가 정회원국이며, 볼리비아가 2024년 정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역내 GDP의 약 75%를 차지함
** 가중다수결(QMV: Qualified Majority Voting): EU 이사회의 의사결정 방식으로, 회원국의 55%(15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찬성국 인구가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일 때 의결됨.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 방식으로, 소수 반대국의 거부권 행사가 불가능한 구조
지정학적 배경: 트럼프 관세와 대중 의존 속 교역 다변화
EU-메르코수르 FTA의 잠정 발효는 남미 지역의 교역 환경이 급변하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단계적으로 대외 관세를 인상하여 브라질산 제품에 대해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한 바 있으며, 아르헨티나와는 별도의 상호무역투자협정(ARTI: Agreement on Reciprocal Trade and Investment)을 체결하는 등 양자적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EU와의 FTA는 남미 국가들에게는 대미 교역 축소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적 시장 접근 경로로 인식되고 있다.한편, 중국의 중남미 지역 교역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5,180억 달러(약 771조 9,480억 원)에 달하며, 남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미국을 제치고 최대 교역국 지위를 확보한 상태이다. 우루과이의 경우 오르시(Yamandú Orsi) 대통령이 2026년 2월 시진핑(Xi Jinping)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25건의 양자 협정을 체결하는 등 대중 관계를 동시 확대하고 있다. 이는 남미 국가들이 EU FTA를 대중 의존의 대체재가 아닌 교역 포트폴리오의 추가적 축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U 측에서도 이번 FTA는 단순한 통상 이익을 넘어 지정학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메르코수르는 EU의 니오븀(Niobium)* 수입의 82%를 공급하는 등 녹색·디지털 전환에 필수적인 핵심광물의 주요 공급처이며, 중국·러시아 의존 완화를 위한 공급망 다변화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위치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외부 환경 속에서 남미 각국이 취하고 있는 전략적 대응을 국별로 검토한다.
* 니오븀(Niobium): 초전도 자석, MRI 장비, 항공우주 합금 등에 사용되는 희소금속. 전 세계 생산량의 약 90%가 브라질에 집중되어 있으며, EU는 이를 핵심 원자재(Critical Raw Material)로 지정하고 있음
브라질: 최대 수혜국의 이중 과제
농산물 수출 확대와 비준의 정치적 동학
브라질은 EU-메르코수르 교역의 약 80%를 차지하는 핵심 당사국이다. 2024년 기준 양측 교역 규모는 약 1,110억 유로(약 161조 원)에 달하며, 브라질의 대EU 수출은 농산물·광물·목재 펄프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협정에 따라 EU는 메르코수르산 수입품의 92%에 대해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하는 한편, 쇠고기 연간 9만 9,000톤(7.5% 관세), 가금육 18만 톤(무관세) 등 관세율할당(TRQ)*을 통한 시장 접근도 확대된다. 미국 농무부(USDA) 분석에 따르면 브라질의 대EU 수출에서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품목은 식물유·유지, 돈육·가금육, 기타 식품가공품이다.
룰라(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은 이번 협정을 자신의 핵심 외교 성과로 위치시켜 왔다. 브라질 상원은 3월 4일 만장일치로 비준을 완료하였으며, 룰라 대통령은 이를 "다자주의를 위한 역사적인 날"로 규정한 바 있다. 다만 룰라 대통령은 아순시온에서 거행된 서명식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았으며, 이는 역내 외교적 긴장의 단면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긴장
협정의 이면에는 브라질 산업계의 구조적 우려가 존재한다. 메르코수르의 대EU 자동차 관세는 기존 35%에서 단계적으로 철폐될 예정이며, 이는 상파울루(São Paulo)·미나스제라이스(Minas Gerais) 등 산업벨트 지역에 직접적인 경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룰라 대통령은 협상 과정에서 자동차 세이프가드**, 핵심광물 수출권, 산업정책 공간의 확보를 관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협정문에는 수입 급증 시 관세 양허를 일시 정지할 수 있는 긴급 세이프가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브라질의 농업 중심 주(마투그로수, 고이아스 등)와 산업 중심 주(상파울루, 미나스제라이스) 간의 이해관계 분화는 2026년 10월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현재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비준 자체에 대한 반대는 제한적이며, 협정의 정치적 쟁점화 여부는 잠정 발효 이후 실제 교역 흐름의 변화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 관세율할당(TRQ: Tariff-Rate Quota): 일정 수량까지는 저율 관세를 적용하고 초과분에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 EU-메르코수르 FTA에서는 쇠고기, 가금육, 에탄올, 쌀, 설탕 등 민감 품목에 대해 완전 관세 철폐 대신 TRQ를 적용하여 EU 농업 부문을 보호하는 구조를 채택함
** 세이프가드(safeguard):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하여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을 경우, 일시적으로 관세 양허를 정지하거나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긴급 무역 구제 조치. 2026년 2월 채택된 EU 세이프가드 규정은 수입량이 5% 이상 급증할 경우 발동 가능
아르헨티나: 자유무역 어젠다의 시험대
밀레이 정부의 신속 비준과 전략적 프레이밍
아르헨티나는 메르코수르 4개국 가운데 가장 신속하게 비준을 추진한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밀레이(Javier Milei) 대통령은 서명 직후인 2월 6일 의회에 비준안을 제출하여 임시 회기 안건으로 상정하였으며, 하원은 203 대 42, 상원은 69 대 3의 압도적 표차로 비준을 완료하였다. 이는 주요 야당인 페론주의(Peronist)* 교섭단체까지 찬성에 가세한 데 따른 것으로, 자유무역에 대한 초당적 합의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수출 구조와 경제적 기대
아르헨티나에 대한 경제적 효과는 여타 회원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평가된다. 쇠고기·와인·특산 식품을 중심으로 한 대EU 수출 확대가 기대되며, 쇠고기 쿼터(연간 9만 9,000톤)의 상당 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편 시장 개방의 측면도 수반되어, ING 리서치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대EU 수입 가중평균 실효관세는 장기적으로 10.3%에서 약 1% 수준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이는 EU산 자동차·기계류의 유입 확대를 의미하나, 밀레이 정부는 이를 시장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아르헨티나는 대미·대중·대EU 통상 관계를 다층적으로 병행하고 있다. 미국과는 상호무역투자협정(ARTI) 협상을 진행 중이며, 이전 보고서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대중 통상 관계 역시 구조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브라질과 통합된 역내 가치사슬을 형성하고 있어 관세 철폐에 따른 경쟁 압력이 공유되는 구조이나, 브라질에 비해 국내 정치적 저항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상황이다.
* 페론주의(Peronism): 후안 페론(Juan Perón) 전 대통령의 정치 이념에 기반한 아르헨티나의 주요 정치 운동. 노동자 권익 보호와 국가 주도 산업화를 핵심 기조로 하며, 현재 아르헨티나 의회의 최대 야당 세력인 정의당(Partido Justicialista)의 이념적 기반임 밀레이 대통령은 비준 직후 이 협정을 "아르헨티나의 국제적 통합을 강화하는 근본적 조치"이자 "시작점"으로 규정하며, 메르코수르 차원의 추가적 FTA 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우루과이·파라과이: 소국의 기회와 구조적 제약
우루과이: 교역 다변화의 선도자
우루과이는 이번 협정의 가장 적극적인 추진자로 평가된다. 오르시(Yamandú Orsi) 정부 하에서 우루과이 의회는 2월 26일 아르헨티나와 불과 수 시간 차이로 비준을 완료하며 메르코수르 최초 비준국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루벳킨(Mario Lubetkin) 외무장관은 유럽의회의 CJEU 회부 결정에 대해 "멈출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실행 의지를 재확인하였으며, 미주개발은행(IDB: 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에 협정의 경제적 영향 분석을 의뢰하는 등 이행 준비에도 선제적으로 착수한 바 있다.
우루과이에게 EU-메르코수르 FTA는 단독 이니셔티브가 아닌 보다 광범위한 교역 다변화 전략의 일환으로 위치한다. 메르코수르 차원에서 EFTA*·싱가포르와 FTA가 이미 체결되었으며, 캐나다·한국·아랍에미리트(UAE)·일본 등과의 협상도 진행 중이다. EU는 우루과이 총수출의 약 15%를 차지하는 주요 시장으로, 이번 협정을 통해 세계 GDP의 약 25%에 해당하는 시장에 대한 접근이 확보된 것으로 평가된다.
파라과이: 상징적 역할과 실질적 과제
파라과이는 서명식 개최국으로서의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페냐(Santiago Peña) 대통령 주도 하에 3월 17일 하원 만장일치 비준을 완료함으로써 메르코수르 4개국의 국내 절차가 최종 완결되었다. 대두·쇠고기 수출 확대와 원산지 규정 완화에 따른 혜택이 기대되며, 파라과이 정부는 협정을 통한 외국인 투자 유치 효과에 대해서도 긍정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상대적 소국 공통의 구조적 과제
두 국가가 공유하는 과제는 쿼터 배분의 구조적 불균형이다. 쇠고기 쿼터(연간 9만 9,000톤)의 경우 브라질이 전체의 약 42%를 배정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대형 수출국이 쿼터의 대부분을 흡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볼리비아가 2024년 메르코수르 정회원으로 가입한 이후 4년 이내에 FTA에 합류할 수 있는 만큼, 소국 간 쿼터 경쟁이 심화될 여지도 존재한다. 다만 우루과이와 파라과이는 산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어서 EU산 자동차·기계류 수입에 따른 산업 부문 타격은 브라질·아르헨티나에 비해 적을 것으로 분석된다. 오히려 소비재 가격 하락에 따른 후생 효과가 클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 EFTA(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 유럽자유무역연합. 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노르웨이·스위스로 구성된 무역 블록으로, EU와는 별도의 경제통합체임
종합 분석 및 시사점
4개국 비교 정리
본 보고서에서 검토한 4개국의 사례는 EU-메르코수르 FTA에 대한 남미 국가들의 대응이 공통된 방향성 속에서도 국별 조건에 따라 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라질은 농산물 수출 확대의 기대와 산업 부문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는 밀레이 정부의 자유무역 어젠다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협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루과이는 EU FTA를 포함한 다자적 교역 다변화 전략의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며, 파라과이는 신속한 비준을 통해 역내 협력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쿼터 배분의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4개국에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특정 강대국과의 배타적 관계보다 교역 파트너의 다변화를 통해 정책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이다. 이는 이전 보고서(미중 경쟁과 중남미의 전략적 대응)에서 분석한 '선택 회피와 실익 추구'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EU FTA는 이러한 전략에 새로운 축을 추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변수
향후 주목할 변수는 세 가지이다. 첫째, CJEU의 합치성 판단이다. 유럽의회가 제기한 쟁점은 협정의 이원 구조가 EU 조약상 권한 배분 원칙과 합치하는지, 그리고 회원국 의회의 비준권이 우회되는 것은 아닌지에 집중되어 있다. 판결은 2027년 후반으로 예상되며, 불합치 판정이 내려질 경우 잠정 적용의 지속 가능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쿼터 배분의 실제 운용 양상이다. 쇠고기·가금육·에탄올 등 주요 품목의 쿼터가 메르코수르 내부에서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따라 소국의 실질적 수혜 수준이 결정되며, 이는 역내 통상 관계의 긴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2026년 하반기 브라질 대선 결과이다. 현재까지 협정에 대한 초당적 지지가 유지되고 있으나, 선거 과정에서 자동차 산업 보호 등이 쟁점화될 경우 협정 이행의 정치적 동학이 변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구조적 함의
EU-메르코수르 FTA의 잠정 발효는 남미 국가들의 통상 전략이 양자적 관계의 관리에서 다자적 포트폴리오의 구축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대미 관세 리스크의 헤지, 대중 의존의 분산, 그리고 EU라는 규범 기반 무역 파트너의 확보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현 구도는, 남미 국가들이 강대국 간 경쟁이 심화되는 환경 속에서 경제적 실익과 정책적 자율성의 동시 확보를 추구하는 경향이 구조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CJEU 판결과 쿼터 운용의 실제 결과는 이러한 전략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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