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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레이디가가와 인도네시아의 민주정치

인도네시아 전제성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2012/06/04

2012년 6월 초에 예정된 미국가수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자카르타 공연이 취소되면서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레이디 가가 측에서 “리틀 몬스터들(팬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며 5만 여의 표를 환불하기로 결정하여 공연이 취소되었지만, 이슬람 급진파의 협박과 이를 수용한 경찰당국의 공연허가지연이 결정의 배경이 되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공연을 반대해온 급진이슬람단체의 승리이자 인도네시아 민주정치의 취약점이 만천하에 보여준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공연계획에서 취소까지
 
가가의 자카르타공연 소문은 1월 말부터 나돌기 시작했다. 9대의 제트기를 동원하고 26편의 노래를 공연하는 아시아 최대의 공연이 될 것이라고 했다. 3월 10일 공연관람권이 판매되기 시작했는데 5만장 이상의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가가는 기뻐하며 “아직 가본 적이 없는 곳의 새로운 ‘몬스터들’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참기 어렵다”며 큰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슬람진영의 비판이 곧 제기되었다. 3월 19일에 이슬람학자연합(MUI)의 의장은 개인적인 소견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가가 공연의 관람은 “하람”(이슬람금기)이라고 주장하였다. 더 심각한 반대는 5월초에 시작되었다. 급진적 행동단체 이슬람옹호전선(FPI)이 5월 4일에 “마더 몬스터 공연이 사탄의 가르침을 전하여 민족의 도덕성을 망가뜨릴 것”이라며 경찰에게 공연을 불허할 것으로 요청하고 만약 공연이 성사되면 실력으로 제지하겠다고 나섰다.

열흘 뒤에 자카르타경찰당국은 공연취소가 바람직하다는 불허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에 따라 사회적 논란이 비등하고 해외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부담을 느낀 경찰은 공연허가절차에 필요한 여러가지 조건에 관한 검토를 진행중이라고 21일 밝혔다. 그러자 다시 FPI가 반대의 전면에 나섰다. 이 단체는 공연을 방해하기 위하여 157개의 관람권을 구매하였다는 소문은 부정하였지만, 공연장에 이르는 길목을 봉쇄하겠다고 공언하였다. 5월 27일에 현지의 대행사는 가가 측이 공연에 대한 위협, 안전보장, 당국의 공연허가절차 진행상황 등을 고려하여 공연 취소를 결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공연예정 1주일 전이었다.
 
 가가논쟁, 표현의 자유, 두 개의 이슬람
 
3월부터 시작되어 5월에 극점을 이룬 가가 공연에 관한 논쟁은 이슬람 대 세속주의라는 인도네시아아의 오랜 균열뿐만 아니라 날로 두드러지는 이슬람 내부의 대립도 잘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국회의장이 가가 공연반대에 우려를 표하면서 “이슬람국가라면 남녀가 함께 있는 것조차 금지되어 마땅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슬람에 대한 세속주의 입장의 반발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가가공연관람을 하람으로 규정하는 MUI의장의 견해에 대하여 인도네시아의 세계최대이슬람대중조직 나흐들라툴 울라마(NU) 집행부 의장이 “국민들이 좋고 나쁜 것을 스스로 가릴만큼 성숙하다” 며 세계적인 공연을 대하면서 가가의 “복장에만 관심을 두지말자”는 의견을 낸 것이나, 제2의 이슬람대중조직 무하마디아(Muhammadiyah)가 가가의 “복장이 천박하지만 않다면” 공연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낸 것은 이슬람 내부의 입장 차이와 대립을 드러낸 것이다. 즉 모든 이슬람 세력이 가가 공연을 반대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다문화적이고 유연한 이슬람 세력이 아니라 이슬람교를 앞세워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거나 무슬림이 아닌 이들의 자유까지 제한하려는 급진세력의 주장이 승리하였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종교적 관용이 약화되는 추세 속에서 발생한 급진주의 이슬람세력의 이번 승리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표현의 자유를 더욱 제한하는 효과를 줄 것으로 우려된다.
 
 협박과 국가, 권력의 모호한 소재
 
레이디 가가의 자카르타 공연취소는 인도네시아가 누구의 나라인지, 그리고 권력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도네시아 정부, 특히 치안당국은 이번 대응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경찰은 소수파이지만 특유의 행동주의로 소요를 많이 일으킨 이슬람옹호전선(FPI)의 요구를 정확히 따랐다. FPI가 공연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경찰에게 구체적으로 주문하였고 경찰은 이를 수용하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FPI가 자신들의 요구가 청원이 아니라 협박임을 숨기지 않았음에도 이를 수용한 것이다. FPI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공히 바라지 않는 일이 발생하길 원치 않는다면, 공연허가를 내주지 마라. 만약 공연이 감행된다면, 원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책임질 수 없다. 자카르타가 대혼란에 빠지길 원한다면, 허가를 내줘라.”

이러한 협박을 치안당국이 그대로 수용하자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질서를 어지럽히겠다는 세력이 있다면 경찰이 그들을 막는게 본분이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그러자 경찰은 이슬람학자연합에서 동의하면 허가를 내주겠다거나, 공연내용을 검열하고 제한하겠다거나, 외국인 근로에 대한 인력이주부의 승인도 있어야 한다면서 책임을 떠넘기고 조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허가절차를 질질 끌었다. 이번 공연이 경찰에게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였다.

민간단체의 협박에 굴하거나 공적 업무 처리를 기관의 이익에 준하여 처리하는 경찰이나 이를 방관하는 분열적인 국가의 대응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를 갉아먹을 수 있다. 민주정치가 원활하고 유용하게 작동하려면 정부가 강경한 행동주의자들에게 굴복하거나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의 준수나 안전의 보장을 비롯한 법치의 관철과 시민적 자유 및 권리에 대한 정부의 책임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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